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시피 - 논리와 감성을 버무린 칼럼 쓰기의 모든 것
최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렇게나 책을 많이 읽으니 너는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가능성에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기뻤던 게 생각난다. 스스로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은밀한 소망을 알아차려 준게 고마웠기 때문이리라.

글쓰기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고, 그렇게 저자인 최진우 작가의 이름을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좌 선생님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저자의 ’100일 글쓰기’에서 100일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감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리라, 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신뢰와 기대가 가득한 마음으로 ‘믿고’ 책장을 펼쳤다.

내가 감히 칼럼을? 이라는 생각으로 ‘칼럼’이라는 단어에 진입 장벽을 느꼈던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저자는 책을 펼치자 마자 칼럼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칼럼이란 결국나만의 참신한 시선으로 명확한 주제를 담은 개성 있는 글’이라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레시피와 같이 시작부터 단계마다 차근차근 알려주는 ‘칼럼 쓰기 101’을 읽어 내려가면서 - 당연히 내가 바라던 선생님의 바라던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첫번째 챕터인 초간단 레시피부터 나도 당장 칼럼 쓰기를 연습해보고 싶어졌다.

칼럼을 쓰는 초간단 레시피는 바로 아래 3단계이다.

1단계: 이야기 서술 + 의미 부여

2단계: 개인 경험을 사회 문제로 확장하기

3단계: 주제를 정해 주장하기

내가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먹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간단하고 명료한 스텝이었다.

물론 수정과 퇴고라는 단계가 남았지만, 15분 글쓰기나 모이스트 망고처럼 글쓰기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여러 시도 끝에 여전히 마음의 숙제로만 갖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겐 정말 쉽고 반가운 HOW-TO 였다.

그래도 여전히 칼럼 쓰기에 장벽이 느껴진다면, 저자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좋은 칼럼을 많이 읽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쓰기와 읽기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만큼, 좋은 칼럼을 꼭꼭 씹어 먹으며 저자의 칼럼 레시피를 체화한다면 좋은 독자(Good Reader)뿐만 아니라 좋은 작가(Good Writer)도 되지 않을까. 나는 좋은 독자는 절대 구린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

명료하고 매력적인 글쓰기에 대한 사람의 열망은 비단 ‘칼럼’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레시피도 칼럼’만’ 잘 쓰는 법이 아닌, 저자가 내린 칼럼에 대한 정의처럼 나만의 창의적인 시선이 담긴 명료하고 흡입력있는 글 쓰는 방법이다.

아뇨, 저는 글 잘 쓰는 법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감히 확신하기에,

더 나은 글쓰기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인 <리틀 드러머 걸>에서 무명배우 찰리는 이스라엘 정보국 요원 가디와 얽히게 되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침투하는 스파이가 된다. 일생일대의 연극에 뛰어들기 전까지 영국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편도, 팔레스타인의 편도 아니었던 찰리는 ‘적’과 소탕해야 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찰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어느 쪽과도 맞닿아있지 않은 내 일상이 책장을 여는 순간 어쩔 줄 몰라하며 중간지대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곳곳의 성지를 방문하면서 가자 지구까지 들어간 적이 있다. 가자지구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넘어오는 ‘국경’에서 멈추어 혹시 관광버스에 장벽 너머로 나가려는 사람을 숨겨주진 않았는지 수색을 받으면서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오로지 믿음을 위한 여정이라는 핑계로 모두가 당장 눈 앞의 장벽이 보여주는 차별과 배제를 흐린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차에 타고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절대 이 땅에 이런 장벽이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란걸.


10년이 흘러 그때 열심히 외면했던 무거운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마주했다. 저자는 유대인 역사의 큰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며 탈무드의 지혜자이자, 악덕한 샤일록이며, 성지의 수호자인 동시에 무자비한 억압자라는 이 모든 상반된 이미지들을 ‘지금 여기의 유대인’이라는 하나의 상(相)으로 만든다.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꿋꿋하게 뚫고 달려와 지금의 터전을 다졌고, 차별과 억압의 고통을 어떤 민족보다도 잘 알면서도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얼굴을 하는 유대인의 이야기는 막막하고 착잡했다.

그런 마음은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이걸 건드리는 순간 어떤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서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서방 국가들은 물론 모두가 방 안의 코끼리를 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해법을 고민해보는 것은 이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차별과 배제, 소외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비록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한번 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특히 당장의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밟고 올라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쉬운 요즘 같은 때야 말로 더 빛을 발하는 고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 대상이 어떤 것이든.

책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취미들을 만난 데다, 연말연초에 잦은 약속과 여행이 맞물려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운 건 물론 그럴 마음도 쉽게 서지 않아서 책을 향한 사랑이 예전같지 않음을 실감했다. '책태기'가 온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독서보다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앞서다 보니 결국 작년에는 100권도 채 읽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를 자책하다 보니 책장을 여는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그래서 책을 멀리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던 때에 올해 첫 책으로 이 작품을 만났다.

머릿글부터 문학에 대한 사랑을 통해 지금 여기 나의 삶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고백하는 저자의 글에, 책을 읽고 있는 데도 작가가 소개하는 책을 읽으러 달려가고 싶었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 담겨 있었기에, ‘내가 이래서 책을 읽지’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시작해 북유럽 신화까지 푹 빠져있었기에 프로메테우스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책장을 덮어도 계속 떠오를 만큼 내 마음에 박혔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주는 댓가로 영원히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가 끝없는 고통의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여리고 약한 것 - 인간 - 을 향한 사랑을 선택한 휴머니스트일 줄이야.

간을 쪼이는 고통까지는 아녀도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구를, 자기 자신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모든 사람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사랑을 위해 프로메테우스가 되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작가의 눈을 빌려 문학을 만나며 좋아하는 작품들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됐고, 처음 알게 된 작품들은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질 정도로 갈급한 독서 욕구를 느꼈다. 작가가 내 몫의 '노력'을 대신 해준 덕분에, 읽기만 해도 고스란히 전해진 그 사랑 덕분에 퇴근길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꺼내 훑어보고, 대출권수에 맞추어 어떤 책을 빌릴지 즐거운 고민을 하는 행복을 누렸다.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과 만난다. 어쩌면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나 자신의 일부를 만나고, 100년을 살아도 분명 경험으로는 알아내지 못할 삶의 또 다른 진실을 섬광처럼 깨닫는다.

p.19

이런데 어떻게 문학을,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과 만난다. 어쩌면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나 자신의 일부를 만나고, 100년을 살아도 분명 경험으로는 알아내지 못할 삶의 또 다른 진실을 섬광처럼 깨닫는다. - P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진의 <파친코>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말에 영상화 되기 전에 허겁지겁 읽었듯이,

나도 몰랐던 국뽕을, 평소에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 나의 국적을 이렇게 역수입된 한국 배경 소설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다.

Linda Sue Park의 <When my name was Keoko>를 버스 안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나는 여전히 조 메노스키의 <킹 세종 더 그레이트>가 궁금했고, 당연히 허주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읽게 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400쪽이라는 두께가 무색할 만큼 책장이 휙휙 넘어갈 만큼 흡입력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절반을 순식간에 읽을 정도였으니까.

'역수입'했다는 것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제주도 사투리를 정성스럽게 옮긴 역자의 공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의 자연과 풍광이 펼쳐지자 눈 앞이 바로 제주 같았다.

고려의 공녀 제도라는 사회를 관통하는 큰 줄기부터 사회과부도에서 보았던 정낭같은 세심한 디테일까지, 작가가 제주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껴졌다.

특히 댕기머리 탐정인 주인공 민환이와 민월매 자매는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던 작가 본인의 자매를 투영하여 읽는 내게도 소설 속 인물 그 이상으로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굳이 빌려오지 않아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나는 <사라진 소녀들의 숲>이 거둔 성공에서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한국 여성 서사 소설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국뽕'에 차서 읽었다.

이 작품이 제주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다면,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죽음 뒤의 이야기를 좇았던 유품정리사 화연의 이야기를 그렸던 정명섭의 <유품정리사: 연꽃 죽음의 비밀>도 충분히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으니까.

꾸준히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을 쓰고 있는 저자의 작품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소개되어

민씨 자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가가 먼 땅에서 정성스럽게 길어올린 이야기들이 더 멀리,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해라서 사주를 본다는 친구, 일이 잘 안풀릴 때면 신점을 보러 가는 친구들이 주위에 수두룩한데도 난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다.

점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신을 멀리해서가 아니라,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 힘을 믿고 또 알기에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에 내가 얼마나 많은 힘과 권위를 부여할지 내 자신을 알기 때문에 가볍운 마음으로라도 점 비슷한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무당은 누구보다도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초월적인 존재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 그래서 나와는 정말 먼 사람.

하지만 저자가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인간만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으로 희생된 동물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서 내 마음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이렇듯 저자는 '무당이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지구와 이웃을 돌보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가 만난 무당들 역시 무당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 말하는 게 망설여질 정도로 각자의 지향과 신념이 확고했지만, 다른 존재의 아픔과슬픔에 기꺼이 공명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특히 연대를 ‘책임지는 일’로, 무당을 ‘함께 우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무당 무무의 인터뷰에는 포스트잇을 페이지 마다 덕지덕지 붙일 정도로 마음이 쏠렸다. 무당 무무의 마음 가짐은 비단 무당만이 아니라, 모두와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응당 가져야 하는 마음 가짐이었다.

무당이라면 이래야 한다, 혹은 이러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내 마음 속에 있는 가치 판단/주로 미디어에서 재현된 이미지에 기인한을 내려놓고, 무당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이제 더이상 무당이 신비롭지 않다.

책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이 책이 무당을 만나러 간 인터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이제는 무당이 하는 일의 본질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꺼이 그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으로 기꺼이 껴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와 닮은 사람들에게만이 아닌, 나와 다른 존재와 그 너머에까지 마음을 쓰는/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란 것 또한 안다.

책장을 덮는 나는, 무당이 나와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보다 무당에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