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중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28면)




2.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 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29면)




3.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가 그것이다. (30면)




4. 사대부 자제들이 우리 나라의 옛일들을 알지 못지 못하고 선배들의 의론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다. (33면)




5. 내가 일찍이 ‘성호사설’에 대해 후세에 전할 만한 정본이 못된다고 말한 것은, 이 책이 옛사람이 지은 글에다 자기의 논의를 뒤섞어서 책을 이루었기에 올바른 체제를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38면)




6. 오늘날 시는 마땅히 두보의 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45면)




7.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여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쓸 일이지 마음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라.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 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게 되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 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50, 51면)




8.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는 집안 사람 가운데서 조금 더 가까운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면, 경사나 예악을 와서 배우려 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효나 제의 행실을 가르쳐 줄 수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큰아버님 섬기기를 아버지 섬기듯 하여 봉륙이나 칠복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54면)




9. 나는 소시적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 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때론 몇 개월 못 가서 사고가 발생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57면)




10.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 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9면)




11.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무척 많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 내리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번 백번을 읽어도 오히려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할 때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날 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읽어야 읽는 책의 의리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야 한다. (83면)




12. 나는 아직까지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없고 내 스스로의 주량을 알지 못한다. (85면)




13.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 (90면)




14.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저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매우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에 놓여 종일 홀로 지내며 사람의 떠드는 소리라든가 수레가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각에야 경전이나 예에 관한 정밀한 의미를 비로소 연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란 게 이렇듯 교묘할 수 있겠느냐? (105면)




15.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 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105, 106면)




16.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114면)




17.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치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125면)




18.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 준다 하더라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을 읽어 주고 내 책 한 부분이라도 베꺼 두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178면)




19. ‘주역사전’은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다. ... ‘상례사전’은 내가 성인의 글을 독실하게 믿고서 만든 것으로,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 학문이 거센 물결처럼 흐르는 판국에 그걸 흐르지 못하도록 모든 냇물을 막아 수사의 참된 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다. ... 만약 내가 사면을 받게 되어 이 두 가지 책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비록 없어버린다 해도 괜찮겠다. 나는 임술년(1801) 봄부터 책을 저술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 밤낮으로 쉬지 않으며 일해 왔다. (128, 129면)




20. 나는 천성적으로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 지극한 즐거움은 경전 연구에 있었기 때문에 ... (130, 131면)




21.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져 버리면 빨리 서울에 붙어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138, 139면)




22.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이며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적대시하는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141면)




23. 높고 오묘한 학문의 참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날로 수가 적어져서, 비록 주공이나 공자의 도를 다시 잇고 문장이 양웅이나 유향을 뛰어넘고 학술이 있다 해도 알아볼 사람이 없어져 간다.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차리고 우선 천천히 연구하며 먼저 긍지를 지니는 마음가짐에 힘써, 큰 산이 우뚝 솟은 듯 고요히 앉는 법을 습관들이고 남과 사귀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먼저 기상을 점검하여 자기가 해야 할 본령이 확고하게 섰다는 것을 안 뒤에야 점차로 저술에 임하는 마음을 먹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한마디의 말과 단 한 자의 글자라도 모든 사람들이 진귀하게 여겨 아끼게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스스로를 지나치게 경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처럼 한다면 이는 정말로 영영 끝장이다. (142, 143면)




24.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 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시혜하는 방법보다 더 좋을 게 없다. (143면)




25.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이고 또 한 글자는 검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148면)




26. 부지런함(근)이란 무엇 뜻하겠느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148면)




27. 검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149면)




28. 내 나이 스무 살 때는 우주 사이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완전히 그 이치를 정리해 내려 하여 서른 살이나 마흔 살 때까지도 그러한 의지가 쇠약해지지 않았다. 모진 세월을 당한 뒤에는 백성과 나라의 일에 관계되는 모든 일 즉 전제, 관제, 군제, 세제 등으로만 생각을 좀 줄일 수 있었고, 경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혼잡된 것들을 모두 파헤쳐 가장 정통의 옛 유고원리로 돌이키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몸에 중품이 생겨 그런 마음이 점점 쇠잔해 가지만 그러나 정신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한가로운 생각이 떠올라 문득 옛날의 욕심들이 다시 일어나곤 한다. (164면)




29.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 것이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164, 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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