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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ㅣ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평점 :
1. 이빨처럼 딱딱하고 강한 것은 먼저 없어지고, 혀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17면)
2. 사실 상용이 이 말을 직접 했다면 그것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싱거운 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18면)
3. 시도 마찬가지다. 시라는 것은 상용의 말처럼 직접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가운데, 저도 모르게 느낌이 일어나고 깨달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느낌과 깨달음이 지워지지 않고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는다. (18면)
4.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다. (22, 23면)
5.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24면)
6.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이 있었다. (25면)
7.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서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은 것은 시인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고 시 속에 남겨둔 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숨은그림찾기 또는 보물찾기 놀이와도 비슷하다. 이 점은 화가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는다. (26, 27면)
8.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발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imago)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27면)
9.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28면)
10.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29면)
11.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서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31, 32면)
12. “한번 생각해 보시오. 사람이 높은 곳을 올려다보자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게 마련이오. 그런데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선비의 뒷덜미에 주름이 하나도 없질 않소?” (34면)
13. “그리긴 참 잘 그렸다. 그렇지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입이 벌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아! 아깝다.” (35면)
14. 겉꾸밈만으로는 안 된다. 참된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38면)
15. 신기하게도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시를 쓰는 방법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39면)
16. 즉 화가는 사람의 눈, 코, 입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현재 두 사람이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위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또 두 사람이 서 있는 뒤편 강물에는 물결이 없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먼 곳에 있는 물은 물결이 없다는 말이다. (43면)
17. 시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다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다. 앞서 상용이 노자에게 내 혀가 있느냐고 말했던 것처럼,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45면)
18. 시인은 왜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꺼냈을까? ... 두 사물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인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과 같다. (47면)
19.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49면)
20. 글 가운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는 말이 있다. 연꽃은 연못 가운데서 피니까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따금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 향기는 더욱 맑게 느껴진다. 사람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무언가 목적이 있을 때는 자기 것을 아깝지 않게 다 내줄 것처럼 굴다가, 자기에게 손해가 난다 싶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매정하게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보다 보통 때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정말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그런 친구가 더 소중한 친구다. 연꽃은 사람으로 치면 이런 꽃이라고 믿었다. (52면)
21.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58면)
22. 날씨가 따뜻해진 뒤에 꽃이 피는 것은 그렇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딛고서 모든 사물들이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옛사람들은 매화를 사랑했다. 단지 그 꽃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사랑한 것이다. (66면)
23. 시는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주변에 있는 온갖 사물들은 모두 우리의 선생님이다. 시인은 남들이 날마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낸다. 그러자면 그냥 보지 않고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67면)
24. ‘붉다’는 한 단어만을 가지고 눈앞의 온갖 꽃을 말해서는 안 된다. 꽃술에는 많고 적은 차이가 있으니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보아라. (68면)
25.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 두어라. 물이란 것은 군자에 비유할 수가 있다. 물은 널리 베풀어 모든 사물을 살아나게 하니 덕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물이 닿으면 바싹 말라 죽어 가던 생물이 다시 살아나니 어질다고도 할 수 있겠지. 도 살펴보렴.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며 내려가지? 굽이칠 때도 순리에 따라 흘러가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으니 이것은 몹시 지혜로운 모습이다. 백 길이나 되는 절벽에 이르러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 물은 참으로 큰 용기를 지녔다. 졸졸졸 흘러서 보이지 않게 먼 데까지 이르는 조심스러움도 갖추었고, 아무리 더러운 것도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들이니 마음이 넉넉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저분한 것들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씻어서 내보내니 이것은 나쁜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자! 물은 얼마나 훌륭한 스승이냐. 그래서 나는 저 강물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아! 나도 저 흘러가는 강물을 닮고 싶구나.” (72, 73면)
26. 어떤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물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시는 이런 만남을 주로 노래한다. 시인은 사물과 새롭게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다. (75면)
27. 중국사람들은 ... ‘하룻영화꽃’이라고 낮춰서 불렀다. ... 윤선도는 무궁화를 ‘일일화’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하루밖에 못 가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하루밖에 못 가는 꽃에 대한 윤선도의 생각은 중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 무궁화는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진다. 하나의 꽃으로 두 해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무궁화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꽃이 아니라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꽃이 되었다. (78, 79면)
28. 시인은 늘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그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내가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나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나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는 것이다. (81, 82면)
29. 버들가지는 꺾은 가지를 땅에 심어도 다시 뿌리를 내리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 나무이다. 다시 말해 버드나무는 꺾꽃이가 가능하다. (84면)
30. 첫째 구절 끝에 버들 ‘류’자가 있고, 둘째 구절 끝에 머무를 ‘류’자가 있다. 두 글자의 소리가 같기 때문에 버드나무라는 말은 가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버들가지를 준 것은 다시 만나자는 다짐보다 가지 말라는 만류의 뜻이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85, 86면)
31. 버드나무는 봄이 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 주는 나무이다. 진달래나 개나리가 피기 전에 버들가지에는 벌써 파랗게 물이 오른다. 버드나무는 또 봄의 설렘을 나타내는 나무이기도 하다. 한시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이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는 봄날의 설렘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희망을 나타내는 나무이다. 이런 뜻은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86, 87면)
32. 한때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는데 때가 지나고 나면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바로 가을 부채이다. 그래서 한시 속에 나오는 ‘가을 부채’는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임은 나를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88면)
33.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불광불급)’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91면)
34. 위대한 예술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 (97면)
35.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 (97면)
36. 옛말에 ‘글은 그 사람과 꼭 같다’는 말이 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다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난다. (99면)
37. 항상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106면)
38. 한시 속에는 옛날의 유명한 시인들이 쓴 표현이나 이야기를 빌려 오는 경우가 꽤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용사’라고 한다. (107면)
39.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물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소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117면)
40. 시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는 슬쩍 빠져 버리고 독자들이 빈칸을 채워 넣게 한다. (123면)
41. 자연은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자연은 말없는 선생님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 준다. 자신을 닮으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넘치는 자연의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는다. (125면)
42.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먼 길을 여행 다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을 많이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과 자연을 통해 듣고 본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다. 글을 쓰면 글에서 솔바람 소리가 울려 나오고, 그림을 그리면 도화지 위에서 꽃향기와 새소리가 퍼져 나온다. (127면)
43. 우리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할 것이다.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심, 좀 더 놀고 싶은 생각, 더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활짝 걷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마음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128, 129면)
44.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있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시시콜콜히 다 말하는 것보다 아껴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133면)
45. ... 길게 안부를 묻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적은 편지보다 훨씬 더 깊은 정이 느껴진다. (135면)
46. 말의 힘은 이런 것이다. 돌려서 말한 은근한 한마디가 자세히 되풀이해서 설명하는 긴 말보다 백배 낫다. 직접 대놓고 얘기하면 불쾌할 말도 넌지시 돌려서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나 이런 말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마음의 여유와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138면)
47. 들으려고는 않고 쏟아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어쩐 일인지 공허감은 커져만 간다. 무언가 내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없다. (138면)
48. 한 글자가 제대로 놓이면 그 시가 살고, 한 글자가 잘못 놓이면 그 시가 죽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141면)
49. 절에서 독경 소리 끝나자마자
하늘 빛이 유리처럼 깨끗해졌다. (정지상)
50. 말에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느낌을 잘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150면)
51. 이런 설명서는 자세할수록 좋다. 그렇지만 시에서 하는 말은 자세해서는 안 된다. 말을 아낄수록 여백이 더 넓어진다. (151면)
52.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152, 154면)
53. 말이 많으면 언제나 탈이 난다. 말을 아낄 때 그 말이 가치가 있다. (158면)
54. 시에서 이렇게 바깥 사물이 내게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시 속에서만 가능한 마술이다. 반대로 시인의 행동이 사물에게로 옮아가는 경우도 있다. (1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