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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텍스트와 텍스트작업
F. Muller 지음, 이덕연 옮김 / 법문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1. 실증주의 입장: 법전에 들어 있는 것이 이미 규범들이고, 그 내용은 언어적 의미로서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법률가는 법률에 표현된 바를 해석하고, 주어진 사건에 대한 법률의 의미를 인식하여 적용한다. 법률가의 의미인식이 옳게 진행된다면 그 포섭은 정당화된다. 따라서 법률규정의 효력과 법적 결정의 정당성을 연결해주는 다리는 규범으로서 이미 법률에 들어 있는 법텍스트의 의미에 의해서 주어진다. 이러한 논리형식에서는 “텍스트작업(Textarbeit)" 같은 개념들은 필요없다. (저자 서문, 7면)
2. 법률가의 작업에 관한 이전의 논의에서 법실증주의는 법관이 단지 법률을 적용할 뿐이지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고, 반면에 결단주의는 판결 속에서 법관의 힘만을 주목하였고 법률 자체에는 아무런 역할도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2면)
3. 법학자의 언어작업의 규칙은 언어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들의 발화 속에서 생성된다. (14면)
4. 언어의 의미는 법률가의 작업과 무관하게 선재하지 아니한다. (17면)
5. 문제는 실제로 법률가들의 텍스트작업을 통해서 법텍스트의 의미가 어떻게 구축되는가 하는 것이다. (18면)
6. 비록 사건에 따라 다를지라도 이러한 법게임의 성공전망이 어느 정도 설 수 있기 위해서 법관은 법적 논쟁에 대한 결정절차에서 언어를 잘 다룰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권한을 활용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법텍스트작업상의 언어게임은 권력투쟁의 게임과 전체적으로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26면)
7.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에게 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법적공방은 당사자들 간에 오로지 승리만을 지향하는 계산된 냉혹함 속에 진행된다. 그들이 법정에서 이끌어 가는 투쟁은 절대적인 효율성의 문법과 경제학에 의해 지배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성공이다. (39면)
8. 이러한 관점에서 여기에서 의미를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장한 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지 여부이다. (47면)
9. “말의 의미”는 “의미의 해명을 통해 주장되는 것” 바로 그것이다. (48면)
10. “철학자들은 흔히 낱말의 의미를 조사하고 분석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한 낱말은 우리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부여되는 의미를 가지고, 따라서 한 낱말의 진정한 의미가 일종의 학문적인 연구분석에 의해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나의 낱말은 누군가가 그것에 부여한 의미를 갖는다.‘ (Wittgenstein, Das Blaue Buch) (49면)
11. 법률은 법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언어의 영역에서 법확보를 위한 투쟁의 마당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의미들의 대립으로 해서 어의를 둘러싼 투쟁은 언어 속의 법을 둘러싼 투쟁이 된다. (61면)
12. 규칙신봉주의(Regelplatonismus)를 비판한다고 해서 언어규칙의 개념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규칙신봉주의의 오류는 모든 반복의 과정 속에서 동일하게 재생되는 순수한 관행으로만 이해함으로써 그 규칙을 언어현실로부터 유리시킨 점에 있다. 반면에 규칙회의주의(Regelskeptizismus)의 오류는 정반대로 언어현실을 규칙으로부터 분리시킨 점에서 찾아진다. 이에 따르면 주관적인 의도만이 모든 기호의 반복사용을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의미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 언어적 의미의 생성은 규칙준수와 규칙확대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실천의 과정으로 이해되는데, 이 두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왜곡된다. 실증주의와 결단주의는 언어이론상으로도 편파적인 왜곡을 보인다. 실증주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규칙을 강조하면서 실제 언어현상 속에서의 모든 변화는 외면하고, 반면에 결단주의는 단지 그 변화 만을 주목하면서 규칙은 무시한다. (69면)
13. 이 의문에 대한 답의 출발점은 규범텍스트와 사실주장을 판결의 주문(생산되는 법규범의 텍스트)에 연결시키려는 투쟁에서 찾아진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투쟁은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되는 규범텍스트의 의미에 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의 관심사는 사건에 특유한 주장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다른 이해를 배척하고, 자신의 특정한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결국 이 투쟁의 핵심은 언어사용의 양식과 의미에 대한 상이한 주장들이다. (69, 70면)
14. 원래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철학 연구’에 부제로 달려고 한 “우리들의 언어상황”에 대한 모든 논의는 항상 ‘차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명제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70, 71면)
15. “우리는 언어와의 투쟁 속에서 언어를 수단으로 투쟁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법언어에 관한 언급은 바로 법의 언어적 기초의 이중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Wittgenstein, Ueber Gewissheit) (73면)
16. 이에 따르면 결국 우리의 논의는 법에서 출발하여 언어를 경유하여 힘에 이르렀다. (99면)
17. 실제로 해석은 규범텍스트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재생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문을 형성하는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결코 해석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자체가 독자적인 객관적 척도로서 해석의 정당성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103면)
18. 실증주의가 법의 전환 속에 존재하는 힘을 부인한다고 하면, 결단주의는 힘의 적용 속에 내포되어 있는 법형식성을 부인한다. 결국 법실증주의나 결단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법과 힘의 관계는 외재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와 달리 법과 힘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내재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116면)
19. 규칙에 대한 적용의 관점에서 보면 법은 우선 매개체이다. ... 이 투쟁의 특징은 투쟁과정에서 특정한 형식에 따르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이 다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법은 게임의 틀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구체적인 실천과 연계되어서 항상 전환될 수 있는 상태에 있다. (116면)
20. 법실증주의에서도 전제되고 또한 결단주의에서도 강조되는 식으로 힘에 대하여 법을 분리, 대립시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양자가 서로 감염시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17면)
21. 요컨대, 순수법학이론이 아니라 법과 언어 및 힘, 이들 상호간의 구별이 간명한 것일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이론이어야 비로소 현실성있는 법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117면)
22. 중요한 표제어는 더 이상 법의 “발견(Findung)"이 아니라, 법작업이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바는 법률가의 소극적인 자세나 규범정립자인 의회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책임이 아니라, 법작업자로서의 적극적인 자세와 그에 다른 책임이다. (120면)
23. 규범텍스트들은 아직 규범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 그들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은 기술한 바 있는 의미의 ‘효력(Geltung)'일 뿐이다. 규범텍스트는 나중에 창출될 범규범텍스트의 선례이고, 구체화작업을 위한 기초자료일 뿐이다. (125면)
24. 구조화 법이론에 따르면 입법자는 장래의 결정을 미리 선결하는 법규범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법자는 규범 텍스트를 제시할 뿐이다. 입법자에 의해 채택된 규범텍스트의 사용양식은 의미창설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범주에서 구체화작업의 진입자료인 규범텍스트는 단지 “효력” 만을 갖는다. 구속력 있는 의미에 해당하는 “규범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133면)
25. 구조화 방법론은 존재와 당위, 규범과 사건, 규범과 현실에 대한 단절적 이원주의나, 법의 적용을 포섭과 삼단논법으로 이해하는 사고와 법전 속에 선재하는 규범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구체화작업을 비롯한 기타 전통적인 법학사의 유산들과의 결별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아니한다. 이 방법론의 입장에서는 법문상의 한계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 즉 - 언어의 속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건, 언어의 사용에 따른 사회적인 것으로 보건 또는 언어학자들의 권위적인 주장에 따른 것이건 - 규범텍스트에 사전에 주어진 제한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의 지양을 요구한다. (138, 139면)
26. 주관주의적 학설에서는 입법자의 의지를 법해석의 준거점과 그 한계로 보고, 반면에 객관주의적 학설은 그 대신에 법률의 의지를 강조한다. (139면)
27.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결정하고, 그 이해에 대하여 한계를 제시할 수 있는 인식대상으로서 텍스트의 본질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텍스트의 본질 그 자체도 우리에게는 텍스트로서 주어지고 또한 그것은 해석에 앞서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예속된다. (141, 142면)
28. 입법자의 의지도, 법률의 의미도 어떤 한계를 설정하지 아니한다. 이 한계는 언어 자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언어의 실행 속에서 형성된다. (143면)
29. 결국 텍스트의 의미와 법률작업의 한계는 언어학적으로 “경쟁적인 어의학”(kompetitive Semantik)의 범주 속에서 현출된다. 법률가의 활동은 하나의 어의학적 투쟁 속에서 특정한 텍스트의미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 따라서 이 해석활동의 한계에 대한 질문은 새롭게 제기되어야만 한다. 사전상의 문언적 한계를 제시하는 전통적인 법률학적 환상과는 달리 특정한 텍스트해석은 언어 자체를 통해서 주어지는 한계에 의해서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언어활동 속에서 형성되는 한계를 통해서 제한되는 것일 뿐이다. (147면)
30. 법문상의 한계는 논증에 앞서서, 즉 사전에서 의미의 예들을 찾아봄으로써 설정될 수 있는 한계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실제 토론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설정된다. 또한 이 한계는 예컨대 현존하는 의미의 실체로 주어지는 텍스트의 내적인 속성도 아니다. 작업의 대상인 기호의 연쇄가 관련되는 논증문화 및 헌법적인 요청과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그 규준이 설정되는 상대적인 크기로 주어진다. (148, 149면)
31. 한편의 조심스러움과 또 한편 법률구속을 떨쳐버리는 뻔뻔스러움의 조화 (152면)
32. 방법론상의 신뢰성의 요청은 옳은 결정일지라도 그에 대한 충분한 논증을 요구한다. (1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