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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회의 브레이크인가, 엔진인가
에마뉘엘 피라 지음, 이충민 옮김 / 모티브북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1. '법률사회학', '법철학', '법률사' 등의 학문이 존재하며 이들이 대학에서 학문 분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는 분명하다. 그런데 교수들이 게으르다보니 법대생들은 진정한 역량이 발휘되어야 할 분야에서 법 조항과 판례 목록을 무턱대고 외우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래서 법학 공부는 시작부터 매우 이론적인 일련의 전문 자료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요약되며 비판적 관점을 취하거나 '현실 세계'에 적용해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형법이나 상법을 무더기로 암기한다. (12면)
2. 하지만 변호사가 실제 현장에서 그런 식으로 하는 일은 없다. 현실에서는 우선 의뢰인의 얘기를 듣고 그가 꺼내는 단서들을 훑어본 후 질문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는 수많은 요소가 얽힌 사건을 단 하나의 법조항에 맞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법규를 잡다하게 검토해야 하며 (승산이 적어 보이는 사건을 맡은 변호사 입장에서는 다행이지만) 이 법규들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흔하다. (15면)
3. 교수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서 이 모든 내용을 '법학 개론'이라는 잡동사니 가방에 담아 떨이로 팔고, 필요한 경우 '법학사'나 '헌법학' 시간에 특정한 사상가나 이론을 꽤 길게 다루기도 한다. (27면)
4. 하지만 법철학자들의 복잡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다양한 자연법의 개념이 존재한다. (44면)
5. ... '세대'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30년 전에만 해도 정신질환으로 간주되던 동성애와 성전환이 지금은 이인권의 문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환경권', '평화권' 등도 인권 목록에 추가되었다. (45면)
6. 자연법 개념의 최종 단계는 국제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법 조문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추상적 차원의 선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국제법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실현시키려 할 경우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며 특히 각국의 전략적,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다. (47면)
7. 더구나 진보(즉 인권)는 실증주의적 법학 이론과는 갈등 관계에 있으므로 진보를 추구하려면 자연법 개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부 전위적 인사들은 실정법에 그와는 완전히 대립될 듯한 개념을 도입하려 한다. (63면)
8. 하지만 부유한 고객들이 전직 변호사협회 회장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한번 회장직을 맡은 변호사는 이후 (한번 장관은 평생 장관의 호칭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변호사협회 회장의 호칭도 평생 따라다닌다) 수임사건 숫자가 세 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92면)
9. 법과대학은 근대화에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중세 카톨릭교회에서나 쓰였을 요상한 미사여구를 쓰기를 좋아한다. 더 웃긴 것은 이러한 라틴어 문구를 남발하는 교수들이 라틴어 문법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99면)
10. 법대 교수들은 방대한 민법전을 다룰 때면 스탕달이 자신의 문체를 풍요롭게 할 생각으로 매일 같이 법조문을 하나씩 읽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천년을 살아갈 학생들은 법대 1학년을 마치면서 교수가 괜찮은 소설을 읽은 지 정말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01, 102면)
11. 교수들은 책에만 머리를 파묻고 사는지라 이론가들의 생각처럼 단순한 법리적 삼단논법이 실제 법정에서 독주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법이란 투명하고 흠이 없는 순 법리적 추론이 아니다. 법은 살과 뼈(와 붕대와 상처)로 이루어진 실제 사건이며 대립되는 이해관계들이 표출되고 판사들을 설득시키려 하는 싸움터이다. (108면)
12. 판사들이 가능한 두 답안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웅변술은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재판에서는 판사와 배심원을 설득해야 한다. (109면)
13. 세상에는 변호사라는 단일한 직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여러 직종이 변호사라는 명칭으로 묶이는 것이다. (129면)
14. 결국 구호단체처럼 사건을 맡거나 관선변호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들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이들도 사실은 수임 사건이 워낙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일까지 건드리는 것이다. 이 업계에도 덤핑 전략은 유효한 것이다. (132면)
15. 과거와는 달리 이제 판사들은 자국의 국내법만을 생각할 수 없다. 예컨대, 이제는 국제 조약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표현의 자유나 사생활 침해 같은 사건에서는 원고나 피고 측에서 유럽 인권 협약에 근거하여 변론을 펼치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프랑스의 법조문과 유럽연합의 원칙, 가치를 꼼꼼히 비교하는 일이 필수적이 된다. 더구나 국내법만 보면 명확한 사건일지라도 상급 법원에서 국제법을 얼마나 고려할지 미리 내다보아야 한다. (139면)
16. 한편 법대에서는 판례라는 것을 여전히 고루하고 건방진 태도로 폄하하고 있지만, 현실 법조계에서는 판례가 법규범의 위계체계에서 점점 중시되고 있다. ... 현실에서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판검사든 변호사든 유사한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을 참조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원고 측이든 피고 측이든 수많은 유사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문이나 조례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 결국 대학에서 배우는 법률이란 실제 현실보다는 몽상에 가깝다. (140면)
17.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분노한 사람들'은 이 장르의 고전이 되었다. (151면)
18. 원칙적으로 보면 정기적으로 낡은 법을 폐지해서 법체제를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입법부에서는 항상 새로운 법을 만들기만 할 뿐 법을 폐지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다 보니 낡아져서 사문화된 법률들도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적용 가능하다. (167면)
19. 하지만 최근 들어 프랑스 법에는 존엄성 개념이 들어와 명예 개념과 공존하고, 심지어 법정에서 그보다 윗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사법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67면)
20. 이제 결투는 사라졌다. 대신 명예훼손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존엄성'이라는 말도 법원에 초청받고 있다. (3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