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을 위한 투쟁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5
헤르만 칸토로비츠 지음, 윤철홍 옮김 / 책세상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1906년 2월에 하이델베르크에서는 플라비우스Gnaeus Flavius라는 가명의 법학자가 쓴 ‘법학을 위한 투쟁’이 발간되었다. 발간되자마자 이 책은 독일 법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주류 법학을 이루고 있던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ce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투쟁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역자서문, 10면)




2. 자유법은 국가 제정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법 발견freie Rechtsfindung'과 법창조’Rechtschoefung'을 통해 제정법의 흠결을 보충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자유법 운동은 제정법에서 법관을 해방시키는 운동인 동시에 법의 완결성과 형식 논리에서 법학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다. 이러한 자유법 운동은 19세기 중반에 법률실무가로 활동했던 키르히만Julis Heinrich von Kirchmann의 선구적인 이론과 이 책 이후에 나오는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에를리히Eugen Ehrlic나 독일의 판사 푹스Ernst Fuchs의 이론들과 결합되어 완성도가 높아졌으며, 후대의 법사회학을 통해 이론적으로 보완되었다. (역자서문, 11면)




3. 해석법학에 매몰되어 법학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우리 법학계에 100년 전에 제기되었던 살아있는, 자유로운 법의 발견 내지 창조가 역설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마래 오늘날 한국의 해석법학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법철학적 또는 법사회학적 방법론을 등한시하고 있는 점에 기인한 바가 크다. (역자서문, 13면)




4. 법학에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자신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이상과 최고로 잘 조화된다고 믿고 있는 모든 법학자에게 자각을 촉구한다. 이 운동은 이러한 망상을 꿰뚫어 보고, (이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또한 이 운동은 새롭고도, 다소 겸손한 이상의 빛 속에서 우리의 모든 항구적인 행동, 즉 법의 창조를 우리 스스로에게 정당화시키기에 이르렀다. (17면)




5. 지배적이고 전형적인 법률가상이 여기 있다. 대학 교육받은 국가기관의 한 고위 관료는, 단지 사고하는 기계Denkmaschine로, 그러나 가장 완벽한 형식의 사고하는 기계로 무장한 채 직무실에 앉아 있다. 그의 유일한 가구는 그의 앞에 국가법전이 놓여 있는 녹색 책상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떠한 사건을 의뢰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거나 혹은 가상의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무에 합당하게 순수한 논리적 작업과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을 가지고서 입법자가 법전 속에 미리 정해놓은 결정을 고도로 정확하게 증명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21면)




6. 결국 법률은 자유법으로부터 자기 완결적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그의 흠결을 보충해야만한다. 여기서 우리는 실정법의 무흠결성Lueckenlosigkeit에 관한 도그마에 부딪치게 된다. 이 도그마는 유명한 프랑스 민법 제4조에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법의 흠결, 불명확, 불충분을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는 법관은 재판 거부죄로 소추될 수 있다.’ (32, 33면)




7. 우리는 우선 어렵고도,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는 문제, 즉 자유법이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해결책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지의 여부를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더 나아가 가령 자유법이 항상 인식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해결책이 결코 하나의 보편적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실할 수는 없다. 반대로 어느 누구도 인간은 다양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듯이 우리의 차별성은, 특히 그것이 삶의 가치의 우월 평가에 관계되는 한, 적어도 일부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결 속에서 반영되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35면)




8. 학문은 법의 흠결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40면)




9. 지금 법학에 주어진 과제는 더 커졌고, 오만한 것이 되어 버렸다. 법학은 스스로 공동체법을 발견하고 이를 적용하는 곳에서 ‘자유로운 법의 발견’을 실천하고 있다. 법학은 스스로 개인법을 창출해 내고, 그에게 효력을 부여한 곳에서는 자유로운 법창조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40면)




10. 법학은 항상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불가능한 과제를 떠맡아왔으며, 항상 열쇠 몇 개로 모든 성의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해왔다. 그에 따라 (그것이 불가능해지면) 때로는 곁쇠를 잡거나, 때로는 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48면)




11. 개념법학은 역사법학파의 창조물이다. 그래서 개념법학은 자연법의 형이상학을 확실히 극복했으나, 자연법의 방법론 앞에서는 무조건 바로 포기해 버렸다. 여기서 우리의 운동은 역사학파의 화려한 출발에서부터 버림받았던 유산들에게 접근해간다. (55면)




12. 오늘날 법해석학과 정통주의 신학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이 눈에 띈다. 신학에서는 한느님, 법학에서는 ‘입법자’, 이 둘은 경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의 의도는 세속적인 군중에게는 보이지 않으나 오직 불명확하게만 알려져 있다. 신학자들과 법률가들 중 특권화된 계급만이 그들의 계시를 중개한다. 그들은 각각 하느님과 입법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종교와 법으로 승인되는 것을 원하는 그들의 의지가 억지 주장되는 것이다. (59면)




13. 간단히 말하면, 합법성, 수동성, 학문성, 법적 안정성, 객관성이라는 이상들은 새로운 운동과는 합치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요청들은 부분적으로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64, 65면)




14. 오로지 소수의 조문들로 구성된 엄격한 규칙이 깨져서 자유법의 충만함이 모든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 그에 합당한 규칙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는 곳, 즉 자유Freiheit,가 있는 곳에서만 정의가 존재한다. 오로지 비생산적인 사소함 대신에 창조적 의지가 새로운 사상을 탄생시키는 곳, 즉 ,인격Persoenlichkeit이 있는 곳에서만 정의가 존재한다. 오로지 한 권의 책에서 생활 속으로 방향을 돌린 행동의 관점이 가장 먼 미래의 결과와 조건들을 평가하는 곳, 즉 오직 지혜Weisheit가 있는 곳에서만 - 정의가 존재한다. (75면)




15. 용기 없는 모든 자를 구원하기 위해, 오늘날의 자부심인 자유심증주의Freie Beweiswueridigung가 고문의 잔재에서 개가를 올리며 일어나고 있다. 모든 불명확한 것을 대체하기 위해 미래의 자부심인 자유로운 법의 창조Freie Rechtsschoepfung가 해석학의 잔재에서 떠오르게 될 것이다. (80, 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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