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버락 H. 오바마 지음, 홍수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당시 나는 35세로, 법과대학원을 마친 지 4년 쯤 되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인생에 대해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4면)




2. “그런 회의를 갖는 건 이해하지만 정치에는 다른 전통도 있습니다. 즉 건국 당시부터 민권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전통 말입니다. 그 전통은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분열시키는 힘보다 더 강하며, 이런 주장의 진실성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5면)




3. 내 결점 중 하나는 자족하지 못하고 부단히 무언가를 추구하는 태도였다. 일이 잘 풀려 나가고 있어도 만족할 줄 몰랐고, 고마운 일이 눈앞에 빤히 보여도 감사할 줄 몰랐다. (6면)




4. 여하튼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 현직 하원의원을 상대로 후보 선출 예비 선거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도전이 결국 참패로 끝나면서 인생이 늘 계획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7면)




5.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마치 배우나 운동선수가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해 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능력이나 운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느낄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여러 차례 오디션 대기자 명단에 오르거나 아니면 마이너리그에서 간간이 힘겹게 안타를 치면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이 느꼈음직한 그런 기분 말이다. 그런 꿈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제 성숙한 태도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좇아야 할지, 아니면 이런 실상을 외면함으로써 결국 괴로움 속에서 남에게 쉽게 핏대나 올리는 그런 딱한 처지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내버려 둬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8면)




6. 나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말했다. 그들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순위를 약간만 조정한다면 모든 어린이가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뒷받침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가지 난제에 대처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곤 했다. (13면)




7.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데는 여러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세계화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혁신, 치열한 정쟁과 끊임없는 문화 전쟁의 시대에 살다 보니 이상적인 목표를 논의할 공동의 언어조차 지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13면)




8. 그 대신 내가 제안하는 것은 다소 신중한 접근법이다. (15면)




9. 결국 나는 민주당원이다. 대부분의 주제에 대한 내 견해는 ‘월스트리트저널’보다는 ‘뉴욕타임스’ 사설란 내용에 더 가깝다.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정책에 분노하며,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 더구나 나는 내 삶의 역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나는 여러 인종의 혈통과 문화를 물려받은 흑인의 눈으로 미국의 경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처럼 생긴 사람들이 수 세대에 걸쳐 어떻게 예속되고 낙인찍혔는지, 또 인종과 계층이 노골적인 방식으로, 혹은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지 영원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16면)




10.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요즘 나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단순히 한 국가로서 공언한 우리의 이상적 목표와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현실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런 격차는 미국이 세워진 이후 계속 존재했다. 그동안 목표와 실천 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법률을 제정하고 시스템을 개혁했으며, 노동 조합을 결성하고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난제가 엄청난 데 반해 우리의 정치는 참 왜소하다는 것이다. 즉 사소한 문제에 쉽사리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어려운 결정을 회피하는 형태가 만성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중대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실행상의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42면)




11.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추측과 어긋나는 모순된 측면이 보여도 이를 외면한 채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믿어 버린다. 결국 양쪽의 의도는 상대방을 설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지층을 부추겨 각자의 정당성을 확신하게 만들고 나아가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표를 가져다 줄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45면)




12. 그런데도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정치가 어루만져 주거나 대변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치판의 소란과 흥분, 끊임없는 공방을 외면하게 된다. (45면)




13. “그건 세대의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워싱턴에서 실권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2차 대전에 참전했었어요. 이런 공동의 체험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런저런 쟁점을 놓고 심하게 대립했을지 모릅니다. 우리 중에는 출신 배경이나 거주 지역, 정치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공동의 체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를 일정 수준 신뢰하고 존중했습니다. 이것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국정이 원만하게 이뤄지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47면)




14. 진보적인 구호들은 의무와 책임보다는 권리와 자격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55면)




15. 보수 세력을 이끄는 이들 새로운 선도자는 그들과 맞서는 진보 세력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정책과 비전의 경쟁으로뿐만 아니라 선과 악의 투쟁으로 인식했다. (57면)




16. 조지 부시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과정에서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을 다짐했지만 오늘날 공화당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특성은 보수주의가 아닌 절대론(absolutism)이다. 자유시장 절대론은 세금도 규제도 사회 안전망도 필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정부의 역할도 사유 재산 보호와 국방 유지에 국한된다는 이데올로기이다. (62면)




17. 나는 이들이 모두 성숙한 정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며 상대방에게도 가끔은 귀담아 들을 만한 주장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그런 정치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들은 좌파와 우파,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논쟁을 언제나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단적인 주장과 상식적인 견해, 책임감 있는 태도와 무책임한 태도, 지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게 인식한다. (69면)




18. 나는 이라크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에게 편지를 쓰거나 학비 보조금 예산이 삭감되면서 대학을 중퇴한 유권자의 전자 우편 내용을 읽을 때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행위와 조치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되새긴다. 권력자들 자신은 그런 영향에 다른 대가를 거의 한 번도 치러 본 적이 없다. (79면)




19. 상충하는 가치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비교적 쉬운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상충되는 가치관 사이에 긴장 상태가 조성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모순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91면)




20. 가치는 당면한 현실에 충실하게 적용되지만 이념은 현실적인 상황이 논리에 의문을 제기해도 그런 현실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대로 무시해 버린다는 것이다. (95면)




21.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내가 아는 모든 부모들은 저열한 문화, 태평스러운 물질 중심주의와 즉흥적인 만족을 조장하는 경향, 인간적 친밀감을 배제한 성행위 등에 여전히 탄식을 늘어놓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부의 검열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염려가 두루 인정받고, 이들이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 정당하게 인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97, 98면)




22. 공직자는 선거운동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매일같이 서로 상충되는 여러 주장을 숙고하고 평가해야 한다. (103면)




23.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폴이 사람들과 그들이 헤쳐 나가는 현실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104면)




24.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느낌이 어떨 것 같으냐?”를 정치 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고 있다. (105면)




25. 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권세가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억압을 하는 사람이든 억압을 받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모두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모두 자기 만족의 안이한 마음가짐을 떨쳐 버려야 한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한정된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106면)




26. 나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싶은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어디에 노력을 쏟고 있는가가, 우리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시험하는 일이 될 거라고 그들에게 말했었다. (107면)




27. 그러나 궁극적인 면에서 나는 브레이어 판사의 헌법 인식에 찬동한다. 그는 헌법을 정적인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회의 끊임없는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137면)




28. 헌법 구조 속에 함축적으로 표현된 절대성의 거부는 가끔 우리 정치가 원칙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절대성의 거부는 건국 이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필요한 정보를 모아 분석하고 논증하는 과정을 촉진시켰다. 덕분에 우리가 목표에 이르는 수단뿐만 아니라 목표 그 자체에 대해서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142, 143면)




29. 나는 토의와 헌법적 질서가 권력 집단의 사치일 수도 있다는 점과 새로운 질서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중에는 괴짜나 광신자, 예언자, 선도자, 상궤를 벗어난 사람, 달리 표현하자면 절대론자들도 가끔 섞여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요즘 나는 나와 생각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자신의 견해를 확신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외면해 버리지 못했다. (146면)




30. 버드 위원이 말했다. “규정을 잘 배워 두게. 물론 선례도 잘 알아봐야지.” ... “요즘에는규정을 익히려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 온갖 일들이 밀려들면서 상원 위원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 때문이야.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만 상원이 본래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 이 왕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나 할까.” (149면)




31. 선거운동을 채 절반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패배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 아침마다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잠이 깼다. (163면)




32.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전직 부통령인 그가 그것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에 오를 뻔했던 사람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게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중에는 언제라도 고어의 전화를 받았고 그가 만나자고 하면 당장 일정을 조정해 짬을 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나서 고어가 이 사무실에 들어서니까 갑자기 그와의 만남이 귀찮아지더군요. 나는 그를 참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전직 부통령인 앨 고어가 아니었어요. 내 투자를 받으려고 하루에도 백여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치는데 그는 그런 사람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거죠. 그를 통해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올라서 있다가 깎아지른 거대한 절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64, 165면)




33. 정치판에서는 두 번째 시도는 있을 수 있어도 2위가 설 자리는 없다. (165, 166면)




34. 나는 최저 임금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보수를 받으면서 환자용 변기를 매일 씻는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가정 방문 간병인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데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재정이 취약하고 시설이 열약한 시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마땅히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79면)




35. 그렇지만 나는 베테랑 동료 의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내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문가연하는 온갖 사람들의 면밀한 분석 대상이 되고,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형태로 해석된다는 것이었다. 오류나 틀린 내용, 생략된 부분, 모순된 내용이 없는지 샅샅이 파헤쳐지고, 그런 내용이 있다면 상대편 당이 이를 간직해 두었다가 어느 날 불쾌한 내용의 TV 광고에 써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85, 186면)




36. 자신(케네디)이 2차 세계 대전 참전 때 발휘한 영웅적 행위를 떠올렸지만 좀 더 골몰했던 생각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 즉 용기라는 자질이었다. ... 또한 권력과 지위, 명성을 얻고자 애쓰는 것은 내 소박한 야망을 배반하는 일이 될 거라는 사실, 나(오바마)는 주로 나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만 부응하면 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201면)




37. 시카고로 돌아오면서 팀의 절망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자리는 없어지고 아들은 병들었고 저축은 바닥이 나고 ... 4천 피트 상공을 나는 전용기 안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었다. (216면)




38.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이대로 손을 놓고 있는다면 미국은 우리가 자랄 때와는 달리 전혀 다르게 바뀔지 모른다. 현재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훨씬 더 양극화될지도 모른다. 한쪽에는 날로 부를 더해 가는 지식 기반 계급(knowledge class)이 그들만의 주거 지역에 살면서 사립 학교 교육과 개인 건강 보험, 민간 경비 업체 서비스, 전용기 이용 등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구매해 누리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의 서비스직 일자리로 밀려나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노동 시간 연장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와 노후 생활, 자녀 교육을 그러잖아도 재원 부족과 과중한 부담, 실효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공 부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220면)




39.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업 성취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피부색이나 출신이 아닌, 지도 교사로 밝혀졌다. (236면)




40. 고등 교육과 관련해 정부는 무엇보다도 대학 등록금이나 수업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아내와 나는 이런 실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결혼 후 10년 동안, 두 사람이 대학교와 법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빌린 학비 융자금에 대한 월 상환액은 주택 융자 월 상환액을 훌쩍 웃돌았다. (240면)




41. 교육과 과학기술, 에너지, 이 세가지 핵심 부문에 대한 투자는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물론 어떤 부문에 투자하든 곧바로 성과를 내지는 않는다. 세 가지 모두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48면)




42. 그러나 내가 노동 조합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이들의 처지는 전혀 달랐다. 노동자들에게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TFA)은 재난이나 다름없었다. 중미 자유 무역 협정(CAFTA)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컸다. 이들은 자유 무역이 아니라 공정 무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미국과 교역하는 나라들에서 단결권, 아동 노동 금지 등 노동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249, 250면)




43. 그러나 루빈의 기본적인 통찰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세계화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전 세계 여러 지역의 경제와 깊숙하게 통합되어 있는 데다, 디지털 상거래가 매우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어 효과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하기는커녕 상상하기도 어렵다. (254면)




44. 그러나 CAFTA에 대한 저항과 반대가 협정의 특정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점점 심화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나는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가라앉힐 방책을 강구해야 하며 연방 정부가 노동자들 편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는 정서만 부추길 뿐이라고 강조했다. ... 나는 내 표결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유 무여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백악관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에 항의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반대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로버트 루빈처럼 미국 경제의 장기적인 전망과 무역 자유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능력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모든 국민들이 세계화의 득실을 한층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54, 255면)




45.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오늘날과 비견되는 혼란스러운 경제적 전환기에 미국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약으로 이끌었다. 그 이후 반 세기 이상 동안 미국에 광범위한 번영과 경제적 안정을 안겨 준 노사정 협약(bargain between government, business, and workers)이 바로 그것이다. (255면)




46. 사회적 연대감은 이런 뉴딜 계약을 뒷받침한 힘이 되었다. 고용주는 직원들을 정당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불운이나 오산으로 쓰러진 사람이 있다면 미국 사회가 안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계약의 밑바탕에는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시장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자들에 상당한 수준의 임금과 급부금을 지급하면 중산층 소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미국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게다가 루스벨트는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다면 좀 더 모험적인 일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안전장치가 있다면, 사람들은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거나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나서는 일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 보장(Social Security)이라는 보호망으로서 뉴딜 관련 입법 조치의 핵심이었다. 사회 보험의 한 형태인 이런 제도를 통해 사람들은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256면)




47. 종래의 사회 보장제를 떠받치는 기본적인 원칙이 ‘우리 다 함께(We're all in it together)’라면 소유주 사회의 기본 원칙은 ‘각자 스스로 알아서(You're on your own)’인 듯 하다. (258면)        




48. 이 때 이들이 원하는 것은 삶을 지탱시켜 줄 목적의식이다. (291면)




49. 어머니는 조직화된 종교가 경건한 외형 안에 편협함을 숨기고 정당성을 빙자해 잔혹성과 억압을 감춘다고 보았다. (292면)




50.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되면 어머니는 나를 교회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교회 뿐만 아니라 나를 사찰과 중국 춘절 행사, 신사, 하와이의 고대 무덤 등으로 데려갔다. 나는 이처럼 여러 종교에 접했지만, 종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히 종교로 인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거나 내면을 살피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종교가 인류의 문화적 표현일 뿐, 인류 문화의 원천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인류는 미지의 대상을 제어하고 삶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이해하고자 애를 쓰는데 종교는 그런 노력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꼭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종교를 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존중해야 할 문화지만 몰입하지는 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뤄야 할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293면)




51. 이처럼 세속주의를 공언하고 있었음에도 어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영적으로 각성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인정과 자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때로는 스스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런 마음을 베풀면서 살았다. 어머니는 교리책과 같은 종교 서적이나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은 채 많은 미국인들이 주일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가치들, 정직과 배려, 절제, 인내, 근면성 등을 나에게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 어머니는 가난과 불의에 분노를 느꼈고, 이런 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경멸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평생 경이에 찬 눈으로 생을 대했다. 삶 그 자체와 소중하지만 순간적인 삶의 본질에 대한 경외감은 경건함으로 표현해도 좋을 만 했다. ... (294면)




52. 내가 맹렬하게 야심을 좇았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지 모른다. 아버지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디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 없는 욕구가 내면에 쌓이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나의 야심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본적인 믿음이 내 야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정치 철학을 공부하면서 공동체 건설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논리와 실천 시스템을 다 같이 모색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어머니의 가치 기준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295면)




53. 우선 미국 흑인의 종교적 전통에서 사회 개혁을 촉진시키는 힘을 발견하고 마음이 끌렸다. 흑인 교회는 구체적인 필요성 때문에 신자들의 삶을 두루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흑인 교회는 현실적인 이유로 개인의 구원을 전체의 구원과 분리시키는 호사를 거의 누릴 수 없었다. 그에 따라 신앙 생활과 함께 지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생활의 중심 역할을 떠맡아야만 했다. 흑인 교회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며, 권력자와 지배층에 맞서라는 성서적 소명을 내면 깊이 받아들였다. ... (296면)




54. 마침내 내가 트리니티유나이티드 교회의 복도를 걸어가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새로운 인식 때문이었다. 종교에 헌신한다고 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중단하거나,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싸움을 중단하거나, 내가 잘 알고 아끼는 세계로부터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298면)




55. 내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황금률과 잔혹성에 대한 저항정신, 사랑과 자비, 겸손과 품위라는 가치에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 (318, 319면)




56. 소수 민족 중에서도 특히 흑인이 일상적으로 그런 고정관념에 시달리면서 압박감이 크다. 흑인이라는 집단은 미국 내에서 자신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의심스러운 점을 선의로 해석해 주는 일도 거의 없고 실수할 여지도 거의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흑인 아이가 이런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망설임도 떨쳐 버려야 한다. (337면)




57. 내 인생에서 그때는 힘겹고 과도기적인 시기였다. 나는 3년간 사회운동가로 일한 뒤 법과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이런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직 회의를 품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법과대학원에 들어간 것이 젊은이로서 품고 있던 이상을 포기하고 돈과 권력이 좌우하는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바람직한 세상(the world as it should be)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세상(the world as it is)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457, 458면)




58. “아빠... 어린애들과 악수하는 거 아니에요.” “안 된다고?” “안 돼요” ... “그냥 ‘헤이’ 그래요. 손만 흔들 때도 있고요. 그걸로 충분해요.” “알았어. 내가 널 난처하게 만든 모양이구나.” “괜찮아요, 아빠. 다른 어른들과 악수나 하면서 지내느라, 몰라서 그런 거니까요.” (4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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