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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평점 :
1. 이 책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당연시되는 구조적 및 인지적 맥락을 밝히고, 이 위험천만한 풍요의 시대를 안전과 평화의 시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추구한다. (역자서문, 6면)
2. 본래 위험(Risk)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스페인의 항해술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 위험을 감수하다, 암초를 뚫고 나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로부터 위험이란 부를 얻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난관이라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이자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역자서문, 6면)
3. 그러나 그 같은 ‘낭만의 시대’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 그와 동시에 위험은 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우연적 난관에서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정상적 개연성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부의 추구와 그 분배의 문제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우연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겼던 산업사회가 그 정점에서 맞이하게 된 것은 구조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험사회’이다. (역자서문, 7면)
4. 선진화된 근대성에서는 부의 사회적 생산에 위험의 사회적 생산이 체계적으로 수반된다. 따라서 결핍사회의 분배의 문제들 및 갈등은 기술-과학적으로 생산된 위험의 생산, 정의, 분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및 갈등과 중첩된다. (52면)
5. 체계적으로 말하자면 시간 차는 있을지라도 근대화가 지속되는 중에 ‘부를 분배하는’ 사회의 사회적 지위와 갈등은 ‘위험을 분배하는’ 사회의 그것들과 결합되기 시작한다. (54면)
6. 우리는 아직 위험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더 이상 결핍사회의 분배갈등 내에서만 살아가지도 않는다. (54면)
7. 오늘날의 문명이 낳은 위험들은 분명히 인지되지 않으며 (식료품에 포함된 유독물질이나 핵 위협과 같이) 물리-화학적 공식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다. ... 오늘날의 위해들은 산업적 과잉생산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55면)
8. 이것은 이제까지 과학과 법에 의해 확립되어 온 위험의 산정방법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56면)
9. 이 위험은 지식 내부에서 변화될 수 있고, 과장될 수 있고, 각색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그만큼 이 위험은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구성될 소지를 특히 많이 지니고 있다. 이로부터 대중매체 및 위험을 정의할 책임을 지고 있는 과학 전문가와 법 전문가가 핵심적인 사회-정치적 지위집단이 된다. (57면)
10. 승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화의 위험은 거대한 사업거리이다. 위험은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찾아 온 탐욕스러운 수요이다. (58면)
11. 루만(Luhmann)을 따르자면 위험의 도래와 함께 경제는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무관하게 ‘자기연관적’으로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8면)
12. 사람들은 부를 소유할 수 있지만 위험에 의해서는 단지 영향받을 수 있을 뿐이다. (59면)
13. 계급과 계급지위에서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반면에, 위험지위에서는 의식(지식)이 존재를 규정한다. (59면, 103면)
14. 위험의 위해성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과학의 합리성 주장은 그 자체가 영원한 논박 대상이다. (67면)
15. 위험에 대한 토론을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진행하려면 도덕적 관점을 전제해야만 한다. (67면)
16. 핵발전소의 안전에 관한 연구들은 발생가능한 사고에 기초하여 특정한 수량화할 수 있는 위험들의 평가로 제한되고 있다. 위해의 차원들은 처음부터 기술적 관리가능성으로 한정된다. 몇몇 과학자 모임들은 아직 기술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위험은 적어도 과학적 산정이나 법률적 산정의 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67면)
17. 다른 말로 하면 위험 논의에서 명확해지는 것은 문명의 위대한 잠재력을 다루는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 사이의 균열과 격차이다. 양자는 서로의 능력범위를 넘어서서 이야기한다. 사회운동은 위험 기술자들이 전혀 답하지 않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기술자들은 실제로 질문한 요점과 대중이 우려하고 있는 문제점을 놓친 답변을 제시한다.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은 실제로 분리되지만, 동시에 서로 결합되며 의존한다. 엄격히 말해서 이 같은 구분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마치 위험에 관한 사회적 논의와 인식이 과학적 논쟁에 의존하는 것처럼, 산업발전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관심은 사실상 사회적 기대와 가치평가에 의존한다. (68면)
18. 유명한 문귀를 빌어서 말하자면,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며,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 (69면)
19. 위험의식의 중심은 현재에 있지 않으며 미래에 있다. 위험사회에서 과거는 현재에 대한 규정력을 상실한다. 그 자리는 미래가 차지하며, 존재하지 않으며 고안된 가공의 무엇이 현재의 경험과 행동의 ‘원인’으로서 등장한다. 내일과 모레의 문제와 위기를 예방하고 약화시키거나 주의하기 위해, 또는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 행동하게 된다. (74면)
20. 위험분배의 역사는 부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이다. 즉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그런 만큼 위험은 계급사회를 폐지하지 않고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빈곤은 불행하게도 위험을 만연시킨다. 그와 반대로 (수입, 권력 또는 교육의 면에서) 부자는 위험으로부터의 안전과 자유를 사들일 수 있다. (75면)
21.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 객관적으로 위험은 그 범위 내부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등화 효과를 보여 준다. 위험이 새로운 정치력을 갖게 되는 것은 정확히 그 같은 효과 안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위험사회는 정확히 계급사회가 아니다. 위험사회의 위험지위는 계급지위로 이해될 수 없다. 또는 그 갈등은 계급갈등으로 이해될 수 없다. (77면)
22. 조만간 위험은 위험을 생산하거나 위험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도 따라잡을 것이다. 위험은 사회적 부메랑 효과를 보이면서 확산된다. 즉 부자나 권력자들도 그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78면)
23. 비료와 화학물질의 사용에 비교하여 산출량의 상당히 적은 증대는 자연의 파괴가 대단히 크게 진행되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는 데, 농부는 그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이처럼 경계해야 할 발전의 두드러진 지표는 많은 야생 동식물 종의 뚜렷한 감소이다. (79면)
24. 이처럼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차효과’가 그 원인인 생산의 본거지 자체를 위험하게 하는 볼 수 있는 일차효과가 되고 있다. 근대화 위험의 생산에는 부메랑 곡선이 따른다. (79면)
25. 부메랑 효과는 개별 자원들을 직접 공격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평등주의적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80면)
26. 산업적 위험과 파괴는 국경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83면)
27. 동시에 위험을 규정하는 ‘관리’도구들이 날을 갈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도끼날이 허공을 가르고 있다. 위험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괜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그리고 위험의 생산자라는 중상을 받게 된다. 그들이 제시한 위해는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 위해가 인간과 동물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그들의 실증은 ‘엉뚱할 정도로 과장된’ 것으로 취급된다. 현재 상황이 어떠하며 취해야 할 적합한 조치는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히 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연구가 행해져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과학에 대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비합리주의’로 낙인찍힌다. (91, 92면)
28. 위험은 더 이상 기회의 어두운 면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기회이다. 위험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위험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과 그로부터 이윤을 얻는 사람들 간의 적대감이 발전한다. 지식의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이 비슷하게 커가며, 그와 함께 지식을 구성하고(과학과 연구) 퍼뜨리는(대중매체) 미디어에 대한 권력이 커진다. 위험사회는 이런 점에서 과학과 미디어와 정보사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운 적대는 위험의 정의를 생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93면)
29. 계급사회가 국민국가로 조직될 수 있다면, 위험사회는 궁극적으로 국제연합(UN) 내에서만 구성될 수 있는 ‘위난공동체’를 낳는다. (95면)
30. 계급사회는 그 발전동학에서 (‘기회의 평등’에서 사회주의적 사회모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형성되는) 평등의 이상과 계속해서 관련을 맺는다. 위험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 기초이자 원동력인 규범은 안전(safety)이다. ‘불평등한’ 사회의 가치체계의 자리는 ‘불안한’ 사회의 가치체계로 대체된다. 평등의 유토피아가 사회변화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로서 부를 포함한다면, 위험사회의 유토피아는 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지닌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것을 획득하는 데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그보다는 최악의 것을 예방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97면)
31. 계급사회의 동력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배고프다! 다른 한편 위험사회에서 작동하는 운동은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나는 두렵다! 불안(anxiety)의 공동성이 필요의 공동성의 자리를 차지한다. (98면)
32. 한때 부의 원천으로 상찬되었던 것들(원자력, 화학, 유전자 기술 등)이 예측할 수 없는 위난의 원천으로 변천된다. (101면)
33. 위험은 지식의 위험이기 때문에 위험의 인식과 위험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107면)
34. 위험의 정의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고 우연히 고안될 수 있으며 끝없이 재생산될 수 있다. 따라서 위험사회의 승리와 함께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새로운 수준에 오르게 된다. 상품생산의 준거점으로서 미리 주어지며 조작가능한 수요가 누렸던 지위가 자가생산할 수 있는 위험으로 양도된다. (108면)
35. 위험에 관한 과학적 조사는 어디서나 환경과 진보와 문화의 전망에서 산업체계에 대해 가하는 사회비판의 뒤를 절름거리며 따라간다. 이런 의미에서 위험에 관한 기술-과학적 관심에는 언제나 개종자의 드러내지 않는 문화비판적 열망이 상당한 정도로 포함되어 있다. 위험 인식의 합리성을 독점하려는 공학 측의 주장은 루터교로 개종한 교황이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111, 112면)
36. 나의 명제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비판의 기원은 비평가의 ‘비합리성’이 아니라, 성장하는 문명의 위험과 위협에 직면한 기술-과학적 합리성의 실패에 있다는 것이다. 이 실패는 그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문제이며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112면)
37. 과학은 결코 문명의 위험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이 바로 그 위험의 기원과 성장에 주도적으로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112면)
38. 위험의 생산과 그에 대한 오해는 기술-과학적 합리성을 마치 외눈박이 거인처럼 경제적으로만 추구하는 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외눈박이 거인의 눈은 생산성의 향상만을 본다. 이 때문에 이 거인의 눈도 체계적으로 형성된 위험에 대한 맹목성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114면)
39. 과학은 과잉전문화의 체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 위험은 전문화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29면)
40. 여기서 목표집단으 새로운 자율성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가능한 과학적 해석의 저발전이 아니라 그 분화와 극복잡성에 기초하고 있다. ... 이러한 자율화 경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는 무엇보다도 지식원천의 특수한 다원화와 그에 대한 방법론의 비판적인 성찰이다. (273면)
41. 위험의 비판은 규범적인 가치비판이 아니다. 바로 전통과 가치가 악화된 곳에서 위험은 태동한다. 비판의 기초는 과거의 전통보다는 미래의 위협이다. (2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