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자서전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박선경.박현석 옮김 / 동해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1. 하지만 나는 딱 한 가지는 말해두고 싶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즉, 내게는 그것이 절대로 옳다고 여겨지며 한동안은 최종적인 것이라고도 생각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을 토대로 행동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받아들일 것인지 물리칠 것인지를 선택해왔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행동으로 옮겼다. (29면)




2. 무릇 진실을 탐구하는 자는 진개보다도 더 겸손해야 한다. 사람들은 진개를 그 발밑에 두고 짓밟는다. 하지만 진실을 탐구하는 자는 그 진개에게조차도 짓밟힐 만큼 겸손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진실을 언뜻 볼 수 있을 것이다. (31, 32면)




3. 나는 선천적으로 윗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장님이었다. 나중에는 나도 그 선생님의 결점을 여러 가지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존경심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윗사람의 행동에는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그 명령에 따르는 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었다. (47면)




4. 제 아무리 사소한 과실이라도 그것을 깨달으면 내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50면)




5. 연습을 하지는 않았지만 몸은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다. 그것은 여러 가지 책을 통해서 오랜 시간 동안 문 밖을 산책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 충고에 따라서 산책을 거르지 않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습관은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 산책 덕분에 상당히 튼튼한 체격을 얻을 수 있었다. (51면)




6. 진실한 사람은 또한 아주 세심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52면)




7. 진실에 대한 정열은 나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57면)




8. 개혁자는 개혁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상대방과 너무 친밀해져서는 안 된다. (60면)




9. 당시 기독교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일종의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기독교의 목사들은 늘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네거리에서 설교를 했는데 힌두교와 힌두의 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곤 했다. 나는 그것을 듣고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딱 한 번 거기에 멈춰 서서 그들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80면)




10. 진실은 나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장엄함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나의 정의도 더욱 범위를 넓혀갔다. (81면)




11. 이 책(채식주의를 호소함)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맹세를 한 날을 축복했다. (101면)




12. 연설할 때의 망설임은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예전에는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기쁨이 되었다. 그것의 가장 커다란 은혜는, 그것 덕분에 생각을 억제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험에 의해서 나는 침묵이야말로 진실의 신봉자에 대한 정신수양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5, 116면)




13. 제2장(에드윈 아놀드, 천상의 노래) 속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내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 사람이 만약 그 관능의 대상에 집착하면, 대상의 매력 스스로 솟아나고 매력에서 욕망이 생겨나고, 욕망은 곧 격렬한 정열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정열은 무분별의 씨앗을, 깃들게 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추억 - 전부 덧없는 - 에 높은 뜻은 사라지고, 마음은 메마르며, 결국에는 지조, 심정, 신명 모두를 잃게 될 것이다. - 그 울림은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 있다. 내게 있어서 그 책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날 받은 감명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지금 나는 그것을 진실한 지식을 얻기 위한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측량할 수 없는 도움을 내게 주었다. (125, 126면)




14. ... 나는 민수기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다른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산상수훈’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내 가슴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타와 비교해보았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마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이 구절은 나를 한없이 기쁘게 했으며, 샤마르 바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한 잔의 물을 받거든 산해의 진미로 거기에 보답하라.’ 나의 젊은 마음은 기타나 ‘아시아의 빛’의 가르침과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하나로 엮어보려 시도했다. 내게 있어 자기 포기야말로 가장 강한 호소력을 가진 종교의 최고 형식이었다. (127, 128면)




15. “자네가 무얼 걱정하는 건지 잘 알겠네. 자네는 아직 독서량이 부족해. 자네에게는 변호사의 필수조건인 세상 지식이 없어. 자네는 인도의 역사를 읽지 않았지? 변호사는 그 인간의 성질을 깨닫고 있어야만 해.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어야만 해. 그리고 인도의 역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어. 이건 법률사무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네는 거기에 대한 지식을 꼭 가지고 있어야만 하네. 그리고 자네는 케이와 맬러슨의 ‘1857년 반란의 역사’를 읽지 않은 것 같군. 바로 구하도록 하게. 그리고 인간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두 권 더 읽도록 하게.” (132면)




16. 완전함을 소망하며 무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136면)




17. 내 생애에 깊은 인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나를 사로잡은 사람은 지금까지 세 명이 있었다. 살아 있는 교제를 나눈 레이찬드 바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톨스토이 그리고 ‘최후의 사람에게’의 러스킨이다. (136면)




18. 이 모욕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두려움을 떨면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나를 여기에 앉힌 건 바로 당신이야. 나는 원래 마차 안의 자리를 잡았어. 나는 그 모욕을 참아왔어. 그런데 이번에는 밖에 앉고 싶은 건지 담배를 피우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당신 발밑에 앉히려 하고 있어. 난 그럴 수 없어. 마차 안에 앉겠어.” (158, 159면)




19. “그런 미신은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자, 그 목걸이를 떼도록 합시다.” “아니, 그럴 수 없어요. 이건 어머니에게서 받은 신성한 선물입니다.” (172면)




20. 나는 남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자존심이 강한 인도인이 올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어떻게 해야 이러한 현상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182면)




21. 나는 법률가의 참된 임무가, 서로 어긋나버린 사건 당사자들을 결합시키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교훈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후부터 20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해왔는데 그 대부분을 수많은 소송사건의 자주적인 화해를 강구하는데 쏟아왔다. 나는 그것 때문에 잃은 것은 없었다. 단 한 푼의 돈도, 그리고 내 영혼에 있어서도. (185면)




22. 사건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서 공적인 활동을 해주는 사람이 나탈에도 몇 명 생겼다는 사실은, 계약 노동자들에게는 기쁘고 놀라운 일이었으며 그들에게도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이 되었다. (192, 193면)




23. 그런 시간에도 사람들을 찾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내 열정이, 그 나이 들어서도 피곤을 모르는 학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듯 했다. (201면)




24. 이렇게 내가 달아나는 동안 알렉산더 씨는 군중들을 이런 노래로 재미있게 해 그들의 발을 묶어놓았다. '늙은 간디의 목을 묶어라 신맛 나는 나무나무 위에' (211면)




25. 하지만 내 실험의 최종 결과는 미래에 속해 있는 것이다. (217면)




26. 나는 1920년, 청년들에게 노예의 성 - 그들의 학교 및 대학 -에서 뛰어나오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노예의 사슬에 묶여서 학예교육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유를 위해서 무지한 채로 가장 비천한 일에 종사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충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나의 권고를 그 근본이 되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잘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17면)




27. 나는 세탁 방법을 소개한 책을 사다 세탁 방법을 연구해서 그것을 아내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면 내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움이 그것을 즐거운 일로 만들어주었다. (218, 219면)




28. 자조와 간결함을 지향한 나의 정열이 결국에는 어떤 극단으로 치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적당한 곳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처럼 씨앗은 오래 전부터 뿌려졌던 것이다. 그것이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맺기 위해서는 물을 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은 적당히 뿌려졌다. (221면)




29. 나는 시련의 순간에야말로 인간성의 가장 좋은 일면이 나타나는 법이라는 사실을 ... (227면)




30. 하지만 나는 쓴맛도 몇 번 보아야 했다. 거주민들에게 의무를 수행하라고 말할 때는, 그 권리를 주장할 때처럼 그들 힘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몇몇 장소에서는 모욕으로, 다른 장소에서는 정중한 무관심으로 대접을 받았다. (229면)




31. 그런 것들을 받고서도 나는 보수 없이 인도인 거주민을 위해서 봉사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 그처럼 막대한 금액의 선물을 포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것들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은 봉사하는 생활은 봉사 자체가 보수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훈련을 받아왔던 것이다. ... 나는 이들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32, 233면)




32. 공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고가의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의견이다. (236면)




33. 그리고 나는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나의 습관, 몸의 청결함, 인내력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247면)




34. 당시는 물론 지금도 나는, 아무리 일이 많다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식사시간이 있는 것처럼 몸을 단련할 시간을 늘 만들어두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일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킨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의견이다. (248면)




35. 모든 것이 자리를 잡기 전에 삼등차로 인도를 여행하며 삼등차에 탄 사람들의 어려움을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250면)




36. ... 우리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어떤 보수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모든 선행은 언젠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과거는 잊고 우리 앞에 닥친 임무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257면)




37. 나는 당시부터 이미 기타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매력이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한층 더 심오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60면)




38. 기타를 읽은 것이 내 친구에게 어떤 감화를 주었는지, 그것은 친구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 기타는, 행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지침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늘 가지고 다녀야 할 사전이 되었다. 무소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떤 식으로 평등을 낳고 또 유지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261면)




39.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포기하고 신을 따라야만 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 즉,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신을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261, 262면)




40. 그리고 나는 무소유에 대한 기타의 가르침은, 구원을 바라는 자는 막대한 재산을 관리는 하더라도 그중 단 한 푼이라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소유와 평등은 심정의 변화, 태도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알게 되었다. (262면)




41. 그것이 내 관리하에 있는 한, 신문의 변화는 내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인디언 오피니언'지는 지금의 '영 인디아'나 '나바지안'과 마찬가지로 내 생활의 일부를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나는 매주 그 논설란에 나의 영혼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대로 사타그라하의 원리와 실천을 설명했다. 10년 동안, 그러니까 1914년까지 내가 강제적으로 휴양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투옥 기간을 제외하면 '인디어 오피니언' 지에 내가 쓴 논설이 게재되지 않았던 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들 논설 속에서, 생각 없이 혹은 숙고하지 않고 써내려간 말, 의식적으로 과장한 말, 혹은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쓴 말을 단 한마디도 떠올릴 수가 없다. 실제로 내게 있어서 이 신문은 자기억제를 위한 훈련이 되었으며, 친구들에게 있어서는 내 생각을 접하는 수단이 되었다. (265면)




42. '인디언 오피니언'이 없었다면 아마 사탸그라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65면)




43. 그 책(러스킨, 최후의 사람에게)은, 일단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단단히 붙들었따.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까지, 24시간 동안의 기차여행이었다. 기차는 저녁이 되어서야 거기에 도착했다.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는 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내 생활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러스킨의 이 위대한 책 속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몇몇 신념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렇게까지 나를 사로잡고 내 생활을 바꾸게 한 이유였던 것이다. 시인이란 인간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선한 것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자들이다. 시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감화를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70면)




44. '최후의 사람에게'의 교훈 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개인 속에 있는 선은 모든 것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선이다. 2.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생계를 얻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한, 법률가의 일과 이발사의 일은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이다. 3. 노동의 생활, 즉 땅을 가는 자의 생활과 수공업자의 생활은 모두 가치가 있는 생활이다. 이들 중 1번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2번에 대해서는 막연한 이해밖에 없었다. 3번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최후의 사람에게'를 일고 나는 2번과 3번 모두 1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일어난 나는 이들 원리를 실행에 옮겨나가기 시작했다. (270, 271면)




45. 간소한 생활에 대한 추구는 더반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의 집에서는 한층 더 엄격하게 러스킨의 교훈을 지키기로 했다. 나는 변호사의 집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간소한 생활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구는 역시 필요했다. 변화는 외면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것이 더 많았따. 모든 육체 노동을 내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따. 그리고 그런 종류의 훈련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시키기 시작했다. (275면)




46. 전부 합쳐서 5마일이나 되는 거리였다. 그로 인해서 나와 아이들은 상당한 양의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특별히 누가 나를 불러 세우지 않는 한, 이렇게 걸으면서 하는 대화로 그들을 교육시키기에 힘썼다. (277면)




47. 후회가 되는 점은, 내가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직 거주민에 대한 봉사만 생각했다는 점,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에 대한 문자 교육을 희생양으로 바쳤다고 생각한다. (278면)




48. 아이들은 문자에 대한 교육의 부족함 때문에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한 모국어에 대한 지식은 그들을 위해, 국가를 위해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외국인처럼 되어버렸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279면)




49. 하지만 당시 나는 '영국 제국은 세계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단순한 충성심 때문에 나는 영국 제국에 반감을 품은 적이 없었다. (280면)




50. 브라마차리아를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가정에 대한 봉사와 인도인 거주민에 대한 봉사는 서로 모순된 것이 되어버린다. 브라마차리아를 수반해야만 그것은 완전히 일관된 것이 되는 것이다. (285면)




51. 나는 브라만차리아가 놀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단순히 육체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육체적 절제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것의 완성에는 불순한 상념조차 배제되어 있다. (286면)




52. 내가 생활에 도입한 첫 번째 변화는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그리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그녀와 함께 있기를 금한 것이었다. (287면)




53. "선생님,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실 생각이죠? 저는 고기를 먹이지 않아서 제 아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고기를 아내에게 먹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녀가 바란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290면)




54. 소금과 콩을 먹지 않는 식사에 대한 실험 ... 하지만 도덕적 견지에서 보자면, 자기억제는 모두 영혼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기억제를 실천하는 사람의 생활양식 전반이 쾌락주의자의 생활양식과 달라야 하는 것처럼 자기억제를 실천하는 사람의 식사는 쾌락주의자의 식사와는 달라야만 한다. (296, 297면)




55. ... 나는 과일만을 먹는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과일은 가능한 한 싼 것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297면)




56. ... 분명한 것은 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97면)




57. 나는 자기억제가 그들 마음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으며, 육체를 정복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믿고 있다. (299, 300면)




58. ... 정신적 교양이 결여되어 있는 훈련은 전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301면)




59. 새로운 소송 의뢰인이 찾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허위로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으며, 증인에게 대책을 강구해주지 않는다고 경고를 해둔다. 그것이 좋은 평판을 얻어 내게 부정한 소송은 의뢰하지 않게 되었다. (304면)




60. 이쨌든 사건을 대하는 나의 이와 같은 태도는 내 직업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내 일을 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성실함으로 동료 변호사들 사이에서 내 평판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04, 305면)




61. 그 집회는 예정대로 1906년 9월 11일에 열렸다. 집회에서는 여러 가지 결의가 채택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한 결의 제4호였다. 이 결의에서,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법령이 입법화되면 인도인은 그에 따르지 말 것, 이 불복종 때문에 부과되는 모든 징벌을 감수할 것을 엄숙하게 결의했다. 누구도 우리의 운동을 뭐라 이름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수동적 저항'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나는 '수동적 저항'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다. 단지 어떤 새로운 원리가 탄생하고 있음을 깨닫을 수 있을 뿐이었다.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서 '수동적 저항'이라는 말은 곧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311면)




62. 실리 마간랄 간디도 응모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선한 방침을 견지한다'는 의미를 가진 '사다그라하'라는 말을 제안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함축하고 싶었던 생각을 전부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사탸그라하'라고 고쳤다. 진실(사탸)은 사랑을 포함한다. 그리고 견지(아그라하)는 힘을 낳는다. 따라서 힘의 동의어로써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인도인 운동을 "사탸그라하", 즉 진실과 사랑, 혹은 비폭력에서 태어나는 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동적 저항'이라는 말의 사용을 중단했다. (312면)




63. 나는 농장에서 식사와 병의 치료법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행했다. ... 그것들을 통해 캘커타에서, 젖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짜내기 위해서 젓소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읽었다. 그리고 젖을 짜내기 위한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방법에 대해서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우유 마시기를 그만뒀다. (333면)




64. 진실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아사티야'는 비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사티야' 혹은 진실은, 있음을 의미한다. 진실되지 못한 것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있음의 진실은 결코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사탸그라하 교의의 진수인 것이다. (339, 340면)




65. 이렇게 해서1906년 9월에 시작되어, 인도인 거주민에게는 수많은 육체적 고통과 재정적 손실을 주었으며, 정부에게는 깊은 걱정과 불안을 심어주었던 사탸그라하 투쟁은 '인도인 구제법'의 가결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인도인은 이제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1914년 7월 18일, 나는 기쁨과 슬픔에 한데 얽힌 감정을 품은 채로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인도에 귀국하기 전에 고칼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쁨이라고 말한 이유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귀국이었기 때문이며, 고칼레의 지도를 받아가며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열렬한 소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픔이라고 말한 이유는, 남아프리카를 떠나는 것이 매우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남아프리카는 내게 인생의 쓴맛, 단맛을 충분히 맛보며 생애 중 21년을 지낸 곳이었으며, 생애의 사명을 깨닫게 된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360, 361면)




66. ... 나는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나는 그 논의에 부족함은 조금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행동에도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영국과의 연계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63, 364면)




67.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다. 기금을 모아야 하는 책임에서 벗어난 것도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모든 일을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언제라도 확실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마음속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었다. (367면)




68. 우리의 신조는 진실에 대한 헌신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직무는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었다. (379, 380면)




69. 겸손의 참된 의미는 자기 소멸이다. 자기 소멸은 해탈ㄹ이다. ... 겸손함이 없는 봉사는 이기주의이자 자아주의이다. (380면)




70. 인도의 공공생활에 있어서 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사람은 깊은 주의를 기울여 규범을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397면)




71. 내게 발해진 명령을 무시한 것은 합법적인 정부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높은 존재의 법률, 즉 양심의 목소리에 복종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행한 것이다. (398면)




72. 그러나 지금까지도 종종 그래왔던 것처럼, 신은 내 계획이 완성되는 것을 기꺼이 여기시지 않으셨다. 운명은 다른 일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하도록 나를 데리고 갔다. (408면)




73. 나의 단식은 그를 필두로 한 공장주 측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친누이 같은 애정을 보여준 그의 아내 사를라데비가 나의 행동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417면)




74. 누가 가난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민중들의 권리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권리를 행사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426면)




75. 구제는 그들 자신 속에 있다. 특히 고뇌와 희생을 견디는 능력 속에 있다는 교훈은 사람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각인되었다. (427면)




76. 나는 남아프리카에서 일찍부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융화로 가는 길 위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기회라는 기회는 단 하나도 놓친 적이 없다. 아첨을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사람을 달래는 것은 내 성격상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에서 얻은 경험이, 불상생이 가장 엄격한 시련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힌두와 이슬람 두 교도의 융화 문제에 부딪쳤을 때일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의 불살생의 실험에 최대의 장소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었다. 이 신념은 아직도 남아 있다. 생애를 통해서 신이 내게 늘 시련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430면)




77. 종교에 대해서 말하자면 각자의 신앙은 다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자신들의 신앙이 지고한 것이다. (432면)




78. 자국이 말이, 자국과 관계된 일 때문에 자국에서 열리는 집회에서 사용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니. ... (435면)




79. 나는 1908년, 인도에서 더욱 심각해져만 가는 빈곤을 퇴치할 특효약으로써, 베틀 혹은 물레(차르카)에 대한 것을 ‘힌두 스와라지’에 적었지만, 그 이전에 물레를 본 기억은 없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인도를 구하고, 인도의 대중을 뼈를 깎는 듯한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같은 경로를 통해서 스와라지를 수립해줄 것이라고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1915년, 내가 남아프리카에서 인도로 돌아왔을 때조차도 사실 나는 물레를 본 적이 없었다. (488면)




80. 경험을 통해서 진실 이외의 신은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각 장, 각 페이지가 전부 진실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불살생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선언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 글들을 쓴 나의 노력을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5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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