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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1. 나는 엄청난 책의 더미 앞에서 그냥 넋을 잃었다고. 그 책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벌써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지적 연구와 축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새삼 공부하고 연구할 건덕지가 뭐 남아 있겠는가 하는 열등의식이 들더라고,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어요. (230면)
2. 노신뿐이 아닙니다. 블란서의 200년 식민지 알제리에서 프랑츠 파농도 바로 노신의 그것이지요. 그는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처럼 자기 동포 알제리인들이 자신들의 비굴한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배자 백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자기상실적인 흑인이 되거나 아니면 블란서인, 즉 백인에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 역시 자기상실적 인간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철저한 열등의식을 그는 유명한 저서 '검은 피부 흰 가면'에서 폭로했어. 이 폭로는, 잘 알다시피 자학적인 폭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상태와 정체성을 상실한 동포들에게 바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지적함으로써 정신적 혁명을 이룩하도록 한 것이었지요. 역시 '부정의 부정'으로 길을 찾으려는 거지요. (239, 240면)
3. 미국이 베트남 사태에 대해 군사적으로 개입한 1960년부터 미국이 패망하고 베트남에서 도망치다시피 철수한 1975년까지의 긴 세월 동안, 정말이지 나의 온 관심은 베트남전쟁에 쏠려 있었어요. 그 동안 미국 군대의 포탄과 고엽제와 기총소사로 수없이 죽어간 베트남인들의 죽음과 고통과 눈물을 어느 하룻밤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339면)
4. 그(호지명)가 평생 베트남의 지도자로서 살던 관저, 대통령궁이라는 것이 얼마나 검소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347면)
5. 아시아에 또 하나의 '반공군사 전초기지'를 만들려는 것이지. 남한과 꼭 같은 성격과 기능이지. (351면)
6. 로마제국도 그렇고, 심지어 개인의 경우도 힘에 도취하면 그 주체는 이성을 상실하게 돼요. 폭력의 전능성에 대해서 자기도취가 된 나머지, 미국이 자기비판을 할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 거지요. (352면)
7. 19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에 걸치는 시기는 내가 35세에서 40세 중반에 걸치는 시기예요. 세계의 지식인 누구나 그렇듯 이 시기는 두뇌나 신체적 조건에 있어서 거의 일생 동안 하는 독서의 절반 이상을 하는 시기가 아닙니까? 나의 독서편력도 이 시기에 집중되었어요. 그 범위는 다방면에 걸쳤으며 그 깊이는 지금 회상해도 놀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독서를 내용적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다섯 가지로 나누어지겠지요. 첫째는 내가 지향하는 사회개혁적 이념을 위한 철학, 사상, 이론 분야, 둘째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현실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현실분석적 독서, 셋째는 이와 같은 이념지향적, 사회변혁적 세계관을 위해서 필요한 광범위한 주제의 높은 사상, 교양 서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지식과 사상을 토대로 해서 현실적 국제정세를 보다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현실적 문제와 상황에 관해 연구했지요. (375면)
8.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평등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구분이 없이 가능한 한 공평한 물질적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바탕 위에서 인간적, 정신적으로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 따위의 모색이었어. (376면)
9. 바로 페르디난트 퇴니스의 사회심리학적 명저인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순수사회학의 기본개념'이라는 책이지요. 나의 사회과학적 의식과 사상을 원초적으로 눈뜨게 한 퇴니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50년 동안 변함이 없지요. 또 노신의 작품집과 '괴테와 에커만의 대화'도 여행할 때 포켓에 넣고 다닙니다. (378면)
10.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흔히 독후감을 책 뒤에 짧게 써넣는 습관이 있었어요. (380면)
11. 많은 글을 쓰다보면 그것을 쓴 본인에게도 흡족한 글이 있고 마음에 차지 않는 글이 있게 마련이지요. 임형도 그럴 겁니다. 나의 경우도 그것은 마찬가지지. 한 40년 동안 써온 글이 제법 많은데, 그 중에서도 언제 다시 읽어봐도 '참 잘 썼구나'하며 약간의 지적 감상에 젖게 만드는 만족스러운 글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에요. 그 글은 그후 1974년에 나온 나의 첫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 비평사)에 수록되어서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지적,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어요. (411면)
12. 게다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언론이 부패되는 보다 직접적인 요소는 경제권력, 즉 돈의 유혹이에요. (424면)
13. 나도 적당히 '이중인격자'가 되어갔고 위선자가 되었어. (463면)
14. 그래서 나는 술 마시고 여자 끼고 돈 뿌리면서 이 사회의 현실과 타협하는 작태를 못 참았어요. 내 마음이 너무 좁았던 거지. 세상을 좀더 넓게 여유를 가지고 보지 못했던 거지. 철저하게 검색하면, 나의 그런 태도는 이율배반일 수 있고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편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당시의 나의 사고와 행동이 반드시 객관적으로도 옳았다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그런 심정이었고, 그것 아닌 다른 자기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실토할 뿐이오. (464면)
15. 자기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남이 준 것으로 인해 자유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히려 자신에게 제약과 규율을 가하는 속에서 그것이 보다 더 의미 있고 높은 정신성으로 자신을 승화시킨다는 진리를 터득했어요. (488면)
16.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고와 신념에서 '유일사상'과 '절대주의'처럼 위험한 것은 없어요. (504면)
17.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톨스토이) (516면)
18. 어떻든 압도적 다수의 한국 교수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유학하는 과정에서 거의 자기를 상실할 정도의 미국 숭배자가 되고 만다고. (548면)
19. 국제정세의 어떤 문제나 운동양식 등을 파악하고자 할 때, 흔히 "미국 교수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외국인 지식에 대한 권위주의적 노예가 돼요. 학문연구의 주체의식이 희박해. 큰 문제야.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분석방식 없이 남의 이론을 빌려서 자기의 권위로 이용하는 작태를 나는 멸시해요. (549면)
20. 나는 현학적인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런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인용한 누구의 이름에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허영에서 출발해요. 자기의 지식이 돼버린 것은 굳이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대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한 철저한 '자기화'가 필요하지. 나의 수많은 논문과 평론, 심지어 산문, 잡지에 발표한 평범한 주제의 글도 다 이 정신과 방법으로 쓴 것입니다. (549면)
21. 먼 길을 가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긴 세월을 지내봐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명심보감) (560면)
22. 군자의 사귐은 덤덤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그 맛이 달기가 감주와 같다. (563면)
23. 역시 서점이었지. 서점에 가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는 것이니까. (583면)
24. 자기들도 안 먹고, 우선 문제의 업무부터 처리하는 그 독일인의 철저한 현실주의적 업무처리 방식을 보면서 정말 감탄했어요. 그곳에 가기 전에 있었던 일본 동경대학에서, 한국의 허례의식, 형식주의, 비실용적 관념주의 따위를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독일에서는 더했지. (604면)
25. 사회주의 정당이 현존하다 보니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적인 이익추구 위주의 생활방식과 다른 복지 위주의 정책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적 경제생산 양식과 함께 인간 위주의 사회, 문화 정책이 조화되어 있어요. (609면)
26. 버클리시는 버클리대학 학생들의 경제 수준에 맞게 집값, 전세값 등을 통제하고 있었어. (631면)
27. 유럽의 사회체제는 소련의 체제보다 훨씬 나은데다, 미국사회의 속성인 이기주의, 폭력주의, 극심한 빈부격차, 범죄, 타락을 상당한 정도까지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희구해도 이미 먼 옛날에 인류의 사회적 형태로 지나온 '게마인사프트'(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적 유대가 기본원리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게젤사프트'(서로의 이해관계의 계산을 매개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와 적절히 배합한 인간 생활형태를 미래의 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겠지요. (687면)
28. 즉,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은 현대적 시장처리를 능률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 문제는, 그렇게 전적으로 시장화하면 인간복지, 인간가치적 기능은 사회주의의 인간우선적 철학과 정책으로 보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이 기능을 이론적, 경험적으로 적절히 배합하는 게 유럽 사회민주주의(또는 민주사회주의) 제도라는 데는 현재 거의 누구나가 동의하고 있지요. (694면)
29. 나는 인간 행위에서 절제를 미덕으로 여겨요. 사람들이 각기 남을 배려하면서 자신을 절제하는 곳에 아름다운 인간적 덕성, 화합과 평화가 꽃피니까요. (726면)
30. 나의 파란 많은 인생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흐뭇한 것은 나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에요. (7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