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들려 주는 작은 철학
롤란드 시몬 셰퍼 지음, 안상원 옮김 / 동문선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제들을 일찍부터 설명해 주어야 한다. 철학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다. 그러므로 철학이 어린이들에게 더 이상 숨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13면)




2.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식,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어른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웠던 바로 그 교훈이었다. (13면)




3. 너는 특이하게도 ‘왜?’라는 물음을 별로, 아니 거의 하지 않았어. 그보다는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묻는 걸 좋아했어. (16면)




4. 언어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언어를 도구로 규정하면, 이것은 계속해서 이어질 우리의 사고에 대해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25면)




5. 하지만 죽은 언어도 학문 영역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것이 발견될 때 그것을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로 명명하기로 국제적 합의를 보았다. (35면)




6. 실제로 금세기초에 몇몇 철학자들은 정확한 언어를 찾아나섰다. 그들은 올바른 언어만을 사용할 때 모든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들은 ‘정확한 언어의 철학’이 ‘평범한 언어의 철학’보다 더 나을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언어라도 다 그때그때마다 과제를 위해 쓸모가 있다는 것을 다시끔 알게 되었다. (39면)




7.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정의’라 일컫는다. 이 낱말의 어원은 라틴어인데 ‘경계설정’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정의를 통해 우리는 다른 개념에 대해 한 개념의 경계를 정한다. 이를테면 ‘안락의자’에 대해 ‘의자’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46면)




8. 개념의 독일어 낱말은 '베그리프(Begriff)'인데, 이 말은 우리가 손으로 하는 행동을 지칭하는 '잡다(greifen)'라는 동사에서 온 것이다. (48, 49면)




9. 인간이란 그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여서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참된 지식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59면)




10. 그(데카르트)가 얻고자 한 것은 세계의 존재와 관련하여 인식의 확실성이었다. (60면)




11. ‘기하학’이라는 낱말은 ‘지구를 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79면)




12. 그(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표상이었다. (91면)




13. 그리스어에서는 ‘목표’를 'telos'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행위나 현상들의 목표를 지향하는 모든 관찰방식을 목표 내지 목적과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목적론적(teleologisch)'이라고 부른다. (149, 150면)




14. 19세기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구약성서의 문장을 뒤집어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 인간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신을 창조하였다. (157면)




15. 중세 철학자 윌리암 오브 오컴(라틴어로는 Occam)은,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 원칙 하나를 제기하였다. 이 원칙에 따르면, 불필요한 주장이나 추측, 가설 등은 모두 과감하게 삭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경제원리이며 절약의 원칙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유물론자들은 ‘오컴의 면도날’ 원칙의 입장을 따라서 신은 불필요한 가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59면)




16. 히브리인들은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은 후 비로소 자신들의 종교적 표상을 확대하였다. 페르시아 종교에서 세계의 진행은 두 개의 대립되는 원리들간의 싸움으로 해석된다. 선한 빛의 신과 악한 어둠의 악마가 서로 싸우고 있는데, 그 중간에 있는 인간은 선한 원리의 편을 들어 선이 승리하도록 돕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161면)




17. 도덕적 세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반드시 순종해야만 하는 계율이 있음을 뜻한다. (163면)




18. 반지들의 역할은 그것의 소유자가 스스로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게 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 개의 반지 모두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반지들은 틀림없이 모두 가짜였고, 진짜 반지는 언젠가 이미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였다. 마지막으로 판사는 형제들에게 반지의 힘을 믿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선한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존경과 칭찬과 사랑을 얻도록 힘쓰라고 충고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상황은 새롭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165면)




19. 이 간단한 이야기 속에는 철학과 도덕의 기본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신과 악마에 관한 교리들을 진실로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 자신의 행위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나자렛의 예수가 “사람의 행위를 보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였다. (166면)




20. 세 개의 반지들은 앞서 말했던, 서로 인척관계에 있으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세 종교들을 의미한다. (166면)




21. 여성 해방의 시대인 우리 시대에 와서, 우리가 이들 종교에 남성적인 요소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종족과 성의 차이를 떠나서, 모든 인간을 위한 동등한 권리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는 현시대에 와서 가부장적인 종교는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167, 168면)




22. 그리스의 신들은 대단히 인간적이었으며, 우리가 즐겨 하는 표현대로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이러한 신들의 모습에 등을 돌렸다. (169면)




23. 철학으로 되돌아가자. 이즈음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명명하는 데 중요한 두 개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첫째는 ‘존재론’이라는 개념이다. 존재론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학설’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세계’, ‘우주’ 또는 ‘코스모스’라고 부르는 존재자 전체에 대해서 사고하였고, 존재자 전체는 시작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존재자는 생성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173, 174면)




24. 형이상학 ... ‘물리학 다음’에 오는 책이라는 뜻이다. (174면)




25. 형이상학은 물리학을 초월하는 대상들을 다룬다. 즉 물리학은 세계의 개별 사물들을 연구하지만, 형이상학이 연구하는 것은 모든 사물들 전체이다. 물리학은 개별 사물들의 원인을 묻고, 형이상학은 존재자 전체의 근원을 묻는다. (174면)




26. 그리스의 형이상학은 서양의 사유 전체와 그리스도교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리스드교에 형이상학이 중요했던 것은, 신에 대해 논할 때 형이상학의 도움으로 그 이론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74면)




27. 우리는 형이상학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175면)




28. 근대에 와서 철학은 그리스도교의 관리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175면)




29. 유명한 철학자 라이프니치는, 이 세계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이며 더 나은 세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에 대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그는 세계에 있는 행복의 양은 최대치로, 불행의 양은 최소치로 정해진 것이라 했다. (177면)




30. 그래서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9세기에 비관주의의 입장에서 철저히 라이프니츠식의 세계 판단을 변형시켜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는 가능한 한 최악의 세계이다. 만일 조금 더 나빠진다면 세계는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다. (178면)




31. 신은 존재한다. 최고 입법자인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세계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 (188면)




32.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도덕적 세계질서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 공동생활을 위한 법을 우리 스스로 설립해야 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우리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획득하게 되고, 신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선과 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89면)




33. 이것이 곧 자연적인 윤리적 세계질서를 믿지 않을 때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과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통찰과 자신의 결정을 통해 윤리적 질서를 제시해야 한다. 자신의 이성으로 법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189면)




34. 왜냐하면 이제 실증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물론 철학은 실증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정신적인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190면)




35.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은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세계를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으나 세계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우리들 인간의 현존과 행위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191면)




36. 박물관을 독일어로는 ‘무제움(Museum)'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예술의 여신 뮤즈를 섬겼던 고대의 신전 무제이온(Museion)에서 온 것이다. (192면)




37.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인식한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외부적 현상들에 좌우될 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소망과 기대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소원을 가진 사람은 욕구가 없는 사람보다 많이 실망하게 된다. (195면)




38. 그들(스토아 철학자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망, 열정들을 완전히 억제할 때 불행을 피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불렀다. 이는 ‘모든 열정에서 해방된 냉담한 상태’를 뜻한다. 냉담한 사람은 실망할 일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평범한 ‘삶의 유희’에동참하는 것을 거부한 스토아 철학자들이 영혼의 평화를 행복으로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으며, 여기에는 삶의 종말도 포함되었다. (196면)




39. 이와는 정반대로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삶이 제공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스토아 철학자들의 비난과 적의를 감수해야 했다. 아울러 인간이 사회의 큰 사건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은둔하다시피 자신의 삶을 설정해야만, 정치와 사회의 변동에 의해 방해받는 일 없이 개인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196면)




40. 그들(실존주의자)은 ‘존재로 내던져짐’에 대해 말했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의 ‘내던져짐’에 대하여 그들은 삶 자체의 ‘기획성’을 대립시켰다. (198면)




41.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문명비평가들과 실존철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보았고, ‘소외’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상세하게 논구하였다. 여기서 ‘소외’란,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규정으로부터 멀어져서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 그릇된 삶의 기획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199면)




42. 이로써 우리는 마지막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에 도달하였다. 그것은 인간이 객관적인 도덕적 세계질서에 의지할 수 없을 때, 세계 속에서 자기 행위의 근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실천철학이 이런 문제를 탐구하는데, 이 질문은 우리의 세계인식의 한계에 대한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평화롭거나 평화롭지못한 인간 공동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2면)




43.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과 도덕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긴장 속에서 모든 행동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204면)




44. 그러므로 친족 윤리는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윤리로 대치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작은 집단을 대신하여 보편주의적 윤리원칙 속에서 전체 인류 공동체가 등장하게 된다. (207면)




45.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말했던 볼테르는, 1755년 리스본에서 끔찍한 지진이 있고 난 후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210면)




46. 순수 의무론자들은, 모든 의무는 절대적 의무로 어떠한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 자기 행위의 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213면)




47. 목적론자의 논증은 달랐다. 그들은 모든 계율에는 목표가 있다는 것을 옳게 인식하였다. 그 목표는 인간 공동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행위들을 그 결과에 따라 판단하였으며, 행위는 그 결과가 선할 때 허용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213면)




48. 우리는 상이한 두 입장들(의무론적 윤리와 목적론적 윤리)로부터 뭔가 이성적인 것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종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조의 도덕가들에게 행동의 결과도 고려하도록 강요해야 하며, 공리주의자에게는 계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220면)




49. 그(칸트)는 스미스의 명제에 대한 반대 표명으로 유명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정언명령이다. (242면)




50. 명백하게도 스미스의 모델은 너무 단순했던 것이다. 그 이론이 약속했던, 이익들의 자유로운 조정이나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의 향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른바 힘들의 자유로운 유희로 인해 불평등이 야기되었다. (244면)




51.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의 목표이며, 최선의 국가는 모든 구성원이 자아를 실현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이다. (262면)




52. 인간은 독자적인 존재이고 스스로 법을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프로타고라스의 명제는 철학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가장 심오한 결과를 남긴 인식에 속한다. (276면)




53.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한 말도 이와 모순되지 않는다. - 인간은 자기를 짐승보다 우월하게 해준 이성을 사용하여 ‘짐승보다 더 짐승같이’ 된다 - 메피스토펠레스는 우리의 20세기를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2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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