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우맨 ㅣ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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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필로우맨' 은 이미 연극으로 흥행한 작품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원작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해당 작품을 올린 건 2007년, 
그 당시 최민식 배우가 주연을 맡아 연기했는데
글이 좋다고 극찬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단언컨데, 내가 읽었던 희곡 중에 가장 강렬했다. 
어느 서스펜스보다도 흥미진진하고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아서 꼭 한 번 기회가 된다면
배역을 맡아 연기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이 희곡에서 '이야기' 는 커다란 담론으로 작용한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화를 좋아한다.
어린시절, 누구나 예쁘고 아름다운 동화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이야기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각색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의 원작도, 
다소 잔인하고, 사실은 좀 더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여기 잔혹동화. 
아니. 정확히는 우화를 즐겨쓰는 아이
'카투리안' 이 있다. 

카투리안은 이야기를 즐겨 쓴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대상은 늘 '어린아이' 이다. 
카투리안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심문을 받는다. 

카투리안은 자신은 이야기를 썼을 뿐이고,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한다. 
형사는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카투리안의 이야기에 나오는 범죄 수법이 이용된 것을
증거로 카투리안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카투리안과 투폴스키의 주장은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그만큼 더욱 더 명확하고 섬세하게 전개된다

투폴스키는 자비없이 카투리안을 몰아간다.
하지만 카투리안은 지지 않고 되받아친다.
 
카투리안이 심문을 받는 현장이 
눈 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구현된다.
그는 왜 비극적인 이야기를 썼을까.
읽으면서 계속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카투리안을 이해하게 된다.
'어른에 의해 희생된 아이'
카투리안의 지속적인 세계관을 이룬
이 주제는 커다란 상징성을 지닌다. 
 
카투리안의 세상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가 상상한 세계 속 아이가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펼쳐진다.
더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서,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카투리안에게는 사랑하는 형이 한 명 있다. 
카투리안은 형에게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 대화는,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대화이다.
마이클은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필로우맨' 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필로우맨은 푹신푹신하고,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운다.
하지만 아이들이 비극적 운명을 맞닥뜨리기 전에 
아이들을 죽게 만든다.
카투리안은,  
필로우맨이다.
카투리안은 자전적 이야기를 우화로 담아냈다. 
진실을 들여다보면 카투리안을 필로우맨으로 
만든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희곡.
그것을 경계함과 동시에, 오히려 비극적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전개가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마틴 맥도나'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희곡을 만나서,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소년병 역할을
고민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우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고,
희곡을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입문하기 좋은 작품이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나처럼 이 이야기에 어느 순간 
어느순간 푹 빠져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머리는 원형 베개였어
그리고 머리에는 단추로 만든 두 눈과 미소 짓는 커다란 입이 있었는데,항상 미소를 짓고 있어서, 항상 이빨이 드러났어.
이빨도 베개로 만들어졌어. 작고 하얀 베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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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4.9 - Vol.123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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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직업을 업으로 하면서, 나는 예술을 탐구하는 것에 늘 갈증을 느낀다.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은 한정되어있다보니,

결국 대부분의 정보는 '읽는 것' 에서부터 많이 얻어진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글로써 정보와 지식을 얻어 내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사유하는 것만큼 

연기하는데 가장 좋은 공부가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국문과와 콘텐츠학과를 다중전공해서인지, 평소에 글을 읽는 것, 

그리고 콘텐츠와 관련된 분야를 접하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잡지를 읽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책과 다르게 잡지는 무언가 꾸준히 읽어야 할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글보다는 연예인 얼굴이 돋보였고, 광고들이 많아 글에 대한 집중도를

낮추고, 더욱더 읽고 싶다는 흥미를 떨어뜨렸던 것 같다. 


그런데, 쿨투라매거진은 달랐다. 

트렌디한 글과 그림의 시각적 배치가 글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한 번 펼쳐들고 나니, 다 읽기 전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문화(Culture)' 와 '예술(Art)' 이 합쳐진 매거진, '쿨투라'.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예술가로서 지향해야할 가치, 사명감, 나아가야할 방향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 속에 어떤 것이 '정답' 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가치관이 녹아든 작품, 예술가들의 언어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읽을 수도, 비판할 수도, 저항할 수도 있으며 우리가 잊고 있는 가치를 일깨울 필요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한다.

이번 호의 주제는 '예술-정치' 였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 역사와 사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표현으로 지금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그 안에 자신의 지향점, 시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성과 지침, 그것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 의견을 담아왔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사명이자, 이 땅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가 되어왔다.

예술가는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영향을 받고, 대중적인 코드를 담아낸다. 그로 인해 사랑받고, 비판받기도 한다. 다양한 '논쟁의 장' 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를 반증하며,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 분명한 의의가 있다.


쿨투라를 통해, '예술과 정치' 에 대한 시시각각의 견해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전문가 뿐 아니라, 누구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투고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시대에서, '쿨투라' 는 매거진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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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이면 빛나는 ㅣ 사과밭 문학 톡 22
로르 몽루부 지음, 도아마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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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하면 생각나는 감정이 뭘까?

나는 상처, 아픔, 고통, 창피함,

두려움, 긴장, 불안, 공포

같은 키워드를 떠올린다.

​

콤플렉스는 평소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툭, 튀어오른다.

소리는 들리지만, 불을 끄면

잠적해버리는 모기와 같다.

근원적 원인을 처치하지 않으면

깊게 단잠에 들 수가 없다.

​

페넬로페에게는 콤플렉스가 있다.

한쪽 다리길이가 짧은 것.

남들과 똑같이 걷지 못하는 것.

이것은, 누군가 페넬로페를 상처주지 않아도

페넬로페에게는 언제든 자신이 '무시' 당하고

'차별' 당할지 모른다는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나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하체에서 유독 무릎이 툭 튀어나와있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시절부터 늘상 스트레스였고,

외모콤플렉스로 작용했다.

사춘기때가 유독 심했다.

아이돌들의 예쁜 다리,

주변 친구들의 얇은 다리만 보였고

그래서 창피해서 교복치마 대신

바지를 사기도 했었다.

다이어트를 하고, 살을 빼도

유독 툭 튀어나온 무릎살이 비대해보였다.

코끼리 다리 같아보여서 드러내기가 창피했다.

예쁜 치마를 입고 싶어서 사놓고도,

늘 무릎때문에 욕을 먹을까봐

사놓고도 입어보지 못했다.

​

누군가 내 다리를 지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 다리가 두껍고

무릎이 유독 미워보여서 싫었다.

거울을 볼때, 앉아있을때

무릎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

툭 튀어나온 살을 계속해서 꼬집고

잡아뜯어 벌건 멍자국이 들곤했다.

​

웃긴건 가족도, 아주 가까운 친구도

내게 이런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

지금은 어떻냐 물으면,

나는 여전히 내 무릎이 싫다.

그래도 나는 남들 시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욕을 하라면 하라지 뭐,

라는 마인드로 이겨내고 있다.

조금씩 생활 속에서

콤플렉스를 이겨내보려 노력한다. ​

​

페넬로페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상처입을 것이 두려웠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갇혀,

사촌들을 만나는 것도 무서웠다.

​

하지만 인생에서는 꼭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페넬로페에게도 다시 상처를 맞딱뜨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무섭다고 무작정 '피할수' 는 없는 것. 부딪혀야 하는 것.

외삼촌 집에 가는 것이 이러한 시련이었다.

​

하지만, 놀랍게도 시련은

점점 반짝이는 멋진 추억으로 바뀐다.

페넬로페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사촌들도 페넬로페가 겁내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천천히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실수로 길을 잃었던 숲에서 만난 마야와 딜랑 역시

소중한 깨달음을 준다. 자신이 규정하던 '나'는

다리가 삐뚤고 걷는 모습이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마야에게도 딜랑에게는 그 모습이 못나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

그래서 짐을 싸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날

페넬로페는 외삼촌 집을 오는게 무서웠던 전과 달리,

자신이 이곳을 떠나기 슬퍼한다는걸 깨닫는다.

​

소설은 아이들에게 명확한 교훈을 준다.

두려워하지 말고, 지레 겁먹지 말고

일단 '도전' 하고 '귀기울이라고'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이 찾아올거라고.​

​

마야가 페넬로페를 생각하며 만든

보석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아마도 처음 만났을 때

경계심이 심하고 사람을 무서워하던

페넬로페와,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변해가고 성장한 페넬로페를 보면서

겉은 평범해보이지만, 속이 꽉차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반지를

선물해주지 않았을까?

​

페넬로페에게는 콤플렉스가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전처럼, 무섭지만은 않을 것이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모험이, 결과적으로

멋진 사람들을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경험으로

바뀐 것이 페넬로페를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내가 규정하는 '나',

타인과 세계를 만나 형성된 '나'

​

나는 과연 지금 어떤 모습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

다시 한 번 스스로 묻게 된다. ​​

​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외삼촌 집을 떠나는 것이
슬프냐고 물었다면,그냥 웃었을 거다.

​하지만 짐을 꾸리고 방을 정리하는 이 순간,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고개를 끄덕일거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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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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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우 <레지스탕스>_책표지



예술가로서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단아' 다.​


세상의 부조리와 비극을 예술로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생산적인 일과는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레지스탕스' 로서,

이 땅에 태어나 배우를 하고 있는 한 예술가로서

기꺼이 소리를 내는,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됨은 분명하다.​

'기윤' 이 선택한 방식도 그랬다.

그는 화가였다.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극적이고

암담한 현실에 짓눌려있다.

​

불편한 동창회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온 기윤은

한때 동경했던, 과거 자신의 영웅을 회상한다.

​

​

고교시절 기윤은 상민과 민재를 만난다.

두 인물은 기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

상민과는 권력관계로 이뤄진 모래성과 같은 관계였다.

친구라 믿었지만, 착취를 당하고 부당한 일을 겪으며

방황하고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

그러던 중, 민재가 반에 전학을 온다.

민재는 또래아이들과 다르게 늘 여유가 있고

책과 함께하는, 상민과 정반대의 '멋'이 있었다.

​

기윤은 그런 민재와 친해지고 싶었다.

마침 민재의 관심사인, 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진다.

​

'데미안' 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클라크의 위협에 벗어난것 처럼,

기윤에게 민재는 데미안과 같은 존재가 됐다.

​

상민의 무리 때문에 불안해하는 기윤에게,

민재는 병을 깨면서, 빠질거 같지 않은 코르크마개를

꺼내서 보여준다. '변수' 를 통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것이다.

기윤은 민재가 건넨 코르크 마개를 손에 쥐고,

결국 상민에게 맞선다. 민재 역시 합류해 도와주면서,

그들의 힘으로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맞서 승리한다.

손에 꼽을 정도로 통쾌한 희열을 느꼈던 장면이다.

​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기 원하고, 시인이 되고 싶은 민재.

그리고, 그런 민재와 함께하며 점차 변해가는 기윤은

심해지는 학교의 부당한 규율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

그런데, 이들의 혁명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점차 폭력적이고 유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민재는, 기윤과는 반대로 글로서 학교에 실명을 밝혀

대자보를 붙여 학생으로서 그들이 처한 부당함을 호소한다.

​

그들의 저항방식을 보면, '아나키스트' 가 떠오른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혁명적 아나키스트' 와,

'비폭력 주의 아나키스트' 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

학교가 작은 '사회집단' 이라 생각할때,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노력은

분명, 뜨거운 혁명의 순간이었다.

​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민재는 세상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라는 걸 깨닫는다.

​

이 책의 재밌는 점은, '레지스탕스' 가 혁명가지만

세상을 놀라울만큼 멋있게 뒤집는다거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리더라는

희망적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욱 현실의 비극과 닿아있다고 말한다.

이런 리얼리즘적 면모는, 감정 이입의 창구가 되고,

오히려 다양한 사유거리를 던져줘서 좋았다.

​

민재의 입을 통해, 작가는 많은 정보를 던져준다.

윤리적 가치를 떠나 신념에 따라 '투쟁' 하고,

기꺼이 '저항' 하는 뜨거움을 응원하는 것 같다.

​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내 과거, 지금의 나.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돌아봤다.

​

과거에 나는 현실의 억압, 부당함, 관습적인 규칙에

그저 순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려 전전긍긍했다.

현실과 타협하려 하면 할수록, 민재처럼 갑갑함을 느꼈다.

​

그러면서, 나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다.

나는 이 땅에 어떤 사명을 갖고 태어난걸까.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끝없이 되물었다.

​

결론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철학을 좋아했고, 철학자들의 이론에 빠졌다.

증명할 수 없는 것에는, 역설적이게도 무수한 답이 존재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

정답과 오답, 흑백논리가 아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저마다의 형태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싶다.

​

내게는 아직 결정짓지 못한,

다양한 곁가지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들까지 대롱대롱.

모양은 찌그러지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이런 나를

'이단아' 로 규정할 것이다.

​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 내가 도달하고픈

종착지는 예술가로서의 길이다.

​

전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뤄가며

증명하고 인정받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주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아직도 누구보다 나의 미래를,

가장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걸.

​

하지만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다.

​

비록 혁명적 '레지스탕스' 는 아닐지라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작은 저항의 날갯짓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이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오는 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

레지스탕스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그래서 그 비극이 더욱 숭고하고

가치있고 아름답다.

그리고, 사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무수한 여정을 거쳐, 살아온 것.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그들의 멋은 세상 그 무엇보다 지고했다.

그들을 모방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체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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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밤의 약속
이진휘 지음 / 인티N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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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야기의 저자 이진휘씨는 자신과 수경이 사랑에 빠진 과정,

그리고 수경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난 뒤,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여정을 가슴 시리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

인티N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이벤트를 보고,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에 신청했고 좋은 기회로

이 책을 받아서 읽어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긴밤의 약속 표지 _ 마르크샤갈 <Over the town>


'긴밤의 약속' 표지는 프랑스 작가 마르크샤갈의

<Over the town> 이다.

샤갈과 아내 벨라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담고 있는 표지는, 책 속에 담긴

진휘와 수경의 절절한 사랑과

꼭 맞아떨어지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SBS <궁금한 이야기 Y>에도 방영됐고,

영화판권까지 체결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그 어떤 감동스토리보다도 절절하고 뭉클했다.

​

두 사람은, 선후배 사이로 진휘가 먼저 연락을 취해 해외에 있는

수경에게 닿을 수 있었고 해외에서 둘만의 추억을 쌓으며 서로에게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다. 긴 시간을 떨어져 있어도, 오랜만에 다시 볼때 그토록 행복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

어느날 나갈준비를 하던 수경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고

수경은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움직일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쓰러지고, 방금 전까지도 웃으며 대화했던 사람이 앞으로 다시는 자신과 대화할 수 없다는게얼마나 절망적이고 가슴아팠을까.

그때 진휘의 감정이 어땠을지 감히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게 두사람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 출발은 축복받지 못하고, 진휘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수경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녀의 곁에 남아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건 앞으로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 당시 진휘의 괴로운 심정이 책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평범한 일상과 단절되는 삶이란 얼마나 낯설고 생경한 것이었을까.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하기까지가 정말이지 오래걸렸을 것 같다.

​


가장 인상깊게 가슴에 남았던, 나를 울렸던 장면이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경에게 진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해준다.​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그녀가 상처받을까봐 걱정하는

진휘의 마음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달라진 모습에 익숙해지려하는 수경의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웠다.

​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토록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건,

사랑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그것 자체로 축복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진실되고 순수한 사랑에 마음이 아프기도,

가슴이 시리기도, 그리고 울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그들의 사랑과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나 또한 이처럼 나를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수경아, 걱정하지마. 내가 꼭 살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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