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 어떤 작가가 카를 마르크스보다 더 많은 독자를 확보했을까? 어떤 혁명가가 그보다 더 많은 희망을 그려보았고, 어떤 이데올로기가 그보다 더 많은 해설을 낳았을까? ... 오늘날 그를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위독한 상태에 처한 자본주의나 손닿는 곳에 있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마르크스가 잘못 생각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6면)




2.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에드워드 오펜이 이 공동체(‘사회주의자’라고 명명된 최초의 공동체)의 창설자인 로버트 오웬에게 3년 전에 편지를 쓰다가 만들어낸 말이다. (34면)




3. 파리에서는 ‘라 트리뷴’지에 게재된 일련의 기사들 속에서 데자르댕이 노동계급을 지칭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40면)




4. “나는 젊은 시절에 장인의 철학 스승인 헤겔의 ‘어떤 강도의 사악한 사상일지라도 천상의 모든 경이로운 것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을 장인이 자주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48면)




5. ‘과학은 윤리에 우선한다. 사회 분석이 도덕적이 되기 전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48면)




6. 그들은 “현실적인 것은 모두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모두 현실적이다”라는 헤겔 변증법의 기본 공리를 선배들과 함께 공유했다. 하지만 보수파들이 이 명제의 첫 부분만을 예외적으로 강조한 반면, 진보주의적 젊은이들은 뒷부분을 강조했다. (53면)




7. 그의 사위 중 하나는 마르크스가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시적 상상력을 소유했다’고 후에 회고했다. (54면)




8.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사상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56면)




9. 마르크스는 바우어나 젊은 헤겔학파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다. (57면)




10. 그는 헤겔을 깊이 연구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자기가 발견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만다. 헤겔의 그로테스크한 멜로디는 더는 그에게 영감을 주지 못했다. (58면)




11. 그러나 마르크스는 새로운 과학에 통달함으로써 헤겔로부터 더 멀리 나아갈 필요성을 간파했다. 그 새로운 학문이란 바로 정치경제학이었다. (59면)




12.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글을 읽었다. 마르크스는 절대적인 부정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힘을 보유한 그에게 매료되었다. 존재를 일종의 추상적 관념으로 설정한 채 역사는 모순 없는 시스템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것의 탄생을 위해서는 모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헤겔을 과감하게 비판한 이 철학자에게 푹 파진 것이다. (59, 60면)




13. 사랑하는 아버지, 저의 좋지 않은 문체와 읽기 어려운 필체를 용서하세요. ... (66면)




14. 그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역할이란 진실을 말하면서 현실에 관해 행동하는 것이었다. (76면)




15. 왜냐하면 헤겔이 생각한 것처럼, 국가란 사회계급 위에 있는 어떤 절대적인 것의 구현이 아니라, 어느 한 시대의 경제적, 법률적,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82면)




16.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절에는 철학이 실천적인 것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철학의 실천 또한 이론적이다.” (84면)




17. 마르크스는 시스몽디의 책에서 ‘잉여가치’와 ‘가치 상승’이라는 용어를 발견했고, 자본 집중과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에 대한 최초의 분석을 시도했다. (95면)




18. 많은 책을 읽은 마르크스는 경제학이 다른 모든 사회과학의 기반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어느 것도 경제 법칙과 유물론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안하기 위해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포기하게 된다. (96면)




19. 마르크스는 출간하게 될 잡지의 이름을 ‘프랑스-독일 연보’로 하자고 제안했다. 독일 철학과 프랑스 혁명의 경험을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107면)




20. 그 당시 발명된 전기가 그를 매혹시킨 것이다. 그는 전기를 모든 것이 풍요하고 개방적이며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의 상징으로 보았다. (124면)




21. 마르크스는 닥치는 대로 읽었고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해 노트하며 글을 쓰고 싶어했다. 하지만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 그는 언제나 가장 최근에 읽은 것에 대해 쓰기를 원했으나, 끊임없이 다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발췌문을 거듭 작성하곤 했다. (125면)




22. 헤스(돈의 본질에 관하여)와 엥겔스(국민경제학 비판 대강) 덕분에 마르크스는 철학과 경제학 사이에 다리 하나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127면)




23.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에 그럴 법한데 그는 평생 동안 어떤 글을 완성하고 나서도 손에서 놓는 것을 아주 힘들어했다. (128면)




24. 그는 독일 철학, 그 중에서도 특히 헤겔 사상의 중심 개념인 소외에 대한 결론을 끌어내고, 그 개념을 경제학과 연결짓고 싶어했다. (130면)




25. 마르크스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기술의 진보에 관심이 컸다. 그해 5월 24일 새뮤얼 모스가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의 전신선을 실험했는데 마르크스는 전기의 발명에 열광했다. 그는 이런 일들이 통신을 가속화하고 노동 생산성을 증대해 자본주의의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다. (132면)




26. 그에게 소외란 헤겔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산물이었다. 그는 인간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노동에 의해 소외된다고 주장했다. (140면)




27. 프루동은 계산착오 개념을 통해 노동자의 단결과 조화, 그리고 그들의 노력과 동시성에서 비롯한 거대한 힘에 대해 자본가들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9149면)




28. 독일철학이 개념 분석에서 사회적 역학관계의 역할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51면)




29. 1845년 9월부터 1846년 8월까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와 슈티르너를 비난하는 새 글을 집필했다.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의 이 글은 ‘성가족’보다 더 혹독하고 더 분명했다. ... 그들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슈티르너를 주로 공격했다(전체 596쪽 중에서 499쪽이 그에게 할당되었다). (170, 171면)




30. “특정 시대를 위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독일인들은 영원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171면)




31. “사회의 상부구조(종교, 예술, 사상)는 사회의 하부구조(경제, 실제적인 것)를 정당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달리 말하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결정짓는 소외를 조직한다.” (172면)




32. ... 우리는 여기에서 하인리히가 자기 아들에게 지적 역량만을 키우지 말고, 신체적, 도덕적, 예술적, 정치적 능력도 키우라고 충고한 점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174면)




33. “‘철학의 빈곤’과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자본론’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철학의 빈곤’은 20년 후에 ‘자본론’에서 발전한 이론의 싹을 담고 있다.” (182면)




34. ... 중간계급은 그러니까 혁명적이 아니라 보수적이다. 게다가 반동적이다. (201면)




35.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건 체계의 첫 번째 특징은 인간의 물질적인 열정에 대한 정력적이고 지속적이며 무절제한 호소이다. 물질적 번영은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흥미를 잃는 것으로 이끌어질 것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물질적 안정에 대한 열정은 강박관념이 되어 시민이 의무에 헌신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토크빌은 보편적 평등을 추구하다 보면 자유를 부인하게 된다고 보았고, 사회주의란 새로운 형태의 노예화라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평등은 자유와 결합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평등이라는 단어에 의해서만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차이를 보라. 민주주의는 자유 속에서 평등을 원하고, 사회주의는 제약과 노예 상태 속에서 평등을 원한다.” 토크빌은 보호국가에 대한 이념도 거부한다. 공공의 자선을 확대하고, 공헌하고,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217면)




36.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사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에 대립하는 희생자들 간의 연합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새로운 이름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 마르크스가 사용한 ‘독재’라는 말은 다수가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지배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245, 246면)




37. 예니의 전기작가는 딘 스트리트를 ‘죽음의 거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마르크스 자신도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망친 곳이 바로 이 거리라고 썼다. (252면)




38. “자네는 중요하다가 생각해 읽어야 할 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 한, 자네는 원고를 시작하지 못할 걸세.”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읽기만 했지 글쓰기에 매진하지는 못했다. (265면)




39. “19세기의 사회 혁명이 자신의 시의 원천을 찾게 되는 곳은 과거가 아니라 오로지 미래에서다.” (275면)




40. “마르크스는 그때까지 유토피아의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에 과학적 기반을 제공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그렇게 썼다.” (277면)




41. “이미 온갖 종류의 불운을 겪어왔네만, 진정한 불행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네. 나는 완전히 끝장난 것 같네.” (301면)




42. 마르크스는 그런 처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대영박물관에 다시 자리를 잡고 필요한 것들을 기록하면서 위대한 경제서적을 쓰는 일에 매진했다. 바로 그해 절망의 한가운데서 마르크스는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이 발견을 통해 1848년부터 고찰해온 노동의 소외에 대한 분석과 1850년에 연구한 계급투쟁의 역사에 관한 분석을 연결했으며, 사상사 속에서 그의 자리를 확실히 굳히게 된다. 그리고 이 발견을 통해 수천만 명의 임금노동자들에게 그들의 투쟁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임금노동자는 그가 버는 가치 이상의 것을 생산해낸다’는 것이었다. 에드가의 죽음 때문에 극도의 슬픔에 빠져 있던 마르크스는 슬픔 속에서 ‘잉여가치’ 이론을 구축했다. (304, 305면)




43. ... 그러던 중 마치 날짜를 확정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주요한 발견에 대해 예고했다. ...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다는 것에 대한 이론이다. (340면)




44. 출간된 지 1년 된 ‘종의 기원’을 읽어본 그는 다윈에게서 세계를 하나의 역사로 간주하는 또 다른 방식을 발견했다. 자신이 연구한 경쟁의 법칙과 다원이 세상에 내놓은 자연도태설 사이의 유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마르크스는 1년 동안이나 중지한 집필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59면)




45. “다윈이 동물과 식물을 통해 영국 사회의 특징인 분업과 경쟁, 시장 개방, 혁신, 생존을 위한 투쟁 등을 발견한 것에 대해 나는 놀랍네.” (372면)




46. “노동은 그 성격상 자본에 대해 약자의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은 다른 상품에 비해 소멸되기 쉬운 성격을 갖고 있다. 노동은 축적될 수 없다.” (421면)




47. 조합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상업적 차원에서 빠져 나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서는 정치 활동이 필수라는 말이었다. (421, 422면)




48. 특히 출간된 지 30년이나 된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철학 강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기는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이 인물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지 이 책에서 아무것도 얻어낸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반면 그가 어떤 작가를 높이 평가할 때면 광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문장을 인용했다. (425, 426면)




49. 그 때 마르크스는 20년 전에 발견했으면서도 아직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는 중요한 이론을 예고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산물(그가 제조한 물건들)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노동의 일정한 지속시간) 동안에 자신의 노동력을 쓰게 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본가와 일종의 법적 허구인 불평등 계약을 맺는 계약 상대자가 된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파는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428면)




50. 그의 사용가치는 그의 교환가치보다 더 크다. 노동자의 노동을 두고 자본가가 지불한 비용과 노동자가 창출한 수익간의 차이 -노동시간으로 측정된 차이-는 자본가가 자기 소유로 만드는 잉여가치다. 이 잉여가치를 통해 착취의 규모를 측정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초과노동’ 또는 ‘초과가치’라고 했는데, 이는 독일어 ‘메르베르트Mehrwert'를 직역할 말이다. (429면)




51. 그는 잉여가치를 증대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의 탈진을 가져온다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임금노동잗르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양을 줄이는 것, 즉 재화 제조의 노동 생산성을 증대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거의 무제한적이며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방법은 노동자의 피로에 의해 제한되고, 두 번째 방법은 기술 진보 때문에 제한적이다. 첫 번째는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고, 두 번째 방법은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430, 431면)




52. 그는 잉여가치의 경제적인 소유권 획득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라고 명명하면서 그것을 철학적 개념인 ‘소외’와 구분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렸다. 착취는 소외의 경제적 결과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이며, 역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소유한 것이 없는 노동자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모든 생산수단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432면)




53. 자본주의는 경쟁과 잉여가치의 축척이라는 장치에 의해 해체되고 변형되며 집중되어 자기 파괴에 이른다는 마르크스의 확신은 더욱 강화됐다. (438면)




54. “헤겔에게 사상의 움직임은 현실의 창조주다. 나에게는 반대로 사상의 움직임은 현실적인 움직임의 반영일 뿐이다. 헤겔에겐 변증법이 머리 위를 걸어가는데, 그것에 완전한 이성적인 모습을 찾아보려면 그것을 다시 발에다 갖다 놓기만 하면 된다.” (447, 448면)




55. “내 책에서 첫 번째로 훌륭한 점은 제1장부터 노동의 이중적 성격을 논하는데, 그 성격에 따라 노동이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로 설명된다는 점이며9사실들에 대한 이해는 모두 이 명제에 근거한다), 두 번째는 이윤, 이자, 토지임대료 등 개별적 형태들과는 독립적으로 잉여가치를 분석했다는 점일세.” (452, 453면)




56. 마르크스는 여전히 라살 파를 사회주의자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라살 당의 지도부에게 순수한 혁명적 목표와는 양립할 수 없는 부르주아적 휴머니즘의 색체가 지나치게 강하며, 생산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부의 최선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르크스에게 수익 분배란 생산양식의 지엽적인 표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는 부의 공정한 재분배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544, 545면)




57. 머지 않아 사태는 마르크스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마르크스주의자와 개량주의자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새로운 당 안에서도 계속되었고 독일의 두 사회주의 운동의 합병은 프로이센 국가의 강화를 가속화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인 진보주의자들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까스로 용인되고 있던 사회주의자들을 가혹하게 검열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해나갔다. (555면)




58. 어떤 저서를 마쳐야 할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혹시 읽지 않은 책이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중요한 자료를 참조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끝없는 연구에 빠지게 만들었다. (567면)




59. 엥겔스의 죽음은 베른슈타인을 해방시켜 주었다. 점점 더 자신을 개량주의자로 느끼던 베른슈타인은 1896년에 런던에서 카우츠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급진적인 당 하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극진적 부르주아당이 하고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단지 활동이나 방식과는 전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언어 속에 그러한 사실을 감추고 있을 나름입니다.“ (635, 6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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