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민법학논문선
양창수 지음 / 박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지나치게 번역에 열중해 왔다.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 내 시가 번역 냄새가 나는 스타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밀은 그런 천박한 것이 아니다.” (1면)




2. 여기서 ‘열중’이라는 것을 시간과 노력을, 말하자면 사람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자원을 뜻하는 일의 수행에 배분함에 있어서의 항상적일 수 없는 어떠한 일시적 편향이라고 내멋대로 이해한다면, 나는 아마 ‘번역에 열중’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도 말하듯, 남의 나라의 민법학 논문을 번역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나라의 글을 우리 말로 옳기는 것이 아니라, ‘내 시의 비밀’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 2면)




3. ... 역사법학파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로써 법학의 역사적 측면이 특히 강조되었는데, 그것은 다른 활동이나 방향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감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역사적 연구가 장기간에 걸쳐 줄곧 다른 연구에 비하여 소홀히 되어 있어서 그 원래의 권리를 되찾으려면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것보다 열심히 변호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 4면)




4. 반대자들은, 역사법학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독자성을 간과하고 이를 과거의 지배 아래 굴복시키려 한다고, 특히 로마법의 지배를, 한편으로는 게르만법에 대립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학무과 실무에 대하여 순수한 로마법을 대체하면서 행하여진 새로운 법형성에 대립하여, 부당하게 확장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비난은 일반적이고 학문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침묵하여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4면)




5. 법학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란 빈번하게, 과거에 유래하는 법형성을 최고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에 현재와 장래에 대한 불변의 지배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태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오해이고 왜곡이다. 오히려 그 시각의 본질은 각 시대의 가치와 독자성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를 과거와 결합시키는 살아 있는 관련(lebendiger Zusammenhang), 그 관련을 알지 못하고서는 현재의 법상태로부터 단지 외적인 현상만을 감지하고 그 내적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러한 살아 있는 관련을 인식하는 데 최고의 비중을 둔다. (4, 5면)




6. ... 이와 같은 구분된 활동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원래의 통일성을 항상 마음에 두어서, 어느 정도는 모든 이론가가 실천적 감각을, 모든 실무가가 이론적 감각을 자신 안에 보지하고 발전시키는 것만이 구제책이 된다. 이것이 행하여지지 않고 이론과 실천 사이의 분리가 절대적인 것이 되면, 불가피하게 이론이 공허한 유희로, 실천이 단순한 수공작업으로 퇴화할 위험이 발생한다. (8, 9면)




7. 확실히 약간의 실무일은, 적절하게 행하여진다면, 실무적 감각을 촉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분명 법학을 진지하게 애호하는 많은 사람이 단 하나의 사건을 다룸으로써 어떠한 법제도에 대하여 책공부이나 스스로의 사색에 의하여서는 결코 달성하지 못하였던 살아 있는 직관(lebendiger Anschauung)을 얻게 되었다는 경험을 한 바 있다. (9면)




8. ... 그러나 이러한 욕구도 우리의 시대에는 종종 편협되고 불건전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 이미 탐구된 바를 성실하고 애정 있고 정련하고 충분하게 서술하기보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것에 지나친 가치를 두기 시작하였다. 전자의 작업에서도 그것이 진지하게 행하여지는 경우에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항상 새로운 모습을 지니게 되어서, 비록 덜 두드러지기는 하더라도 역시 학문의 진보를 가져올 터인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큰 창조적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 터에, 저처럼 새로운 것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생각과 의견에 탐닉하게 하고, 이러한 분산을 넘어서 우리 학문의 전체를 서로 관련지어서 파악하는 것을 게을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0면)

 

9. ...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무수행 자체에 있어서 항상 학문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유지하여야 하며, 정당하게 파악된 법학이란 실무가 자신이 구체적으로 또 적용하여야 할 것의 총합 이상의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실무법률가를 평가함에 있어서 단순한 숙달됨과 민첩함에만 가치를 두는 일이 매우 빈번한데, 그러한 성질들은 그 자체 매우 쓸모있기는 한 것이지만 또한 극히 몰양심적인 천박함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11면)




10. 이와 같이 우리 법상태의 주요한 결점이 이론과 실무의 분리에 있다고 한다면, 그 치유도 오직 양자의 자연스러운 통일을 수립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로마법은,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고자 한다면, 극히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로마의 법률가에게는 그러한 통일이 아직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되었고 또 매우 활기 있는 실효성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12면)




11.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도 로마법이 법실무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법전이 로마법에 갈음하여 등장한 곳에서도 역시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법상태의 결함은 전자에서나 후자에서나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또한 이를 제거할 필요나 방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13, 14면)




12. ... 즉 우리가 명백한 오류라고 배척하여야 하는 견해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요소를 인식할 수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는데, 그것이 단지 도착적으로 취급되거나 일방적으로 과장됨으로써 오류로 뒤바뀌었던 것이다. 이는 구체적인 것을 너무 일반적으로 파악하거나 아마도 일반적인 것을 너무 구체적으로 파악한 데에 오류가 있는 그 많은 경우에 타당하다. (19면)




13. ... 나아가 우리가 전적으로 확신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어떠한 것도 확실한 것처럼 쓰지 않으며, 또한 우리가 추측하는 것을 말하여야 할 때에는 우리의 확신의 정도를 분명히 밝혀지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9면)




14. 우리의 학문이 거둔 근자의 진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행논문 안에서 찾아야 하기에, 단행논문은 더욱 중요하다. (22면)




15. 개별적 저작은 유형적 현상으로서의 한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생애들을 통하여 전진하여 가는 하나의 사상은 불멸이다. (30면)




16. ... 앞에서 ‘개념법학’, 즉 오늘날의 로마법학에서의 스콜라주의에 대하여 가하였던 공격은 나에게는 진지한 것이다. 내가 그 때 농담, 유모어, 조소 및 풍자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이는 누구나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나 역시 그것을 각오하고 있다. 내가 그것을 감수한다면, 그것은 내가 그에 둔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배려보다 일 자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나는 우리의 로마법학이 걸어온 길, 그리고 나 역시 젊은 시절에 밟았던 길은 옳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31면)




17. ... 그러나 그 후 나에게 격변이 일어났다.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 즉 우선 실무가들과의 활발한 교제에 의하여서이다. 나는 그들을 항상 찾고 보살폈으며, 그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어 왔던 것이다. ... 내가 생애를 통하여 강좌를 담당하여 온 팍덱텐연습을 통하여서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 연습강좌는 교사 자신에 있어서 건전하지 못한 이론에 대한 극히 가치있는 교정장치이다. (33면)




18. 나에게는 현재에 대한 실제적 관심이 과거의 역사적 연구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 크며, 전자에 있어서 나의 쓸 만함이 증명된다면 후자의 영역에서 내가 이룰 수 있었을 성과란 거두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34면)




19. 내가 하려는 비난과 이의가 만일 실무가의 입에서 나왔다면, 사람들은 실무가란 애초 이론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의 도덕적 무게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이론가인 나에게 그러한 방어는 통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반박은 나의 권한을 다툼으로써가 아니라 내가 제기한 비난이 실질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증명함으로써만 할 수 있다. (35면)




20. 실정적인 것의 저차원 세계는 언제나 그러한 대로, 무언가 지속적인 것, 확고한 것, 그 자체 진실한 것을 구하는 나의 학문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나는 나 자신을 입법자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 자체에 안식하고 있는 개념들의 보다 높은 세계로 피하여 갔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착오에 빠졌었음을 후에 알게 되었다. (36면)




21. 따라서 개념이 단지 한 번 존재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뒤집을 수 없는 논리적 진리로서 타당함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개념은 그것이 그로부터 도출된 법명제와 성립과 소멸을 같이하는 것이다. (38면)




22. 법학은 변혁에 대항하기보다는 반대로 이를 즐거이 환영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법학은 그에 의하여 새로운 개념형성 활동의 기회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39면)




23. 개념법학은 개념을 엄밀하게 추급하는 중에 지나치게 정교하게 예민한 구별을 행하여서, 결국 개념은 그것으로 작업을 하여야 하는 실무가가 그것을 실행하는 단계에서는 괴멸하고 만다. 개념법학은 개념을 생각 없이 제시하고, 실무가가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걱정은 실무가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실무가는 그것을 자신이 이용할 수 없는 이론적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하여 그대로 방치한다. (40면)




24. ‘우리들은 가르침에 의하여 배운다(docendo discimus)’는 명제는 사람은 가르치기 위하여 스스로 많은 것을 추가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은 다소간 불분명한 채로 있던 것을 가르침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명확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독일어 표현 중에 이와 비슷하게 잘 들어맞는 표현은 써서 명확해진다(sich klar schreiben)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진실임을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스스로 경험하였다. 몇 년이나 가슴 속에 품어서 다듬어 왔던 생각도 그것을 써 보았을 때 비로소 그것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나는 항상 새롭게 경험하였다. (44면)




25. 법실무가의 강점은 즉각적인 적용의 확실함과 민첩함이고, 법이론가의 강점은 쉽고 적절한 정식화의 능력에 있다. (45면)




26. 실천적 학문의 경우에 타락하지 않고자 한다면 실무와 계속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로마에서의 법학이 바로 그러하였다. 우리는 로마의 가장 명망 있는 법률가들의 다수가 교수활동을 실천적 활동과 일치시켰음을 알고 있다. (47면)




27. 이론은 점점 생활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이론은, 법이 이론을 위하여 거기 있는 것처럼, 법이 논리적 사고를 위한 고마운 객체, 변증론적 기교의 곡예사들의 서커스인 것처럼 행동한다. (52면)




28. 거대하고 중요한 과제의 결여, 이것이 로마법학 이론이 앓고 있는 병이다. 주요한 것은 이미 이루어졌고, 실천적, 해석학적 측면에서 아직도 수확이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적다. (54면)




29. 법의 학문(Rechtswissenschaft)에 대한 나의 관심은 세월과 함께 줄지 아니하고 반대로 늘어갔다. 나는 나의 능력을 법에서 시험하는 것 그리고 법의 거대함이나 의미가 그대로 인식되도록 하는 데 응분의 기여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쾌락, 더 고상한 삶의 목표를 알지 못한다. (55면)




30. 내가 이태리 여행 중에 알게 된 이태리 대학교수의 대부분은 변호사와 연계되거나 법원에 배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교수직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이론가에게 실무가가 빵을 조달하여야 하고, 실무가는 이론가로부터 시간을 빼앗는다. 두 개의 직업은 양립할 수 없어서, 결국 우수한 교수가 교단을 떠나서 변호사업에만 전념하도록 강요당하였다. (58면)




31. 물론 다른 실천적 학문, 예를 들면 의학에서는 양자의 일체화가 실현가능함이 증명되었다. 의학의 실천적 분야의 교사, 즉 임상강사와 외과의는 통상의 개업의에게 지위를 위협당하기는커녕 바로 그들이야말로 일반 공중으로부터 최대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이 위대한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실무가일 수 있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그런데 법률가에게는 - 또는 나는 여기서 로마법학자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 - 로마법학자에게는 왜 같은 말이 가능하지 아니할까? 그가 동시에 판사 또는 변호사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연구분야가 임상강사나 외과의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역사적인 성질을 가진다는 데 있다. 뒤의 양자는 두 발로 현대라는 땅을 딛고 있는데, 로마법학자는 한 발은 현대에, 다른 한 발은 과거에 두고 있다. (58면)




32. 첫째는, 이론가로 하여금 법률상 정하여진 준비기간 동안에 실무를 거치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하면 사법연수수료시험(Assessorexamen)을 통과한 이에게만 로마법이나 장래의 민법에 대하여 강의할 자격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9면)




33. 40년 이상 전부터 나는 그러한 판덱텐연습을 행하여 왔는데, 그것이 나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최상의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그것을 통하여, 모든 법명제, 개념, 구별을 그것의 구체적 사례에의 적용에 의하여 나 자신에게 명확하게 하고 또 그로써 시험을 쳐서 합격 여부를 타진하는 것, 즉 간단하게 말하자면 추상적 사고를 결의론적 사고에 의하여 통제하는 것이 나의 제2의 천성이 되었다. (61면)




34. 로마법의 강사는 연습을 담당할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면 강의자격인가(venia legendi)를 얻을 수 없어야 한다. ... 실무연습(Praktikum)은 누구나 통과하여야 하는 로마 법학자의 학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확고하게 하고 이론적 일면성의 위험에 대하여 대학에서의 올바른 수업에 관한 이익을 보호하는 영속적인 방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62면)




35. ... 실무적 연습이다. ... 실무상의 결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론에 대한 관심도 나타나고, 유능한 사람이 법학에 사로잡혀 그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 당시는 나의 선생이며 후에는 동료이고 잊을 수 없는 친구인 퇼 교수의 민사연습 강의를 괴팅겐대학에서 들었을 때 비로소 법학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다. 그것이 나의 대학생활의 전환점을 이룬다. 그 때 비로소 법학은 그 전에는 없었던 매력을 나에게 발휘하였다. 같은 경험을 강의 담당자로서 나는 나의 수강자에게서 하였고, 매년 새롭게 하고 있다. (65면)




36. 의사의 경우에도 실무적 생업에서 교수직으로 초빙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왜 이러한 일이 법률가의 경우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가? 유능한 법률가가 최상의 법률가이다. (76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