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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변의 사용 ㅣ 수사학총서 8
스티븐 툴민 지음, 임건태.고현범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1. ‘논변의 사용’과 저자의 관계 역시 그랬다. 내가 책을 썼을 때, 나의 목표는 엄격히 철학적이었다. 의미있는 논변은 어떠한 것이라도 형식적인 용어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영미 철학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추론이든 ‘삼단논법’ 혹은 ‘언명들의 연결’로 불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추론은 삼단논법으로 표현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클리드적인 기하학에서 발견되는 엄격하게 논증적인 종류의 연역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적인 전통이 생겨났으며, 이것은 이 천년 후 데카르트에 의해 재생되었다. (5면)
2. 내가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쓴다면, 나는 ‘일반적’ 토피카와 ‘특수한’ 토피카 사이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려 했던 대조를 지적하고 싶다. 실천과 논변이라는 다른 영역에 의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지지작용’ backing을 더 분명하게 밝히는 방식으로 말이다. (7면)
3. 나는 이제까지 이러한 논변의 노선이 수렴하는 요점이 적절하게 인식되거나 언명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의 노선들을 일관적으로 따름으로써 우리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최근의 많은 철학자들이 주저 없이 완전무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연역 추리’라는 혼란스러운 개념을 거부하게 된다. 이 책의 유일한 독창성은 우리가 그러한 결론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데 있다. (11면)
4. 이 연구의 목적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의 연구 분야를 완전히 검토하는 것이기보다는 그 분야에 주목하게 하고, 체계적인 논문으로 이용되기보다는 논의를 유발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15면)
5. 이 탐구는 논변apodeixis(결론이 정립될 수 있는 방식)을 다루며 논변에 관한 지식episteme에 속한다. (16면)
6.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논변’에 관한 문제들은 주장들과 결론들에 관한 -일상적인 의미의- 증명, 유효하게 함, 혹은 정당화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논리학이 탄생한 이래 우리가 그 해답들을 이해하는 데 수세기 동안 그 진척 상황이 얼마나 미비했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17면)
7. 사실 우리가 발견하게 되듯이, 논리학은 그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들 즉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과, 상이한 분야의 논변들을 비판하는 기회를 갖는 방식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들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17면)
8.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사태가 이와 같이 진행되었다면,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행한 최초의 언급에 함축된 야망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야망이란 논리학은 형식적 학문 즉 에피스테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계승자들은 이러한 야망의 타당성을 거의 의문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야망을 의문시할 수 있다. 논리학이 형식적 학문이기를 바랄 수 있으면서도 얼마만큼 여전히 현실적 논변들의 평가에 적용될 가능성을 보유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 우리의 중심 문제가 될 것이다. (18면)
9. 매우 흔히 우리는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수행에 필수적인 어떠한 중간단계도 없이 즉석에서 결론을 끌어낸다. 즉 우리는 의식적으로 결정적인 단계를 내딛거나 규칙들을 염두에 두고 규칙들을 주도면밀하게 따름으로써 결론을 끌어내지 않으며, 또 그 결말 혹은 추론적 행위수행의 완성에 의기양양하게 도달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한 마디로 추론행위가 계산작용을 항상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건전한 논변의 규칙들은 우리가 계산에 의해 결론에 도달했든 단순한 비약에 의해 도달했든 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논리학은 우리 추론 행위의 방식 혹은 기술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주요 임무는 회고적이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즉 논리학은, 도달된 결론들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들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나중에 제시할 수 있는 논변들에 관심을 갖는다. (22, 23면)
10. 심리학, 사회학, 기술공학, 수학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근거들(토대)’grounds, ‘지지작용(보강)’backing과 같은 말들에 포함된 구조공학structural engineering과 콜라주의 반향을 제쳐두고, 법률학이라는 분과를 우리의 모델로 택해 보자. 논리학은 일반화된 법률학이다. 논변은 소송과 비교될 수 있고, 우리가 법 외부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은 법정에서 하는 주장들과 비교될 수 있는 한편, 각각의 주장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 제시되는 사례들은 서로 비교될 수 있다. 법률학의 주요 임무는 법적 소송의 핵심적인 것들을 특징짓는 것이다. 즉 법정에서 주장들이 제시되고, 논박되고, 결정되는 절차와 이것이 행해지는 범주들을 특징짓는 것이다. 우리의 탐구는 이와 일치한다. 즉 우리는 유사한 방식으로 ‘합리적 절차’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즉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주장들을 주장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절차와 범주들을 특징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25면)
11. 논리학과 법률학 사이의 비교에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그러한 비교는 이성의 비판적 기능을 그림의 중심에 놓게 된다. (26면)
12. 건전한 논변, 잘 근거지어진 주장 즉 확실하게 지지된 주장은 비판에 견딜 수 있는 주장이며,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기준에 도달한 사례가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다. 얼마나 많은 법적 용어들이 논리학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가! (26면)
13. 우리의 주제는 단순히 법jus에 관한 사려prudentia가 아니라 좀 더 일반적으로 이성ratio에 관한 사려가 될 것이다. (26면)
14. 법률학의 분야에서는 우리가 수학의 형식적 구조를 갖는 이론들을 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제안이 결코 유행한 적이 없었으며, 논리적 이론 전체를 수학적 형식으로 던져 넣는 아이디어에 대한 반대들도 있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27면)
15. 나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를 확신한다. 논리학을 일반화된 법률학으로 다루고 우리의 생각들을 한 철학자의 이상이 아니라 논변 평가에 관한 실제적 실천에 비추어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결국 전통적인 것과는 매우 다른 논리학에 관한 그림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9면)
16. 하나의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하나의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와 믿음에 대한 요구이다. (31면)
17. 존슨 박사가 말하듯이 사람들은 비문에서 ‘맹세하지는 않는다’. (31면)
18.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의 언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의 언명이 하나의 주장으로 이해된다면, 그러한 언명은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그의 언명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많은 상황에, 예를 들면 그의 사람 됨됨이와 일반적인 신용 등에 의존한다. 어떤 사람들의 말은 단지 그들의 신중함, 판단, 정직에 대한 명성으로 신뢰된다. (31, 32면)
19. 하나의 주장assertion 안에 함축된 요구claim,는 권리나 자격에 관한 요구와 같다. 권리에 대한 요구의 경우처럼, 주장 안에 함축된 요구가 논변 없이 결국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요구의 적절함은 그것을 지지하는 가운데 산출될 수 있는 논변의 적절함에 의존한다. (32면)
20. 우리를 즉시 놀라게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지지작용을 받을 수 있는 주장들의 범위가 크다는 것과 주장들을 위한 지지작용으로 산출될 수 있는 것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따라서 정당화 논변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료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단계들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33면)
21. 우리가 도달한 결론들, 우리가 제시한 주장들은 우리가 판단하게 될 문제들의 본성에 따라 매우 상이한 종류가 될 것이다. (34면)
22. 즉 ‘당신은 왜 그렇게 보시나요?’ 그리고 도전을 받는다면, 최초의 주장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 적절하고 충분한 것으로 생각한 어떠한 자료, 사실들 혹은 다른 지지작용을 산출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34면)
23. 우리가 제시하는 논변들과 그 논변들 안에서 일어나는 단계들은 그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즉 끌어들여진 사실들의 논리적 유형들과 그러한 사실들로부터 도출된 결론들의 논리적 유형들에 따라 우리가 택하는 단계들 - 논리적 유형의 이행들 -은 상이할 것이다. (35면)
24. 우리가 산출하는 정당화 논변들은 많은 상이한 종류의 것들일 수 있으며, 그러한 논변들이 얼마만큼 동일한 절차에 의해서, 동일한 종류의 조건들 속에서 그리고 동일한 종류의 기준들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 평가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즉시 발생한다. (35, 36면)
25. ‘우리의 논변들의 형태와 적절함에 관련된 것들 중 어떤 것들이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고field-invariant(영역에 상관없이 동일하고), 어떤 것들이 영역에 의존적인가field-dependant?' (37면)
26. 우리의 주장이 도전받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게 하고 이러한 특정한 가능성을 제거하게끔 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기 위해 제시할 근거들, 지지작용을 갖고 있다. 그는 그 무게를 혼자서 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결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결론을 그의 체격 때문에 제시한다. 우리가 그의 실제 체격을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관련된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가 그가 갖고 있다고 생각한 체격은 우리가 그가 그 무게를 혼자서 들 것인지 - 사실 들 수 있는지 - 하는 물음을 물을 때 확실히 유효한 것이다. (51면)
27. 그러한 편협함의 위험들은 이러한 종류의 철학자들이 일반화를 하기 시작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한 철학자들은 어떤 한 가지 유형의 가치평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다른 종류의 가치평가에 포함된 특수한 문제들 예를 들어 미적 판단의 모든 난점들과 도덕적 삶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을 보지 못한다. (66면)
28.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즉 논변들의 비판과 평가를 위한 모든 규준들은 실제로 영역에 의존적인 반면, 우리의 모든 평가의 용어들은 그 힘에 있어서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다. (71면)
29. ‘보편적인 논리학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74면)
30. 모든 종류의 법적 소송들의 운영에 있어서 관찰된 절차들이 어떤 공통적인 특징들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들을 상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측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민사소송의 운영은 모든 개개의 특성에서 형사소송의 운영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유사한 차이들이 합리적 절차들의 경우에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77면)
31. 그 딜레마를 이해한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얘야, 그 아이에게 네가 아마도 올 것이라고 말해라. 몇 시쯤에 집에 오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약속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올 것이라고 말하거라.’ 어머니의 구원에 감사하면서 그는 돌아서서 요술 같은 말을 한다. ‘아마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는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아마도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이다. (87면)
32. 이러한 차이는 J. L. 오스틴 교수가 논의했던 것과 의미에 있어서는 상반되지만, 성격에 있어서는 유사하다. 그는 ‘S는 P이다’ 혹은 ‘나는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S가 P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혹은 ‘나는 내가 A를 할 것이라고 약속한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언급한다. (87면)
33. 내가 ‘나는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적어도 내가 그것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함축하며, 내가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다면, 나는 (전적으로) 그럴 의도가 있음을 함축한다. 나는 단지 S가 P라는 것을 믿을 뿐이라면, 나는 ‘그러나 물론 나는 잘못될 수도 있다(잘못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덧붙일 수 있다. 내가 단지 A를 하기를 원할 뿐이라면, 나는 ‘그러나 물론 나는 그렇게 안할 수도 있다(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라도 덧붙일 수 있다. (88면)
34. 그러나 이제 내가 ‘나는 약속한다’라고 말하는 경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나는 단순히 나의 의도를 발언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식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의식을 수행함으로써) 나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속박시킨 것이며, 나의 평판을 새로운 방식으로 내기에 거는 셈이 된다. (88면)
35. 내가 ‘나는 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나의 말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S는 P이다’라고 말하기 위한 나의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한다. (89면)
36. ‘그래, 올게’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당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약속만큼 엄격하고 엄숙하지는 않다고 해도, 어떤 방식에서는 이것은 거의 약속이다. (89면)
37. ‘어쩌면’이라는 말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아마도’라는 말의 요점은 바로 이러한 난점을 피하는 것이다. ... ‘S는 아마도 P일 것이다’ 혹은 ‘나는 아마도 A를 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나는 유보 없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를 회피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실패의 몇 가지 결과들에 대해서 보호된다. (90면)
38. 끝으로 그리고 말의 어떤 형태들은 사태의 본성상 금지된다. 다시 오스틴의 예를 따르자면, 우리는 “나는 그럴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는 그렇다고 알고 있지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즉 우리가 이 경우에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할 구체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면)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깰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91면)
39. 그들이 ‘확실히 퍼질 것이다’ 혹은 ‘우리는 구름이 퍼질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나서, 틀렸을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불평을 들을 것이다. (92면)
40. 논변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157면)
41. 우리는 두 개의 경쟁적인 모델 즉 수학적인 모델과 법률학적인 모델을 갖고 있다. 하나의 타당한 논변의 논리적 형식이란 기하학적인 어떤 것, 즉 삼각형의 형태나 두 직선의 평행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아니면 그것은 절차적인 어떤 것인가? 즉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변이란 정연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식으로 제시된 것이라기보다는 법률가들이 말하곤 하듯이, 올바른 형식을 지닌 것인가? (157, 159면)
42.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논변들의 미시 구조를 분석할 때 그 논변들을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논변들은 한 번에 세 가지 명제로 주어졌다. 즉 ‘대전제, 소전제, 그래서 결론.’ 이제 그러한 표준적인 형식이 충분히 상세하고 분명한가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물론 단순성은 장점이지만, 이러한 단순성은 너무 많은 값을 치르고 얻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논변들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이러한 표제들 즉 ‘대전제’, ‘소전제’, 그리고 ‘결론’이라는 것 아래서 적절하게 분류할 수 있는가 혹은 아니면 이러한 범주들은 우리를 오도할 만큼 수적으로 적은 것인가? 대전제와 소전제 사이에는 통상 ‘전제’라는 단일한 명칭으로 함께 묶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사성이 있기는 한 것인가? 법률학과의 유비를 통해서 이러한 물음들이 조명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통상적인 구조보다 더 복잡성을 가진 구조를 택하게 할 것이다. (160면)
43. 우리가 하나의 주장을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어떠한 주장이든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타당성 주장에 개입하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주장이 도전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 주장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그 주장을 건전하게 만들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61면)
44.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구분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유용성들을 확립하기를 추구하는 주장claim 혹은 결론(C)과 우리가 그 주장의 토대로 의지하는 사실들 - 나는 앞으로 우리의 자료data(D)라고 칭할 것이다 - 사이의 구분이다. (162면)
45. 이제 우리는 이미 제시했던 것에다가 좀 더 많은 사실적 정보를 보태도록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제시된 자료와 결론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지적하도록 요구받을 수 있다. 일상 어법으로 말하면, 그 물음은 이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너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일 것이다. 특정한 자료들을 어떤 특수한 결론의 기초로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단계를 확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물음은 이러한 단계의 본성과 정당화에 관한 것이다. (163면)
46. 오히려 아주 다른 종류의 명제들 즉 어떤 것이든 추가적인 정보의 항목들이 아니라 규칙들, 원리들, 추론 규칙들inference-licences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더 이상 논변이 구성된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자료들을 출발점으로 이루어진 원래의 주장이나 결론으로의 이행이 적절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특정한 논변이 확정되게 만든 단계와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보편적, 가언적 언명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D이면 C이다’라는 형식으로) 매우 간단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명확성을 위해서는 그 언명들이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 좀더 명시적으로 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D와 같은 자료들이 우리가 C와 같은 결론들을 내리거나 C라는 주장들을 할 자격을 부여한다’, 혹은 아니면 ‘자료 D가 주어지면 우리는 C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명제들은 나는 정당한 이유들warrants(W)이라고 부를 것이고 결론 및 자료와 구분할 것이다. (163, 164면)
47. 달리 말해서 우리는 ‘네가 어디에 근거하는가?’와 ‘너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라는 두 물음의 힘(함축)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할 수 있는가? (164면)
48. 자료들과 정당한 이유들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법정에서 하는 사실의 물음들과 법의 물음들 사이의 구분과 유사하다. (166면)
49. 정당한 이유들은 상이한 종류의 것들이며, 그것들이 정당화하는 결론들에 상이한 정도의 힘을 전달할 수 있다. 어떤 정당한 이유들은 적절한 자료들이 주어지는 경우 하나의 주장을 분명하게 수용하도록 허용한다. 이러한 정당한 이유들은 해당되는 경우에 ‘필연적으로’라는 부사로 결론을 한정지을 수 있게 한다. 다른 정당한 이유들은 우리의 자료로부터 결론으로의 이행을 임시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아니면 그 이행을 조건, 예외, 혹은 한정들에 종속되게 한다. 이러한 경우들에는 위와 다른 양상적 한정어들 즉 ‘아마도’나 ‘추측건대’presumably와 같은 것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료, 정당한 이유 그리고 주장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에 덧붙여서 우리는 자료가 정당한 이유로 인해 우리 주장에 전달하는 힘의 정도를 명확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한정어를 넣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67면)
50. 즉 ‘당신은 버뮤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영국 국민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예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정당한 이유들 배후에 있고, 그것들이 없이는 통상 정당한 이유들 자체가 어떠한 권위도 지니지 못하거나 통용되지 못하게 되는 다른 보증other assurances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른 것들을 우리는 정당한 이유들에 대한 지지작용Backing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171면)
51. 우선 B와 W 사이의 차이들이 있다. 우리는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언명들은 가언적이고, 다리 역할을 하는 언명들인 반면,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지지작용은, 결론들을 직접 지지하기 위해 의거하는 자료들처럼 사실에 관한 정언적 언명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았다. (173, 174면)
52. 해당되는 논변의 영역이 우리에게 접근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정당한 이유들은 더 이상 도전받지 않고 잠정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정당한 이유들에 관한 잠정적인 표상을 갖고 있지 못한다면, 어떤 종류의 자료가 결론에 가장 조금이라도 중요한지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175면)
53.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자료들, 정당한 이유 그리고 지지작용 사이의 구분과 삼단논법에서 무엇이 일치하는가?’ (178면)
54. 페테르손은 스웨덴 인이다.
스웨덴인은 거의 확실하게 로마가톨릭교도가 아니라고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거의 확실하게 페테르손은 로마가톨릭교도가 아니다.
여기서 연속으로 나오는 논변의 세 줄은 우리의 용어법에서 자료(D), 정당한 이유(W), 그리고 결론(C)과 일치한다. (180면)
55. 하지만 우리는 아주 흔히 특히 논변들 속에서 단일한 그 언명으로 한 번에 두 가지 작업을 하며, 짧게 하기 위해 지지작용으로부터 정당한 이유로의 이행을 감춘다. 즉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사실적 정보로부터 그 정보가 우리의 사용을 정당화해 주는 추론규칙으로의 이행을 무디게 한다. 이러한 습관이 사용을 위해 경제적이라는 점은 분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철학적 목적들에 비추어보면, 그 습관은 우리 논변들의 사실적인 구조를 충분히 분명하게 할 수 없다. (183, 184면)
56. 오랜 습관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을 그 형식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필요가 없다. (189면)
57. 일단 우리가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의 언명들을 확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상황이 요구하는 데 따라 그 언명을 명시적인 정당한 이유나 지지작용에 대한 명시적인 언명들로 대체하는 데 익숙해졌다면, 우리는 논리학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러한 형식의 언명에 집착해왔다는 점이 수수께끼라고 여길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들을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당분간 우리는 논리학자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언어들을 빈곤하게 하고, 그들의 수수께끼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실마리를 간과하는 대가를 치렀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은 우리가 논리학 교과서들에 의거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논변에서 훨씬 더 적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이 이미 익숙해져 있는 관용적 언명들을 이러한 특수한 형식으로 바꿔 쓰고, 그럼으로써 이러한 관용적 표현들을 전통적인 삼단논법적인 분석에 명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만드는 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191면)
58. 논리학자가 지금까지 모든 보편 언명을 미리 정해진 그 형식들로 강제한 반면, 실천적 담화에서는 대개 여러 가지 상이한 형식이 사용되었다. 즉 ‘모든 개개의 A는 B이다’, ‘각각의 A는 B이다’, ‘하나의 A는 B일 것이다’, ‘A들은 일반적으로 B들이다’, 그리고 ‘그 AThe A는 B이다’ 가운데 한 가지 선택만 있을 뿐이다. (192면)
59. 생물학자는 ‘모든 고래는 포유동물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고래들은 포유동물들이다’ 혹은 ‘고래는 포유동물이다’라는 문장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입이나 글에서 등장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192면)
60. 논리학자의 ‘모든’은 불행한 기대들을 수반하며, 그러한 기대들은 실천 속에서 흔히 좌절될 수밖에 없다. 윤리적 논변들에 있는 가장 일반적인 정당한 이유들은 여전히 비일상적인 상황들 속에서 예외들을 경험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기껏해야 단지 가정적인 결론들만 허용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을 고집한다면, 의무들의 갈등은 우리를 역설에 빠뜨린다. 많은 도덕이론은 우리를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관계한다. 잉여의 ‘모든’을 주장하는 결과들을 실천 안에 받아들이려고 고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의심스런 척도들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단지 절대적 파시즘과 같은 상도에서 벗어난 도덕적 입장을 채택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193면)
61. 대전제와 소전제로 표현되고 우리가 거기서 출발한 정보가 타당한 추론에 의해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주장된다) 그 결론이 단순히 전제들의 부분들을 변형시켜 새로운 유형에 따라 배열하는 것을 통해 결과하기 때문이다. 추론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주어진 요소들을 재배열하며, 처음에는 전제들 안에서 그리고 다음은 결론들 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요소들 사이의 형식적 관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한 추론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한다. (194면)
62.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정당한 이유를 지지작용으로 대체한다면, 즉 전칭 명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형식적 타당성의 개념은 우리의 논변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 ‘자료들, 지지작용, 그래서 결론’이라는 형식의 논변은 실천적 목적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적절한 것이다. ... 그러나 이 논변의 타당성은 그 논변을 구성하는 표현들의 어떤 형식적 속성의 결과라고 전혀 주장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것을 도외시하면 그 결론들의 요소들과 전제들의 요소들은 상이하다. 그러므로 이행은 변형과 재배열 이상을 포함한다. 따라서 당연히 (D;W;그래서C)라는 논변의 타당성 역시 실제로는 그 형식적 속성들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경우에 우리는 특히 명확한 형식으로 그 논변을 언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D;B;그래서C)라는 논변은 형식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우리 논변들의 건전성이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지지작용을 밝힌다면, (어떠한 기하학적 의미에서든) 타당성이 ‘형식적 속성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그럴듯함을 상실한다. (195, 196면)
63. 우선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을 대전제에서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와 그 지지작용 사이의 구분을 은폐한다. (233면)
64. 형식논리학의 범주들은 분석 삼단논법에 관한 연구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이 삼단논법이 대표적인 논변이 아니고 겉보기에 간단한 논변일 뿐이며 형식논리학과 인식론이 지닌 진부함은 그 범주들을 상이한 종류의 논변들에 잘못 적용한 데서 비롯한다는 가설이다. (235면)
65. 세 번째 부분에서 나는 좀 더 역사적이고 동시에 좀 더 설명적이고자 한다. 형식논리학의 과도하게 단순화된 범주들은 그 단순함에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다른 몇 가지 영향력 있는 편견들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 매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논리학자들은 수학적 모델이 매혹적임을 알았고, 기하학보다는 법학적 모델을 갖춘 논리학에서는 그들의 이상이 지닌 수학적 우아함을 기대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우리를 인도하는 수학적 모델과 같은 이상적 논리학은 실천적인 분야로 적용되는 데 약점을 노출한다. 합리적 증명은 무시간적이고 공리적 과학에서는 적합한 주제가 아니다. (237면)
66. 우리는 그 대신에 아주 다른 물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과학에서, 윤리 혹은 도덕에서, 법, 예술 비평, 성격 판단, 혹은 기타 등등에서 이미 확립된 정당한 이유들이 얼마만큼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떤 원칙들이 건전하고 어떤 정당한 이유들이 수용할 만한지를 결정하는 절차들이 어느 정도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합의되는가? (279면)
67. 논리학에 수학적 형식을 부여하려는 야심은 논리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학이 개별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아 왔던 오랫동안 - 다른 말로 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 형식논리학자들은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건전한 추론의 원칙들을 체계화하고 있으며 논변의 규준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항상 스스로 형식적, 연역적이고 나아가 공리적 학문으로서의 논리학의 이상을 주장해 왔다. ... 논리학은 아포데이크시스(결론이 확립될 수 있는 방식)을 다루며 그것은 또한 그 결론의 확립에 관한 학문(지식)이다. 그는 우리가 이미 논리학을 연역적이고 이론적인 학문으로서의 에피스테메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한다. (281면)
68.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으뜸이며 가장 극적으로 성공적인 에피스테메는 기하학이었다. (282면)
69. 형식논리학은 논리적 관계들에 관한 학문, 지식이어야 하며, 이 관계들은 만일 적어도 어떤 한 경우에서 참이라면, - 다른 수학적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 어떠한 모든 경우에든 참이어야 하는, 무시간적이며 시제를 갖지 않는 명제들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적 관계가 적용되는 사물들 혹은 단위들은 관계들 자체처럼 변화하지 않거나 ‘시간에 독립적’일 필요는 없다. (283면)
70. 우리가 아는 한, 언어는 분명히 무시간적인 명제들이 아니라 그것이 발화하는 다양한 영역이나 상황들에 의존하는 발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술은 특정 상황에서 진술되며, 그 진술들에 대한 해석은 그 진술이 상황들과 맺는 관계에 결부된다. ...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진술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 혹은 다른 상황에선 특정한 자료의 집합이 결과하는 사건을 예견할 자격을 주는 것으로 제시할 것인지의 여부와 같은 문제들이 생겨난다. 오로지 순수수학에서만 우리의 평가들은 완전히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286)
71. 그 비판은 발화를 주어진 상황에서 수행된 행위로 취급하며, 그것이 수행되는 맥락에서 볼 때 그 행위의 가치에 관해 묻는다. (286면)
72. 형식논리학자는 진술들이, 모든 진술들이 그리고 오로지 진술들만이 증명되기를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천상의 권좌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는 진술들 간의 불변하는 관계에 관해 선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의 관점을 취하게 되면, 우리는 그로부터 타당성의 물음 자체가 발생하는 실질적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절연된다. (291면)
73. 내용적인 혹은 실천적인 논리학 혹은 응용논리학 ... (2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