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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한국은 이 금융 위기 이후 과거의 성장세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한국이 ‘자유 시장 원칙’을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신봉하게 된 데 있다. (29면)
2. 규제 철폐와 민영화, 그리고 국제 무역과 투자에 대한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아젠다는 1980년대 이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31면)
3.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 (34면)
4.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에는 아예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개발도상국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35면)
5. 프리드먼의 견해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그가 ‘황금 구속복’이라고 일컫는 특정한 경제 정책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 그가 제시한 황금 구속복은 세계화라는 가혹하지만 상쾌한 게임에 뛰어드는 데 이용가능한 유일한 의복이다. (43면)
6. 첫 번째 세계화 시기에 영국의 패권 하에 발전하고 있던 상품, 사람, 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자유로운’ 무역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세계화를 옹호하는 수많은 책에서는 이런 사실들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 그러나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에 묶여 있던 나라들이 올린 경제 성과는 형편없었다. (48, 49면)
7. 결국 첫 번째 세계화의 물결의 주요 설계사였던 영국은 이미 언급했듯 1932년에 자유 무역을 포기하고 다시 관세를 도입했다. 정사에 따르면 이 사건은 영국이 보호 무역주의의 ‘유혹에 굴복’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대부분 경쟁 국가들, 특히 미국이 보호 무역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결과 영국의 경제적 우위가 쇠퇴했기 때문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50면)
8. 요약하면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1950-19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던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다.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다. 통제된 세계화 시기의 세계 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 분배도 훨씬 균등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발도상국들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정사는 이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를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로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기록을 퍼뜨리는 의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 데 있다. (57면)
9.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 그렇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8면)
10.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반혁명의 선두에 섰던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은 ‘대안이 없다’는 말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물리친 적이 있는데, 세계화에 대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설명 방식에는 바로 이 ‘대안 없음’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66면)
11. 자유 무역은 대개 약소국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으며,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의 대부분은 짧은 예외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유 무역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67면)
12. 디포는 ‘계획’을 통해 영국의 모직물 제조업을 발전시킨 것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74면)
13.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유시장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윌풀이 주축이 되어 세웠던 ‘중상주의 체제’를 호되게 비판했다. 애덤 스미스의 역작인 ‘국부론’은 영국의 중상주의 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1776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보호 관세, 보조금, 독점권 부여 등의 중상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경쟁 제한이 영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는 윌풀의 정책이 시대에 뒤처져 가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물론 윌풀의 정책이 없었더라면 영국의 많은 산업들은 해외의 우월한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기회를 잡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상 보호무역은 그 필요성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스미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더 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는 산업을 보호하면 그 산업을 안일해져 효율성을 잃게 될 우려가 있던 만큼, 당시 영국으로서는 자유 무역을 채택하는 편이 훨씬 이로웠다. 그러나 스미스는 시대를 다소 앞서 가고 있었다. 그의 견해는 한 세대가 지나서야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영국이 진정한 자유 무역 국가가 된 것은 ‘국부론’이 출간되고 나서 84년 만의 일이었다. ‘국부론’이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나고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이 되면 벨기에와 스위스 같은 나라들이 기술적 우위를 점했던 소수의 제한된 분야를 제외하고, 영국의 제조업자들이 세계 최고의 실력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유무역이 자신의 이익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유 무역을 옹호하는 활동을 개시했다. (78, 79면)
14. 곡물법 폐지 운동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경제학자이자 직업적 주식 투자자였던 데이비드 리카도가 제시한 비교우위 이론으로, 이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자유 무역 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 뒤집어 말하면 한 나라가 무역 상대국에 대해 가격 우위를 가지고 있는 상품을 하나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격 열위의 정도가 가장 적은 상품의 생산에 집중하면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80, 81면)
15. 요컨대 저명한 경제 사학자 폴 베어록이 표현한 대로, 영국은 ‘장기간 계속되어 온 높은 관세 장벽’ 뒤에 숨어 경쟁국들을 누르며 기술적 우위를 획득하고 나서야 자유 무역을 채택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81면)
16. 많은 미국인들은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미국 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해방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링컨은 유치산업 보호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미국 공업을 보호한 ‘위대한 보호자’라는 명칭까지 달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링컨은 휘그당의 헨리 클레이 밑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는데, 헨리 클레이는 유치산업 보호와 운하 등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로 이루어진 ‘미국 시스템’의 창설을 옹호했다. (87면)
17. 당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 (89면)
18.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930년대의 스페인을 제외한다면 오늘날의 부자 나라 가운데 영국이나 미국만큼 강력하게 보호 무역 정책을 실시했던 나라는 없다. 흔히 보호 무역주의의 본가처럼 알려진 프랑스나 독일, 일본 세 나라도 늘상 영국이나 미국보다 관세가 훨씬 낮았다. (물론 이는 영국과 미국이 경제적인 우위를 점한 후 자유 무역으로 선회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92면)
19. 안타깝게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미 완정된 자리를 차지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해 효과를 보았던 민족주의적 정책들을 통해 경쟁국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자 나라들의 클럽에 최근 합세한 나의 모국 한국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보호주의적인 나라였지만, 지금은 WTO에서 완전한 자유 무역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조업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99면)
20.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최선의 발전 정책이라고 배운 것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100면)
21.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 장에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헤밀던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것이라고 소개한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109면)
22. 독자들은 보호주의적인 수입 대체 산업화 시기의 ‘성적이 형편없던 옛날’에 개발도상국들의 성장률이 현재의 자유 무역 하에서 이룬 성장률의 평균 두 배에 이르렀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 무역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113면)
23. 통제되지 않은 경쟁이 사회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지만, 완전한 중앙 집중적인 계획과 포괄적인 국유화를 통해 모든 경쟁을 억제하려던 시도는 경제의 역동성을 파괴하여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게다가 공산주의 체제 하의 경쟁 부재와 과도한 하향식 규제는 순응주의, 관료적 형식주의, 그리고 부정부패를 낳았다. (164면)
24. 짝퉁 제조나 복제품 제조는 현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국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206면)
25. 하지만 1998년의 법(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은 불명예스럽게도 미키마우스 보호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디즈니가 1928년에 최초로 만든 미키마우스의 탄생 75주년을 내다보고 저작권 연장 로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207면)
26. 실험실에 있던 개별적인 과학자들의 힘만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서로 맞물려 있는 특허 관계라는 위험한 영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법률가 집단이 있어야 한다. 만일 서로 맞물려 있는 특허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하면 특허 제도는 실제로 기술 진보를 촉진하는 박차가 아니라 커다란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215면)
27. 그러나 솔직히 말해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가 경제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 나라들이 전체 특허의 97%를, 그리고 저작권 및 상표권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개발도상국들의 지식 획득 비용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216면)
28.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시장과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265, 266면)
29.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1달러 1표’의 원리를 전면 부인함으로써 경제적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다른 기준에 근거한 불평등을 확산시켰다. (267면)
30.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장하는 자유 시장 정책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시장의 ‘1달러 1투표’ 규칙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정책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의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정책들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268면)
31.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 이후로 유교 문화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이 지역의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 원인이라는 주장이 널리 펴져 나갔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지역의 발전 지체를 유교 탓으로 돌렸다. (291, 292면)
32. (아프리카와 남미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 혹은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인 조건이 빚어 내는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새 직업 같은) 새로운 기회나 (수입품의 갑작스런 유입 같은) 예기치 않은 충격을 예상할 때에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더군다가 가난한 경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신용, 보험, 계약 따위의) 장치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299면)
33. 앞서 내가 일본과 독일, 그리고 한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듯,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근면, 시간준수, 검약 같은) 행동 특성들 가운데 대다수는 실제로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3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