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애인. 비장애인. 정상인. 비정상인.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우리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정상인으로 가리킨다면, 장애인들은 비정상인이 된다. 반대로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비장애인으로 칭했을 때, 장애인들은 마치 정상인처럼 여겨진다. 언어가 규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어떻게 보면 얄팍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얄팍한 기술이 한 사람을 너머 집단에게 인식됐을 때, 사회는 지옥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적당히 긴장이 유지되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책 <어둠의 속도>에 나오는 장애는 자폐증이다. 나는 솔직히 자폐증을 가진 사람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미디어를 통해 나온 사람들을 보고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살려면 상당히 불편하겠구나!”정도로 생각만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우리는 이 같은 장애의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워 지는 것일까? 나는 이 책 <어둠의 속도>가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 루는 자폐증을 갖고 있다. 자폐와 관련된 병이 없앨 수 있는 미래이지만 루의 경우에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는 자신의 자폐증을 인정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며, 사내 복지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잘 일을 한다. 단 한명의 새로운 상사고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상사가 직원들에게 자폐증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받으라는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싶다. 비정상인들에게 정산인이 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시대에, 그들에게 비정상인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찾으라는 것의 의미. 그것은 그 사람에게 플러스 일까 아니면 마이너스 일까.
우리는 언제난 장애인까지도 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그리고 루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와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적인 장애 자체도 없애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감히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이 제기하는 문제는 많다. 하지만 이 책이 지적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개선이 사회구조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란 인격체게 기계적으로 접근이 가능했을 때, 우리는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둠의 속도>가 던지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