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22면)

 

2.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 수 없다. 생활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 (23면)

 

3.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24면)

 

4.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24면)

 

5. 투쟁은 그것을 멀리서 맴돌면서 볼 때에는 무척 두려운 것이지만 막상 맞붙어 씨름할 때에는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어떤 창조의 쾌감 같은 희열을 안겨주는 것이다. (24면)

 

6.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49면)

 

7. 불행은 불행끼리 위로가 된다. (52면)

 

8. 감옥을 들어오기 전에도 한 번씩 읽은 책이지만 책이란 자기가(독자가) 변하면 내용도 변하는지 다른 느낌을 받는다. (53면)

 

9. 과거가 가장 찬란하게 미화되는 곳이 아마 감옥일 것입니다. (59면)

 

10. '창조의 산실'로서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독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60면)

 

11.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 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관계는 상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동태 관계인 만큼 이제부터는 그것의 순화를 위하여 네 쪽에서 긍정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될 것이다. (65, 66면)

 

12. 하기는 평소에도 독서보다는 사색에 더 맘을 두고 지식을 넓히는 공부보다는 생각을 높이는 노력에 더 힘쓰고 있습니다. (75, 76면)

 

13. 내가 있는 감방의 벽에, 누군가가 "청년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는 두 번 새벽이 없다"고 적어놓았다. 나는 이 때에 찌들은 '낙서'를 네게 전하고 싶다. 흥미 있는 일과 가치 있는 일의 차이는, 곧 향락과 창조의 차이이며, 결국 소, 장의 차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83면)

 

14.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 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은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현실성 보다는 그 가능성에 눈을 모으는 열려 있는 시각이다. (87면)

 

15. 징역 속에는 '춥다'와 '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한 사고, OX식 문제처럼 모든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 (92면)

 

16. 잡초를 뜯어서 젖을 만드는 소처럼 저는 간고한 경험일수록 그것을 성장의 자양으로 삼으려 합니다. (94면)

 

17. 하늘의 비행기가 속력에 의하여 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생활의 제측면이 일관되게 정돈될 수가 없음은 물론, 자신의 역량마저 금방 풍화되어 무력해지는 법입니다. (95면)

 

18. 그러나 저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서, 붓을 잡는 자세를 성실히 함으로써 먼저 뜻과 품성을 닦는, 오히려 '먼 길'을 걸으려 합니다. (96면)

 

19. 역사책에서는 심지어 같은 책인 경우에도 매번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됩니다. (98면)

 

20.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101면)

 

21.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의 '지식의 사유욕'에, 어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104면)

 

22.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15면)

 

23.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아라공)" (125면)

 

24. 저는 이 짤막한 편지를 읽으며 저의 세계관 속에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적 잔재가 부끄러웠습니다. 서구적인 것을 보편적인 원리로 수긍하고 우리의 것은 항상 특수한 것, 우연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사고의 식민성'은 우리들의 가슴에 아직도 자국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133면)

 

25. 비록 여름이 아니더라도 저는 책에서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옳게 판단하거나 일머리를 알아 순서있게 처리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139면)

 

26. 지난번 새마을 연수교육 때 본 일이지만, 지식이 너무 많아 가방 속에까지 담아와서 들려주던 안경 낀 교수의 강의가 무력하고 공소한 것임에 반해 빈 손의 작업복으로 그 흔한 졸업장 하나 없는 이가 전해주던 작은 사례담이 뼈 있는 이야기가 되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그런 교수가 될 뻔했던 제 자신을 아찔한 뉘우침으로 돌이켜봅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봅니다. 지식은 책 속이나 서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 속에, 그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140면)

 

27. 항상 생활 속에서 먼저 깨닫기로 하고 독서가 결코 과욕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절제하고 있습니다. (147면)

 

28.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바닥에는, 주관은 궁벽하고 객관은 평정한 것이며,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고의 동굴을 벗어나는 길은 그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155면)

 

29.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헤. 그 여백 있는 생각, 그 유원한 경지가 부럽습니다. (174면)

 

30.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 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177면)

 

31. 스스로 신입자가 되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나는 판에 박은 듯한 소개나 사람의 거죽에 관한 것 대신에, 될 수 있는 한 나의 정신의 변화, 발전 과정을 간추려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내 딴에는 사람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노력의 일단이며, 자위와 변명의 도색을 허락치 않는 제3자의 언어로 표현된 자기를 가져보려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180면)

 

32. 글씨도 그 속에 인생이 들어 있는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어떤 때는 글씨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 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187면)

 

33. 읽을 책이 몇 권 밀리기도 하고 마침 가을이다 싶어 정신 없이 책에 매달리다가, 이러는 것이 잘 보내는 가을이 못됨을 깨닫습니다. 몸 가까이 있는 잡다한 현실을 그 내적 연관에 따라 올바로 이론화해내는 역량은 역시 책 속에서는 적은 분량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가 남의 사고를 반복하는 낭비일 뿐이라는 극언을 수긍할 수야 없지만, 대신 책과 책을 쓰는 모든 창백한 손들의 한계와 파당성은 수시로 상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188면)

 

34. 생각해 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194면)

 

35. 젊은이들의 생각과 경험 속에 깊숙히 들어가는 것이 곧 나의 '사회학'이기도 합니다. (196면)

 

36. 사람들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법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중간에 '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큼직한 가능성, 하나의 희망을 마련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199면)

 

37. 요즈음은 F. 카프카의 현대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문학서적은 고전을, 과학서적은 최신판을 읽으라는 말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보여주는 최근의 놀라운 성과에서 알 수 있듯이, 물질세계의 내포와 외연이 급격히 심화, 확대됨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서의 '과학사상의 확장'은 실로 경이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과학의 발전은 항상 경이의 연속임이 사실이지만 최근의 그것은 기존의 언어와 개념으로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이른바 '사고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는 점에 그 경이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양의 과학사상이 그 기계론적이고 분열된 세계관으로 인하여 한계를 보이자 이제는 동양의 지혜에서 그 철학의 근거를 찾는가 하면, 물리학에 인간의 의식, 즉 '마음'을 포함하기에 이르는 등 소위 '동양적 해방'의 길을 더듬고 있는 현대 물리학의 방향은 우리가 스스로의 세계관을 개선해가는데 극진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01면)

 

38.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를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의 진상을 드러내는 데 유용한 것이라면,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213면)

 

39.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217면)

 

40.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의 서술이라는 특질을 가지며 바로 이러한 특질이 그 극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종내에는 새로운 '앎' -아름다움-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233면)

 

41. 양쪽을 절충하여 '중간은 정당하다'는 논리 속에서 한동안 안주하다가 중간은 '가공의 자리'이며 방관이며, 기회주의이며, 다른 형태의 방황임을 소스라쳐 깨닫고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나던 기억도 없지 않습니다. (237면)

 

42. 감성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239면)

 

43. 인식의 입장피구속성(standortgebundenheit) (248면)

 

44. 불편부당이나 중립을 흔히 높은 덕목으로 치기도 하지만, 바깥 사회와 같은 복잡한 정치적 장치 속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화된 징역 모델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싸울 때의 '중립'이란 실은 중립이 아니라 기회주의라는 더욱 교묘한 편당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55면)

 

45. 생사별리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비약은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곱셈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262면)

 

46.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여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271면)

 

47. 이러한 역사 인식의 방법은 자주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주관주의의 오류에 빠지기 쉽고 따라서 진실성이 유용성으로 흘러버릴 위험을 안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273면)

 

48. 그런데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 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실천, 인식, 재실천, 재인식의 과정을 반복하여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갑니다. (277면)

 

49.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281면)

 

50.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86면)

 

51.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298면)

 

52.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고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대상과 필자의 '관계'라 생각됩니다. 대상과 필자가 어떠한 관계로 연결되는가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깊이 있는 인식이, 또 어떠한 측면이 파악되는가가 결정됩니다. 이를테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 그것은 한마디로 '관계 없음'입니다. 구경이란 말 대신 '관조'라는 좀더 움치있는 어휘로 대치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관조만으로 시작하고 관조만으로서 완결되는 인식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311면)

 

53. 이처럼 대상과 인식 주체가 구별, 격리되어 있는 경우에는 시종 양자의 차이점만이 발견되고 부각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상을 관찰하면 할수록 자기와는 점점 더 다른 무엇으로 나타나고,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리하여 종내에는 대상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기 자신마저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312면)

 

54.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마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315면)

 

55.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이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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