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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 표재명 옮김 / 문예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마틴 부버, 나와 너 (표재명 옮김)
1. 근원어 „나-너“는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할 수 있다. 근원어 „나-그것“은 결코 온 존재를 기울여서 말할 수 없다. 나 그 자체란 없으며 오직 근원어 „나-너“의 „나“와 근원어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 (8쪽)
2. 부버는 „경험“을 „나-그것“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체험“을 „나-너“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각주 6)
3. 경험으로서 세계는 근원어 „나-그것“에 속한다. 근원어 „나-너“는 관계의 세계를 세운다. (11쪽)
4. 관계의 세계가 세워지는 세 개의 영역이 있다. 첫째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 둘째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 셋째는 정신적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12쪽)
5. 나무는 결코 인상이 아니다. 나의 표상의 장난도 아니고 기분에 따르는 가치도 아니다. 그것은 나와 마주서서 살아 있으며, 내가 그 나무와 관계를 맺고 있듯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다. 사람은 관계의 의미를 약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관계란 상호적인 것 (Gegenseitigkeit)이기 때문이다. (14쪽)
6. 그리고 기도가 시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기도 안에 있으며, 희생의 제사가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희생의 제사 안에 있듯이, 그리고 그 관계를 거꾸로 하면 현실성이 없어지듯이, 나는 „너“라고 부르는 사람을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을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잡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에 그 사람은 오직 하나의 „그“ 또는 „그 여자“, 하나의 „그것“이지 이미 나의 „너“는 아니다. (16쪽)
7. 내가 „너“라고 부르는 사람을 나는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관계 속에, 거룩한 근원어 속에 산다. 다만 내가 그 관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나는 그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경험이란 „너와의 멀어짐 (Du-Ferne)이다. (16쪽)
8. 예술의 영원한 기원은 한 형태(Gestalt)가 어떤 사람에게 다가와 그를 통하여 작품이 되기를 원한다는 데 있다. (17쪽)
9. 그렇다면 우리는 „너“에 관해서 무엇을 경험하는 것일까? 전혀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너“에 관해서 무엇을 아는 것일까? 오직 전체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 관한 개별적인 것은 하나도 모르니까. (19쪽)
10. „너“는 나와 만난다. 그러나 „너“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들어서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관계란 택함을 받는 것인 동시에 택하는 것이며, 피동인 동시에 능동이다. … 근원어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Alles wirkliche Leben ist Begegnung).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