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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일회용품 규제 철회와 같이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 스무번 정도 들으면 이 책처럼 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한번 겨우 마주치게 된다. 나만 조급한가? 내가 유난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아니라고 다시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는 손길과 같은.
‘유난 떨면서’ 살아온지 꽤 됐다. 세면대에서 테트라팩을 씻다가 역시 MZ는 달라, 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상무님까지 모신 생일파티에서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포크를 쓰고 싶지 않아서 케익을 안먹겠다고 했다가 ‘갑분싸’ 만들기도 했다.
그들 눈엔 내가 유난이라고 하지만, 글쎄 나는 어떻게 그렇게 다들 태평한지 모르겠다. 어떻게 손을 씻고 종이 타월을 3장씩 북북 뜯어 쓰는지, 어떻게 기껏해야 30분 마실 커피를 우리가 죽을 때까지 썩지 않을 플라스틱컵에 담아 마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날 유난스럽게 보는 시선을 그냥 덤덤히 받아들이고, ‘어떻게’로 시작하는 모든 분노는 꾹꾹 집어삼키는 길을 택했다.
‘그러지 마세요’ 대신, 나는 남한테는 강요하지 않잖아? 라는 말로 내 ‘온건함’을 어필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내게 김한민 작가의 단단하고 주저하지 않는 목소리는 더없는 위로이자 은근한 질책으로 다가왔다.
속에 응어리를 가득 쌓아둔 채 끙끙대기만 하고 있는 내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지만) 같이 목소리를 내자, 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글에 어떤 때에는 눈물이 핑 돌만큼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 책을 뉴질랜드에서 읽어서 더 그랬다.
또 비행기를 이동수단으로 택해 플뢰그스캄을 느끼는 동시에, 누구보다 연약한 ‘피식자’ 인간으로서 대자연을 향한 경외심에 김한민 활동가의 목소리를 더하니 맨몸으로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동물이, 수천 년의 시간에 걸쳐 지구에 낸 흠집을 자꾸만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자연을 더 자주 마주할 수록, 우리에게 더 가까울 수록 나를 비롯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더 겸허해질텐데, 우리에게 이미 자연은 너무 멀어졌거나 축소됐다고.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게서 겸허하게 나의 작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앗아갔다고.
그래도 다행인건 우리에게 김한민 활동가와 같은 목소리가, 이 책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본문처럼, '영향은 선택'이다. 마음이 너무 지치거나 혹은 너무 화가날 때 종종 펼쳐보려고 한다. 자본주의, 성장/개발 우선주의, 낙수효과와 같은 말들이 아닌 이런 목소리에 영향을 받기로, 나는 선택했다.
가장 알려지지 않은, 가장 목소리가 작은 존재들을 떠올려 보자. 지구 가열로 멸종되는 산호초, 산불로 잿더미가 되고 도축장에서 난도질당하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 벌목과 채굴에 생존을 위협받는 원주민의 고통…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단 한명의 ‘;구독자’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발산되는 영향의 파장들, 그것을 우리는 받을 것인가. 영향은 선택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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