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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약국
김혜선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잔소리 약국』은 약사인 엄마와 프리랜서 딸이 함께 살아가는 기록이다. 언뜻 보면 모녀사이의 애증의 티키타카를 그려낸 일상담 같다. 그러나 행간 사이에는 돌봄의 시간에 대한, 혹은 사랑의 또 다른 형태에 대한 사색이 깃들었다.
일하는 여성의 커리어가 온전히 인정받거나 지켜지려면 또 다른 여성의 희생하는 하루가 필요하다. 이 말은 돌봄, 육아, 간병 모두 해당될 것이다. 나 역시 출근하는 동생을 위해 생후 백일된 조카의 육아를 담당했었다.
책 속 모녀의 약국은 서로의 애증과 잔소리가 스며드는 장이 된다. 유리 진열대 위에 놓인 약봉투와 장부, 오래된 의자와 셔터의 금속 냄새까지 — 그 모든 것이 한 가족의 역사이자, 돌봄이 쌓인 시간의 증거로 남는다. 엄마의 약국은 생계를 유지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삶과 죽음, 반복과 변화, 유대와 단절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무대가 된다. 이 책은 그 일상적인 풍경을 빌려 인간의 생애가 얼마나 다층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중심에는 ‘돌봄’이 있다. 그것은 피로와 체념, 책임과 연민이 섞인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다. 오십을 넘긴 딸은 나이든 노모를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 삶의 균형을 잃어간다. 엄마는 삶의 끝자락에서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 “돌봄이 끝나도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학적 울림처럼 남는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지키려 애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를 놓아주면서도 마음 한켠에 여전히 그를 두는 일이 아닐까. 엄마를 보낸 딸은 나직하게 속삭인다. 이제 일 그만하고 아빠와 하늘나라에서 노시라고.
엄마의 약국 셔터가 닫히는 순간, 딸은 비로소 깨닫는다.
돌봄이 끝나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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