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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70페이지를 읽으며 “돌진하라”는 말에 들어있는 군인들의 노기를 느꼈다. 이 말은 내게 “콘크리트에 어떻게든 머리를 박아서라도 그것을 박살내라!”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더라도 그 콩트리트에 머리 박기를 멈추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피가 더 많이 콘크리트에 묻을수록 “돌진하라”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은 성질을 내며 계속해서 “돌진하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금도 가지 않은 콘크리트에 자신이 퍼부은 많은 피의 양을 생각하며, 그냥은 아까워서 안 되겠다는 심보로 계속해서 사람들을 돌격시키는 모양새였다. 그의 명령이 무엇이든, 그의 “돌격하라”라는 명령은 고스톱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건 혹은 더 따기 위해서건 “고”를 외치는 것과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의 방법은 없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광기.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광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광기. 그래서 전장에 있는 높은 지휘관들은 사람을 도박장의 패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쟁은 이런 광기의 소굴이다. 특히나 피아식별히 힘들었던 동족간의 전쟁이었던 6.25는 더더욱 그러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가장 거대하게 맞붙었던 땅. 생각의 차이만으로 서로를 죽여리고 했던 전쟁. 그것이 6.25전쟁이다. 같은 말,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도 자신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을 환상이 이 싸움의 주된 이유였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의 주인공 정찬우라는 사람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 교육위원이었다. 책의 내용을 보자니 꾀나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 같다. 정찬우라는 사람을 만난 어떠한 인민군도 모두 그를 환대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는 인민군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온 그를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보여주려 했다. 그가 한국땅을 떠나 만주에 정착하고, 북한에서 성실한 일꾼으로 살았으며, 전쟁 때는 교육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남한에서 생포되어 포로로 지내게 된다. 거두절미하게 이야기하면 6.25전쟁 이후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 비극의 역사를 다룬 전형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주인공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굉장히 독특할 뿐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솔직히 약간의 불온함을 느꼈다. “내가 왜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책의 초반부에는 한국 전쟁에서 인민군들이 겪었던 고뇌가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들이 편하게 읽히진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책의 제목에도 약간의 반감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정찬우라는 사람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작가가 정찬우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 이유에는 그의 독특함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결과론적으로 주인공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약간 감수성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별로 저자의 주장을 소설로 풀어낸 것. 즉 이야기 자체는 좋았으나, 솔직히 저자의 주장 자체에는 딱히 동의하고 싶은 마음은 책을 읽는 내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은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