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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2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원봉 옮김 / 책세상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경험이라는 근거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철학은 경험적인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고, 반면에 오직 선험적a priori 원칙들로만 가르침을 제시하는 모든 철학은 순수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순수한 철학이 단지 형식적이기만 하다면 논리학이라고 한다. 반면에 지성Verstand의 특정한 대상들에 한정된다면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16면)
2.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말라’는 금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이성적인 존재들은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해도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이성적인 존재 모두에게 적용된다), 원래 도덕 법칙이라고 하는 그 외 모든 것들도 그렇다. 따라서 여기서 구속력의 근거는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을 포함하고 있는 세상의 형편 안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순수한 이성의 개념들 안에서 선험적으로 찾아져야만 한다. 오직 경험에서 나온 원칙에 근거한 다른 모든 지시는, 더 나아가 어떤 점에서는 보편적이기도 한 지시는, 그것이 아주 작은 부분, 즉 단 하나의 동인이라도 경험적인 근거에 몸을 맡기는 한 실용적 규칙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결코 도덕 법칙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18면)
3. 그리고 인간에게 적용될 때, 도덕 철학은 인간에 대한 지식(인간학)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빌려오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법칙을 준다. (18면)
4. 순수하고 참된(이것이야말로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다) 도덕법칙은 오직 순수한 철학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순수한 철학(형이상학)이 먼저 와야 하고, 그것 없이는 어떠한 도덕 철학도 있을 수 없다. 순수한 원칙에 경험적인 원칙을 섞는 것은 철학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하지 못하고(철학이 평범한 이성 인식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평범한 이성 인식이 뒤죽박죽으로 파악한 것을 철학은 정돈된 학문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하물며 도덕 철학이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다. (20면)
5. 왜냐하면 도덕 형이상학은 가능한 순수한 의지의 이념과 원칙들을 탐구해야지, 인간이기 때문에 ‘하려고 하는’ 행위와 조건들을 탐구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은 대부분 심리학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 21면)
6.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8면)
7. 그러므로 의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 법칙 뿐이고, 주관적으로는 이런 실천적 법칙에 대한 존경심, 따라서 나의 모든 경향성을 버리더라도 그 법칙을 따르겠다는 준칙Maxime 뿐이다. (39면)
8. 도덕법칙이란 이성적인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덕 법칙을 이성적 존재 일반이라는 보편적 개념에서 이끌어 내고, 그렇게 해서 (이성적 존재 가운데 특별히) 인간에게 응용하려면 (도덕 형이상학과 달리) 인간학을 필요로 하게 될 모든 도덕을, 마침내 인간학에 의지하지 않고 순수한 철학으로, 즉 형이상학으로 완전하게 제시하는 것이 (이러한 종류의 완전히 분리된 인식(형이상학)에서는 완전하게 제시하는 것이 쉽다) 또 이론적으로 대단히 필요하고 실천적으로 중요하다. (57면)
9. 자연의 모든 것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오직 이성적인 존재만이 법칙에 대한 표상에 따라, 즉 원칙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을 갖는데 이것이 의지이다. 행위를 법칙에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법칙에 따라 행위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의지는 바로 실천적 이성인 것이다. 이성이 의지를 불가피하게 결정한다면(의지가 항상 이성을 따른다면), 그러한 존재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인식되며 또한 주관적으로도 필연적이다. (58면)
10. 객관적 원칙에 대한 표상이 의지를 강제하는 한(객관적 법칙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법칙에 따라 행위하게 된다면) 그 표상을 (이성의) 명령이라고 부르고, 그 명령의 표현 양식을 명령법이라고 부른다. (59면)
11. 모든 명령법은 가언적(조건적)이거나 아니면 정언적(무조건적)으로 명령한다. 가언적 명령법은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가 달성하려고 하는(또는 달성하고 싶다고 바랄 수 있는) 다른 어떤 행위를 이루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언적 명령법은 행위를 그 자체로서 다른 목적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명령법일 것이다. (60면)
12. 그래서 그 행위가 단지 다른 것에 대해 수단으로서만 선하다면 그 명령법은 가언적이다. (반면에) 그 행위가 그 자체로 선하다고 생각되고, 따라서 스스로 이성을 따르믄 의지에 필연적인 것으로, 그 의지의 원칙으로 생각된다면 그 명령법은 정언적이다. (61면)
13. 의지는 어떤 법칙에 대한 표상에 맞춰 행동하도록 자신을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이성적 존재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81면)
14. 칸트는 자신의 이론 철학에서 이성의 법칙이 우리가 세계 안에서 찾아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세계에 부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사고 방식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칸트의 이런 사상은 실천 철학에서 ‘자율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칸트 이전의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성의 원칙을, 즉 의무의 근거를 인간의 밖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의무의 근거는 인간이 갖는 자기 지배의 능력, 즉 자율성에서만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의 법칙을 우리의 행위에 부과하고, 행위를 함으로써 그 법칙을 세계에 부과하는 것이다. (역자해제, 1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