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성사 3부작 세트 - 전3권
스튜어트 휴즈 지음, 김병익, 김창희, 황문수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1. 지성사란 인간의 사상(thoughts), 즉 합리적 논의 뿐만 아니라 감정(emotions), 즉 격정의 폭발까지도 함께 다루어야 할 학문이다. 쓰고 말하고 또 실제 행동이나 전승을 통하여 나타나는 인간 표현의 모든 영역이 지성사의 대상인 것이다. (13면)




2. 학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유혹인데 복잡다단한 자료에다 자신의 산뜻한 사상유형을 뜯어 맞추려는 욕심이 그것이다. (16면)




3. 그것은 저자 마르크스의 강렬한 개성과 자기 주장이 옮다는 데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 때문에 너무나도 이질적인 철학적 사회적 제요소를 불길 같은 종합의 용광로 속에 용해시켜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65면)




4. 사회주의의 성서라고 할 자본론이 모든 성서가 갖는 특성, 즉 애매모호성을 최고도로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해진다. (74면)




5. 역사적으로 볼 때 이른바 인민의 지도자란 현실적 권력으로부터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느낀 매우 유능한 불만분자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대혁명은 신엘리트가 구엘리트를 몰아내려는 투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때 인민은 엘리트에 봉사하는 가엾은 병사였다. 이들 인민은 스스로 “그들이 정의요, 자유요, 인간성이라 부른 바로 그것”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인민의 지도자들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성실하게’ 상상하였다. 그러나 그 진실한 목적은 신 엘리트의 계급적 이익 또는 개인적 이익이었다. 그러므로 파레토는 ‘자본’과 ‘노동’간 투쟁의 종말이 곧 넓은 의미의 계급투쟁의 종말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 결론지었다. 공산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사회투쟁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즉 “사회주의 국가의 각종 노동자 간에, 지식인과 비지식인 간에, 정치가와 정치가 간에, 정치가와 피통치자 간에 그리고 개혁파와 보수파 간에 투쟁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사회주의의 묵시록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75면)




6. 비록 법칙에 관한 지식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밝은 빛을 비추어 줄지 몰라도 지각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81면)




7. 소렐: 바른 판단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운동에 투신하고 그에 대한 지적 공감을 얻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물의 밑바닥에 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86면)




8. 많은 독창적 사상가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자신을 어떤 훌륭한 철학적 가계에다 집어넣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3류사상가에게나 필요한 일이었다. 연구의 어떤 점에 다다르면 일류는 의례 체계적 연구에 참지 못하는 법이었다. (95면)




9. 프로이트; 그 핵심적 주장은 꿈의 해석은 마음의 무의식적 활동에 관한 지식에 이르는 왕도이다. (116면)




10. ‘문화란 문화를 권력과 압재의 수단으로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자에 의해 저항하는 다수자에게 강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프로이드는 쓰고 있다. (119면)




11. 초기에 프로이드는 인간 심리 속에 현실원칙(reality-principle)과 쾌락원칙(pleasure-principle)이 있다고 가정하고 양자의 주도권 싸움이 에고(ego)와 이드(id)의 투쟁이라 보았다. 전자는 의식적으로 형성된 인격(consciously formed personality)을 말하며 후자는 인간의 야성적인 욕망이 아직 미분화된 부도덕한 심리영역을 말한다. 분명히 문명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에고가 이드를 억제하여야 하며 현실원칙이 쾌락원칙을 지배하여야 한다. 더욱이 이 양자의 투쟁 속에서 수퍼 에고(super ego, 초자아)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죄의 현주소요 아버지를 내면화한 가치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이 슈퍼 에고가 문명 형성의 주동력인 것처럼 보인다. (128면, 129면)




12. 왜냐하면 그(프로이드)의 기본명제는 진리의 탐구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되며 지식만이 이성을 가능케 하고 이성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131면)




13. 칼 쿠스타브 융은 베르그송과 프로이트가 만나는 꼭 중간점이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개념을 일반화하여 삶의 에너지의 충일이라 재정의하고 또 거기서 프로이트가 부여한 성적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융은 리비도를 베르그송의 삶의 비약과 동일시하였다. (133면)




14. 독일 사회 과학의 전통이 그 형이상학적 사변에의 기호와 정신에의 탐닉으로 말미암아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245면)




15. 그러나 그(베버)의 모든 사상과 생활은 역사적 사고로 충만되어 있었다. 법률학도 경제학처럼 독일에서는 역사적 학문으로서 가르쳐지고 있었다. 사회학도 또한 같았다. (246면)




16. 그(베버)의 모든 관심이 하나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 즉, 서구사회에 있어서의 합리성(rationality)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45면) ... 이제 그(베버)는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에 있어서 가장 골치아프고 어려운 문제 - 사회과학 자체의 철학과 바업론의 문제 -에 전념하게 되었다. (251면)




17. 가치판단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것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 윤리적 또는 실제적 규범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적 지지를 포기함으로써 - 베버는 리케르트와 갈라지고 딜타이가 사는 희미한 상대주의의 세계로 접근해 갔다. 이리하여 그는 상호조건화(mutual conditioning)의 세계에 종착하였다. (259면)




18. 사회적 문화적 세계에 있어서는 고정된 실재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발견하였다. 모든 확실한 것은 인간이 윤리적 문화적 가치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 가치의 기원과 의미는 신비의 장막에 싸여 있다. (259면)




19. 불교와 힌두교에는 없는 것, 합리 지향적 상업활동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촉진하는 윤리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269면)




20. 만일 그가 산상의 ...의 ‘궁극적 목적이 윤리’를 택한다면 그 사람은 속세에 참여할 수 없다. 이 윤리는 오로지 성인에게만 적합한 윤리다. 그러므로 행동의 실제적 결과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공공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결심했다면 그는 ‘책임의 윤리’(ethic of responsibility)를 지게 되며 이 윤리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도덕기준과 어긋날지 모른다. (2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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