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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에서 함으로 - 베른하르트 푀크르젠과의 대담, 인지생물학의 거장 움베르또 마뚜라나가 선언하는 인지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 다알로고스총서 3
베른하르트 푀르크젠 외 지음, 서창현 옮김 / 갈무리 / 2006년 4월
평점 :
1. 있음에서 함으로의, 대상의 본질에서 그것의 생산과정으로의 재정향(re-orientation)... (푀르크젠, 11면)
2. 그를 매혹시킨 것은, 그리고 그가 탐구하고자 한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을 산출하는, 즉 현실을 앞으로 내어 놓는 바로 그 조건들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단순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그것의 특별한 기원과 발전에 준거할 수 있고, 또 그것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푀르크젠, 11면)
3. 우리는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를 때에는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실수는 현재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수는 나중에 일어난다. (16면)
4. 실수는 잘못이 아니다. 실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량의 실패도 아니다. 실수는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실수는 우리의 ‘함들’의 과정에 대한 성찰로서 발생한다. (16면)
5. 나는 내가 구분했던 모든 것을 발생시킨 과정들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고, 사물들이 어떠한가(본질)를 묻는 대신에 그것들을 발생시킨 과정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으며, 내가 타당하다고 간주했던 대답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기준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책은 물음의 변화에 대한 역사이다. 즉,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어떤 것이란 내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나는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행하는 역사이다. (19면)
6. 나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전환 속에서, 관찰자가 또 다른 초월적 실체들을 설명 및 추론을 위한 도구들로 사용하는 하나의 초월적 실체로서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였던 형이상학적 태도를 버리고 있었으며, 관찰자란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자기 자신의 ‘함들’의 영역을 자기 자신의 모든 성찰을 위한 출발점으로 이용하면서 자기 자신의 구분의 계기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형이상학적 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29면)
7.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 (39면)
8. 말해지는 것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재와 관련해서, 그 것이 존재한다는, 게다가 명백하게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다는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외부의 실재 또는 진리에 접근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39, 40면)
9.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근본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기와 알기를 혼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정말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능력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40면)
10. 이 외부 실재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바로 이 주장이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관념임이 곧바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 주장은 어떤 식으로건 타당한 것으로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절대적 실재를 인식하는(know)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그것의 존재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관찰자와 독립적인’ 준거점의 확실성을 정말이지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철학적 배경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41면)
11. 하지만 내가 ‘말해지는 모든 것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때, 나는 또 다른 핵심적인 질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실재, 진리,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체계를 변화시킵니다. 이 질문은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그리고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외부 실재의 연구와는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관찰자로 작동함으로써 관찰자의 작동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언어 속에 살아감으로써 언어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말함으로써 말하기를 보다 정밀하게 서술하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우리가 접근할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41, 42면)
12. 나는 관찰자를 내 사고의 출발점으로서 이용합니다. 어떠한 존재론적 전제도 두지 않은 채 말입니다. (42면)
13. 관찰자는 자신이 ‘하는’ 것을 ‘합니다.’ 그에게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신념의 문제이지 확실한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42, 43면)
14. 오직 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겠죠. 신은 관찰하지 않고도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43면)
15.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43면)
16. 관찰자와 관찰하기의 작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나는 하나의 연구 주제를 도입하고, 동시에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특징지우려 합니다. (44면)
17. 언어는 감옥이 아닙니다. 언어는 하나의 존재 형식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자 방법입니다. (45면)
18. 심지어 우리는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외부의 관점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거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46면)
19. 오직 구분하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48면)
20. 나는 종종 내 자신을 - 진지하게, 그러나 장난스럽게 - “슈퍼 실재론자”라고 부릅니다. 무수한 동등하게 타당한 실재들의 존재를 믿는 ‘슈퍼 실재론자’라고 말입니다. (53면)
21.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rlRJ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willingness)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54면)
22. 내가 볼 때 ‘관찰하기’란, 자기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데 관련되어 있다는 자각과 함께 언어를 필요로 하는 인간적 작동입니다. (55면)
23. 우리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관찰자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55면)
24. “객관성이란, 관찰하기가 주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의 망상이다. 객관성에 호소하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인기가 있는 것이다.”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 56면)
25. 순환적인 사고가 내 정신의 건전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이해를 증대시켰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59, 60면)
26.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은 작동들입니다. (61면)
27. 우정, 상호존중, 그리고 협력이 나타납니다.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일원 우주(universe)는 다원 우주(multiverse)로 바뀝니다. 이 다원 우주 안에서는 무수한 실재들이 타당성의 다양한 기준에 준거해 타당합니다. (64면)
28. 모든 존재(Being)는 관찰자들의 ‘함’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존재론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설명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는 우리가 결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고 무수한 가능한 실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실재들 가각은 완전히 정당하며 타당합니다. (65면)
29. 그들(나머지 10억 사람들)은 ‘어쩌면’ 괄호 친 타당성의 길을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찰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차이들을 존중할 것이고, 자신들이 진리의 유일한 소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를 즐길 것입니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차이나는 문화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68면)
30. 확실성들이, 그리고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필연적으로 다른 방식의 사고를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말인가요? ... 때때로 나는, 우리가 자신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이 ‘제국주의로의 초대’로 이해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1면)
31. ‘무엇이 사실인지를 모두 알고 있다. 올바른 대답, 올바른 삶의 방식, 참된 신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사람들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위대한 이념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고, 그들을 저속한 범죄자들로부터 구별시켜 줍니다. (72면)
32. 우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그들을 공격합니다. (72면)
33.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선택의 필연성에 직면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며, 가능성들의 무한성을 한계지어야 한다.’ 이것은 실재론자들의 경우에는 쉽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결정할지 명령하는 것이 객관적인 필연성들이라고 간단히 주장할 테이니까요. (73면)
34. 내가 볼 때 관용에 호소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괄호 없는 객관성의 길로 편향된 표현입니다. 관용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당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이미 결정해버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거부와 폄하를 잠깐 동안 연기하고 유예하자고 제안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저 관용하는 사람들은 당분간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74, 75면)
35. 하지만 괄호 친 객관성의 길을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경의를 가지고 대하게 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릴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그들의 실재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75면)
36.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위들을 위한 지반들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초월적 실재나 진리에 호소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행동합니다. (75면)
37. 소위 윤리적 법률과 규범들 조차도 성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의 토대들을 제거하고 복종을 요구합니다.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들은 폭정(tyranny)을 위한 또 하나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78, 79면)
38. 미적인 유혹과 관련해서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일은 거저,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discrepancy)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82면)
39. 외부세계는 신경체계 그 자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바의 유기체의 신경체계 안에 이러한 변화들을 유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부 세계가 자기 자신을 근본적이고, 참된 형태로 신경체계에 전달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이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97면)
40. 이 체계 안의 어떠한 변화도 단지 유발될 뿐이지, 전적으로 외부 세계의 특질들이나 성질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확정되지 않습니다. (98면)
41. 신경체계는 폐쇄적인 체계로서 작동합니다. (99면)
42. 오직 관찰자들만이 내부와 외부, 또는 투입과 산출을 구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내적 과정들 및 유기체에 가해지는 외적 자극의 충격, 또는 역으로 외부 세계에 가하는 유기체의 충격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99면)
43. 결정적인 것은 오직 관찰자만이 한계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2면)
44. 폐쇄(성)는 물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단지 내적 동학의 자기준거적 작용을 특징지울 뿐입니다. (105면)
45. 인지는 관찰자들에 의해 이해되고 확립됩니다. 지식은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의존하는’ 생산물로서 나타납니다. (106면)
46.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것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외적 작용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논평하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속해 있는 섭동들(perturbations)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113면)
47. 선생님의 이런 개념화는 정체성(동일성)과 변화, 안정성과 변형에 대한 고전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군요.... ‘어떤 것이 어떻게 변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48. 선택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나타나는) 최소한 두 개의 다른 상황들을 관찰 및 비교하고, 그런 뒤에 (이러한 상황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의 전망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합니다. (123면)
49.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인 우리가 조화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138면)
50. 타자준거적 체계들의 본질적인 특징은 그것들이 자기들 외부의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52면)
51.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그것은 자기생산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단어인 autos(자기)와 poiein(생산하다, 창조하다)으로 이루어져 있죠. 나는 생명체계를 본질적으로 특징짓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하나의 개념으로 성공적으로 집약시켰습니다. (155면)
52. 나는 니클라스 루만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독일에서 유명하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내 생각들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의 사회현상들의 특징들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출발하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사회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생명체계들의 자기생산이라는 생각보다 선행합니다. 사회는 논쟁의 제1차적인 주제였습니다. 자기생산과 사회체계들은 훨씬 나중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를 분석하는 데에서 나타난 모든 연관된 현상들을 먼저 다루고, 오직 그 다음에 그것들이 자기생산 개념에 의해 보다 자세하게 밝혀질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170, 171면)
53. 문제는 단순합니다. 니클라스 루만이 자기생산 개념을 사회현상들을 설명하는 원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되어야 할 과정들도 사회현상들도 밝히지 못하고 그것들을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71면)
54. 그(니클라스 루만)는 현상들이 유사하다고, 상황들이 비교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옮지 않습니다. (171면)
55. ‘관찰자와 관찰대상, 아는 자와 아는 대상은 분리할 수 없는 통일체(단일체)를 형성한다.’ (227면)
56. 나는 성찰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더 좋아합니다. 경쟁할 필요가 없다면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에 의지할 수 있고, 자기 고유의 기준에 따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책임을 기초로 하여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논문을 더 많이 출간했는지, 승진을 했는지, 고위직을 획득했는지, 더 많은 실험들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에 참여한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작업 기준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그것들을 자신을 위한 적절한 표준 자질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245면)
57. 아웃사이더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특별한 원리들에 의존하라는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성찰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자유롭게 향유합니다. 아웃사이더들은 편견 없이 참여하고, 그래서 자기 앞에 나타나는 것을 지각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사이더들을 뛰어넘는 이점을 그들에게 제공합니다. (252, 253면)
58. 왜냐하면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사람들을 확신시키려 애쓰면 애쓸수록, 너는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는 거야.’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259면)
59.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의 토대들에 대해 성찰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304면)
60. 나는 내 고찰들이 이해하기에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기에 특별히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말하자면, 이해가능성의 문제는, 내 견해로는, 실제로 수용가능성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과 듣거나 읽고 싶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309면)
61.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은 신뢰입니다. (321면)
62.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특징들은 자신과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의 기획과 형태 위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더불어 작업하는 인간들 -시민들-을 포함합니다. (325면)
63. 선생님은 - 합리적인 논증들이 아니라 - 감정들을 본질적으로 결정적인 힘들(forces)ㅇ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요. ... 감정들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모든 것을 감싸는’ 방식으로 변호시키는 사람들은 좀더 면밀한 고찰을 통해, 그들이 사실상 자신들의 기저에 존재하는 감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을 인식합니다. (332면)
64. 내게 인간들은 감정들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할 목적으로 자기의 마음과 합리성을 이용하는 감정적 동물입니다. (332면)
65. 생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334면)
66. 역으로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이번에는 당신이 그들로부터 존중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린이를 신뢰한다면, 그 아이가 이번에는 당신을 신뢰할 것입니다. (3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