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 이 선택한 방식도 그랬다.
그는 화가였다.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극적이고
암담한 현실에 짓눌려있다.
불편한 동창회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온 기윤은
한때 동경했던, 과거 자신의 영웅을 회상한다.
고교시절 기윤은 상민과 민재를 만난다.
두 인물은 기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상민과는 권력관계로 이뤄진 모래성과 같은 관계였다.
친구라 믿었지만, 착취를 당하고 부당한 일을 겪으며
방황하고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민재가 반에 전학을 온다.
민재는 또래아이들과 다르게 늘 여유가 있고
책과 함께하는, 상민과 정반대의 '멋'이 있었다.
기윤은 그런 민재와 친해지고 싶었다.
마침 민재의 관심사인, 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진다.
'데미안' 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클라크의 위협에 벗어난것 처럼,
기윤에게 민재는 데미안과 같은 존재가 됐다.
상민의 무리 때문에 불안해하는 기윤에게,
민재는 병을 깨면서, 빠질거 같지 않은 코르크마개를
꺼내서 보여준다. '변수' 를 통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것이다.
기윤은 민재가 건넨 코르크 마개를 손에 쥐고,
결국 상민에게 맞선다. 민재 역시 합류해 도와주면서,
그들의 힘으로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맞서 승리한다.
손에 꼽을 정도로 통쾌한 희열을 느꼈던 장면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기 원하고, 시인이 되고 싶은 민재.
그리고, 그런 민재와 함께하며 점차 변해가는 기윤은
심해지는 학교의 부당한 규율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의 혁명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점차 폭력적이고 유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민재는, 기윤과는 반대로 글로서 학교에 실명을 밝혀
대자보를 붙여 학생으로서 그들이 처한 부당함을 호소한다.
그들의 저항방식을 보면, '아나키스트' 가 떠오른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혁명적 아나키스트' 와,
'비폭력 주의 아나키스트' 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학교가 작은 '사회집단' 이라 생각할때,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노력은
분명, 뜨거운 혁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민재는 세상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라는 걸 깨닫는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레지스탕스' 가 혁명가지만
세상을 놀라울만큼 멋있게 뒤집는다거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리더라는
희망적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욱 현실의 비극과 닿아있다고 말한다.
이런 리얼리즘적 면모는, 감정 이입의 창구가 되고,
오히려 다양한 사유거리를 던져줘서 좋았다.
민재의 입을 통해, 작가는 많은 정보를 던져준다.
윤리적 가치를 떠나 신념에 따라 '투쟁' 하고,
기꺼이 '저항' 하는 뜨거움을 응원하는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내 과거, 지금의 나.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돌아봤다.
과거에 나는 현실의 억압, 부당함, 관습적인 규칙에
그저 순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려 전전긍긍했다.
현실과 타협하려 하면 할수록, 민재처럼 갑갑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다.
나는 이 땅에 어떤 사명을 갖고 태어난걸까.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끝없이 되물었다.
결론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철학을 좋아했고, 철학자들의 이론에 빠졌다.
증명할 수 없는 것에는, 역설적이게도 무수한 답이 존재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정답과 오답, 흑백논리가 아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저마다의 형태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싶다.
내게는 아직 결정짓지 못한,
다양한 곁가지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들까지 대롱대롱.
모양은 찌그러지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이런 나를
'이단아' 로 규정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 내가 도달하고픈
종착지는 예술가로서의 길이다.
전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뤄가며
증명하고 인정받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주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아직도 누구보다 나의 미래를,
가장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걸.
하지만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다.
비록 혁명적 '레지스탕스' 는 아닐지라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작은 저항의 날갯짓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이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오는 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레지스탕스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그래서 그 비극이 더욱 숭고하고
가치있고 아름답다.
그리고, 사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무수한 여정을 거쳐, 살아온 것.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