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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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성공이란 그게 무엇이든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란다. (24면)




2. 성공이란 누구나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스스로 결정한 그 무엇이란다. (24면)




3. 그 선물은 네 스스로 받은 것이다. 너는 어렸을 때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37면)




4.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 넌 산만하지 않고 행복하다. (40면)




5. 그는 오직 자신의 현재(The Present)를 그냥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갑자가 무엇인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비로소 그는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늘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40, 41면)




6.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받는 소중한 선물에 감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43면)




7.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현재 이 순간 ‘옳은’ 것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활력과 자신감을 얻어 그른 것도 처리할 수 있다. (49면)




8.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더욱더 기운이 빠지고 자신감이 줄어들지 않겠나. 그래서 ‘나쁜’ 상황 때문에 힘이 들더라도 무엇이 ‘옳은’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걸세. 그러면 그걸 토대로 기운을 내서 행동에 옮길 수 있네. (50면)




9. 중요한 건 고통스런 상황을 겪을 때 그걸 피하려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그 고통에서 배움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네. (52면)




10.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 바로 지금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아라. (55면)




11. 도중에 두어번 정도 난관을 만났지만, 잡념에 빠지지 않았고, 다른 일로 슬쩍 회피하지도 않은 채 현재에만 집중했다.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계속 나아간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두 시간 만에 업무를 마쳤다. 비록 작은 성과였지만, 그 일을 끝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아주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다. (57면)




12. 이 소중한 선물을 깨닫기 전까지는 회의 시간에 몽상에 잠기거나 승진하는 꿈만을 꾸어온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현재 속에서 존재할 때 일처리도 잘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57, 58면)




13. 과거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면 과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배움을 얻고 과거를 보내는 순간 우리의 현재는 더 나아진다. (64면)




14. 과거의 잘못과 경험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면 현재의 즐거움을 잃게 돼. 하지만 과거의 잘못에서 정말로 배우는 것이 있다면 현재의 즐거움은 배가 되지. (67면)




15.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행운이 따르는 경우를 제외하곤 미래에 대한 철저한 계획 뿐이지. (78, 79면)




16. 미래를 계획하고 나면 걱정과 불안이 줄어들어서 현재를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 이를테면 미래 계획은 지도와 같은 거야. 지도가 있으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목표에 훨씬 더 잘 집중할 수 있다네. (79면)




17. 삼각대는 다리가 셋일 때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 않는가. 현재 속에서 살기, 과거에서 배우기,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기야. (85면)




18. 현재에서 살기, 과거에서 배우기,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삶에 소명이 있을 때만 그 모든 것은 의미를 갖는다. (95면)




19. 소명의식을 가진 삶이란 단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까지도 알아야 하는 것임을 그는 비로소 이해했다. 소명의식을 가진 삶은 거창한 청사진이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자세다. 또한 매일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행동이 자신과 남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95, 9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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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법이론
이상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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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이란 올바른 질서 또는 올바른 행동준칙(규범)을 말한다. 법조인들 사이에서 법인식(Rechtserkenntnis)은 흔히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올바른 질서 또는 행동준칙을 캐내는 사유활동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법적 실천은 자신들이 인식한 올바른 규범의 내용을 현실에 옮기는 사회적 행동이라고 본다. 이런 생각에서 법적 실천은 법인식 뒤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법은 인식에 앞서 이미 주어져 있는 실체가 아니며, 인식 또한 실천(사회적 행동)에 논리적으로 앞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법의 재생산과정을 관찰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법은 의회의 법률제정, 행정관료와 법관의 법률적용, 법학자의 학설형성과 같이 법의 재생산구조 중심부에 속하는 행동들과 매스컴의 법에 대한 비평이나 사회단체의 입법 및 법률개정운동 그리고 시민의 반응 등과 같이 주변부에 위치하는 수많은 다양한 행동들 사이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이 상호작용의 과정은 올바른 질서 또는 행동준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 2면)




2. 그러나 이와 같은 전문성과 비전문성, 법과 정치의 ‘완전한’ 분리는 하나의 전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형성의 내부기제를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들고, 그와 같이 통제되지 않은 영역에서 법조인들은 법인식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필요한 경우 때때로 실무 법조인이 아닌 법학자에 대하여도 감행된다. 법조인들이 법학자의 주장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강단법학’과 ‘아카데미즘’을 들먹거리는 것은 실무적인 법논리와 비판적 거리에 있는 법인식을 전문성을 가장한 사이비 법인식으로 몰아붙이는 방편일 수 있다. 그런 방편은 법조인들에게 돌아갈 법인식의 현실적인 수혜몫을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일 듯 하다. (2, 3면)




3. 점점 더 세계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실무 개념은 1) 법조실무에 대한 비판지식(예: 판례평석과 새로운 법해석의 제안)의 생산이나 비평적 활동(예: 입법작업활동, 법개혁포럼의 수행), 2) 제도화되지 않은 권리의 발굴이나 신장에 이바지하는 지식의 개발(예: 법사회학, 법문학 등의 기초법학), 3) 초국가적인 법발전을 가져오는 다양한 법적 컨설팅(예: 다양한 유럽연합법과 관련된 저술과 자문) 등을 포함하여야 한다. (3면)




4. 법률가들은 법인식의 전문성과 비전문성을 구분하거나 법과 정치를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흔히 자신들이 전개한 법인식의 (순수)과학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서양의 근대과학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이래로 과학이 도덕뿐만 아니라 정치와도 날카롭게 구분되는 전문적 인식의 대표적인 생산기지로 인정받고 있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4면)




5. 그들의 의식세계에는 다음과 같은 ‘과학주의’(Szientistik) 또는 ‘실증주의’와 유사한 것이 만연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법은 인식활동에 앞서서 이미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규범적 실체이며, 법인식은 바로 그러한 실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다. (4면)




6. 법인식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과학주의적’ 또는 ‘실증주의적 법인식’이라 부를 수 있다. 한국의 법학자 대부분은 그들 스스로가 이런 과학주의적 법인식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법인식론을 자신들의 전문성을 대변하는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다. 법학자와 법조인 모두에게 하나의 직업상식으로 인정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법률적 삼단논법은 바로 과학주의적 인식론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법관의 법률적용이란 법률에 담겨진 객관적 실체인 규범을 인식하고(법률해석), 소송절차에서 과거에 존재한 사건을 확정한 다음(사실인정), 인식된 법규범을 그 사건에 적용하는(사안의 법률로의 포섭) 논리적 추론과정이다. (4, 5면)




7. 이러한 법률적 삼단논법은 오늘날까지도 법조인을 양성하는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의 방법론적 대전제를 이루고 있다. 법률적 삼단논법의 도그마 아래에서는 법률적용이 객관적, 과학적 인식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법조인교육도 그러한 과학적 인식을 개발하는 전문과학 - 이를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 또는 법률해석학이라 부름 - 이 주도하게 된다. 이 전문과학은 주로 법률텍스트의 자연주의적 의미를 가능한 한 세밀한 형식적-언어논리적 명제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5면)




8. 이런 직업적 사회화과정에는 현실사회에 대한 경험과학적-사회과학적 이론과 사회현실에 대한 다양한 정보의 습득 그리고 비판적 성찰의 과정이 대부분 배제된다. (5면)




9. 그런 정치적 사회화과정 속에서 성장한 법조인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정치적 무의식이다. ... 실무 법조인들은 자신들의 법인식이 오직 객관적-과학적 인식일 뿐이며 정치적 편가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의 정치적 해결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을 때에는 언제나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구호가 등장하곤 한다. 이 구호는 비정치적인 성격의 법적 정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법적 강제가 관철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힘있는 집단의 이익일 뿐이다. 만일 이 점이 사실이라면 과학주의적 법인식론에 빠진 법조인들은 힘있는 집단의 이익관철에 봉사하는 정치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법조인들에게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7면)




10.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법인식에 의한 법적 지식의 생산 그 자체가 정의의 기준을 새롭게 구성하고 사회형성과 변화에 대해 구성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그러니까 법적 지식의 변증적 성격이 외면되고 만다. (8면)




11. 그들에게 자신의 규범적 판단(법적 지식)의 의미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 즉 실천적 인식관심이 없다. 인식활동에서 그들의 관심은 자신이 인식한 법(적 지식)이 일정한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 즉 기술적 인식관심으로 일차원화되어 버렸다. 기술적 인식관심에 의해 평면화되는 규범적, 실천적 판단과 주장(법적 지식의 재생산)은 독단적일 수 밖에 없다. 결과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법인식만이 권위를 누릴 뿐 그 인식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나 의미이해의 가능성은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8, 9면)




12. 해석학의 이해의 구조적 해곡 (1) 언어의 왜곡 ... 한국사회에서 언어가 실어나르는 해석학적 지식들은 비판적 성찰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사회윤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권력을 재생산하는 의사소통적 교류가 아직도 전통적인 사회윤리로 채색되어 있음을 뜻한다. (10면)




12. 해석학적 이해의 구조적 해곡 (2) 체계의 왜곡 ... 두 번째 왜곡현상으로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언어가 법인식을 매개해주는 기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유자본주의단계에서 후기자본주의단계로 넘어올수록 욕구충족의 물적 조건인 재화의 창출과 분배는 - 경제체계, 보건체계, 교육체계, 교통체계, 환경관리체계 등과 같은 - 사회적 하부체계의 기능에 매달려 있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그러한 사회적 하부체계의 기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라는 경제성과 효율성의 이념은 하나의 절대명령이 되고 만다. 이를 ‘체계의 절대명령’이라 한다. 이 명령은 한국에서도 의회, 행정관료, 법관, 법학자와 같은 법규범의 중심적인 재생산기구를 정복해가고 있다. (11면)




13. 법규범을 생산하는 공식적인 법인식이 시장매커니즘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법인식이 언어의 의미지평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시장매커니즘의 의사소통매체는 언어가 아니라 실제로는 권력과 자본이라는 비언어적-비규범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후기산업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법인식의 현실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법인식의 해석학적 지평 자체가 체계의 절대명령 앞에서 점차 축소되어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학적 지평의 축소와 반비례하여 법인식이 권력과 자본이라는 지배매체에 복속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권력과 자본이 이데올로기적인 한 법인식도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13면)




14. 이러한 이데올로기비판은 무엇보다도 공식적인 법의 재생산기구들이 자신들의 법인식활동에 대하여 반성적인 성찰을 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또한 그런 성찰은 법인식주체들이 현재 터잡아 있는 권력에 대해 비판적 인식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13면)




15. 언어비판이 겨냥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욕구충족의 기회를 편파적으로 분배하는 편가름기능을 하거나 사회화된 욕구체계 자체에 대한 재해석, 즉 문화비판의 가능성을 막는 언어사용의 폐쇄적 경직성을 극복하는 데에 있다. (14면)




16. 제도비판은 법에 관한 의사소통적 교류를 왜곡시키는 모든 구조의 해체를 겨냥한다. (14면)




17. 모든 구조적 왜곡이 해체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규범에 관한 의사소통적 교류는 ‘모든 개인들이 문제가 된 규범의 타당성에 대하여 주제설정, 의견개진, 정보화 및 근거제시를 공적인 대화마당에서 자유롭고 기회균등하게 할 수 있는 의사소통조건 속에서 상호이해(합의)를 도모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14면)




18. 이를 하버마스는 ‘합리적 대화’(rationaler Diskurs)라 부른다. 제도비판이란 바로 법에 관한 현실의 의사소통적 교류와 이상적인 합리적 대화 사이의 간극을 들추어 내고 그것을 지양하려는 실천이다. 이 실천은 궁극적으로는 오직 시민사회에서 전개되는 비판과 토론에 의한 ‘계몽’의 형태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15면)




19.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이론을 개발한 70년대 초기에는 ‘이상적 대화상황’이란 개념을 즐겨 썼으나(예: Habermas, Vorstudien und Ergaengzungen zur Theorie der kommunikativen Handelns, 1984, 127쪽 아래) 형이상학 또는 허구라는 비판을 받은 후 이제는 주로 ‘합리적 대화’란 개념을 주로 사용한다(예: Habermas, Faktizitaet und Geltung, 1992, 138쪽 아래). (15면)




20. 한국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사회문화가 여전히 법에 관한 의사소통적 교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사회문화의 특징으로 형이상학적 사회윤리, 집단주의적 에토스, 직관과 정서적 판단이 중심인 인지메커니즘의 지배 등을 들 수 있다. ... 이런 의미의 전근대적 문화 속에서 진리와 윤리 그리고 법은 분화되지 않는다. 또한 그런 가운데 법에 관한 의사소통적 교류는 주로 전통적인 사회윤리로 채색된다. 바로 여기에서 법인식의 자기성찰로서 언어비판과 제도비판이 한국사회에서 활성화되기 힘든 이유가 발견된다. (17면)




21. 후견주의적 성향이 커질수록 법에 관한 의사소통적 교류는 합리적 대화의 모습보다는 주인과 노예 사이에 일어나는 부양과 복종의 교환관계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된다. 이것은 후기산업사회에서 개인들에게 제도비판의 역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뜻한다. (17, 18면)




22. 이러한 제도비판의 역량감소는 한국사회가 서양사회보다 더욱 심할 듯하다. 후기산업사회의 ‘국가적 후견주의’가 사회문화차원을 지배하는 전통사회의 ‘윤리적 후견주의’와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증폭되기 때문이다. (19면)




23. 한국사회도 이미 계약론적 에토스의 법인식으로는 근대성기획을 더 이상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후기산업사회의 위기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회체계의 기능적 효율성이 법의 중심적인 카테고리로 자리잡아 간다는 점, 개인의 자율적 도덕의 이성 만으로는 홍수처럼 넘치는 수많은 법규범에 대해 충분히 정보화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개인은 법규범의 생존배려기능에 노예처럼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점 등과 같은 위기현상이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확인되고 있다. (21면)




24. 그 새로운 에토스는 비판적 인식관심에 기초한 언어비판과 제도비판이 겨냥하는 합리적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21면)




25. 현실의 법인식은 언제나 정치적 프로그램을 배후에 숨기고 있다. 여기서 법인식의 논리 속에 은폐되어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는 일이 법이론가에게 요구된다. (23면)




26. 현재 실무에서 과학주의 또는 실증주의적 법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두 곳이다. 법률해석과 관련된 ‘법리’나 ‘문리’ 또는 ‘법규정의 가능한 의미’라는 논증언어와 사실인정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이란 논증언어이다. (26면)




27. 법률해석이 객체인식이라는 생각이 쫓는 실천적 목표는 ‘은폐’와 ‘책임회피’이다. 법률가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법률이해에 대한 실질적 근거를 드러내고 근거지어야 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자신들의 법적 결정이 갖는 사회적-정치적 기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27면)




28. 이러한 주체-객체-인식모델은 사실인정에서(특히 형사소송에서) ‘실체적 진실’을 말할 때에도 전제되어 있다. ... 그러나 이런 사실인정의 이해도 하나의 전략이다. 실무 법조인이 인식한 사실이 실체적 진실임을 강조하면 할수록, 절차규정을 위배하거나 소송에서 등장한 정보(증거)를 잘못 사용한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인정의 사회적-정치적 기능이 더욱더 잘 은폐될 수 있기 때문이다. (27면)




29. 법조인들의 법인식이 순수과학적 인식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실천 - 법적 지식의 변증적 성격 - 임을 자각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현재로서는 말행위이론(Theorie der Sprechakt, theory of speech act)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예컨대 법관의 판결은 “일정한 명제내용이 (올바름을) 나는 주장한다” 식의 규범적 말행위로 보게 된다. 이처럼 법률적용을 객체인식이 아니라 규범적 말행위로 보게 되면 법률을 적용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인식이 어떤 존재론적 실체에 부합하기 때문에 진리이다”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28면)




30. 특히 말행위에서 ‘주장한다’라는 실행적 부분(illokutionaerer teil)은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받는 사람 사이에 일정한 사회적 관계, 즉 그 말의 내용(명제적 부분, lokutionaerer Teil)을 올바른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회적 긴장관계를 창설한다. (28면)




31. 규범적인 내용을 말하는 사람은 그 말을 받는 사람에게 자기 말이 올바름을 승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말의 내용을 근거지어야 하고 그 말이 현실이 될 경우 가져올 사회적 현실(관계)의 변화에 대한 책임도 떠맡아야 한다. 이처럼 법률적용은 객체인식이 아니라 말행위로 파악할 경우에 법조인들은 자신의 법인식에 대한 근거지움의 의무와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8, 29면)




32. 그렇다고 규범적 말행위의 진리가능성을 포기해 버릴 수도 없다. 그런 진리무정부주의는 ‘규범’적 말행위와 근원적 모순을 갖기 때문이다. 제3의 길은 말놀이(Sprachspiel)의 이론에서 발견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말의 사용은 일종의 놀이와 같다고 하다. 놀이에 일정한 규칙이 있듯이 말놀이에도 규칙이 있다. 그리고 말놀이에서 한 단어가 적용되는 대상들 사이에는 ‘존재론적 공통성’은 없고(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연주의적 의미론이나 실재론에 다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들 얼굴에 나타나는 유사성(Familienaehnlichkeit, family resemblance)과 같은 것만 있다고 한다(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유명론에 빠지기 때문이다). 법인식활동으로서 규범적 말행위도 (법률)말행위에 ‘참여’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로써 법조인의 실천문제는 이론과 분리된 개인의 실존적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구성적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참여는 곧 사회적 행동이며 실천이기 때문이다. (29, 30면)




33. 법인식은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특정한 재화분배방식의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하려는 인식관심에 이끌린 채 법률단어의 사용규칙(법률말놀이)을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하고 따르는 참여(실천)이다. (31면)




34. 법률말놀이의 구성적 참여란 ‘사안들 사이의 유사성’을 창출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을 뜻한다. (31면)




35. 우리 실무에서 법인식의 자기성찰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논증의무가 충실하게 이행되지 않거나, 더 나아가 많은 경우 아예 이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논증의무의 불이행, 철저하게 감춰진 법인식의 선이해 - 이것은 한국 법실무에서 법인식의 (비판적) 해석학적 지평을 축소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32, 33면)




36. 사실인정은 객체인식이 아니라 마당적 이해의 내용을 명제로 하여 그 명제의 올바름을 주장하는 말행위이다. (34면)




37. 마당놀이에서 심미적 체험의 일회성과 무규칙성을 표현하는 제도가 바로 자유심증주의이다. 자유심증주의는 규칙이 없고, 일회적인 정보의 활용이 법관 개인의 자유판단사항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제도인 것이다. (35면)




38. 지속적인 비판만이 법인식의 현실을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롭고 기회균등한 비판과 토론의 가능성, 즉 공적인 대화마당이 모든 법과 사회제도에 구조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38면)




39. 법률적 삼단논법의 인식활동적 성격 ... 법률의 적용과 법형성은 엄격히 구분된다고 보는 것이다. (43면)




40. 포섭이데올로기의 두 가지 인식론적 전제 ... 첫째, 법률텍스트로부터 구체적인 법명제를 연역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작업(상위명제를 정하는 작업)은 법률언어와 그 법률언어를 해석하는 논증언어의 언어가 존재론적으로 명확하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언어의 (의미)명확성-독트린’이라고 부른다. ... 둘째, 위에서 법률에 포섭될 수 있는 사건은 법률해석과는 - 더 정확하게는 법률해석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어떤 정치적, 윤리적, 정책적 결정과는 -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52, 53면)




41. 법률언어가 그것에 의해 나타낼 수 있는 대상을 그 자체로 혹은 그 글자의 논리적인 언어적 뜻풀이(법률해석)를 통하여 ‘완전하고’ ‘분명하게’ 지시해 줄 수 있다는 독트린은 언어의 ‘통시적 모호성’과 ‘공시적 모호성’ 때문에 유지될 수 없다. (53면)




42. 언어가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라는 지평 속에서 우리 삶의 다양한 전개가능성 때문에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언어의 ‘통시적 모호성’이라 부른다. ...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법률개념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구멍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포섭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언어의 통시적 모호성 또는 구멍난 개념을 완전히 도외시함으로써만 비로소 살아 남을 수 있을 뿐이다. (54, 55면)




43. 법률이 입법자보다 영리하다. (52면)




44. 공시적 모호성이 증대하는 현대 사회 ... 서술적 언어, 규범적 언어, 가치충전필요개념, 일반조항이라는 서열 순으로 모호성이 증대한다고 본다. 만일 이러한 서열화가 가능한 것이라면, 입법자가 가능한 한 일반조항 쪽의 언어보다는 서술적 언어 쪽의 언어로써 법률을 제정할수록 법률적 삼단논법은 더욱 철저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후기산업사회의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일반조항의 홍수’라는 현상이 말해주듯 오늘의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규율하기 위해서는 일반조항의 사용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이 점점 더 높아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57면)




45. 누가 과연 정상적 일반인인가? 이 물음 앞에서는 법관의 어떠한 형태의 논증도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정상성’ ‘일반성’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한 사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사회가 일정한 통제를 가하기 위하여 ‘그를 통제받아 마땅한 존재로 낙인찍을 때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60면)




46. 만일 그러한 규범이 일정한 집단에게 더 많은 이익을, 그리고 다른 집단에게는 적은 이익이나 불이익을 분배하는 기능(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정상성이란 언어는 그 언어사용방식에 담겨지는 이데올로기적 척도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는 셈이 된다. (60면)




47. 사실심-법률심-이분론 ... 실체적 진실 (63면)




48. 해석카논이란 법관의 법률해석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법률해석을 논증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틀에 불과하다. (80면)




49. 여기서 법리라는 개념은 판결의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대법원이 자신의 법률해석이 법형성이 아니라 법인식임을 강조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110면)




50. 그러한 딜레마 속에서도 법관은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에 의해 실체적 진실을 ‘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오만’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론적 오만이 소위 자유심증주의의 제도적 내용이라는 것이다. (126, 127면)




51. 법률적 삼단논법은 법률적용의 실제와는 거리가 먼 허구적인 모델이다. 허구적인 모델의 지배는 실제 법률적용을 좌우한 실질적인 결정의 근거들을 은폐시키고, 법관의 논증의무를 축소시킨다. 논증의 축약은 판결의 타당성에 대한 합리적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합리적 대화의 차단은 더 나은 법발견의 가능성을 막는다. (131면)




52. 법실증주의적 인식론에 따르면 법률해석은 법관이 ‘혼자서’ 법률의 규범적 내용을 ‘순수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사실확정은 법률에 적용할 사안을 법관 개인이 ‘혼자서’ ‘순수하게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133면)




53. 법률적 삼단논법은 사실확정이란 법률해석과 법률해석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이해관계와는 독립하여 언어에 앞서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 인식은 확실할 수 있다는 것(포섭이데올로기)을 전제로 한다. (134면)




54. 이러한 주체-객체의 인식모델에 서있는 법관은 사실확정에 있어서 외롭다. 혼자서 진실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인식주체는 흔히 경직되고 오만해지기가 쉽다. 홀로 인식한 진실에 대한 회의를 차단하지 않고는 자신의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135면)




55. 개념의 인식이란 존재론적 실체의 인식이나 사람들 사이의 평화로운 약속의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하나의 투쟁이다. 개념을 형성하고 개념을 현실세계에 옮긴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날카로운 이해관계의 갈림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법률언어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법률해석은 비유적으로 ‘의미론적 투쟁’(semantischer Kampf)이라 부를 수 있다. (140면)




56. 법관을 예측이 확실할 수 있는 결정기준에 얽어매는 가장 알맞은 방편으로 19세기의 대륙법계에서는 법전의 제정을 선택하였다. 그 다음 법전에 법관을 얽어매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법관은 법률글자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하는 절대명제가 생겨났다. 이 개념법학의 절대명제가 지속될 수 없음은 역사적으로 얼마 안 가서 드러났고 그에 따라 ‘법률을 제정한 입법자의 이익평가에 충실하라’고 하는 역사적 이익법학의 절대명제가 개념법학적 절대명제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익법학의 발전된 모습인 평가법학이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하였다. 이 모든 방법론의 변화흐름은 사회역사적 발전을 배경으로 하고 이루어진 것이지만 어쨌든 그 변화의 핵심은 ‘법관의 판결에서 평가적 요소의 역할이 점점 커짐에 따라 법치국가의 이상인 법관의 판결에 대한 확실한 예측가능성이 점점 더 줄어만 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판결의 예측가능성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하기 위하여 최후의 방편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법률해석의 한계는 확실한 기준, 즉 언어(논리)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도그마였다. (149, 150면)




57. 그에 따라 판결행위는 좀 비유적으로 말하면 ‘수학적 확실성’을 갖춘 셈이 된다. 이러한 수학적 확실성을 바탕으로 예컨대 형법전의 마그나 카르타 기능은 이상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151면)




58. 그러나 개념실재론을 떠난다고 해서 언어기호의 사용에는 아무런 규칙도 없다는 유명론에 빠질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보편성’을 요구하는 법의 카테고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념실재론과 개념유명론 어느 한 쪽에도 쏠리지 않는 언어이론을 법률해석의 인식론적 기초로 삼아야 한다. 그런 언어이론의 대표적인 본보기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언어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170면)




59. 법률해석은 법률언어와 현실의 영원한 불일치를 극복하는 실천적 작업이다. (179면)




60. 법률말놀이는 하나의 정치적 싸움이다. (181면)




61. 여기서 법관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법률말놀이에 참여하도록 놀이규칙을 근거지울 필요가 있게 된다. 그 근거지움은 놀이규칙의 비편파성을 납득케 하는 것이어야지 자신의 법률단어사용이 해당 법률단어의 언어적 효력범위(혹은 법리) 안에 머물렀다는 허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런 허구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법률해석의 ‘놀이’성격을 부인하는 일종의 독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2면)




62. 예컨대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에 의한 판례변경제도는 새로운 말놀이(의 규칙)를 찾는 것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6면)




63. 법관의 법률해석은 “법률말놀이에의 구성적 참여”이다. (187면)




64. 과학과 기술의 거듭되는 비약적 발전이 가져온 사회현실의 ‘복잡성’은 일상언어와 일상규범의 규율지평을 뛰어넘어 버렸다. (190면)




65. 전문법에서의 법적 정의는 전통적인 의미를 유지하지 않는다. 즉 법적 정의는 정의의 개념요소로 불리는 평등, 합목적성, 법적 타당성의 동시적 충족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도덕적 타당성, 체계의 효율성(경제성), 정치(정책)적 합리성의 실체적 조화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196면)




66. 요셉 에써(Josef Esser)가 대표적으로 발전시킨 해석학적 법학방법론은 다음 두 가지의 공통된 인식을 갖고 실증주의적 해석이론의 극복에 기여했다. 첫째는 법률텍스트는 언제나 적용자에게 자유로운 활동공간을 남겨놓는 다양한 형태의 불명확성(모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문법적 해석, 체계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과 같은 해석카논(해석규칙)들은 그들 사이에 사용순서와 방법을 정하는 메타규칙이 정해지지 않는 한 -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 이미 이루어진 법률해석의 결과를 단지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202면)




67. 법은 당위와 존재의 상응(상호수렴성)이다. (아르투어 카우프만) (202면)




68. 이와 같은 법학방법론적, 법철학적 인식의 발전에 힘입어 - 특히 빈프리트 하쎄머에 으해 - 성장한 해석학적 법이론은 법률적용 또는 법률해석이란 ‘사안을 통한 규범구체화’와 ‘규범을 통한 사안구성’이 ‘동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더욱 발전된 법률해석의 모델을 제시하게 되었다. (203면)




69. 그러나 규범에서 과학주의적 인식론이나 실증주의적 인식론이야말로 실제로는 은폐와 침묵과 같은 법관의 나쁜 기교를 조장하는 원천이 된다. (207면)




70. 법률과 사안의 해석학적 순환 ... (206면)




71. 하이데거는 일찍이 해석자에게 “해석학적 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올바르게 들어갈 것”을 권고한 바 있다. (207면)




72. 법관실무가 선이해를 드러내고 소송절차에서 법관실무에 완전한 성찰과 논증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그 선이해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선이해가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법관의 이해의 올바름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으로 창출되는 것이며 또는 심사받을 수 있는 것이다. (208면)




73. 하쎄머의 이해 가운데 두 번째 중요한 점은 법해석학의 관점에서 이해된 법률해석의 올바름이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으로 창출된다고 한 점이다. (208면)




74. 말함은 말해지는 구체적 상황(콘텍스트, Kontext)에 머물러 있는 채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즉 콘텍스트는 말함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구체적 상황(콘텍스트)은 매우 다양하고 수많은 요소로 구성된다. (2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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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변의 사용 수사학총서 8
스티븐 툴민 지음, 임건태.고현범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1. ‘논변의 사용’과 저자의 관계 역시 그랬다. 내가 책을 썼을 때, 나의 목표는 엄격히 철학적이었다. 의미있는 논변은 어떠한 것이라도 형식적인 용어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영미 철학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추론이든 ‘삼단논법’ 혹은 ‘언명들의 연결’로 불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추론은 삼단논법으로 표현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클리드적인 기하학에서 발견되는 엄격하게 논증적인 종류의 연역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적인 전통이 생겨났으며, 이것은 이 천년 후 데카르트에 의해 재생되었다. (5면)




2. 내가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쓴다면, 나는 ‘일반적’ 토피카와 ‘특수한’ 토피카 사이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려 했던 대조를 지적하고 싶다. 실천과 논변이라는 다른 영역에 의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지지작용’ backing을 더 분명하게 밝히는 방식으로 말이다. (7면)




3. 나는 이제까지 이러한 논변의 노선이 수렴하는 요점이 적절하게 인식되거나 언명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의 노선들을 일관적으로 따름으로써 우리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최근의 많은 철학자들이 주저 없이 완전무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연역 추리’라는 혼란스러운 개념을 거부하게 된다. 이 책의 유일한 독창성은 우리가 그러한 결론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데 있다. (11면)




4. 이 연구의 목적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의 연구 분야를 완전히 검토하는 것이기보다는 그 분야에 주목하게 하고, 체계적인 논문으로 이용되기보다는 논의를 유발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15면)




5. 이 탐구는 논변apodeixis(결론이 정립될 수 있는 방식)을 다루며 논변에 관한 지식episteme에 속한다. (16면)




6.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논변’에 관한 문제들은 주장들과 결론들에 관한 -일상적인 의미의- 증명, 유효하게 함, 혹은 정당화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논리학이 탄생한 이래 우리가 그 해답들을 이해하는 데 수세기 동안 그 진척 상황이 얼마나 미비했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17면)




7. 사실 우리가 발견하게 되듯이, 논리학은 그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들 즉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과, 상이한 분야의 논변들을 비판하는 기회를 갖는 방식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들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17면)




8.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사태가 이와 같이 진행되었다면,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행한 최초의 언급에 함축된 야망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야망이란 논리학은 형식적 학문 즉 에피스테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계승자들은 이러한 야망의 타당성을 거의 의문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야망을 의문시할 수 있다. 논리학이 형식적 학문이기를 바랄 수 있으면서도 얼마만큼 여전히 현실적 논변들의 평가에 적용될 가능성을 보유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 우리의 중심 문제가 될 것이다. (18면)




9. 매우 흔히 우리는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수행에 필수적인 어떠한 중간단계도 없이 즉석에서 결론을 끌어낸다. 즉 우리는 의식적으로 결정적인 단계를 내딛거나 규칙들을 염두에 두고 규칙들을 주도면밀하게 따름으로써 결론을 끌어내지 않으며, 또 그 결말 혹은 추론적 행위수행의 완성에 의기양양하게 도달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한 마디로 추론행위가 계산작용을 항상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건전한 논변의 규칙들은 우리가 계산에 의해 결론에 도달했든 단순한 비약에 의해 도달했든 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논리학은 우리 추론 행위의 방식 혹은 기술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주요 임무는 회고적이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즉 논리학은, 도달된 결론들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들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나중에 제시할 수 있는 논변들에 관심을 갖는다. (22, 23면)




10. 심리학, 사회학, 기술공학, 수학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근거들(토대)’grounds, ‘지지작용(보강)’backing과 같은 말들에 포함된 구조공학structural engineering과 콜라주의 반향을 제쳐두고, 법률학이라는 분과를 우리의 모델로 택해 보자. 논리학은 일반화된 법률학이다. 논변은 소송과 비교될 수 있고, 우리가 법 외부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은 법정에서 하는 주장들과 비교될 수 있는 한편, 각각의 주장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 제시되는 사례들은 서로 비교될 수 있다. 법률학의 주요 임무는 법적 소송의 핵심적인 것들을 특징짓는 것이다. 즉 법정에서 주장들이 제시되고, 논박되고, 결정되는 절차와 이것이 행해지는 범주들을 특징짓는 것이다. 우리의 탐구는 이와 일치한다. 즉 우리는 유사한 방식으로 ‘합리적 절차’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즉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주장들을 주장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절차와 범주들을 특징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25면)




11. 논리학과 법률학 사이의 비교에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그러한 비교는 이성의 비판적 기능을 그림의 중심에 놓게 된다. (26면)




12. 건전한 논변, 잘 근거지어진 주장 즉 확실하게 지지된 주장은 비판에 견딜 수 있는 주장이며,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기준에 도달한 사례가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다. 얼마나 많은 법적 용어들이 논리학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가! (26면)




13. 우리의 주제는 단순히 법jus에 관한 사려prudentia가 아니라 좀 더 일반적으로 이성ratio에 관한 사려가 될 것이다. (26면)




14. 법률학의 분야에서는 우리가 수학의 형식적 구조를 갖는 이론들을 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제안이 결코 유행한 적이 없었으며, 논리적 이론 전체를 수학적 형식으로 던져 넣는 아이디어에 대한 반대들도 있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27면)




15. 나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를 확신한다. 논리학을 일반화된 법률학으로 다루고 우리의 생각들을 한 철학자의 이상이 아니라 논변 평가에 관한 실제적 실천에 비추어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결국 전통적인 것과는 매우 다른 논리학에 관한 그림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9면)




16. 하나의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하나의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와 믿음에 대한 요구이다. (31면)




17. 존슨 박사가 말하듯이 사람들은 비문에서 ‘맹세하지는 않는다’. (31면)




18.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의 언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의 언명이 하나의 주장으로 이해된다면, 그러한 언명은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그의 언명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많은 상황에, 예를 들면 그의 사람 됨됨이와 일반적인 신용 등에 의존한다. 어떤 사람들의 말은 단지 그들의 신중함, 판단, 정직에 대한 명성으로 신뢰된다. (31, 32면)




19. 하나의 주장assertion 안에 함축된 요구claim,는 권리나 자격에 관한 요구와 같다. 권리에 대한 요구의 경우처럼, 주장 안에 함축된 요구가 논변 없이 결국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요구의 적절함은 그것을 지지하는 가운데 산출될 수 있는 논변의 적절함에 의존한다. (32면)




20. 우리를 즉시 놀라게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지지작용을 받을 수 있는 주장들의 범위가 크다는 것과 주장들을 위한 지지작용으로 산출될 수 있는 것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따라서 정당화 논변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료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단계들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33면)




21. 우리가 도달한 결론들, 우리가 제시한 주장들은 우리가 판단하게 될 문제들의 본성에 따라 매우 상이한 종류가 될 것이다. (34면)




22. 즉 ‘당신은 왜 그렇게 보시나요?’ 그리고 도전을 받는다면, 최초의 주장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 적절하고 충분한 것으로 생각한 어떠한 자료, 사실들 혹은 다른 지지작용을 산출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34면)




23. 우리가 제시하는 논변들과 그 논변들 안에서 일어나는 단계들은 그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즉 끌어들여진 사실들의 논리적 유형들과 그러한 사실들로부터 도출된 결론들의 논리적 유형들에 따라 우리가 택하는 단계들 - 논리적 유형의 이행들 -은 상이할 것이다. (35면)




24. 우리가 산출하는 정당화 논변들은 많은 상이한 종류의 것들일 수 있으며, 그러한 논변들이 얼마만큼 동일한 절차에 의해서, 동일한 종류의 조건들 속에서 그리고 동일한 종류의 기준들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 평가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즉시 발생한다. (35, 36면)




25. ‘우리의 논변들의 형태와 적절함에 관련된 것들 중 어떤 것들이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고field-invariant(영역에 상관없이 동일하고), 어떤 것들이 영역에 의존적인가field-dependant?' (37면)




26. 우리의 주장이 도전받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게 하고 이러한 특정한 가능성을 제거하게끔 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기 위해 제시할 근거들, 지지작용을 갖고 있다. 그는 그 무게를 혼자서 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결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결론을 그의 체격 때문에 제시한다. 우리가 그의 실제 체격을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관련된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가 그가 갖고 있다고 생각한 체격은 우리가 그가 그 무게를 혼자서 들 것인지 - 사실 들 수 있는지 - 하는 물음을 물을 때 확실히 유효한 것이다. (51면)




27. 그러한 편협함의 위험들은 이러한 종류의 철학자들이 일반화를 하기 시작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한 철학자들은 어떤 한 가지 유형의 가치평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다른 종류의 가치평가에 포함된 특수한 문제들 예를 들어 미적 판단의 모든 난점들과 도덕적 삶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을 보지 못한다. (66면)




28.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즉 논변들의 비판과 평가를 위한 모든 규준들은 실제로 영역에 의존적인 반면, 우리의 모든 평가의 용어들은 그 힘에 있어서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다. (71면)




29. ‘보편적인 논리학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74면)




30. 모든 종류의 법적 소송들의 운영에 있어서 관찰된 절차들이 어떤 공통적인 특징들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들을 상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측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민사소송의 운영은 모든 개개의 특성에서 형사소송의 운영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유사한 차이들이 합리적 절차들의 경우에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77면)




31. 그 딜레마를 이해한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얘야, 그 아이에게 네가 아마도 올 것이라고 말해라. 몇 시쯤에 집에 오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약속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올 것이라고 말하거라.’ 어머니의 구원에 감사하면서 그는 돌아서서 요술 같은 말을 한다. ‘아마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는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아마도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이다. (87면)




32. 이러한 차이는 J. L. 오스틴 교수가 논의했던 것과 의미에 있어서는 상반되지만, 성격에 있어서는 유사하다. 그는 ‘S는 P이다’ 혹은 ‘나는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S가 P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혹은 ‘나는 내가 A를 할 것이라고 약속한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언급한다. (87면)




33. 내가 ‘나는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적어도 내가 그것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함축하며, 내가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다면, 나는 (전적으로) 그럴 의도가 있음을 함축한다. 나는 단지 S가 P라는 것을 믿을 뿐이라면, 나는 ‘그러나 물론 나는 잘못될 수도 있다(잘못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덧붙일 수 있다. 내가 단지 A를 하기를 원할 뿐이라면, 나는 ‘그러나 물론 나는 그렇게 안할 수도 있다(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라도 덧붙일 수 있다. (88면)




34. 그러나 이제 내가 ‘나는 약속한다’라고 말하는 경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나는 단순히 나의 의도를 발언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식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의식을 수행함으로써) 나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속박시킨 것이며, 나의 평판을 새로운 방식으로 내기에 거는 셈이 된다. (88면)




35. 내가 ‘나는 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나의 말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S는 P이다’라고 말하기 위한 나의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한다. (89면)




36. ‘그래, 올게’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당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약속만큼 엄격하고 엄숙하지는 않다고 해도, 어떤 방식에서는 이것은 거의 약속이다. (89면)




37. ‘어쩌면’이라는 말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아마도’라는 말의 요점은 바로 이러한 난점을 피하는 것이다. ... ‘S는 아마도 P일 것이다’ 혹은 ‘나는 아마도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나는 유보 없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를 회피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실패의 몇 가지 결과들에 대해서 보호된다. (90면)




38. 끝으로 그리고 말의 어떤 형태들은 사태의 본성상 금지된다. 다시 오스틴의 예를 따르자면, 우리는 “나는 그럴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는 그렇다고 알고 있지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즉 우리가 이 경우에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할 구체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면)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깰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91면)




39. 그들이 ‘확실히 퍼질 것이다’ 혹은 ‘우리는 구름이 퍼질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나서, 틀렸을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불평을 들을 것이다. (92면)




40. 논변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157면)




41. 우리는 두 개의 경쟁적인 모델 즉 수학적인 모델과 법률학적인 모델을 갖고 있다. 하나의 타당한 논변의 논리적 형식이란 기하학적인 어떤 것, 즉 삼각형의 형태나 두 직선의 평행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아니면 그것은 절차적인 어떤 것인가? 즉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변이란 정연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식으로 제시된 것이라기보다는 법률가들이 말하곤 하듯이, 올바른 형식을 지닌 것인가? (157, 159면)




42.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논변들의 미시 구조를 분석할 때 그 논변들을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논변들은 한 번에 세 가지 명제로 주어졌다. 즉 ‘대전제, 소전제, 그래서 결론.’ 이제 그러한 표준적인 형식이 충분히 상세하고 분명한가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물론 단순성은 장점이지만, 이러한 단순성은 너무 많은 값을 치르고 얻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논변들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이러한 표제들 즉 ‘대전제’, ‘소전제’, 그리고 ‘결론’이라는 것 아래서 적절하게 분류할 수 있는가 혹은 아니면 이러한 범주들은 우리를 오도할 만큼 수적으로 적은 것인가? 대전제와 소전제 사이에는 통상 ‘전제’라는 단일한 명칭으로 함께 묶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사성이 있기는 한 것인가? 법률학과의 유비를 통해서 이러한 물음들이 조명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통상적인 구조보다 더 복잡성을 가진 구조를 택하게 할 것이다. (160면)




43. 우리가 하나의 주장을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어떠한 주장이든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타당성 주장에 개입하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주장이 도전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 주장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그 주장을 건전하게 만들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61면)




44.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구분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유용성들을 확립하기를 추구하는 주장claim 혹은 결론(C)과 우리가 그 주장의 토대로 의지하는 사실들 - 나는 앞으로 우리의 자료data(D)라고 칭할 것이다 - 사이의 구분이다. (162면)




45. 이제 우리는 이미 제시했던 것에다가 좀 더 많은 사실적 정보를 보태도록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제시된 자료와 결론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지적하도록 요구받을 수 있다. 일상 어법으로 말하면, 그 물음은 이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너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일 것이다. 특정한 자료들을 어떤 특수한 결론의 기초로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단계를 확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물음은 이러한 단계의 본성과 정당화에 관한 것이다. (163면)




46. 오히려 아주 다른 종류의 명제들 즉 어떤 것이든 추가적인 정보의 항목들이 아니라 규칙들, 원리들, 추론 규칙들inference-licences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더 이상 논변이 구성된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자료들을 출발점으로 이루어진 원래의 주장이나 결론으로의 이행이 적절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특정한 논변이 확정되게 만든 단계와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보편적, 가언적 언명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D이면 C이다’라는 형식으로) 매우 간단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명확성을 위해서는 그 언명들이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 좀더 명시적으로 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D와 같은 자료들이 우리가 C와 같은 결론들을 내리거나 C라는 주장들을 할 자격을 부여한다’, 혹은 아니면 ‘자료 D가 주어지면 우리는 C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명제들은 나는 정당한 이유들warrants(W)이라고 부를 것이고 결론 및 자료와 구분할 것이다. (163, 164면)




47. 달리 말해서 우리는 ‘네가 어디에 근거하는가?’와 ‘너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라는 두 물음의 힘(함축)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할 수 있는가? (164면)




48. 자료들과 정당한 이유들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법정에서 하는 사실의 물음들과 법의 물음들 사이의 구분과 유사하다. (166면)




49. 정당한 이유들은 상이한 종류의 것들이며, 그것들이 정당화하는 결론들에 상이한 정도의 힘을 전달할 수 있다. 어떤 정당한 이유들은 적절한 자료들이 주어지는 경우 하나의 주장을 분명하게 수용하도록 허용한다. 이러한 정당한 이유들은 해당되는 경우에 ‘필연적으로’라는 부사로 결론을 한정지을 수 있게 한다. 다른 정당한 이유들은 우리의 자료로부터 결론으로의 이행을 임시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아니면 그 이행을 조건, 예외, 혹은 한정들에 종속되게 한다. 이러한 경우들에는 위와 다른 양상적 한정어들 즉 ‘아마도’나 ‘추측건대’presumably와 같은 것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료, 정당한 이유 그리고 주장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에 덧붙여서 우리는 자료가 정당한 이유로 인해 우리 주장에 전달하는 힘의 정도를 명확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한정어를 넣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67면)




50. 즉 ‘당신은 버뮤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영국 국민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예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정당한 이유들 배후에 있고, 그것들이 없이는 통상 정당한 이유들 자체가 어떠한 권위도 지니지 못하거나 통용되지 못하게 되는 다른 보증other assurances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른 것들을 우리는 정당한 이유들에 대한 지지작용Backing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171면)




51. 우선 B와 W 사이의 차이들이 있다. 우리는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언명들은 가언적이고, 다리 역할을 하는 언명들인 반면,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지지작용은, 결론들을 직접 지지하기 위해 의거하는 자료들처럼 사실에 관한 정언적 언명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았다. (173, 174면)




52. 해당되는 논변의 영역이 우리에게 접근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정당한 이유들은 더 이상 도전받지 않고 잠정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잠정적인 표상을 갖고 있지 못한다면, 어떤 종류의 자료가 결론에 가장 조금이라도 중요한지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175면)




53.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자료들, 정당한 이유 그리고 지지작용 사이의 구분과 삼단논법에서 무엇이 일치하는가?’ (178면)




54. 페테르손은 스웨덴 인이다.

스웨덴인은 거의 확실하게 로마가톨릭교도가 아니라고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거의 확실하게 페테르손은 로마가톨릭교도가 아니다.

여기서 연속으로 나오는 논변의 세 줄은 우리의 용어법에서 자료(D), 정당한 이유(W), 그리고 결론(C)과 일치한다. (180면)




55. 하지만 우리는 아주 흔히 특히 논변들 속에서 단일한 그 언명으로 한 번에 두 가지 작업을 하며, 짧게 하기 위해 지지작용으로부터 정당한 이유로의 이행을 감춘다. 즉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사실적 정보로부터 그 정보가 우리의 사용을 정당화해 주는 추론규칙으로의 이행을 무디게 한다. 이러한 습관이 사용을 위해 경제적이라는 점은 분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철학적 목적들에 비추어보면, 그 습관은 우리 논변들의 사실적인 구조를 충분히 분명하게 할 수 없다. (183, 184면)




56. 오랜 습관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을 그 형식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필요가 없다. (189면)




57. 일단 우리가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의 언명들을 확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상황이 요구하는 데 따라 그 언명을 명시적인 정당한 이유나 지지작용에 대한 명시적인 언명들로 대체하는 데 익숙해졌다면, 우리는 논리학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러한 형식의 언명에 집착해왔다는 점이 수수께끼라고 여길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들을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당분간 우리는 논리학자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언어들을 빈곤하게 하고, 그들의 수수께끼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실마리를 간과하는 대가를 치렀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은 우리가 논리학 교과서들에 의거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논변에서 훨씬 더 적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이 이미 익숙해져 있는 관용적 언명들을 이러한 특수한 형식으로 바꿔 쓰고, 그럼으로써 이러한 관용적 표현들을 전통적인 삼단논법적인 분석에 명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만드는 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191면)




58. 논리학자가 지금까지 모든 보편 언명을 미리 정해진 그 형식들로 강제한 반면, 실천적 담화에서는 대개 여러 가지 상이한 형식이 사용되었다. 즉 ‘모든 개개의 A는 B이다’, ‘각각의 A는 B이다’, ‘하나의 A는 B일 것이다’, ‘A들은 일반적으로 B들이다’, 그리고 ‘그 AThe A는 B이다’ 가운데 한 가지 선택만 있을 뿐이다. (192면)




59. 생물학자는 ‘모든 고래는 포유동물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고래들은 포유동물들이다’ 혹은 ‘고래는 포유동물이다’라는 문장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입이나 글에서 등장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192면)




60. 논리학자의 ‘모든’은 불행한 기대들을 수반하며, 그러한 기대들은 실천 속에서 흔히 좌절될 수밖에 없다. 윤리적 논변들에 있는 가장 일반적인 정당한 이유들은 여전히 비일상적인 상황들 속에서 예외들을 경험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기껏해야 단지 가정적인 결론들만 허용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을 고집한다면, 의무들의 갈등은 우리를 역설에 빠뜨린다. 많은 도덕이론은 우리를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관계한다. 잉여의 ‘모든’을 주장하는 결과들을 실천 안에 받아들이려고 고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의심스런 척도들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단지 절대적 파시즘과 같은 상도에서 벗어난 도덕적 입장을 채택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193면)




61. 대전제와 소전제로 표현되고 우리가 거기서 출발한 정보가 타당한 추론에 의해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주장된다) 그 결론이 단순히 전제들의 부분들을 변형시켜 새로운 유형에 따라 배열하는 것을 통해 결과하기 때문이다. 추론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주어진 요소들을 재배열하며, 처음에는 전제들 안에서 그리고 다음은 결론들 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요소들 사이의 형식적 관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한 추론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한다. (194면)




62.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정당한 이유를 지지작용으로 대체한다면, 즉 전칭 명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형식적 타당성의 개념은 우리의 논변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 ‘자료들, 지지작용, 그래서 결론’이라는 형식의 논변은 실천적 목적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적절한 것이다. ... 그러나 이 논변의 타당성은 그 논변을 구성하는 표현들의 어떤 형식적 속성의 결과라고 전혀 주장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것을 도외시하면 그 결론들의 요소들과 전제들의 요소들은 상이하다. 그러므로 이행은 변형과 재배열 이상을 포함한다. 따라서 당연히 (D;W;그래서C)라는 논변의 타당성 역시 실제로는 그 형식적 속성들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경우에 우리는 특히 명확한 형식으로 그 논변을 언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D;B;그래서C)라는 논변은 형식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우리 논변들의 건전성이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지지작용을 밝힌다면, (어떠한 기하학적 의미에서든) 타당성이 ‘형식적 속성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그럴듯함을 상실한다. (195, 196면)




63. 우선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을 대전제에서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와 그 지지작용 사이의 구분을 은폐한다. (233면)




64. 형식논리학의 범주들은 분석 삼단논법에 관한 연구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이 삼단논법이 대표적인 논변이 아니고 겉보기에 간단한 논변일 뿐이며 형식논리학과 인식론이 지닌 진부함은 그 범주들을 상이한 종류의 논변들에 잘못 적용한 데서 비롯한다는 가설이다. (235면)




65. 세 번째 부분에서 나는 좀 더 역사적이고 동시에 좀 더 설명적이고자 한다. 형식논리학의 과도하게 단순화된 범주들은 그 단순함에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다른 몇 가지 영향력 있는 편견들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 매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논리학자들은 수학적 모델이 매혹적임을 알았고, 기하학보다는 법학적 모델을 갖춘 논리학에서는 그들의 이상이 지닌 수학적 우아함을 기대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우리를 인도하는 수학적 모델과 같은 이상적 논리학은 실천적인 분야로 적용되는 데 약점을 노출한다. 합리적 증명은 무시간적이고 공리적 과학에서는 적합한 주제가 아니다. (237면)




66. 우리는 그 대신에 아주 다른 물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과학에서, 윤리 혹은 도덕에서, 법, 예술 비평, 성격 판단, 혹은 기타 등등에서 이미 확립된 정당한 이유들이 얼마만큼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떤 원칙들이 건전하고 어떤 정당한 이유들이 수용할 만한지를 결정하는 절차들이 어느 정도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합의되는가? (279면)




67. 논리학에 수학적 형식을 부여하려는 야심은 논리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학이 개별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아 왔던 오랫동안 - 다른 말로 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 형식논리학자들은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건전한 추론의 원칙들을 체계화하고 있으며 논변의 규준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항상 스스로 형식적, 연역적이고 나아가 공리적 학문으로서의 논리학의 이상을 주장해 왔다. ... 논리학은 아포데이크시스(결론이 확립될 수 있는 방식)을 다루며 그것은 또한 그 결론의 확립에 관한 학문(지식)이다. 그는 우리가 이미 논리학을 연역적이고 이론적인 학문으로서의 에피스테메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한다. (281면)




68.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으뜸이며 가장 극적으로 성공적인 에피스테메는 기하학이었다. (282면)




69. 형식논리학은 논리적 관계들에 관한 학문, 지식이어야 하며, 이 관계들은 만일 적어도 어떤 한 경우에서 참이라면, - 다른 수학적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 어떠한 모든 경우에든 참이어야 하는, 무시간적이며 시제를 갖지 않는 명제들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적 관계가 적용되는 사물들 혹은 단위들은 관계들 자체처럼 변화하지 않거나 ‘시간에 독립적’일 필요는 없다. (283면)




70. 우리가 아는 한, 언어는 분명히 무시간적인 명제들이 아니라 그것이 발화하는 다양한 영역이나 상황들에 의존하는 발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술은 특정 상황에서 진술되며, 그 진술들에 대한 해석은 그 진술이 상황들과 맺는 관계에 결부된다. ...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진술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 혹은 다른 상황에선 특정한 자료의 집합이 결과하는 사건을 예견할 자격을 주는 것으로 제시할 것인지의 여부와 같은 문제들이 생겨난다. 오로지 순수수학에서만 우리의 평가들은 완전히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286)




71. 그 비판은 발화를 주어진 상황에서 수행된 행위로 취급하며, 그것이 수행되는 맥락에서 볼 때 그 행위의 가치에 관해 묻는다. (286면)




72. 형식논리학자는 진술들이, 모든 진술들이 그리고 오로지 진술들만이 증명되기를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천상의 권좌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는 진술들 간의 불변하는 관계에 관해 선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의 관점을 취하게 되면, 우리는 그로부터 타당성의 물음 자체가 발생하는 실질적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절연된다. (291면)




73. 내용적인 혹은 실천적인 논리학 혹은 응용논리학 ... (2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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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위 - 오스틴의 언어철학, 의미론, 화용론
J. L. 오스틴 지음, 김영진 옮김 / 서광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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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사용(use)이란 말에 대해 비트겐슈타인보다 더 상세한 분석을 했으며, 그리고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발화효과행위 등에 관한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use란 말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했다. (17면)




2. 오스틴이 학계에 미친 영향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그의 영향은 특히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에 가장 잘 나타나고 있으며, 그는 특히 일상언어학파의 형성과 발달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설(J. Searle) 등을 통해 그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둘째, 그의 영향은 윤리학의 영역에서 대단하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분석윤리학자인 헤어(R. Hare)는 도덕언어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오스틴의 화용론적, 의미론적 방법론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헤어 이외에도 많은 윤리학자들이 그의 방법론을 따랐다. 셋째, 화행론(pragmatics)을 강조하는 오스틴의 철학적이고도 경험적인 연구는 오늘날의 언어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넷째, 그는 법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20세기 영미 법학계의 태두였던 하트(H.L.A. Hart)는 오스틴의 언어분석적 방법과 경험적 방법을 통해 법학 연구를 했고 중대한 업적을 남겼다. 다섯째, 하버마스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철학자들은 의사소통론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들은 오스틴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6, 17면)




3. 진술문과 같이 보이는 많은 발화(utterance)가 실제로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거나 또는 의도한다 해도 오직 부분적일 뿐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윤리적 명제들’은,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감정을 분명히 나타내거나 행위(conduct)를 처방하거나 행위에 특별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도한다. (23면)




4. 기술주의적 오류는, 간단히 말하면 어떤 발화가 어떤 사태나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어떤 사실이나 사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이다. (206, 역자 해설)




5. 진이나 위인 모든 진술문이 다 기술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진위문’(constative)이라는 단어를 쓰기를 더 좋아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많은 전통적인 철학적 혼란은 하나의 잘못, 즉 (흥미를 일으키는 비문법적 방식으로) 무의미한 발화이거나 또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의도된 발화를 사실에 관한 진정한 진술인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 이미 부분적으로 밝혀져 왔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이게끔 되었다. (23면)




6. 이러한 발화는 모두 다 공교롭게도 1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 능동태의 평범한 동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하는 발화가 있는데, 이러한 발화들은 A. 도대체 어떤 것을 ‘기술하거나’, ‘보고하거나’ 혹은 진위적으로 진술하지(constate) 아니하며, ‘진이나 위’가 아니다. 그리고 B. 그러한 종류의 문장을 발화하는 것은 어떤 행동(action)을 하는 것이이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장을 발화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거나 ‘단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으로 기술되지 아니한다. (25면)




7. 문장을 발화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 나는 이것을 수행적 문장(performative sentence) 또는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 또는 간단히 ‘수행문’(performative)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 이 이름은 물론 ‘행동’(action)이라는 명사와 함께 일상적인 동사인 ‘수행하다’(perform)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발화를 표출하는 것이 곧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발화를 표출하는 것은 보통 단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7면)




8. 많은 수행문은 계약적 발화('I bet')이거나 선언적 발화(‘I declare')이다. 그러나 ... 왜냐하면 이 용어는 변호사들에 의하여 주요 목적인 계약(양도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발효케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증서의 부분, 즉 증서의 조항을 지시하는 데에 엄격히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증서의 나머지 부분은 계약이 발효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자세히 적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28면)




9.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가 이미 수행되었다고 간주하려면 말을 발화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꼭 유일하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말이 발화되는 주위의 사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적절해야 한다. (29면)




10. 상대방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꼭 ‘진지하게’ 말을 해야 하는가? 이 말은 모호(vague)하지만 일반적으로 진리가 충분히 담긴 말이다. ... 수행적 발화의 진지함 (30면)




11. ‘나는 ... 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발화는 나에게 의무를 부과하며 정신적인 구속을 한다. 바로 이러한 예에서 심원함(perfundity) 또는 젠체하기(solemnity)가 지나치면 어떻게 비도덕성(immorality)에로 단번에 쉽게 넘어가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31면)




12. ‘우리의 말은 우리를 구속한다’라는 평범한 말에는 정확성과 도덕성이 같이 깃들어 있다. (31면)




13. 이러한 수행적 발화들은 표면적으로는 - 적어도 문법적 구조에 있어서는 - ‘진술문’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세밀히 관찰해 보면 ‘진’이나 ‘위’가 될 수 있는 발화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진술문의 특징은 진이나 위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든 예 중의 하나로 ‘I do'(나는 이 여자를 나의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한다)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러한 발화는 결혼식을 하는 과정에서 발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말을 하는 가운데(in saying these words) 어떤 것을 행하고(doing something) 있다고 말해야 한다. (34면)




14. 소위 수행문에 나타나는 단어들을 발화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의 행동을 적절하게 완수했다고 하려면 일반적인 규칙상 상당히 많은 것들이 올바른 것이어야 하고 또 올바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35면)




15. (A. 1) 어떤 관습적 효과(conventional effect)를 가진 수용된 관습적 절차가 있어야 하며, 그 절차는 어떤 사정하에서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말이 발화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A. 2) 주어진 경우에 관련되는 특정의 사람과 사정은 발동된(invoked) 특정의 절차를 발동하는 데 적합해야 한다.

(B. 1) 그 절차는 모든 참여자에 의해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B. 2) 완전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Γ. 1) 흔히 그렇지만 그 절차가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가진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또는 어떤 참여자이건간에 그 참여자의 편에서 결과적으로 하게 하는 행위(consequential conduct)를 시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경우에는, 그와 같은 절차에 참여하고 또 그와 같은 절차를 발동하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이나 느낌을 실제로 가져야 하며, 또 참여자는 그에 따라 행위할 것을 의도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Γ. 2) 그 절차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후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16. (A. 1) (A. 2) (B. 1) (B. 2) (Γ. 1) (Γ. 2) 만약 위에 적힌 여섯 가지 규칙들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규칙을 위반하게 되면 우리가 말하는 수행적 발화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부적절할 것이다. (36면)




16. 최초의 큰 구별(distinction)은 마지막 두 Γ 규칙과는 달리 A와 B를 합친 네 가지 규칙들(그리스 글자와 달리 로마 글자를 사용한 규칙들) 사이에서의 구별이다. 만약 A와 B에 해당하는 처음의 네 가지 규칙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바꾸어 말해 만약 공식(formula)을 부정확하게 발화하거나, 또는 예를 들어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다시 결혼할 처지에 있지 않거나, 어떤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함장이 아니라 사무장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예를 들어) 결혼 행위와 같은 문제의 행위가 성공적으로 수행되지 아니하며 종결되지도 아니하며 또 성취되지도 아니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Γ의 두 경우에는 예를 들어 우리가 진지하지 않을 때와 같은 사정에서 행위를 성취하는 것은 비록 절차의 남용(abuse of the procedure)이긴 하지만 행위는 하여간 성취된다. 따라서 ‘나는 약속한다’라고 말하지만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을 때에는 ‘나는 약속했다 그러나 ...’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37면)




17. 수행하는 중에 행위가 성취되지 않은 A. 1 - B. 2의 부적절성을 불발(misfires)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Γ. 1과 Γ. 2에서처럼 행위가 성취되는 부적절성을 남용(Abus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7면)




18. 발화가 불발일 때에는 우리가 발동하고자 하는 절차가 허용되지 않거나 망쳐진다. 그리고 결혼 등과 같은 행위는 무효이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의도된(purposed) 행위라고 말하거나 어쩌면 시도(attempt)라고 말한다. 또는 ‘결혼했다’라는 표현과 달리 ‘결혼의 형식을 거쳤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와 달리 Γ. 1과 Γ. 2의 경우에 우리는 부적절한 행위를 ‘의도된’ 또는 ‘공허한’ 행위라고 말하기보다 ‘선언된’(professed) 또는 ‘허울뿐인’(hollow) 행위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무효(void)라고 하든가 효과가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이행되지 않았다거나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7, 38면)




19. 다음으로 불발의 부적절성 가운데서 A(부당발동)의 경우와 B(부당집행)의 경우 사이의 일반적인 구별을 분명히 해야 한다. ... A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B의 경우에 있어서는 해당되는 절차가 옳고 또 절차가 옳게 적용되었지만, 그러나 의식 절차를 그르쳐 다소의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B의 경우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 부당집행의 경우는 의도된 행위가 의식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함(flaw)이나 장애(hitch)에 의해 손상된다. (38, 39면)




20. 그러나 더 나아가서 법학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행위’ 중에서 얼마만큼이 수행적 발화이거나 수행적 발화를 포함하며, 또한 어쨌든 관습적 절차를 수행하는 것이거나 수행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다. (40면)




21. 그러나 법률상의 발화와 ‘법률적인 행위’에 사용되는 발화는 아무튼 진이거나 위인 진술임에 틀림없다는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고정 관념 때문에 많은 법률가들은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우리가 바로잡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엄밀하게 바로잡지는 못했다. (41면)




22. 첫 번째 강의에서 우리는 예비적인 방법으로 수행적 발화는 어떤 것을 말하거나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한 참된 또는 거짓된 보고가 아니라고 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수행적 발화가 비록 진이나 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며 부적절할 수 있음을 열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부적절성을 열거했다. (47면)




23. 나는 (1) 부적절성이 단지 구두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의식적인 행위에 다 적용되며, 그리고 부적절한 행위는 우리가 인정하는 이상으로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나는 (2) 부적절성에 관한 목록이 완벽하지 못하며, 그리고 의식적인 수행일반과 발화일반에 영향을 끼치는 ‘부적절성’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것의 또 다른 전체적인 차원, 즉 분명히 철학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차원이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리고 (3) 여러 가지 부적절성이 서로 결합되거나 중복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주어진 특정한 부적절성의 예를 어떻게 분류하는가 하는 것은 다소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인했다. (48면)




24. ‘나는 황소가 곧 공격할 것이라고 너에게 경고한다’(I warn you that the bull is about to charge)라는 수행적 발화는 그 황소가 곧 공격한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황소가 곧 공격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황소가 곧 공격할 것이라고 너에게 경고한다’라는 발화는 정말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81면)




25. 발화하는 순간에 발화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 (86면)




26. 따라서 행동을 하고 있는 ‘나’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등장한다. 원래의 일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 능동형의 형식 - 또는 이와 비슷하게 이인칭, 삼인칭 그리고 서명을 덧붙인 비인칭의 피동적 형식 - 의 장점은 화행-상황(speech-situation)의 묵시적인 특징을 명시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87면)




27.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지적했고 그리고 가능한 모든 기준의 항목을 설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게다가 이러한 기준들은, 똑같은 문장이 서로 다른 발화로 사용될 경우에 아주 흔히 수행문과 진위문의 두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수행문을 진위문으로부터 확실히 구분하지 못한다. 만약 현상 그대로의 발화를 무시한 채 어떤 기준을 찾으려 한다면 문제는 처음부터 아주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93면)




28. 언어에서의 정확성(precision)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것을 즉 그 의미(meaning)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뜻하는 명시성(pxplicitness)은 발화들이 가지는 힘(force)을 더욱 더 분명하게 하거나 ‘힘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99면)




29. 따라서 우리는 ‘아마’(probably)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I shall'이라는 말의 힘을 한정할 수 있다. 또는 그 반대되는 의미로 ‘꼭’(without fail)을 삽입함으로써 'I shall'의 힘을 한정시킬 수 있다. (101면)




30. 발화의 사정은 지극히 중요한 도움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로부터 온 것이기에 나는 그것을 요청으로 생각하지 않고 명령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언젠가 죽을거야’라는 말의 맥락, 특히 ‘너에게 나의 시계를 남기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건강 상태가 이러한 말들을 이해하는 데 차이를 나타낸다. (102면)




31. 나는 이와 같이 가장 일상적인 뜻에서 어떤 것을 말함’의 행위를 발화행위(locutionary act)의 수행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러한 측면에서 발화를 연구하는 것을 수행된 발화행위(locution)에 관한 연구 또는 언어운용(speech)의 전체적인 단위에 관한 연구라 한다. (124면)




32. 일반적으로 발화행위(locutionary act)를 수행하는 것은 내가 부르기로 제안하는 것처럼 그 자체(eo ipso)가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발화행위를 수행할 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행위도 또한 수행하게 될 것이다.

질문하기 또는 질문에 대답하기

정보를 제공하거나 보증하거나 경고함

판결이나 의도를 알림

형을 언도함

임명 혹은 공소 혹은 비판을 함

동일함을 증명하기 또는 기술하기 (128면)




33. 그러나 우리들은 어떤 말들 또는 어법이 질문의 힘을 가졌는지 아니면 평가 등으로 받아들여졌어야만 했는지 어떤지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논쟁한다. 나는 이와 같이 새롭고 또 두 번째 뜻에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발화수반행위’의 수행, 즉 어떤 것을 말하는 행위의 수행과 대립되는, 어떤 것을 말하는 데 있어서의(말하는 가운데서) 행위의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렇게 수행된 행위를 ‘수행된 발화수반행위’(illocution)라 부르며,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언어의 여러 다른 유형의 기능에 관한 이론을 ‘발화수반력’에 관한 이론(the doctrine of illocutionary forces)이라고 언급할 것이다. 철학자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이러한 연구를 등한시하고 모든 문제를 ‘발화관용법’(locutionary act)의 문제로 취급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9면)




34. 그러나 뜻(sense)과 지시(reference)를 구별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처럼 의미는 뜻 그리고 지시와 동일하다라는 점에서 나는 힘(force)과 의미(meaning)를 구별하기를 원한다. (130면)




35. 발화행위를 수행하고 그리고 발화행위를 하는 가운데 발화수반행위가 또 다른 종류의 행위를 수행하게 될 수 있는 추가적인 뜻(C)이 있다.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은, 흔히 또는 심지어 일상적으로, 청중, 화자 또는 다른 사람들의 느낌, 사고 또는 행동에 대한 어떤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효과(consequential effect)를 나타낸다. 그리고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효과를 나타내겠다는 계획, 의도 또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학술적인 명명을 할 때 발화행위 또는 발화수밚행위의 수행에 대한 언급을 오직 간접적으로만 하는 (C. a), 또는 발화행위 또는 발화수반행위의 수행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 (C. b)의 한 행위를 화자가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발화효과’(perlocutionary) 행위의 수행이라고 부를 것이며, 그리고 적절할 때 - 본질적으로 (C. a)에 속하는 경우일 때 - 그 수행된 행위를 ‘수행된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이라 부를 것이다. (130, 131면)




36.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he said that ...'의 발화행위를 'he argued that ...'의 발화수반행위 그리고 'he convinced me that ...'의 발화효과행위와 구별할 수 있다. (132면)




37. 이번의 연속 강의에서 우리의 주된 관심은 근본적으로 두 번째의 발화수반행위에 집중해서 이 행위를 나머지 두 행위와 대조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발화행위와 발화효과행위를 선호하고 발화수반행위를 생략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발화수반행위는 다른 두 행위와 구별된다. (132, 133면)




38. 만약 이런 경우에 우리들은 B행위(발화수반행위)와 C행위(발화효과행위)를 다 언급한다면 ‘B하는 가운데’(in-B-ing)라기보다는 ‘B함으로써 그는 C했다’(by B-ing he C-ed)라고 말할 것이다. (137면)




39. 우리는 첫째, 어떤 것을 말하는 가운데 우리가 행하는 일련의 것들을 구별했고, 이것들을 함께 묶어 발화행위(locutionary act)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대체적으로 발화행위는 어떤 뜻과 지시를 가진 문장을 발화하는 것이며, 그리고 뜻과 지시는 전통적으로 ‘의미’(meaning)와 같다. 둘째, 우리는 또한 통보, 명령, 경고, 보증 등과 같은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를, 즉 어떤 관습적인 힘을 갖는 발화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셋째, 우리는 또한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도 수행할 것이다. 확신시키기, 설득하기, 저지하기 그리고 심지어 예를 들어 놀라게 하기 또는 오도하기와 같이 어떤 것을 말함으로써 우리가 성취하거나 이루는 것이 발화효과행위이다. (140, 141면)




40. 우리는 발화수반행위와 발화효과행위를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그것을 말하는 가운데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In saying it I was warning him)라는 발화와 ‘나는 그것을 말함으로써 그를 확신시켰거나 놀라게 했거나 중지하도록 했다’(by saying it I convinced him, or surprised him, or got him to stop)라는 발화를 구별해야 한다. (140면)




41. 그러나 이제 나는 발화효과행위와 다른 발화수반행위가 어떤 뜻으로는 효과를 산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하겠다. (1) 어떤 효과가 달성되지 않는 한 발화수반행위는 적절하게 또 성공적으로 수행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발화수반행위가 어떤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중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또 내가 말하는 것을 일정한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나는 청중에게 경고했다고 말할 수 없다. 발화수반행위가 이루어지려면 청중에게 어떤 효과가 달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가장 잘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효과는 수행된 발화행위의 의미와 힘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발화수반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이해의 확보(the securing of uptake)를 필요로 한다. (146면)




42. (2) 발화수반행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내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일으키는 것, 즉 사건의 자연적 과정에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결과를 나타내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나는 이 배를 퀸 엘리자베스호라고 이름짓는다’라는 말은 그 배를 이름짓거나 명명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배를 스탈린 대원수호라고 일컫는 어떤 후속적인 행위는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146, 147면)




43. (3) 많은 발화수반행위는 관습상 어떤 반응이나 후속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명령은 복종의 반응을 초래하며, 약속은 이행의 반응을 초래한다. (147면)




44. 따라서 우리는 ‘나는 그에게 명령했고 그래서 그는 복종했다’(I ordered him and he obeyed)라는 말을 ‘나는 그를 복종하도록 했다’(I got him to obey)라는 말과 구별해야 한다. 후자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함축은 다른 부가적인 수단들, 즉 유인, 인물등장(personal presence), 협박에까지 이를 수 있는 영향력이 내게 귀속될 수 있는 이러한 결과를 낳기 위하여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147면)




45. 따라서 이해의 확보, 효과의 발생, 반응의 초래, 이 세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 세 가지 방식으로 발화수반행위는 효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발화효과행위의 특징인 효과의 산출과 구별된다. (147, 148면)




46. 발화효과행위는 발화효과적인 대상을 성취하는(확신시키다, 설득하다) 것이거나 발화효과적인 후속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고하는 행위는 경계하는 발화효과 대상을 성취할 수 있고 또한 놀라게 하는 후속적인 발화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견해에 반대하는 논의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반대의 진리성을 확인시키는 (예를 들어 ‘나는 그를 확신시키는 데에만 성공했다’) 후속적인 발화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48면)




47. 발화효과행위의 특징은 성취된 반응과 후속 결과가 비발화적 수단(non-locutionary means)에 의해 추가적으로 또는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겁을 주는 행위는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총을 겨눔으로써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확인시킴, 설득시킴, 복종시킴 그리고 믿게 만들기의 경우에서조차 우리는 비구두적으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148면)




48. 그래서 우리는 의미를 가지는 발화행위(발화행위 안에는 음성행위, 행태행위, 의미행위가 있다), 어떤 것을 말하는 가운데 어떤 힘을 가지는 발화수반행위, 어떤 것을 말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성취하는 발화효과행위를 구별하였다. (151면)




49. ‘x를 말하는 가운데 나는 y를 하고 있었다’ 또는 ‘나는 y를 했다’

(In saying x I was doing y or I did y)

‘x를 말함으로써 나는 y를 했다’ 또는 ‘나는 y를 하고 있었다;

(By saying x I did you or I was doing y)

우리가 발화수반행위와 발화효과행위의 두 이름을 선택한 것은 사실상 위의 두 공식의 유용성 때문인데, 첫째 공식(in)은 특히 발화수반행위에 관한 이름인 동사를 골라내는 데 적합하고, 둘째 공식(by)은 발화효과행위에 관한 이름인 동사를 가려내는 데 특히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는데,

‘그를 쏘겠다고 말하는 가운데 나는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In saying I would shoot him I was threatening him.)

'그를 쏘겠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그를 놀라게 했다.‘

(By saying I would shoot him I alarmed him.) (152, 153면)




50. 원래 수행문과 진위적 발화를 대조했을 때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1) 수행문은 단지 어떤 것을 말하는 것과 달리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며 그리고

(2) 수행문은 진이나 위가 아니라 적절하거나 부적절하다. (165면)




51. 나는 이 다섯 부류의 발화들을 그들의 발화수반력에 따라 분류했는데, 이러한 발화들을 다음과 같이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1) 판정발화(Verdictives)

(2) 행사발화(Exercitives)

(3) 언약발화(Commissives)

(4) 행태발화(Behabitives)

(5) 평서발화(Expositivies) (184면)




52. 첫째, 판정발화는 그 이름이 함축하는 바와 같이 배심원, 중재자 또는 심판이 판정을 할 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 둘째, 행사발화는 권능(power), 권리(rights)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명하기, 투표하기, 명령하기, 촉구하기, 충고하기, 경고하기 등이 있다. 셋째, 언약발화는 약속하기 혹은 다르게는 일을 떠맡기(undertaking)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언약발화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책임을 지울 뿐만 아니라, 선언이나 의도의 알림도 또한 포함한다. 넷째, 형태발화는 매우 잡동사니 종류로서 태도 또는 사회적 행동과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사과하기, 축하하기, 칭찬하기, 위로하기, 저주하기 그리고 도전하기 등이 있다. 다섯째, 평서발화는 정의하기 어렵다. 평서발화는 우리의 발화가 논의나 대화의 과정에 어떻게 적절하게 들어맞는가, 우리가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의 발화가 어떻게 평서적인가를 명백해 해 준다. 예를 들면, 'I reply', 'I argue', 'I concede', 'I illustrate', 'I assume', 'I postulate'가 있다. ... 마지막 두 부류(행태발화와 평서발화)가 가장 문젯거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분명치 않거나 교차 분류되었거나 심지어는 어떤 새로운 분류가 필요하다. (1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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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성공법칙
이현오 지음 / 김&정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1. 심신을 괴롭히고 흔들리게 하는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흔들림 없는 자아상이다. (10면)

 

2. 인간의 생활은 참된 로맨스다. 용감히 맞서면, 소설보다 훨씬 즐거운 인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랄프 애머슨) (12면)

 

3. 내일 아침부터는 '행동력'을 갖도록 노력하자. (17면)

 

4. 자신의 일이 끝났을 때, 여가를 즐기고 있는가? 스포츠, 댄스, 그림, 요리 ... 무엇이 되었든, 적극적으로 즐기자. (18면)

 

5. 순간마다 한 가지 일에 전념하고, 다른 일에 도전하기 전에 그것을 정리하는 습관을 몸에 익힌다면 점차 창조적인 행동력을 갖추게 된다. (18면)

 

6. 실패했을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빠짐없이 생각해보자. 의외로 잃은 것이 너무나 사소한 것들임을 깨닫고 놀랄 것이다. 너무도 가치있는 지금의 이 도전에 비하면 말이다. (20면)

 

7.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젊음에 넘쳐 있다. (헬렌 헌트 잭슨) (22면)

 

8.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했다.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며, 타인에게 가장 많은 해를 끼치게 되는 사람이다. 인간의 모든 실패는 바로 이런 유형의 인물에서 비롯된다."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남을 배려한다는 것이 곧 스스로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24면)

 

9. 생활을 황량하게 만드는 것은 동기의 결핍에 있다. (조지 앨리엇) (26면)

 

10. "이제 구두시험 때는 다른 학생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교수의 질문에만 집중하리라." (37면)

 

11. 자신이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섬'을 마련해두고 가끔 그곳으로 몸을 피하자. (44면)

 

12. 우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개의 몸에 있는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48면)

 

13.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정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라 동정, 성의, 이해의 형태로 주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나의 신뢰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이 된다는 선물이다. (48면)

 

14. 하지만 우정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있다. 스스로를 '반드시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48면)

 

15. 스스로를 신뢰하자. 충분히 가치있는 인간이며 자신을 자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고독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따뜻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51면)

 

16. 만일 한 가지 분야에서 은퇴할 때가 왔다면, 다른 분야에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자. 그곳에서 노년의 정신적 자살은 중단되고, 새로운 인생이 열릴 것이다. (54면)

 

17. 나는 실패와 욕구불만의 상을 집어던지고 자신감과 성공의 상으로 바꾸었다. 이따금 흔들리거나 비틀거리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참고 견디겠다. 나는 이 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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