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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인 <리틀 드러머 걸>에서 무명배우 찰리는 이스라엘 정보국 요원 가디와 얽히게 되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침투하는 스파이가 된다. 일생일대의 연극에 뛰어들기 전까지 영국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편도, 팔레스타인의 편도 아니었던 찰리는 ‘적’과 소탕해야 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찰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어느 쪽과도 맞닿아있지 않은 내 일상이 책장을 여는 순간 어쩔 줄 몰라하며 중간지대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곳곳의 성지를 방문하면서 가자 지구까지 들어간 적이 있다. 가자지구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넘어오는 ‘국경’에서 멈추어 혹시 관광버스에 장벽 너머로 나가려는 사람을 숨겨주진 않았는지 수색을 받으면서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오로지 믿음을 위한 여정이라는 핑계로 모두가 당장 눈 앞의 장벽이 보여주는 차별과 배제를 흐린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차에 타고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절대 이 땅에 이런 장벽이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란걸.
10년이 흘러 그때 열심히 외면했던 무거운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마주했다. 저자는 유대인 역사의 큰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며 탈무드의 지혜자이자, 악덕한 샤일록이며, 성지의 수호자인 동시에 무자비한 억압자라는 이 모든 상반된 이미지들을 ‘지금 여기의 유대인’이라는 하나의 상(相)으로 만든다.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꿋꿋하게 뚫고 달려와 지금의 터전을 다졌고, 차별과 억압의 고통을 어떤 민족보다도 잘 알면서도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얼굴을 하는 유대인의 이야기는 막막하고 착잡했다.
그런 마음은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이걸 건드리는 순간 어떤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서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서방 국가들은 물론 모두가 방 안의 코끼리를 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해법을 고민해보는 것은 이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차별과 배제, 소외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비록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한번 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특히 당장의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밟고 올라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쉬운 요즘 같은 때야 말로 더 빛을 발하는 고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