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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평점 :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것은 공공연한 진실이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가 죽음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 놓는다. 마치 순교자처럼.
주인공 사이러스는 병원에서 새내기 의사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죽어가는 환자 연기를 하는 의료용 배우로 일한다. 하지만 사이러스에게는 일상이 그냥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이 일 아니면
저 일. 이 인생 아니면 저 인생.
특히 사이러스가 느끼는 것은 공허함이다. 무너질듯한 텅 빈 느낌. 미국함선의 실수로 이란의 비행기는 공중 폭파된다. 그 안에는 사이러스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비행기에서 죽었어야 했지만 집에 남겨졌고, 이젠 아버지 마저 죽었으니 그를 걱정 할 부모가 더 이상 없다. 남은 삶에는 더 이상 고유한 의미가 없다는 걸 그는 안다. 그런 의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러스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하지만 시를 통하여 그는 몸을 맡길 장소가 생겼고 시에 몰입하는 시간은 그에게 살아 갈 힘을 준다.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핸드폰으로 사이러스에게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 오르키데의
죽음-말(DEATH-SPEAK)을 알려준다.
그는 뉴욕으로 오르키데를 보기위해 떠난다. 사이러스가 찾아야하는 것은 명확했다. 엄마가 순교자였을까? 그 단어에 엄마를 담을 수 있는 뜻이 필요했다.
오르키테는 세계적 명성의 시각예술가이다. 그녀는 말기 유방암 진단을 받고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한 번에 몇 분씩 그녀와 함께 앉아 솔직하게 터놓고 죽음을 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사이러스가 오르키데와의 첫 대면에서 죽는 것에 대해 생각했고 그 죽음을 소재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오르키데는 사이러스를 죽음에 집착하는 또 한명의 이란 남자. 자신의 죽음에 공상하는 용서할 수 없는 허영,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인위적으로 방해 받아야 하는 증여된 것이라고 사이러스를 해석한다. 만남을 갖을수록 둘의 친밀감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러나 결국 오르키데는 죽게 된다. 사이러스는 허탈에 지쳐있다. 그러던 중 오르키데의 연인인 상린의 연락으로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에 그가 느끼는 혼란과 분노와 배신감의 폭풍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오르키데는 사이러스의 엄마 ‘로야’였다. 로야는 친구 레일라와 이란을 탈출하고자 서류조작으로 서로 신분을 바뀌게 된다. 비행기에서 사망한 사람은 로야가 아니 레일라였던 것이다. 미국으로 온 로야는 삶이 지옥이었다. 처음에는 국가로, 그 다음에는 언어로. 지옥보다 깊은 고통. 그것은 심연이었다.
그것들을 그녀는 시각적 어휘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림은 그녀를 구원해 주었고 그림에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심연을 녹였다.
그렇기에 사이러스가 찾고자 했던 순교자의 의미는 자만,허영,오만이다. 삶으로 의미를 만들어 살아 있음이 가능한 상태. 무한히 가능한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내말은, 당신이 진정한 결말을 찾는 걸 그만두면 그 결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에 요.”p298
“예술이란 우리가 살아낸것들이 살아가는 곳이다.”p400
“분노는 일종의 두려움이에요.”p481
“놀라움의 이면에는 평온함에 대한 기대가 있어.”p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