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정투쟁 ㅣ 악셀 호네트 선집 1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 이현재 옮김 / 동녘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것이 문화 다원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든 또는 페니미즘의 이론적 자기 이해가 문제될 때이든 간에 항상 하나의 공통된 이상으로 입증된 것은 바로 각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차이’를 인정받아야 한다거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규범적인 생각이다 (Taylor, Multikulturalismus und die Politik der Anerkennung, 1992). 또는 이들이 사회 관계의 도덕 수준이 단지 물질적 재화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주체들이 서로를 어떻게, 무엇으로 인정하고 있느냐 하는 점과도 결부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통찰에 도달했다. 이렇듯 정치적 문제제기에서부터 차츰 도덕 철학적 논의의 소재들이 도출되기 시작했으며, 이 논의의 출발점은 도덕의 규범적 내용을 특정한 상호 인정 형태들과 관련하여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덕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체 사이에 유지되고 있는 제반 관계가 소망스러운 것이냐, 아니면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이냐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한국어판에 부쳐, 5, 6쪽
2. 여기서 제시되는 첫번째 문제점은 근본적 핵심 범주들의 의미 다양성과 관련되어 있다 (페미니즘 윤리, 담화윤리, 공동체주의) 이러한 다양한 사용 방식이 가져오는 두번째 문제점은, 이 각각의 의미에 따라 인정개념의 도덕적 내용도 변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인간의 도덕적 자주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권리와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서술 방식은 사랑이나 가치 부여와 같은 인정 형태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인정’개념의 다양한 의미내용이 각각 특수한 도덕적 관점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이러한 인정 개념의 다양성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는, 도덕적인 것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어떤 통일적 뿌리를 갖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인정 형태 각각의 토대가 되는 도덕적 태도를 근거짓는 문제이기도 하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한국어판에 부쳐, 6, 7쪽
3. 필자는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오늘날만큼 분명하게 인식하지는 못했다. 필자는 규범적 사회이론을 위해 청년 헤겔의 인정모델을 풍부하게 하여 이미 지적된 경향에 대응하려고 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회 운동들이 차츰 다양한 인정 범주를 통해 드러난 도덕적 어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헤겔이 제안했던 구별에 따라 인정이라는 용어를 체계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도덕과 인정의 관계에 핵심이 되는 몇 가지 사항을 구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 관계가 어떤 성질을 갖는지, 다양한 인정 관계가 어떤 형태의 다양한 도덕적 의무를 초래하는지는 여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한국어판에 부쳐, 7쪽
4.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호네트가 궁극적으로 해명하려고 한 점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규범적, 사회적 조건들이다. 이를 통해 호네트는 계몽의 역설을 극복하려 한다. 즉,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이 비판하고 있듯이 인류의 문명화과정이 자연과 자기 자신, 타인에 대한 지배라는 왜곡된 관계를 정착시키는 것으로 전락했다면, 이제 호네트가 밝히려는 삶의 실현 조건은 인간과 자연,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계를 ‘인간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 이러한 삶의 실현조건에 대한 호네트의 테제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의 핵심 저작인 ‘인정투쟁(1992)’에서이다. 호네트의 인정 투쟁 테제는 미드의 사회심리학을 토대로 청년 헤겔의 사유모델에 ‘경험과학적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환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호네트 자신이 ‘권력비판(1985)’에서 서로 대립되는 비판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규정한 바 있던 푸코와 하버마스 이론의 통합이었다. 호네트는 ‘권력비판’에서 푸코의 이론을 ‘투쟁모델’로, 하버마스의 이론을 ‘의사소통모델’로 규정하면서 이 둘을 통해 ‘의사소통적으로 정초된 사회적 투쟁 모델’을 발전시키려 하였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옮긴이의 말, 12쪽
5. 인정투쟁테제의 핵심은 사회적 투쟁이 상호인정이라는 상호주관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주장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 테제는 하버마스와 푸코의 통일을 모색한다. 또한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각 개인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 즉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인정 투쟁 테제는 호네트에게 인간학적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옮긴이의 말, 12쪽
6. 이 세가지 인정관계 (사랑, 법적 권리, 사회적 연대)는 사실 예나 시기 헤겔의 사유 모델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제 곧 이러한 헤겔식의 모델은 미드의 사회심리학을 통해 재정립된다. 호네트가 미드의 사회심리학을 통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기 정체성(Identität)’ 형성 과정이다. 이에 따르면, ‘주격 나(I; Ich)’는 타인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상(Bild)이나 기대를 인지하면서 ‘목적격 나(Me; Mich)’에 대한 심상을 얻게 된다. 따라서 자기 관계는 나에 대한 타인의 관점이 나에게 내면화됨으로써 가능하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옮긴이의 말, 13쪽
7. 그러나 이 관계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또는 기대된 ‘목적격 나’와 대상화되지 않은 어떤 자발성으로서의 ‘주격 나’의 긴장 관계를 전제한다. 미드에게 이 긴장은 특히 ‘사회화과정’과 맞물려 있는 ‘개성화 과정’의 추진력이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규범적 이해, 즉 자기 이해 또는 자기 정체성 역시 이 두 과정의 긴장 속에서 형성된다. 호네트는 바로 이 긴장 관계 속에 ‘인정투쟁’을 엮어 놓는다. 즉, ‘주격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목적격 나’와는 다른 어떤 부분을 인정받으려는 투쟁에 서 있다는 것이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옮긴이의 말, 13쪽
8. 인정과 투쟁의 관계는 인정의 유보나 불인정의 상태를 염두에 둘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자유로운 정서적 욕구의 분출과 충족을 가로막는 신체에 대한 폭행, 법적 권리의 유보나 불인정, 사회적 연대에서의 배제는 해당 당사자에게 ‘무시’나 ‘모욕’으로 이해되며, 이는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일으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투쟁을 추진하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옮긴이의 말, 14쪽
9. 헤겔은 인륜성의 형성 과정을 투쟁의 단계를 거쳐 도덕적 잠재력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명백히 관념론적 전제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곧 연구하게 되겠지만, 이 글에서는 투쟁의 발생이 이성의 객관적인 활동 과정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 정신의 자기 관계가 전개되는 과정… 그러나 경험적으로 지탱될 수 없는 세속화된 이성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해 독일 관념론의 이론적 전제들을 해체하기 시작한 사상적 움직임이 일어나자 헤겔 철학을 뒤에서 엄호해 주던 형이상학적 전제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즉, 헤겔의 철학은 당시까지만 해도 경험적 현실에 대한 검토 없이 자신의 논변을 보호할 수 있는 특허장 역할을 했던 정신이라는 관념론적 개념 토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124면.
10. 개별적인 주체들이 심리적 체험의 세계가 발생하는 순간은, 주체가 행위 수행에서 난점에 봉착함으로써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입증된 자신의 상황 해석이 타당성을 잃어버리고, 단순한 주관적 표상으로 변질되어 여타의 현실로부터 유리될 때이다.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131면.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