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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적 이성 비판 - 이성의 상실
M.호르크하이머 지음, 박구용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주관적 이성은 지난 세기 서양의 사유에서 나타난 사고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이다. 오랫동안 이성에 대해 지금과는 정반대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 관점은 개인적 의식 안에뿐만 아니라, 객관적 세계 속에서도 있는 하나의 힘으로서 이성의 현존을 주장했다. 여기서 객관적 세계란 인간 사이의 관계와 사회 계급 사이의 관계들, 사회 제도와 기관들, 그리고 자연과 그것의 발현을 가리킨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 철학, 그리고 독일 관념론 같은 거대한 철학적 체계들은 객관적 이성 이론의 토대 위에서 건립된 것들이었다. 객관적 이성 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목적들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위계질서 또는 포괄적 체계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는 이러한 총체성과의 조화에 따라 규정될 수 있었다. 단순히 인간과 인간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총체성의 객관적 구조가 개인적인 사상과 행위의 척도로 작용해야만 했다(17, 18면).
2. “이성적인 것”의 객관적 질서를 자기의 이익 관심과 자기보존을 포함한 인간적 현존재와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에서 객관적 이성의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또한 성공적이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18면)
3.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종교를 공격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들이 무너뜨린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과 객관적 이성 개념 자체, 그리고 고군분투하는 철학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결국 사물의 참된 본성을 파악하고, 우리의 삶을 이끄는 원칙들르 확정하는 기관으로서의 이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사변(Spekulation)은 형이상학과 동의어이고, 형이상학은 신화와 미신의 동의어였다. (36면)
4. 토마스주의의 실패는 실용성의 결여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성급하게 실용적 의도를 허용했다는 데 있다. (119면)
5. 이러한 결합은 토마스주의가 진리와 좋음을 현실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122면)
6. 오늘날 모든 삶이 점점 더 합리화와 기획에 복속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예전에는 사적 영역을 형성했던 개인의 가장 은밀한 충동을 포함한 모든 개인들의 삶은 이제 합리화와 기획의 요구를 따라야만 한다. 개인의 자기보존은 체제 보존의 요구에 개인이 적응해야 함을 전제한다. 개인은 더 이상 체제를 벗어날 여지가 없다. (128면)
7. 인간은 행위의 절대적인 규범적 척도와 보편적 구속력을 갖는 이념들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척도 이외에 어떠한 척도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독립성의 증대는 그에 상응하는 수동성의 증대를 낳았다. 인간은 그의 수단과 관련된 계산을 하는 데는 예민해졌지만 목적을 선택하는 데는 무뎌졌다. 예전에는 목적을 선택하는 것이 객관적 진리에 대한 믿음과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129면)
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유럽을 대변하는 최초의 위대한 인물로 간주했던 지식인들은 사변을 전념할 수 있는 여가와 자신들의 실존 전체를 그들이 정신적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지배 체제에 빚지고 있다. (136면)
9. 저항하는 개인은 진리에 대한 요구와 현존재의 비합리성을 화해시키려는 모든 실용적 시도에 대항할 것이다. 그는 지배적인 척도에 순응함으로써 진리를 희생하는 대신에,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천에서도 가능한 한 많이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를 표현하려고 고집할 것이다. 그는 충돌이 많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는 극단적인 고독의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내면적인 어려움을 세계에 투사하도록 그를 유혹하는 비합리적 적대감은 그의 아버지가 어릴 적 환상 속에서 보여주었던 것, 즉 진리를 실현하려는 열정을 통해 극복된다. (146면)
10. 다윈은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인 믿음의 근본적인 교설을 깨뜨렸다. 동시에 다윈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이었던 형이상학적 진화 개념을 깨뜨렸다. 그는 진화를 사건의 맹목적인 연쇄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생존은 엔텔레이키아에 따른 유기적 본성의 전개에 의존하기보다는 생활 조건에 대한 적응에 의존한다. (159면)
11. (다윈에 따르면) 이성은 결코 독립적인 능력이 아니라, 더듬이나 발톱처럼 어떤 유기적인 것으로서 자연 조건에 적응해가면서 진화하며, 또한 특히 식량을 획득하고 위험을 방지할 때 자연 조건을 극복하기에 적합한 수단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10면)
12. 다윈주의는 신학이냐 철학이냐에 상관없이 이성이 인식하고자 하는 진리를 표현하는 어떤 것으로 자연 자체를 고찰하는 모든 학설을 파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연의 반란을 돕는다. 이성이 비하되고 야생적인 자연이 추앙되는 이성과 자연의 동일시는 합리화의 시대에 전형적인 오류 추리이다. ... 인간은 자연과 이성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두 가지를 화해시키려고 시도해야만 한다. (161면)
13. 전통적인 신학과 형이상학에서 자연적인 것은 대개 나쁜 것으로, 정신적인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은 좋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비해 대중적 다윈주의에서 좋음은 잘 적응한 것이고, 유기체가 적응한 것의 가치는 확고부동한 것이거나 또는 오직 계속되는 적응 여부에 따라 평가된다. (161면)
14. 겉으로 보기에 이처럼 새로운 경험적 이성은 형이상학적 전통의 이성보다도 자연에 대해 더 겸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유용하지 않은 정신적인 것’을 가차 없이 무시하고, 인간의 활동에 자극을 주는 것 이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모든 관점을 폐기하는 오만한 실천적 오성이다. 이러한 관점의 영향은 근대 철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162면)
15. 개인과 이성에 관하여 전통적 철학이 품었던 환상 - 그것들의 영원성에 대한 환상 -은 이제 사라지려고 한다 개인은 한때 이성을 전적으로 자아의 도구로 파악했다. ... 기계가 조종사를 내동댕이친 것이다. ... 이성은 자신이 완결되는 바로 그 순간에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렸다. (164면)
16. 우리가 하나의 역사적 범주로서 개인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단지 인류의 특수한 구성원이 갖는 시공간적이고 감각적인 실존만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덧붙여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여 하나의 의식된 인간적 존재로서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165면)
17. 물론 엘리트는 언제나 계속해서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전략에 더 많이 몰입한다 오늘날 사회적 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사물에 관한 권력에 의해 중개되고 있다. 사물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사물이 점점 더 개인을 지배할 것이며, 개인은 점점 더 진정으로 개인적인 특성을 잃을 것이며, 개인의 정신은 점점 더 형식화된 이성의 자동장치로 변질될 것이다. (166면)
18. 철학자는 본보기를 제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인간, 동물, 사회, 세계, 정신, 그리고 사유에 대해서 자연 과학자들이 화학적 물질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다. 철학자는 정해진 공식을 가지지 않는다. 정해진 공식은 없다. 다른 개념들과의 상호 관계와 미묘한 의미 차이를 고려하면서 이러한 개념들 각각의 의미를 펼쳐 보여주는 것, 즉 적확한 서술은 여전히 철학의 주요 과제다. (206, 207면)
19. 우리 시대에는 고립된 주관적 이성이 도처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동반한 승리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비판은 주관주의적 철학의 잔재를 강조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객관적 이성을 강조하면서 수행하여야 한다. (216면)
20. 이성이 인간에 의해 인간적 자연과 인간 외적 자연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이래로, 즉 이성의 최초의 기원 이래로 진리를 발견하려는 이성의 고유한 의도는 좌절되었다. (218면)
21. 모든 시대에 걸쳐 좋음은 자신을 태어나게 했던 억압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의 이념은 야만적인 지배 형식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났다. 가장 무자비한 봉건주의 시기에 존엄성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황제와 왕은 후광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존경을 요구했으며 존경을 받았다. 경의를 표하는데 소홀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고, 황실을 모독한 사람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늘날 잔혹한 근원에서 풀려난 개인의 존엄성 개념은 인간적인 사회 조직을 특징짓는 이념들 가운데 하나다. (219면)
22. 철학은 언어를 통해 고통을 반영하며, 따라서 고통을 경험과 기억의 영역으로 전이시킨다는 점에서 예술과 일치한다. (221면)
23. 철학은 우리의 모든 인식과 통찰을 언어적 구조와 관계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221면)
24. 철학은 고립된 낱말과 문장 속에서 이러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동양적 교파들의 이론이 추구한 방법이며, 사물과 인간의 세례에 대한 성서의 이야기 속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철학은 오히려 철학적 진리를 발전시키려는 계속되는 이론적 노력 속에서 사물의 올바른 이름을 발견하고자 한다. (221면)
25. 플라톤주의와 같은 객관적 이성의 전통적인 체계들은 냉혹한 세계 질서를 찬양하고 그로 인해 신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지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실증주의보다는 객관적 이성의 전통적인 체계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왜냐하면 객관적 이성의 전통적 체계는 진리란 언어와 현실의 일치라는 이념을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체계의 대변자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체계 속에서 언어와 현실의 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그리고 스스로가 사회적 불의의 한가운데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참된 존재론의 구성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보지 못함으로써 오류를 범했다. 역사는 이와 같은 모든 시도가 허위임을 입증했다. (222면)
26. 전통철학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론은 과학과는 달리 몇몇 보편적 이념들로부터 사물의 본질, 실체, 형식을 도출해내려고 시도했다. 이성은 이러한 보편적 이념을 마치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의 구조는 우리가 우리 정신 속에서 발견하는 그 어떤 제1의 원칙으로도 소급될 수 없다. 사물의 보다 추상적인 특성이 근원적인 것이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니체는 아마도 존재론의 이러한 근본적인 약점을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도 생생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222면)
27. 첫째, 철학은 최고의 무한한 진리로 고찰될 것을 주장하는 이념들의 요구를 부정해야만 한다. 형이상학적 체계가 저 증서를 절대적이고 영원한 원칙으로 서술할 때마다, 그것은 역사적인 상대성을 드러낸다. (224면)
28. 둘째, 근원적인 문화적 이념은 진리의 내용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철학은 이념을 그것이 유래한 사회적 배경에 따라 평가해야만 한다. 철학은 이념과 현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한다. (224, 225면)
29. 부정은 철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부정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절대성에 대한 부정과 현실이 요구하는 뻔뻔스러운 주장에 대한 부정이라는 양날을 지니고 있다. 부정을 중요한 요소로 가지는 철학이 회의주의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회의주의는 형식화되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부정을 사용한다. 철학은 존립하는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가치가 그것의 상대성을 드러내는 이론적 전체의 일부가 된다고 주장한다. (225면)
30. 그럼에도 이들은(프랑크푸르트 학파) 호르크하이머가 주장한 비판 이론의 제1과제, 즉 이질성과 타자성을 배제하는 동일성의 철학 체계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긍정하고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함으로써 언어를 빼앗긴 것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공유한다. (옮긴이의 해제, 231면)
31.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는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는 이성을 목적에 합당한 수단을 계산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옮긴이의 해제, 232면)
32.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계몽의 기획은 형식화되고 도구화된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로 발전했으며, 이로부터 현대 문명의 위기가 등장했다. 여기서 새로운 것은 주관적 이성이 아니라 그것의 전면화다. (232면)
33. 주관적 이성은 유용성 이외의 어떠한 객관적 원칙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억압적 현실과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는 원칙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주관적 이성은 지배적 이익 관심에 쉽게 굴복하며, 비합리적인 억압적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현실에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 (232면)
34. 이성을 유용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는 모든 것을 사유화한다. 이성의 도구화는 1) 이념과 언어를 도구화하며, 2) 사유를 도구화한다. ... 3) 활동조차도 도구화한다. ... 4) 학문과 예술, 그리고 5) 자연을 도구화하며, 결국 6) 인간까지도 도구화한다. 결과적으로 이성을 도구적 이성으로 축소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의 모든 문화적 활동을 도구화한다. 따라서 도구적 이성이 전면화된 세계에는 이성과 사유를 비하하는 반지성주의만 남는다. (233면)
35. 객관적 이성은 현실에 내재하는 원칙으로서 수단보다는 목적의 규정과 그것의 실현 방법을 지향한다. (233면)
36. 계몽의 기획은 이제 주관적 이성의 기획으로 급진전한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로 발전한 계몽의 기획은 야만에서 문명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야만적 신화로 발전했다. (234면)
37. 그렇다면 도구화된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에서 비롯된 야만을 극복하기 위해 이미 해체된 객관적 이성을 부활시켜야 하는가? 호르크하이머의 대답은 ‘예’이면서도 동시에 ‘아니요’다. ... 그(호르크하이머)에게 정신으로 실체화된 객관적 이성을 부활시켜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객관적 이성을 형이상학적 헛소리로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오히려 그는 객관적 이성을 그것을 실체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복원해야 하고 나아가 강조해야 하며, 이렇게 부활된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의 조화를 통해 계몽이 끊임없이 계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35면)
38. 현재의 문화적 위기는 실증주의 철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236면)
39. 호르크하이머는 인위적으로 객관적 이성을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실증주의와 공유한다. 그러나 실증주의자들이 현대의 문화적 위기가 과학적 방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호르크하이머는 자연 과학을 신화화하는 실증주의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 호르크하이머는 실증주의가 철학을 과학으로 환원하는 가운데 과학의 정신 자체를 부정한다고 말한다. (236면)
40. 호르크하이머는 실증주의가 1) 모든 객관적 이성을 부정하고 해체하며, 2) 유용성과 그것을 보증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최고의 유일한 진리 원칙으로 규정하며, 나아가 3) 비판적 사유를 부정하고 사실을 숭배하는 가운데 현실을 긍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4)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서 비롯되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위기를 강화하다고 비판한다. (237면)
41. 토마스주의는 종교적 믿음과 생활 태도를 유용성의 원칙에 비추어 정당화함으로써 현실에 순응한다. (237면)
42. 실증주의가 모든 형태의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가운데 오히려 종교에 대한 비판을 멈춘다면, 토마스주의는 유용성의 원칙에 따라 종교와 신앙을 방어하는 가운데 실증주의와 타협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토마스주의와 실증주의는 현실 긍정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238면)
43. 실증주의가 과학을 이데올로기화했다면 신토마스주의는 신앙을 사회적 지배 세력에 봉사하도록 만들었다. (238면)
44. 그런데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개인의 유일한 목적이 자기보존인 사회에서는 보존되어야 할 개인이 사라지고 만다. 그에 따르면 개인이 자기보존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과 사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수록, 그는 오히려 사물에 의해 지배되고, 그에 따라 진정으로 개인적인 특성을 상실하게 되며, 결국 도구적 이성의 자동 장치로 변질되고 만다. 사물화가 강화됨에 따라 개인은 몰락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현대 문명은 개인을 기능적으로 반응하는 단순한 세포로 위축시킨다. (243면)
45. 철학은 언어를 잃어버린 것들의 언어가 되어야 하며 억압적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부정의 철학이어야만 한다. (244면)
46.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철학은 탈역사적이고 탈맥락적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요소를 제거하고 시대 초월적으로 정의된 철학은 억압적 현실에 무관심하게 되고 결국 현실을 긍정하게 된다. (244면)
47.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1)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삶의 조건이 혁명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만큼 향상될 것이라는 사실, 2) 자본주의가 경제 공황과 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3) 현실 사회주의가 관리되는 사회로 전락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4) 사회 정의와 자유의 변증법적 관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248면)
48. 아도르노 철학이 총체성과 동일성의 모든 체계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총체성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은 다소 유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도르노가 객관적 이성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호르크하이머는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의 조화를 통해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서 비롯되는 계몽의 퇴행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는 아도르노의 관심을 예술과 미학으로 이끌었던 반면에, 호르크하이머의 관심을 철학에 머물게 했다. (250면)
49. 비판 이론의 이름으로 예술과 문학, 그리고 철학은 사물과 생명의 의미를 표현하고, 현실을 그것의 올바른 이름으로 부르고, 말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2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