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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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보다도 제국은 혼합된 구성에 의해 규정되며, ... 두번째로 우리의 제국은 권력 중심이 없다는 사실, 즉 우리의 제국은 로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권력이 혼합된 구성의 다양한 수준들 및 등록기들을 통해 분배된다는 의미에서 첫번째 요소에서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제국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된다. (12면) 

 

2. 제국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는 이 마지막 주장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이래 가장 반대가 심했던 주장 가운데 하나이다. ... 우리는 제국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제국에 저항할 수 있으며, 사실상 가장 강력한 반대와 가장 생산적인 대안들은 낡은 것의 껍질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면서 안에서부터 생겨날 것이다. (13면)

 

3. 제국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대안들은 대중에게서 생겨날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책이 제시하는 두번째 근본적인 개념이다. 이 책에서 제국 개념이 잘 정교화된 데 반해, 대중 개념은 추상적이고 거의 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13면)

 

4. 국민 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국민 국가의 경제적, 문화적 교환들을 점차 규제할 수 없게 된 것은, 사실 제국이 도래하고 있다는 일차적 징후들 가운데 하나이다. (16면)

 

5. 제국주의와는 달리 제국은 결코 영토적인 권력 중심을 만들지 않고, 고정된 경계나 장벽들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계 안에 지구적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합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이다. 제국은 명령 네트워크를 조율함으로써 잡종적 정체성, 유연한 위계, 그리고 다원적 교환을 관리한다. 제국주의적 세계 지도에서 몇 가지로 구분됐던 국가의 색깔들은 제국적인 전지구적 무지개 속에서 합쳐지고 섞일 것이다. (17면)

 

6. 제국 개념의 근본적인 특징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제국의 지배는 한계가 없다. (19면)

 

7. 제국의 지배 대상은 사회생활 전체이며 따라서 제국은 전형(패러다임)적인 생체 권력biopower 형태를 나타낸다. (20면)

 

8. 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광범위한 학제적 접근법을 적용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 왜냐하면 이전에 한정된 학문 분과적 접근들을 정당화했던 경계들이 제국에서는 점점 더 파괴되기 때문이다. (21면)

 

9. 유엔은 사실 이러한 구성 과정의 정점, 즉 국제적 질서 관념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 전지구적 질서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나아가는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29면)

 

10. 이 이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제국적 주권이 패러다임 전환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역설적이지는 않다) 켈젠의 개념이 엄밀한 형식주의적 관점에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그의 개념만이 실제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33면)

 

11. 새로운 패러다임은 애초에 수평적으로 연결된 역동적이고 유연한 체계적 구조로서 윤곽지워진다. 우리는 그 구조를 정확히 줄여서 말하면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 이론과 존 롤즈의 정의론의 잡종이라고 생각한다. (40면)

 

12. 체계적 총체성은 이전의 모든 변증법과 단절하고 ... (41면)

 

13. 푸코적인 이행은 근본적으로 맑스가 기술하고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재정식화하고 확장한 과정의 일차원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과 다원성의 역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관점을 훨씬 더 분명하게 발전시킨다- (55면)

 

14. 통제사회와 생체 권력에 대한 이러한 개념화는 제국 개념의 중심적 측면들을 묘사한다. 제국 개념은 주체들의 새로운 범다변성을 이해해야만 하는 틀이며, 새로운 권력 패러다임이 도달하게 되는 끝이다. 여기서 (계약적인 형태 그리고/혹은 유엔 형태 속에서) 국제법의 다양하고 낡은 이론적 틀과 제국적 법률의 새로운 현실 사이의 진정한 틈이 열린다. (56면)

 

15.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체 정치적 맥락은 완전히 우리의 분석의 중심이다. ... 우리의 분석은 오히려 생체 권력의 생산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57면)

 

16. 푸코가 최종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생체 정치 사회에서의 생산의 현실적 동학이다. (59면)

 

17. 거대한 초국적 기업들이 어떤 중요한 측면에서 생체 정치적 세계의 근본적인 연결 직조를 구축한다. 자본은 항상 전지구적 국면을 노리고 조직되어 왔지만, 20세기 후반에서야 다국적이고 초국적인 산업적, 금융적 기업들이 사실상 전지구적 영토들을 생체 정치적으로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64면)

 

18. 거대한 산업적, 재정적 역능은 상품뿐만 아니라 주체성도 생산한다. 그러한 역능은 생체 정치적 맥락에서 행위적 주체성을 생산한다. (65면)

 

19. 소통 네트워크의 발전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등장과 유기적 관계를 지닌다 - 달리 말하면 그것은 결과이자 원인이고 생산물이자 생산자이다. ... 소통산업이 그렇게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해 온 이유이다. (66면)

 

20. 권력은 생산하면서 조직한다. (67면)

 

21. 소통이 지배적인 생산 부문 가운데 하나이고 전체 생체 정치적 장 위에서 활동한다면, 우리는 소통과 생체 정치적 맥락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예를 들어 하버마스가 묘사한 낡은 지형을 뛰어넘을 수 있다. 사실 하버마스가 소통행위 개념을 발전시키고 소통행위의 생산적 형태와 그것에서 도출되는 존재론적 결과들을 그렇게 강력하게 증명할 때, 그는 여전히 전지구화의 이러한 효과들을 벗어난 관점, 즉 존재의 정보적 식민화에 반대할 수 있는 삶과 진실의 관점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제국적 기계는 이러한 외부적 관점이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대로 소통적 생산과 제국적 정당화의 구축은 함께 진행되며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 제국적 기계는 자기를 타당화하며 자기 산출적이다 - 즉 체계적이다. (67, 68면)

 

22. 새로운 권력은 자신의 권력이 형성되는 동안에 자신의 힘이 지닌 효율성을 증명해야 하며 동시에 자신의 정당성의 토대가 구축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69면)

 

23. 제국의 규범적 자원은 새로운 기계, 새로운 경제적-산업적-소통적 기계- 간단히 말해서 전지구화된 생체 정치적 기계에서 생겨난다. (76면)

 

24. 따라서 정당성의 근본적 규범은 그 기계의 깊숙한 곳에서, 사회적 생산의 핵심에서 확립될 것이다. 사회적 생산과 사법적 정당성은 일차적인 힘과 이차적인 힘으로, 토대와 상부구조의 요소들로도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생체 정치적 사회를 관통해 공존하는 절대적 평행 및 상호 혼합의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국과 제국의 생체 권력 체제에서는 경제적 생산과 정치적 구성은 점차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77면)

 

25. 아마 이것은 유사성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차이, 즉 특이성들의 소통에 기초해서 기능하는 새로운 소통 유형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통의 적을 인식하고 공통의 투쟁 언어를 발명하는 것... (96면)

 

1. 비록 근대 주권이 유럽으로부터 나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주로 유럽과 유럽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특히 유럽의 식민지 기획과 식민지인의 저항을 통해서 생겨났고 전개되었다. (112면)




2. 요약하자면, 헤겔의 역사는 혁명적인 내재성 구도에 대한 강력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비유럽적 욕망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127면)




3. 푸코는 이러한 이행을 주권 패러다임에서 통치성govermentality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라고 말한다. (134면)




4. 윤리적인 자기에의 배려는 자기 창조의 구성 권력으로 재등장한다. 우리에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저자, 자신의 전생애 동안 반인본주의의 기치를 들었던 사상가가 어떻게 마침내 인본주의의 전통의 이러한 중심 교리들을 옹호하게 되었는가? ... 즉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137면)




5. 말콤 엑스Malcolm X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쟁 요구의 초점을 ‘시민권’에서 ‘인권’으로 돌리고, 이렇게 하여 수사학적으로 항의의 광장을 미국 의회에서 유엔 총회로 전환하려 했다. (156면)




6. 장 주네Jean Genet는 블랙팬더당과 팔레스타인들의 혁명적 욕망에 매료되었지만, 주권 국민이 되는 것은 그들의 혁명적 특질의 종말일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팔레스타인들이 제도화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그들 편에 있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들이 다른 국민들처럼 하나의 국민이 되는 그날,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58면)




7. 식민주의는 타자성alterity의 형상들figures을 구축하며 복잡한 변증법적 구조로 전개되는 것 속에서 그들의 흐름을 관리한다. 비유럽적 타자들을 소극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유럽적 정체성 자체를 창립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176면)




8. 타자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이러한 전제는 주목할 만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초기 저서를 포함해서 최근 몇 십년 동안에 등장한 광범위한 연구의 공통적인 출발점이다. “나는 동양Orient이 본래 활발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 동양은 창조되었다는 - 혹은 내가 부르듯이 ‘동양화되었다’는 가정과 함께 시작했다”.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실제 대상, 즉 동양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학문적 기획이 아니라 오히려 담론 자체의 전개로 자신의 대상을 창조하는 담론이다. (177면)




9. 그야말로 ‘타자’의 차이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타자의 차이는 두 번째 계기에서 ‘자아’의 근거로서 전도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식민화된 ‘타자’의 사악함, 야만성 그리고 방탕함은 유럽적 ‘자아’의 선함, 공손함, 그리고 예의 바름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이상하고 이국적이고 거리가 먼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 매우 가깝고 밀접한 것으로 판명된다. (180면)




10. 오직 식민지인들과의 대립을 통해서만 중심부 주체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그러면 처음에 단순한 배제 논리로 나타난 것이 부정적인 인식 변증법으로 판명된다. 식민지는 식민지인들을 부정negation으로 생산하지만, 변증법적 뒤틀림을 통해서, 부정적으로 식민화된 정체성은 부정되면서 이번에는 긍정적인 식민자적 ‘자아’를 세운다. (181면)




11. 현실은 변증법적이지 않고, 식민주의가 변증법적이다. ... 무엇보다도, 변증법적 구축은 투쟁 중인 정체성들에 관해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백인과 흑인, 유럽인과 동양인, 식민자와 식민지인 모두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며 (외양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자연, 생물학 혹은 합리성에서 어떠한 현실적으로 필수적인 기반도 지니고 있지 않은 표상들이다. 식민주의는 타자성과 정체성을 생산하는 추상 기계이다. (182면)




12. 근대 주권 세계는 ‘자아’와 ‘타자’, 흑과 백, 안과 밖,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규정하는 일련의 이분법적 대립물에 의해 분할된 마니교적 세계이다. 탈근대주의적 사고는 정확히 이러한 이분법적 근대성 논리에 도전하고, 이러한 점에서 가부장제, 식민주의, 인종주의라는 근대 담론들에 도전하여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원들을 제공한다. (195면)




13. 차이와 특유함specificity에 관한 탈근대주의적인 강조는 보편화되는 권력 담론들과 권력 구조들이 지닌 전체주의에 대항한다. 파편화된 사회적 정체성들에 대한 긍정은 ... (195면)




14. 계몽주의는 문제이며, 탈근대주의는 해결책이다. (196면)




15. 달리 말하자면, 탈근대주의 이론을 계몽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전반적인 공격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하게는 근대 주권의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제시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더욱 정확하게는, 이러한 다양한 이론적 논쟁은 근대적인 지배, 배제, 그리고 명령의 중심 논리인 - 차이의 중요성을 이항적 대립으로 환원하고, 이어서 이러한 차이들을 통일적인 질서에 포섭하기 위한 - 변증법에 대한 도전에 매우 일관되게 결집되고 있다. 만약 근대 권력 자체가 변증법적이라면, 탈근대주의적 기획은 비변증법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197면)




16. 차이와 복수성을 ‘동일성’과 ‘타자’ 사이의 단일한 선택지로 이분법적으로 환원하는 것과 같은 여전히 낡은 적들의 그림자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고 있다. (199면)




17. 탈근대주의적 사상 흐름들은 근대 주권의 전통에서 하나의 파열의 징후이다. ... 하지만 새로운 것은 탈근대주의적 이론가들이 근대 주권의 전통을 지적하고, 근대적 이분법과 근대적 정체성의 틀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 즉 다원성과 복수성의 사고를 증명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거나 무의식적으로라도, 탈근대주의 이론가들은 제국 구성을 향한 이행을 나타낸다. (200면)




18. 세계는 둘로 나누어져 있지도 않고 대립 진영들(중심 대 주변, 제1세계 대 제3세계)로 구분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셀 수 없는 부분적이고 이동적인 차이들에 의해 항상 규정되어 있으며 규정되어 왔다. 세계를 이분법적 분할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바바는 또한 총체성 이론들과 사회적 주체들의 정체성, 동질성, 본질주의에 관한 이론들을 거부하게 된다. (201면)




19. 세계에 대한 이분법적 구상은 세계의 두 반쪽에 근거하여 정체성들의 본질주의 및 동질성을 함의하며, 그러한 중심적인 경계를 가로지르는 관계를 통하여 모든 경험을 일관적인 사회적 총체성 안에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바바의 분석을 따라 다니는, 그리고 일관되게 이러한 다양한 적대자들을 연결시키는 유령은 헤겔적인 변증법이다. 즉, 서로 대립하는 본질적인 사회적 정체성들을 일관된 총체성 안에 포섭하는 변증법이다. (201면)




20. 권력 혹은 사회적 억압 세력들은 이분법적인 구조를 강요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적 주체성들에 관한 논리들을 총체화함으로써, 사회적 주체성들의 차이를 억압함으로써 기능한다. .... 차이의 복수성을 긍정해야 한다. (202면)




21. 권력은 변증법적이고 이분법적인 구조를 통해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면)




22. 잡종성이라는 단순한 사실은 위계를 간단히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잡종성 그 자체는 차이들이 경계선들을 가로지르도록 하는, 현실화된 차이의 정치이다. (203면)




23. 제국은 근대 제국주의의 연약한 메아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배 형식이다. (204면)




24. 순환, 이동성, 다양성, 그리고 혼합은 바로 세계 시장 이데올로기가 가능한 조건들이다. 무역은 차이를 한데 묶으며, 차이들이 많을수록 더욱 즐겁다! (상품, 인구, 문화 등의) 차이들은 세계 시장에서 무한히 복수화되는 것 같으며, 세계 시장은 고정된 경계들을 폭력적으로 공격한다. 즉, 세계 시장은 자신의 무한한 복수성들을 가지고 모든 이분법적 분할을 압도한다. (209면)




25. 세계시장에게 국민 국가는 점차 단순한 장애물로 나타난다. ... 더 이상 국민 경제들도 없을 것이다. (209면)




26. 탈근대주의는 정말 전지구적 자본을 작동시키는 논리이다. 마케팅은 아마도 탈근대주의 이론과 가장 분명한 관계를 가지며... (210면)




27. 마케팅 자체는 차이에 기반을 둔 실천이며, 주어진 차이가 많을수록, 마케팅 전략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 탈근대적인 마케팅은 각 상품과 각 인구층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에따라 자신의 전략들을 펴 나간다. 모든 차이는 기회다. (211면)




28. 탈근대적인 경영에 본질적인 것은, 조직이 이동적이며 유연하고 차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12면)




29. 탈근대주의가 주요하게 적용되는 장소는 미국 지식인층의 엘리트 분파 안이다. (213면)




30. 확실히 세계 도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잡종성, 이동성, 차이는 즉각적으로 그 자체 해방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많은 주민들은 이동성을 자신들의 고통의 한 측면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비참한 환경 속에서 가속적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 이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곤경이 드러날 것이다. ... 실제로 살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정해진 장소, 즉 어떤 고정성은 반대로 가장 긴급한 요구로 나타날 수 있다. (214면)




31. “계몽주의”에 대한 탈근대주의적인 인식론적 도전 -거대 서사에 대한 공격과 진리에 대한 탈근대주의의 비판-은 또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엘리트 지식인층에서 벗어나 위치를 바뀌었을 때 자신의 해방적 아우라aura를 잃는다. (215면)




32. 차이, 잡종성, 이동성은 그 자체로 해방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실, 순수성, 그리고 정지도 그 자체로 해방적이지는 않다. 진정한 혁명적 실천은 생산의 수준과 관련된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겠지만, 진실 생산을 통제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이동성과 잡종성은 해방적이지 않지만, 이동성과 정지, 순수물과 혼합물의 생산을 통제하는 것은 해방적이다. (215면)




33. 가난한 자는 빈곤하며, 배제되고, 억압받고, 착취당한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다@ 가난한 자는 삶의 공통 분모이며, 대중의 토대이다. (216면)




34. 탈근대성의 발견은 정치적이고 생산적인 지형의 중심에 가난한 자를 다시 놓는 것에 있다. (218면)




35. 권력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을 배치하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일련의 역능에 의해 구성될 수 있다. (222면)




36. 근본적인 차이는 내제적인 주권 개념이 지닌 팽창성은 배타적이지 않고 포괄적이라는 점에 있다. 달리 말해서, 내재적 주권이 팽창할 때 이러한 새로운 주권은 자신이 직면하는 다른 역능을 합병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반대로 그 역능을 네트워크에 포함시키면서 스스로를 그 역능에 개방한다. (227면)




37. 제국적 관념에서는 대조적으로 권력은 자신의 질서 논리에 언제나 갱신되고 언제나 팽창 속에서 재창조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228면)




38. 새로운 국민은 오직 잡종적 정체성을 정치적이고 문화적으로 관리한 결과물일 수밖에 없었다. (234면)




39. 걸프전의 중요성은 오히려 이 전쟁이 미국 스스로의 국민적 동기의 작용으로서가 아니라 전지구적 권리의 이름으로 미국을 국제적 정의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에서 도출된다. (244면)




40. 그러나 제국적 세계로의 이행에서 변화한 것은 이 경계 장소border place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근대적 비판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248면)




41. 더 이상의 외부는 없다. (252면)




42.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제국적 인종주의 이론이 본질적으로 위계 이론이 아닌 차별 이론이란느 점을 신중하게 지적해야 한다. 근대 인종주의 이론이 인종 간의 위계를 인종 차별을 필연적이게 만드는 근본적 조건으로 설정한 반면, 제국적 (인종주의) 이론은 원리상 서로 다른 인종들 혹은 인종 집단들의 우열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제국적 (인종주의) 이론은 우열을 순전히 우연한 것으로, 실천적인 문제로 여긴다. 달리 말해, 우리는 인종적 위계를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효과로 본다. (260면)




43.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인종주의적 실행을 이분법적 분할과 배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차이의 포섭 전략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어떠한 정체성도 ‘타자’로 지정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그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외부는 없다. (261면)




44. 근대 사회 이론이 제기한 분석의 중심적이고 아주 공통적인 주제들 가운데 하나는 주체성이란 미리 주어져 있거나 혹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사회 세력들의 장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263면)




45. 일반적인 제국적 명령 장치는 현실적으로 세 가지 구별되는 계기로 구성된다. 하나는 포괄적inclusive 계기이고 다른 하나는 미분적differential 계기이며, 나머지 하나는 관리적managerial 계기이다. (266면)




46. 첫 번째 (포괄적) 계기는 제국의 관대하고 자유주의적인 얼굴이다. 인종, 신념, 피부색, 성, 성적 지향 등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자신의 경계 안에 받아들인다. 포괄적 계기에서는 제국은 차이를 보지 못한다. 제국은 차이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266면)




47. 제국적 통제의 두 번째 계기, 즉 미분적 계기는 제국 영역 안에 수용된 차이들의 긍정을 포함한다. 사법적 관점에서 차이는 무시됨에 틀림없는 반면, 문화적 관점에서는 차이는 찬양받는다. (267면)




48.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으로 엄청나게 장려하는 것은 전통적인 인종적 차이들과 문화적 차이들을 보편적으로 포괄하는 우산 아래 찬양하는 것을 포함한다. (267면)




49. 우연성, 이동성, 그리고 유연성은 제국의 현실적 힘이다. 제국적 “해답”은 이런 차이들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들을 긍정하고 그것들을 유효한 명령 장치 속에 배열하는 것이다. (269면)




50. 대개 제국은 분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하는 혹은 잠재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찬양하며, 그 차이를 일반적인 명령 경제 안에서 관리한다. 제국의 세 가지 명령을 포괄하라, 구별하라, 관리하라이다. (269면)




51. 우리는 이제 제국 주권이 반대로 하나의 중심적인 갈등을 둘러싸고 조직되지 않고 오히려 미시 갈등들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70면)




52. 제국은 노동이 착취당하는 세계적 생산의 무-장소이다. ... 무-장소는 전지구에 두뇌, 가슴, 몸통, 손발을 가지고 있다. (281면)




53. 따라서 오늘날 공화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제국 내부에서 투쟁하고, 제국의 잡종적이고 변조해 가는 지형들 위에서 제국에 대항하여 건설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292, 293면)

 

1. 위기는 전체적으로 근대에 정상적인 조건인 것처럼, 위기는 자본에게는 자본의 종말이 아니라 자본의 경향 및 작동 방식을 가리키는 정상적인 조건이다. (298면)

 

2. 자본은 시작부터 세계 권력이 되려는, 사실상 유일한 세계권력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302면)

 



3. 레닌이 아주 강하게 반대했던 것은 카우츠키가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이러한 전망을 당시의 현실의 동학을 부정하는 데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309, 310면)




4.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가치 증식과 착취를 전지구적 생산 체계가 지닌 기능이라고 결정하며, 그래서 이런 지형 위에 나타나는 모든 장애물을 결국에는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다. (317면)




5. 제국주의에서 제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국민 국가로부터 전지구적 시장의 정치적 조절에 이르기까지... (318면)




6. 전지구적 권력 구조 속에서 상호 지지하는 극들로서, 지배적인 지역들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종속적인 지역들은 계속해서 저발전할 것이다. (373면)




7. 근대화는 끝났고 전지구적 경제가 오늘날 정보 경제를 향한 탈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주장은 산업 생산이 사라질 것이라거나 심지어 지구의 가장 지배적인 지역들에서조차도 산업 경제의 중요한 역할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산업화 과정이 농업을 변형시켰고 농업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또한 정보 혁명도 제조 과정을 재규정하고 활력을 되찾게 함으로써 산업을 변형시킬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는 새로운 경영 명령은 “제조업을 하나의 서비스로 다루라”이다. 실제로, 산업이 변형됨에 따라,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근대화 과정을 통해 모든 생산이 산업화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처럼, 또한 탈근대화 과정을 통해 모든 생산은 서비스 생산을 향하고, 정보화되는 경향이 있다. (376, 377면)




8. 첫 번째 길은 서비스 경제 모델service economy model을 향하고,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가 이끌고 있다. 이 모델은 산업 직업의 급속한 감소와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 직업의 증가를 수반한다. 특히 자본을 관리하는 금융 서비스업들이 다른 서비스 부문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모델, 즉 일본과 독일이 대표하는 정보 산업 모델info-industrial model에서는, 산업 고용은 첫 번째 모델에서 감소하는 것보다 더 천천히 감소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정보화 과정은 현 산업 생산에 긴밀하게 통합되며, 현 산업 생산의 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이 모델에서는 산업 생산과 직접 연관된 서비스들이 다른 서비스들과 비교하여 더욱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다. (377면)




9. 1930년대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은 전지구적 경제의 정점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었고 최고의 가치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자동차 공장은, 상파울로에 있든지 캔터키에 있든지 혹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든지 간에, 전지구적 경제에서 -고가치의 서비스 생산에 종속된- 종속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경제 활동은 정보 경제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경향이 있으며, 정보 경제에 의해 질적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 전지구적 경제에서 지리적 차이들은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이 공존한다는 신호들이 아니라 새로운 전지구적 생산 위계의 선들이다. (378, 379면)




10. 무질이 말했던 것처럼, 정신의 생산에 관한 한, 사람들은 산업기계의 전통적인 기법을 정보 및 소통 기술의 인공 두뇌적 지성cybernetic intelligence으로 실질적으로 대체해야 한다. (380면)




11. 오늘날에는 정보와 소통이 생산 과정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381면)




12.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실제로 정보와 지식의 지속적인 교환에 기초를 두고 있다. (382면)




13. 컴퓨터가 지닌 하나의 새로운 측면은 자신을 사용하여 자기 자신의 작동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383면)




14. 기본적인 경제적 자원은 지식이고 지식일 것이다. Peter Drucker,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383면)




15. 산업 경제에서 정보 경제로의 이행이 가져온 첫 번째 지리학적 결과는 생산의 극적인 탈집중화(분산)이다. ... 규모와 효율성은 더 이상 일직선으로 관련되지 않으며, 사실상 규모가 큰 것은 많은 경우 장애물이 되었다. (387면)




16. 정보 기술은 거리를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과정에 포함된 노동자들은 인접성을 고려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장소들에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동할 수 있다. 결국, 노동 협동의 네트워크는 영토적이거나 물리적인 중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88면)




17. 경제의 탈근대화 혹은 정보화를 특징짓는 생산 과정과 부지들의 탈중심화와 전지구적 분산은 상응하는 생산 통제의 집중화를 촉진하였다. 원심력적인(지역 분산적인) 생산 움직임은 구심력적인(중앙 집중적인) 명령 경향과 균형을 이룬다. (390면)




18. 미국 정부가 전지구적 정보 인프라의 확립과 조절을 자신의 가장 우선적인 일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소통 네트워크가 가장 강력한 초국적 기업들에게는 가장 적극적인 합병과 경쟁의 지형이 되어 왔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391면)




19. 현대적 생산의 정점에서, 정보와 소통은 바로 생산된 상품이며, 네트워크 자체가 생산과 유통 모두의 장소이다. (391면)




20. 지금은 전 세계 도처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인터넷이 이러한 민주주의적 네트워크 구조의 가장 좋은 예이다. 비결정적이고 잠재적으로 무한한 수의 상호 접속된 노드들nodes(연결점들)은 어떠한 통제 중심점 없이 소통한다. (392면)




21. 이 민주주의적 모델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리좀rhizome, 즉 위계적이지 않고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 구조라 부르는 것이다. (392면)




22. 중심화된 생산, 대량 살포 그리고 일방향 소통이 방송 네트워크를 규정한다. 전체 문화 산업 -신문과 책의 공급에서 영화와 비디오 카세트에 이르기까지-은 전통적으로 이 모델에 따라 작동해 왔다. 비교적 소수의 회사들(혹은 특정 지역들에서는 루퍼트 머독, 실리오 베르루스코니, 혹은 테드 터너와 같은 개인 기업가)이 이런 네트워크 모두를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 소수 독점적 모델은 리좀이 아니라 가지 전체를 중심 뿌리에 종속시키는 수목tree구조이다. (393면)




23. 새로운 정보 인프라의 네트워크는 이런 두 모델의 잡종이다. ...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정보 인프라를 지배하는 준독점체들을 설립하고 공고화하려는 초국적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목격하고 있다. ... 새로운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적 평등을 약속한 새로운 소통 기술들은 사실상 지배적인 국가들 안에서 그리고 특히 지배적인 국가들 밖에서 불평등과 배제의 새로운 선들을 창조해 왔다. (393면)




24. 20세기 복지 국가의 부흥과 몰락은 이런 공적 전유와 사적 전유의 나선형적 진행 과정에서 또 하나의 순환(주기)이다. 복지 국가의 위기는 우선 공적 자금을 통해 구축된 공적 부조와 공적 분배의 구조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고 몰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에너지 서비스와 소통 서비스의 사유화를 향한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나선형적 진행 과정의 또 다른 선회이다. 이것은 엄청난 공적 자금의 지출을 통해 건설된 에너지와 소토의 네트워크를 사적인 회사들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공적인 것은 심지어 개념으로서도 해체되고 사유화된다. 즉, 사실상 사적 소유의 초월적인 권력이 공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대체한다. (395면)




25. 오늘날은 국가와 자본 간의 관계의 세 번째 국면이 충분히 무르익었다. 이 국면에서는 거대 초국적 기업이 국민 국가의 사법권과 권위를 효율적으로 넘어섰다. 따라서 수세기동안 지속된 이러한 변증법이 끝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즉, 국가는 패배했고 기업들이 이제 지구를 지배한다! 계시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현상을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인간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고 국민 국가의 낡은 보호 권력을 동경하는 수많은 연구가 최근 수  동안 좌파 진영에서 나왔다. 이에 대응하여, 자본의 옹호자들은 규제 완화와 자유 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찬양한다. (400면)




26. 전지국적 시민사회에서 가장 새롭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세력들은 비정부 기구들(NGO들)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407면)




27. NGO들은 현대의 권력 네트워크의 말단에 있거나 혹은 (우리의 일반적인 은유로 돌아가서) 전지국적 권력 삼각축(미국, 유럽, 일본)의 넓은 토대이다. 이제 이러한 가장 넓고 가장 보편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NGO들의 활동은 생체 권력의 영토 위에서, 삶 자체의 요구들에 대처하면서 “정치를 넘어서” 제국의 작용과 일치한다. (409면)




28. 스펙터클 사회는 구시대의 무기를 휘두름으로써 지배한다. 홉스는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정념은 공포”라는 것을 오래 전에 인식했다. 홉스에게 있어서 공포는 사회 질서를 묶고 확립하는 것이며,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공포는 스펙터클 사회를 채우고 있는 일차적인 통제 매커니즘이다. (420면)




29. 자본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표현에 따르면, 흐름들fluxes의 전반적인 탈코드화, 대규모 탈영토화, 그리고 이러한 탈영토화되고 탈코드화된 흐름들의 접속conjunction을 통해 기능한다. (423면)




30. 그러나 어떤 점에서 이러한 표준화된 부품들, 즉 제도들이 생산한 정체성들의 고정성은 이동성과 유연성을 향해 더욱 진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통제 사회로의 이행은, 정체성에 고정되지 않는, 잡종적이고 변화하는 주체성 생산을 포함한다. (429면)




31. 제국주의는 극복되지 않으면 자본의 죽음일 것이다라고 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본질적으로 옳았다. 세계시장의 완전한 실현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의 종말이다. (431면)




32. 엄청난 소통 기업들이 제시하는 정보의 근본적인 내용은 공포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빈곤이라는 지속적인 공포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노동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내고 제국적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갈등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열쇠이다. 공포는 새로운 분할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437면)




33. 왜냐하면 생체 권력의 전지구성 속에서 모든 고정된 가치 척도가 해체되는 경향을 지니기 때문이며, 권력의 제국적 지평이 마침내 척도 바깥에 있는 지평인 것으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선험적인 것뿐만 아니라 선험적인 것 그 자체도 척도를 결정하기를 중단했다. (453면)




34. 위대한 서구 형이상학적 전통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을 항상 혐오해 왔다. (453면)




35. 지오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벌어벗은 삶’이라는 용어를 인간성의 부정적 한계를 말하기 위해 그리고 정치적 심연 배후에서 근대적 전체주의가 인간 수동성의 (다소 영웅적인) 조건들을 구축해 왔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사용했다. (467면)




36. “나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명으로서 기여한다. 즉,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결국 나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하며, 그때 그는 그 명제들을 넘어서기 위하여 -계단으로서- 그 명제들을 이용한다(말하자면 그(나를 이해하는 사람)는 사다리를 다 오른 뒤에는 사다리를 내던져야 한다). 그는 이러한 명제들을 초월해야 하며, 그러면 그는 세상을 똑바로 볼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482면)




37. 오늘날, 자본주의가 그토록 많이 승리한 이후에, 사회주의적 희망이 환멸감에 빠져 위축된 이후에,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의 폭력이 초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공고해진 이후에 왜 전투성이 여전히 발생하고, 왜 저항들이 심해졌으며, 왜 투쟁이 새로운 활력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재등장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전투성이 구혁명적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된 정식들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즉시 말해야만 한다. (519면)




38. 오늘날 전투성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며 혁신적인 활동이다. ... 투사들은 창조적인 방식으로 제국적 명령에 저항한다. ... 전투성은 내부만을 알 뿐이다. ... 이러한 전투성은 저항을 대항 권력으로 만들고 반란을 사랑의 기획으로 만든다. (5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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