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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의 길잡이
호세 욤파르트 지음, 정종휴 옮김 / 경세원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1. 형이상학(metaphysics)라는 그리스말의 원래의 뜻은 ‘현상을 넘어 사물을 생각한다’ 또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현상 내지 눈에 보이는 것=physica와 그 너머에 있는=meta를 모두 합치면=meta ta physica=metaphysics). (22면)
2. 법학이란 로마사람들에게는 법률을 아는 것(법에 관한 지식)이기 보다 ‘법에 관한 현명한 사려’라는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라틴어로 하자면 Juris-Prudentia 이 말에서 영어의 Jurisprudence가 만들어졌습니다). (24면)
3.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룰을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법에 관한 현명한 사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7면)
4.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544-501 BC)라는 학자는 물건의 변화는 일체 있을 수 없으며, 만물은 불생불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서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4-501 BC)는 끝없이 변화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7면)
5. 레온티의 고르기아스(Gorgias, 483-376 BC)는 급진적 상대주의자로서, 그에 의하면 1)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2) 혹 뭔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해도 우리들은 그것을 알 수 없으며, 3) 무엇인가를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법에 관해서 법은 다만 최강자의 힘과 권리라고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38면)
6. 플라톤은 나아가 영혼에 관한 것으로서 이성, 의지, 욕정을 구별하여 이 셋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주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상을 모델로 하여 덕은 혼의 건강과 같은 것이며, 삼원덕으로서 지혜, 용기와 절제가 있고, 이 세 가지의 조화로서 정의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43면)
7. 이와 같이 생각하면 국가, 사회(폴리스)를 이루는 사람들은 3종류가 있음과 동시에 그 사명도 3종류가 있습니다. 즉 지혜에 찬 철인, 용기에 찬 전사와 절도가 요구되는 생산자 등입니다. 이들 각각은 타인을 지휘할 것, 국가를 지킬 것, 생산을 할 것이라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함으로써 사회정의가 이루어진다고 플라톤은 주장했습니다. (43면)
8. 고대 그리스 학자가 가장 이른 시기에 문제삼았던 것은 사물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변화하는 것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사물의 본질은 변화에만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46면)
9. 이루어진 것에 역시 목적 지향성이 있으므로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엔텔레키아’라 부르고 있습니다. (‘테로스’는 목적이라는 것). (46면)
10. 인간의 목적은 행복(eudaimonia)에 있고, 이것을 얻는 방법은 덕을 연마하는 것에만 있다고 보았습니다. 선이란,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있는 목적(telos)에 따라 행위하는 것입니다. (47면)
11. 법의 일반적인 규정을 개별적인 케이스에서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이 형평의 역할이고, 따라서 형평은 일반규정인 법의 보정, 또는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7면)
12. 키케로는 자연법을 시간을 초월하고(불변적) 공간을 뛰어넘는(보편적)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은 이 법의 창조자요 공포자이며, 또한 이를 집행하는 재판관으로 보았습니다. (50면)
13. 근대에 들어와 이른바 사회계약론이 유명해졌습니다. 이 사상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제3권 제8장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의 왕에게 복종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일반 계약이다.” (58면)
14. 중세의 유명론자가 문제로 삼은 것은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개념’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견으로는 우리가 개별적 개념을 구사할 때는 현실의 세계에도 mro 내용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예를 들면 욤파르트라는 개인, 또는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 그러나 보편적 개념(인간 그 자체, 대학 그 자체)은 존재하는 세계 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종류의 개념은 현실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 명사, 또는 공허한 음성에 지나지 않고, 학문적으로 어떠한 가치도 갖지 않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이 견해는 유명론(Nominalismus, 영어로는 Nominalism=only a name)이라 불립니다. (67, 68면)
15. 개별성은 의지의 작용에 이어지는 것이므로 보편성을 거부하는 유명론은 아무래도 주의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8면)
16. 스코투스와 오컴은 신학의 이론에서는 입법자는 신이라 했으나 신을 보편의 인간인 입법자로 바꿔놓으면, 이 학설들은 근대의 법실증주의와 마찬가지로 됩니다. 즉 법철학적으로 또 법사상적으로 유명론에서 근대 법실증주의가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70면)
17. 영미에서나 유럽대륙, 특히 독일에서 19세기의 법학자와 법철학자들은 스스로 법실증주의라 언명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인기없는 자연법론을 거부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114면)
18. 이 시대의 독일 법학자들은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그 대신에 일반법이론(allgemeine Rechtslehre)이라는 명칭으로 법철학에 속하는 또는 법철학에 관계있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법의 효력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법의 구속력과 의무지우는 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가 그 주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법의 효력은 (중세처럼) 종국적으로 신에 기한 것도 아니며, 동시에 법은 (오스틴이나 니체가 말했듯이) 단순한 힘도 아니라 했고, 법의 효력과 구속력은 법률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승인이라는 사실로 설명하였습니다. (115면)
19. 생각건대 이와 같은 승인설은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법(도덕에 대한)의 승인은 법의 실효성, 법의 관철가능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조건입니다. 그러나 법의 구속력의 궁극적 근거, 즉 ‘무엇 때문에’ 법과 그 내용을 승인하는가라는 문제에 관해 승인설은 심리학적 설명만을 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승인이라는 사실이 내용의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법의 효력의 설명으로서는 불충분합니다. 결국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예컨대 독일의 나치정권도 당시 그 나라에서 사실상 일반적으로 승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며, 정당한가 어떤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승인설은 법실증주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116면)
20. 칸트에 따르면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사물을 바르게 인식한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률의 내용도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이라는 기준으로부터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칸트주의자의 설명대로라면 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인식(Erkenntnis)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고작 신념(Bekenntnis)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117면)
21.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에 기하여 보편적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상형(Idealtypen)에서 그 현상에 의의(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문화과학의 목적과 내용은 이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19면)
22. 베버는 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당한 질서(legitime Ordnung)의 문제라 하고 그 정당한 질서에는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각 규정의 내용이며 그것은 일정한 원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규정이 일정한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119면)
23. 법사회학의 영향은 법철학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법철학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0면)
24. 이 학파(마르부르크 학파)의 사람들은 인식을 규정하는 것은 객체가 아니라, 반대로 대상이 방법에 의해 만들어지고 규정되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칸트적인 발상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122면)
25. 가치는 타당(gelten)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치 무관계적(wertindifferent)인 자연과학과는 달리, 문화과학은 가치관계적(wertbeziehend)이기 때문입니다. (123면)
26. 일반성에의 고려는 ‘자연’을 의미하고 특수성, 개별성에의 고려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123면)
27. 사비니는 입법자의 자의적인 권능을 부정했지만 또 한편으로 역사를 초월하는 것은 인정치 않아 자연법론을 거부하고 법실증주의의 승리를 촉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비니에 대해서는 그가 로마법만을 중시한 나머지 그다지 역사적인 사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24면)
28.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입법자는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입법자는 개념을 정확히 한계지울 수는 있어도 내용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124면)
29. 현실의 세계에서 현실과 가치가 무관한 것은 아니나 라드브루흐에 의하면 학문적으로 생각할 경우 혹 어떤 문제가 가치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가치에 의해서만 근거지워질 수 있습니다. 만약 사실의 문제라면 이것은 다른 사실에 의해서만 근거지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방법론적으로 이 두 개의 차원을 혼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술한 방법이원론의 근본주의입니다. (125면)
30. 그러나 근본규범은 모든 법규정의 효력근거(Geltungsgrund)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법규정에 효력의 내용(Geltungsinhalt)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132면)
31. 먼저 순수법학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법’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고상으로는 규범을 ‘존재’의 세계로부터 떼어낼 수 있고 각 규범으로부터 그 구체적인 내용을 떼어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와 같은 순수규범(법)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말하자면 ‘pure law is poor law' (순수법은 빈약한 법)입니다. (132면)
32. 켈젠이 주장한 근본규범에도 커다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첫째, 이 근본규범은 순수하게 가설적인 것이므로 현재 존재하는 법(현행법)에 효력의 근거를 줄 수는 없습니다. 둘째, 켈젠은 순수법학이 형이상학이나 자연법론이 아니라 실정법의 이론임을 강조하지만 이 근본규범은 실정법이지 않기 때문에 순수법학은 형이상학이 되어 그의 주장과 서로 모순됩니다. 사실상 켈젠 자신도 이와 같은 근본규범을 ‘초극적, 논리적 자연법’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하고 있으므로 이 모순은 명백합니다. (132, 133면)
33. 자연법론의 역사로부터 남겨진 불변의 진리는 자연법이라는 명칭 속의 최초의 부분, 즉 자연이 아니라 마지막 부분, 즉 법 그 자체 당위 그 자체의 관념이며, 절대적으로 의무지워져 있다는 요소가 됩니다. (137면)
34. 약간의 불변, 보편의 원칙을 전제로 하면서 법의 역사성도 고려하는 자연법도 있을 수 있음을 벨첼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연, 본성 개념의 남용에 대한 벨첼의 비판은 참으로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모든 자연법은 틀렸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138면)
35. 분석법학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법개념의 의미내용이며 이것은 법적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139면)
36. 법의 효력에 대한 설명(효력이란 무엇인가)과 그 근거(이 효력은 어디서 오는가)는 법철학의 중심적인 주제입니다. (183면)
37. 가치철학자는 객관적인 가치가 있음을 부동의 전제로 삼고서, 이로써 법의 효력의 근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치철학의 시도는 가치는 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이유에서 비판했습니다. (1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