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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1. 내가 전공했던 철학과 교수들은 칸트와 헤겔의 이론에 근거를 두고 인간의 의식을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비해서 의과대학에 소속된 동료 교수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사례를 들어서 시사점이 풍부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었다. (11면)
2. 서양 철학사 전체를 조감해보면,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지닌 두 개의 진영이 서로 마주 보고 논쟁을 벌여 왔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크게 보면 물질주의자와 이상주의자(영어식으로 표현하면 경험주의자와 합리주의자)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3면)
3. ...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두된 실질적인 윤리문제도 그 해답을 대부분 철학에서 찾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낙태와 안락사, 유전공학과 복제의학, 환경 및 동물윤리학 등, 곳곳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의 해결에 결정적인 것은 각종 규범과 여러 정황들을 비교 참작하여 내린 신중한 판단이고, 이 밖에도 납득할 만한 결론이 도출되는 논증들은 철학적인 판단에서도 이상적인 방식으로 논증할 수 있다. (16면)
4.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체득하여 자신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교훈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교훈을 찾아 배우는 것과 이를 즐기는 것, 바로 여기에 충만한 삶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다. (17면)
5.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에 큰 진전이 있어 자신의 삶을 의식적으로 운영하고,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연출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가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이를 예술가의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는 더할 나위가 없이 바람직한 것이다." (18면)
6. 니체는 인간은 사실상 동물에 불과하다는 의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를 규정짓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충동과 본능, 원초적인 의지와 한계를 지닌 인식능력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이 이 점에 있어 니체의 반대편에 서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철학사에서 니체가 지니는 독보적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아주 특별한 존재, 예를 들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서 인간을 일종의 슈퍼 컴퓨터로 간주하고 있었다. (34면)
7. 니체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로부터 이러한 통찰을 읽어내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별것이 아니다. 시간적으로 유한하고, 일장춘몽처럼 덧이 없어서 그림자가 지나가고 난 자리처럼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35면)
8. 목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고에서나 드러나는 카테고리로서 예를 들면 '진보' 또는 '의미'라는 단어처럼 인간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시간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52면)
9. 인간의 주의력은 언제나 한순간에 단 하나의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 소위 '멀티태스킹'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몇 개의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접속해서 처리함을 의미한다. ... 우리의 주의력은 이미 그 한계가 제한되어 있는 뇌의 활동범위 안에서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한 주의력이 높아졌다는 말은 다른 일을 적어도 그만큼 제쳐두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64면)
10. 혹시라도 뇌 연구가 뇌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고 결국 정신이 생성되는 매커니즘까지 찾아낸다도 해도, 의미와 이성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우리가 뇌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뇌는 오히려 더 복잡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66면)
11. 세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아 '그 자체'가 중심 문제가 되는 것이다. ... 데카르트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보고 안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내 생각을 읽어보면, 거기에 내가 있다!"라는 답을 주고 있다. (75면)
12. 과거 한때 철학이 그랬던 것을 오늘날에는 신경생물학이 대신하고 있다. 인간이 누군지를 알고 시싶다면, 뇌에 대한 이해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뇌 연구가 인간의 감정, 사고 그리고 행위에 대한 지금까지의 추상적 사변을 환상이 없는 자연과학적 연구로 교체하였고, 뇌 연구가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82면)
13. 1917년에 그(프로이드)는 자신의 학문은 무의식에 대한 비밀을 푸는 열쇠이고, 이로써 자신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 및 다윈의 이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이론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놓았다는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중심에 있던 지구를 변방으로 밀쳐놓았고, 다윈은 인간이 보유하고 있던 신적인 성질을 원숭이의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이트가 나서서 무의식적인 것이 의식적인 것보다 훨씬 더 우세한 힘을 지녔고, 따라서 인간을 지배하는 주인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주장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내리는 결정 중에서 약 90퍼센트는 무의식적인 곳에 그 동기가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120면)
14. 즉 충동적인 욕구가 발생하면 이러한 욕구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성이 역으로 작용하고, 이에 따라서 충동과 이성 사이에 무의식적인 갈등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데, 이러한 갈등관계에서 인간행위의 주요 모티브가 파생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장을 개별적인 인간에게 작용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인간 사회의 전반에 존재하는 충동의 역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일반론으로 확장하였다. (121면)
15. 뇌를 들여다보면 의식에 관계된 부위들이 있는데, 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고도의 지적 기능을 담당하는 피질이고, 이에 비해서 무의식적인 과정들을 관장하고 저장하는 곳은 뇌간, 소뇌, 시상 그리고 중뇌의 피질 중심부이다. (123면)
16.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우리가 인지하고자 하는 대상을 집중적으로 선별 인식하고, 나머지의 것은 많건 적건 간에 배제시키는 필터링 기능을 의미하였고, 이 동영상 실험은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그 정도만큼 필터링 기능이 작동되어 여타의 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의력은 마치 자동차의 전조등과 같은 것이어서 캄캄한 밤길에 바로 눈앞의 길을 비추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전조등 불빛을 벗어난 곳은 바로 무의식의 세계에 속한다. (126면)
17. 우리의 뇌 속에서 진행되는 것들 중 그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것도 의식보다는 오히려 무의식이다. ...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의식적인 기능은 철저하게 무의식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무의식이 우리의 의식을 통제하는 힘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하다. (127면)
18. "저는 프로이트가 언급했던 이드, 자아, 초자아가 구체적으로 인간의 뇌 어디에서 발견되는지를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켄들) (133면)
19. ... 우리의 기억을 우리의 정체성과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가라는 의문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회상이 감쪽같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되는 것일까? (135면)
20. 독서를 할 때 우리는 통상적으로 단어나 문장을 뇌리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이 묻어나는 에센스나 텍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저장하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서 통용된다. (136면)
21. 명시적 기억능력은 체험한 것과 철저하게 정리된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불러내고, 이렇게 회상된 결과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서 잠재적 기억능력은, 내가 오래전 베를린 지하철역의 냄새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하고 있듯이, 우리가 알아채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뇌 안에 저장된 것들과 관련이 있다. (140면)
22. 에피소드 기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기억이다. 나에게 생각할 가치가 있는 일이 발생하여 나를 감동시키거나 사로잡은 경우, 이러한 일은 에피소드 기억의 대상이 된다. 이 3가지 유형의 기억들 중에서 한 개인의 자기이해와 자기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에피소드 기억이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막스 프리슈의 말을 빌리면 "에피소드 기억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전기를 발명해내고, 이를 아예 우리의 인생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141면)
23. 새로운 것과 평소와는 달라 낯선 것은 특히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기 마련이고, 그리고 충분히 중요한 것으로 인지되어야만 비로소 의도적인 저장의 대상이 된다. ... 확실한 것은 중요성은 의식적인 근원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근원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142면)
24.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연습 삼아 조립되어 있다." (비트겐슈타인) (147면)
25. 비트겐슈타인의 획기적인 사고는 언어를 철학의 중심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출발하였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철학에서 언어는 그때까지 의붓자식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모든 철학의 출발점은 자연스럽게 언어비판이 되는 것이다." (150면)
26. 비트겐슈타인은 현실에 대한 복사라는 관점에서 언어에 대한 이론을 주창하였지만, 이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그 자신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동료였던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 피에로 사프라였다. "현실에 논리적 형식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지요?" ...'철학적 탐구'를 사프라에게 헌정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죽은 후 2년째가 되던 1953년에 출판된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복사이론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논리의 수단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언어라는 생각도 더 이상 내세우지 않고 거두어들였다. (159면)
27. 비트겐슈타인은 한 단어의 의미는 언어생활에서 사용되었을 때에 비로소 규정될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철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는 단어의 의미와 문장구조를 논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의사소통 도구로서 이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서로 상이한 '언어유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예전에 제멋대로 멸시해버렸던 심리학의 의미를 드디어 발견하였다. 언어유희는 아무도 없는 머릿속 허공에서 일어나는 내면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언어유희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에 기초를 둔 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바로 여기에서 대부분의 오해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159, 160면)
28. "철학에서 당신이 찾고 있는 목표가 있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대답은 언어의 논리라는 "유리병에 갇힌 파리에게 출구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160면)
29.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분석철학의 출발점은 철학적 문제는 언제나 언어적인 표현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분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161면)
30. 언어학은 비트겐슈타인의 이론 중에서 '언어유희'에 주목하여 특정한 언어행위가 문맥에 따라서 각각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해내고자 하였다. 영국의 존 랭쇼 오스틴과 미국의 존 로저스 설은 이를 통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언어행위에 대한 이론을 개발해내었다. 오스틴에 따르면 누군가가 무엇을 말했다면 그는 이미 '어떻게든 행동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제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문장의 이해가 성공하여 의도하였던 의미가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실패하였는지를 묻는 질문이 되었다. 언어를 통해 진리를 모색하는 이론에서 사회적인 의사소통 이론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161면)
31.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철학이 깨달아야 하는 점이 있다면 언어가 진리로 향하는 접근로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161면)
32. 감각기관의 지각적인 한계 그리고 언어의 한계가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된다. (162면)
33. 루소는 디종 학술원의 질문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문화 및 사회적인 제도들은 인간을 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악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170면)
34. 고독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은 예를 들어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너무 좁게 설정해놓는 바람에 스스로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외부의 영향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교환하고 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릇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겠다는 각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자신의 좁은 세계에 국한된 삶으로부터 탈출하는 통로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174, 175면)
35. 칸트는 태양계는 그 구성 요소들이 서로 끌어당기고 밀치는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다고 추정하였는데, 이는 신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행성계의 형성을 설명한 최초의 시도였다. (187면)
36. 칸트는 인간의 정신을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거나 그 이전의 철학자들처럼 신의 관점에서 고찰하지 않고, 오히려 법학자의 태도로 접근하였다. 그는 이른바 '법칙'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189면)
37.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칸트가 아니었다. 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칸트보다 300년을 앞서서 이탈리아에 살았고, 당시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 피코 델라 미란돌라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매우 독자적인 존재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존엄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결정하고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는 일은 순전히 당사자 한 사람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이었다. (191면)
38. 칸트는 자신이 세워놓은 사상에 상당히 만족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훗날 생물학을 통한 검증을 과연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은 그가 말년에 접어들면서부터 더 억제할 수 없었다. (193면)
39. 만일 우리가 우리의 느낌, 생각 그리고 의지와 관련된 무의식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를 인정한다면 칸트가 말하는 우리 내면의 도덕적 법칙들 가운데에서 남아 있는 것은 얼마나 될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가 된다. (195면)
40. 그(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이성이라는 헛소문이 "수천 년 동안 철학의 세계에서" 떠돌고 있었는데, 이를 드디어 잠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 이성이 원하면 의지는 따라간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라면 쇼펜하우어는 정반대였다. 의지가 원하는 대로 이성은 판단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202, 203면)
41. 그들(리초리티)은 특정한 행동들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웃음, 하품 또는 대화 상대방의 몸가짐도 즉각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라 하도록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221면)
42. ... 어떤 인간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행위가 수동적인 것인가 아니면 능동적인 것인가에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경우에는 내가 나의 운명을 감수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능동적인 경우에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생각에 앞서서 내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더 갖는다는 것이다. (230면)
43. ...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사회의 도덕적인 진보는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구성원들이 특정한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했을 때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회적 사건의 원동력은 구성원들의 열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237면)
44. 그 이후에 40년 동안 벤담은 매일 10장에서 20장 사이의 원고지를 글로 메우며너 저술활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는 잡다한 법률적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기 시작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권 개정에 관한 자신의 제안을 정리하여 형식을 갖춘 법전으로 완성시키는 일은 제자의 몫으로 넘겨주었다. (241면)
45. 벤담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통과 행복을 마치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245면)
46. 이들(밀)은 쾌락을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으로 환원시켰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성된 인간에 도달하기 위한 선택의 과정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철학을 소위 '선호 공리주의'라고 불렀다.
47.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능동적인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도 칸트를 논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269면)
48. 한 생명체가 지닌 삶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따질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능, 이성 또는 감각이 아니라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었다. ... 생명체를 존중하고 그 생명체가 지닌 삶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생명체가 스스로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85면)
49. 싱어는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자신의 논리로 받아들여서, 이를 인간뿐만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생명체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86면)
50. 한 생명체의 삶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자의식'을 유일무이한 척도로 사용하는 경우에 가장 큰 고민은 그 결과가 낙태에 관한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직관에 반할 때에 발생한다. 만일 한 생명체의 가치가 그 생명체가 가진 감정과 행동이 얼마나 복합적인가에 달려 있다면, 갓난아이나 정신적 중증 장애를 지닌 인간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 셰퍼드와 동등하거나 이보다는 낮은 단계에 위치하게 된다. (293면)
51. "우리는 이제 도구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아니면 인간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이 있고,그것이 불충분하면 침팬지를 아예 인간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루이스 리키) (301면)
52. "살아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것" (314면)
53. ... 고래나 코끼리가 희소성을 지녔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역시 삶에 대한 애착을 지녔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322면)
54. '인간 중심적'인 것이 곧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 결과 바다의 오염, 악취로 숨쉬기 어려운 공기, 천연자원의 지나친 남용 등이었다. 인류의 번영과 미래가 없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은 우둔함에 불과하였다. (322면)
55. 안셀무스는 가우닐로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에 대한 논증을 필사하려는 수도승들은 가우닐로의 비판을 함께 적어야 하고, 가우닐로의 비판에는 다시 자신의 답변을 함께 적어서 전파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접근태도는 상당히 유연한 것이었고,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안셀무스의 명성을 더 높여주었다. (375면)
56. 페일리가 대자연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다윈은 거꾸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395면)
57. 원인과 결과 사이를 이어주는 이론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이들이 주목하는 개념은 '자기 조직화'이다. (399면)
5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원인과 결과라는 도식으로 설명해야 마땅한지, 아니면 자기 조직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옳은지를 두고 생물학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토론을 벌일 것이다. 이에 대한 논쟁은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하여 자기 조직화라는 생물학적 개념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여타의 전공분야, 예를 들면 사회학에서는 이미 중요한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 (401면)
59. 인간은 생물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인간사회의 시스템은 생물체의 물질 및 에너지대사를 통해서 존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전달과정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를 통해 소통되는 정보가 있을 때에 비로소 작동된다는 것이다. (406면)
60. 루만이 훗날 마투라나의 자기생산성이라는 개념을 듣자마자 곧 여기에 매료되었다. 칠레의 뇌 연구자가 생명체 및 뇌의 자기생산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마루라나의 주장에 의하면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조달하여 사용하는 언어를 통하여 하나의 시스템을 조직화한다는 것이다. (407면)
61. 이를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현대적인 사회 시스템이 지속적인 안정을 유지하고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사회의 기대를 어떻게 교환하고 있는가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408면)
62. ... 결국 명문화된 기대로 변모하는데 이것이 곧 '코드'라는 것이다. (409면)
63. 브레멘의 뇌 연구학자 게르하르트 로트는 루만과 같은 저명한 사회학자가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인간을 무시한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411면)
64. 좋든 나쁘든 불확실성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따로 없다는 점에서 뇌 연구와 시스템 이론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417면)
65. 루만의 견해에 따르면 결단은 차이에서 비롯되고, 이 차이는 나의 인생을 타인의 것과 구분하는 독자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418면)
66. ... 이러한 주장의 원조는 사실 사르트르였다. "나의 얼굴을 그려내는 것은 다름 아닌 행위이다." 그래서 실천이 곧 존재가 되는 것이다. (422면)
67. 지금까지 이 세계에 이미 내던져진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피투성이 실존적인 필연성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열린 미래를 위하여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기투성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주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428면)
68. 행동과 존재, 존재와 행동이 끊임없이 연속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비 두 비 두 Do be do be do. (435면)
69. 짐멜이 서술한 바와 같이 그(로빈슨 크루소)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가 소유한 사물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구체적으로 확장하는 데에 있었다. (444면)
70. 무지에 베일에 가려진 원시상태에서도 정의감의 원천은 혹시 자신의 이익이지 않을까?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닥칠 수 있는 위험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이 두려움을 약화시키기 위해 모두를 보호하는 보편적인 규칙을 찾는 것이 아닐까? (458면)
71.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는 어떠한 자유로운 발전도 더 이상 논의될 수 없다." (공산당선언) (460면)
72.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트릭스 세계에 속한 개인은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492면)
73. '의미'는 인간이라는 척추동물의 요구에 의해 파생된 관념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이 세계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해주어야만 한다. (4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