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기억을 상실한 남자가 살인자를 찾기 위해 여덟 명의 호스트의 몸을 빌려 사건을 추적한다는 설정이 참신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과연 주인공이 어떤 과정을 통해 범인을 찾아낼지 그리고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7번이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는지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읽을수록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이야기 구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이었다. 슈튜어트터튼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복잡한 구조의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웬만한 소설의 두 권 정도 되는 분량에 압도되었지만 독특한 설정과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뒤섞여 매력적으로 느껴지면서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읽게 되는 중독성이 있었다. 이는 흥미로운 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칫 잘못해 그 흐름을 놓치면 이야기 밖으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럼에도 탄탄한 구성이 그 모든 복잡한 조각들을 이어주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큰 재미를 안겨주었다.


첫 번째 호스트 세배스찬 벨에게는 의사 외에도 비밀스러운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겁이 많은 사람이면서도 비밀스러운 일을 통해 비열하게 부를 축적했다. 벨이 자신이라 알고 있었던 주인공은 이 사실을 알고는 큰 슬픔에 빠진다. 그가 처음 깨어났을 때 찾은 사람은 "애나" 그는 애나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힘쓰지만 아무도 애나를 알지 못한다.


만약 애나가 내편이 아니라 내 적이라면? 그래서 내 머릿속에 그녀의 이름이 각인 된 거라면? 어쩜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게 전달된 쪽지도 그녀가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어젯밤 시작한 일을 오늘 마누리 짓기 위해서. 굳건했던 용기에 균열이 생기면서 공포가 스며든다. _099 page


그 후 각각 다른 호스트들이 되어 에블린 하드캐슬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여러 호스트들을 오고 가는 동안 애나, 흑사병 의사, 은색 눈물, 찰스 커닝엄, 다니얼 콜리지, 에블린 하드캐슬 그리고 풋맨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동료일 수도 적일 수도 그도 아니면 그저 방관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주인공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 또한 그들이 주인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끊임없이 퍼즐을 마주쳐 추측하며 읽어 나갔다. 주인공이 애나가 아닐까?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정을 만들어 가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그중 몇가지는 일치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내 예상을 빗나갔고, 이는 내 호기심을 더더욱 자극했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어. 그리고 조만간 당신도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에 앉아 내가 하는 설명을 고스란히 읊게 될 거야. 그 순간이 오면 순진한 레이븐코트의 헛된 희망이 그리워질걸. 미안하지만 미래는 경고가 아니야, 친구. 미래는 약속이라고.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가 결코 깨버릴 수 없어. 바로 그게 우리가 갇힌 이덫의 본성이라고. _144 page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실크해트와 지기로 된 부리가면으로 가린 '흑사병 의사'. 그의 정체는 후반까지 미스터리하다. 그가 블랙히스를 탈출하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며 그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친구'인지 아니면 적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다. 그는 주인공에게 몇 가지 규칙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첫째는 주인공에게 몇 명의 호스트들이 주어진다는 사실. 둘째는 마지막 호스트가 돼서도 자정까지 답을 찾지 못하면 기억을 전부 지워진 채로 벨 박사의 몸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할 거라는 사실. 세 번째는 주인공을 제외한 두 명의 경쟁자가 블랙히스에 머물고 있고, 이들 중 자신에게 가장 먼저 답을 가져오는 단 한 사람만이 블랙히스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 네 번째는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이 들면 직전 호스트로 돌아가게 되고 만약 그 호스트가 자정 이후 잠이 들거나 죽게 되면 새로운 호스트로 다시 깨어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 고약한 일을 벌이고 싶어 하는 갈망.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욱하지 않도록 화를 다스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또다시 이 괴물이 튀어나와 한바탕 나리를 피울 게 분명하

다.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내 호스트들이 언제든 반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 _224 page



나를 아래층으로 그리고 문제의 복도로 이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래시턴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의 분노와 자존심이 나를 움직였다. 나도 모르는 새 그에게 조종당한 것이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래시턴의 무모함이 우리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더 이상 호스트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애나와 함께 이 지옥을 탈출하려면 무조건 풋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나가야만 한다. 나는 우리를 도와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_454 page


후반으로 갈수록 토머스 하드캐슬의 사건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지만, 하나씩 밝혀질수록 오히려 혼란의 늪에 빠지게 된다. 피터 하드캐슬, 헬레나, 찰리 카바, 에블린, 찰스 커닝엄, 테드 스탠윈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풀어질수록 반전에 반전한다. 모든 추측들을 다 뒤집어엎어버리는 듯하다. 어쩌면 범인을 찾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호스트들의 기본 성향이 독자들로 하여금 범인을 추리는데 덫을 놓는 역할을 한다. 호스트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블랙히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헛발을 유도한다. 그만큼 뒤통수를 신나게 두들겨 맞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진이 빠질 때쯤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긴장을 놓지말아야 한다. 저자가 날릴 결정적인 마지막 한방이 숨어있으니까. 하지만 조급하게 인터넷에서 범인을 찾고 읽지는 말자. 미리 범인을 알고 읽는다면 이 책에서는 아무런 희열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마지막 순간까지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은 자만이 그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의사 서배스찬 벨, 젊고 젠틀한 다니얼 콜리지, 집사 로저 콜린스, 돈 많은 한량 도널드 데이비스, 은행가 레이븐코트 경, 난봉꾼 조너선 더비, 변호사 에드워드 댄스, 순경 짐래시턴, 화가 그레고리 골드, 하녀 루시 하퍼와 마들렌 오베르, 의사 리처드 애커, 마굿간시기 앨프 밀러, 토머스 하드캐슬, 마이클 하드캐슬, 에블린 하드캐슬, 헬레나 하드캐슬, 피터 해드캐슬, 밀리센트 더비, 찰스 커닝엄, 찰리 카버, 서트클리프, 크리스토퍼 페티그루, 글리퍼드 헤링턴, 펄리시티 맥더스, 로체스터, 오즈월드, 키스 파커, 드러지 부인, 그레이스, 조세핀, 애나벨 코커, 펄리시티 맥덕스, 올리버, 에이든 비숍 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이들 관계 속에서 나는 저자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굴려지며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헛발질을 했다. 또한 나 못지않게 주인공도 서로 다른 호스트들의 몸에서 주인공의 그들의 인격과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다. 이야기가 끝에 다다를수록 그는 호스트가 자신인지 자신이 호스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호스트의 본성에 동화되어 가면서 말이다. 정말 신기한 건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수많은 등장인물과 시간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며 저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을 읽고 나서 앞으로 그의 책은 모두 찾아 읽고 싶을 만큼 나는 스튜어트 터튼의 팬이 되어버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