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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도넛 - 존경과 혐오의 공권력 미국경찰을 말하다
최성규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절대로 꼭 읽고 말겠다”라고 생각하는 책 중에 하나가 있다. 바로 알렉시 드 토크빌이 쓴 <미국 민주주의> 1, 2권이다. 책의 분량도 문제거니와, 숙련된 정치철학자가 쓴 책이기에 학문적 수준이 충분히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으면 18세기 프랑스인의 미국 기행문을 읽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아, 아직도 손을 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뭐랄까. <총과 도넛>을 읽고 난 뒤부터는 왠지 모르게, (<미국 민주주의>를 한 번도 접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감을 잡고 <미국 민주주의>라는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미국 민주주의>를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모하지만, 만약 토크빌이 21세기의 한국 경찰관이 돼, 미국의 경찰 제도를 탐구하는 일이 맡겨졌다면, 바로 이와 같은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이 책 <총과 도넛>은 미국 사회에서 경찰이란 하나의 객체에 대한 관찰을 넘어, 미국이란 사회의 특징과 연관지어 경찰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책을 처음 받게 됐을 때는, “정부가 자치경찰제를 시행한다고 하니, 이 책을 읽으면 해당 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나는 솔직히 그 닥 자치경찰제에 관심이 없다)”나, 아니면 “미국 영화를 볼 때 제법 이 영화에 나온 경찰에 대한 상식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며 이 책을 펼쳤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경찰을 중심으로 미국이란 사회의 다면적인 모습과, 미국이란 사회를 통해 경찰의 다면성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쓴 저자 최성규 씨는 경찰만 본 것이 아니라, 경찰과 미국사회의 상호성을 치밀하게 파악하며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미국 사회의 경찰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공권력이 특정 사회정치적 지형에 의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한 사람이 본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총과 도넛> 본격 해부!
경찰을 사회학적으로 일반화 하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이 같은 생각 없이 책을 펼쳤던 것 같다. 그간 내 눈에 들어온 경찰은 미디어를 통해 고정된 이미지를 가진 존재였다. <공공의 적> 속 강철중, <베테랑> 속 경찰들, <청년경찰>에 나온 두 호구같은 남주나, 드라마 <라이브>의 지구대 사람들 등. 물론, 미국 경찰과 관련해서도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다. <맨 인 블랙3>에서 윌 스미스가 좋은 차를 타자 이를 검문하는 뚱뚱한 백인 경찰들. <러시아워>에서 자유로움과 무질서함 사이를 오간 카터와 리. 그리고 뉴스를 통해 보도된 폭력적인 미국 경찰 등. 경찰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콘텐츠를 소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봤기에 이해의 폭이 좁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총과 도넛>을 읽고 과거 경찰 캐릭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짚어 보니, 이것은 순 특정 방향으로 각색된 경찰의 이미지만 소비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민중의 지팡이와 민중을 패는 몽둥이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경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랄까. 치안 문제를 최전선에서 맡고 있는 공권력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총과 도넛>은 미국의 경찰을 해부한 글이다. 그러나 미국 경찰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부분 부분에 우리 경찰과 미국경찰에 대한 적절하고 명확한 비교를 통해서, 경찰이란 제도가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고 있다. 또한, 나아가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경찰의 몇 가지 측면만을 부각해서 보여주지 않았다. 가령,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가 십중팔구는 조지 풀로이드 사건과 같이, 미국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만 미국의 경찰을 보여주지 않는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미국의 경찰제도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마지막 장에서 미국의 총기문제와 연관지어 해당 문제에 대해서 왜 풀리지가 않는지를 설명한다. 미국 경찰제도의 역사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 그리고 경찰노조가 갖고 있는 힘 등과 같이 다각면으로 경찰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함으로서,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에 대한 폭력 문제 또한 다양한 측면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령,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흑인 경찰관을 흑인들은 ‘배신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사회에서 흑인들은 가난하며 마약과 갱단과도 얽혀있기 때문에, 흑인이 경찰이 된다고 해서 백인 경찰이 갖고 있는 편견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어떻게 보면 최근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박원순 시장 사망사건에서,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보여준 일과 대동소이한 일이 미국에서도 경찰이란 제도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사회보다, 자신이 현재 속안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 흑인 경찰이 흑인 사회에서 배신자로 여겨지는 문제는 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사회에서 겪고 있는 빈곤의 구조적 문제와, 경찰로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중적인 문제가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백인 경찰이 흑인을 차별적으로 편견없이 대하려 해도 지속되는 흑인들의 의심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있던 현장에서 백인 경찰만이 아니라 소수인종이라 할 수 있던 중국계 경찰관 ‘투 타오’ 또한 있었는데, 해당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어지간하게 편견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강력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섬세하게 짜임새가 좋은 책이다. 미국경찰의 특수(Part 1)성에서 시작해, 미국경찰이 일 하는 법(Part 2), 미국경찰의 권한과 권리(Part 3) 그리고 거친 환경에 놓인 미국경찰(Part 4)까지. 앞 장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충분히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이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문제를 가장 뒤에 배치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백인 경찰의 반복된 흑인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으로만 봤던 사건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러 툴을 제공한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경찰이 책을 썼다고 해서, 약간 “아 뭔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검사도 아니고. 전에 읽었던 오후의 책처럼 가볍게 미국 경찰과 관련된 넓고 얕은 이야기를 해 줄 책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간단하게 대중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정도의 책이라 생각했다. 책의 제목과 표지도 새련되고 어그로 끌지 좋은 것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혹은 미국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찰과 어떻게 다른지 기계적으로 비교를 하는, 그런 재미없고 자기개발서 같은 책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꾀 좋은 책이다. 저자 자체가 관찰자로서 토크빌과 같은 좋은 눈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짜임새 있게 글이 짜여져 있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충분한 깊이와 전체성을 겸비하고 있다. 좋은 독서였다.
나아가?!
이상의 말은 책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 책을 통해 본 현실에 대한 비난이다. 책의 내용과는 그리 관련 없다.
이 책은 정말 잘 써진 책이다. 그리고 자치 경찰제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회의 독특한 기반 위에서 작동되고 있는지, 이 책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딴소리를 한번 해보겠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나는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자치경찰제라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불안했다고 하면 더 맞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치경찰제는 정말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조치이고 중요한 것이기에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검찰개혁이라는 것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에 불가한 게 자치경찰제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의해서 수사권을 받게 된 경찰의 힘이 강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대안이, 경찰조직을 분리한 정부의 조치이며 그 안중 하나가 자치경찰제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방향의 자치경찰제라는 게 과연 잘 작동할지 의문이 들었다. 검찰개혁의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권력과 그 권력이 형성되게 된 사회와의 상호성은 배제한 채 기계적 설계를 통해 제도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국가경찰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광복 이후부터 뿌리 깊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어져온 것이다. 취약국가 상태로 태어난 대한민국에서 치안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힘이 강해진 게 우리의 경찰이고, 그 힘은 점진적으로 작아졌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갑작스레 검찰에 이어 경찰까지 개혁이라니. 경찰 자체는 현재인 국가경찰제도 아래에서 개선하면 될 것을, 왜 이것을 찢어 놓는지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다.
이 책 <총과 도넛>을 보면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경찰제도가 얼마나 미국이란 특수성에 의해 운영됐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미국이란 국가가 세워진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시민들과의 유기적 합의에 의해 만들고 정착된 것이 자치경찰제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의 이해와 합의에 의해 탄생한 게 미국의 자치경찰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검찰개혁 하겠다고 만들어진 게 자치경찰제다. 시민들의 이해가 바탕이 아닌, 권력의 이해에 의해 기하학적 사회 설계주의에 탄생하고 있는 게 현재의 자치경찰제라는 말이다. 과연 이것이 잘 돌아갈까? 괜히 사람들이 “문재앙, 문재앙” 하는 것이 아님을, 뜻밖의 독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이건 뭐 또 새로운 ‘K-경찰’의 탄생인가, 아니면 ‘K캅스의 탄생인가. 정말 답안나오는 정부다. 아주 그냥 앞에 있는 게 된장인지 똥인지 꼭 먹어봐야 하는 정부다. 공직자에 대한 검증이나, 인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정부가, 시민사회와의 상호성에 의해 섬세하게 돌아가는 자치경찰제를 과연 실현할 수 없을까. 솔직히 이 정부의 또 하나의 무리수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옥같은 말들
[세 개의 축]
서부계척시대에 보안관은 유일한 법집행기관으로서 당시에는 도시가 발달하지 않아 시경찰이 없거나 미미했고 주경찰도 제 모습을 갖추기 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도시나 타운, 빌리지를 만들면서 각각의 자치정부를 구리게 되었고, 각각의 자치정부는 관할지역을 법으로 인정받아 치안기능을 하는 경찰서를 갖추게 되었다. 보안관은 관할지역을 각각의 자치정부에 내주고 남은 자투리만 직접 관찰하면서 직할하는 구역은 줄어들었다.
주경찰, 보안관, 시경찰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고,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경제력이나 치안수요에 따라 치안을 맡길 곳을 정한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남부는 그야말로 옥수수밭과 콩밭이 펼쳐진 농경지대이고 여기에 있는 카운터들은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어 보안관도 서부개척시대처럼 부보안관을 따로 두지 않고 혼자서 자리를 지키는 정돌만 일을 하고 있는 데도 있다. 이런 카운티에 있는 도시나 타운, 빌리지는 치안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경찰서를 설치할 이유도 없으며, 그렇다고 혼자 근무하는 보안관에게 부탁할 수 없어 주경찰이 맡아서 한다.
주경찰이 지역의 치안을 맡는 비율은 주별로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주의 경우 2500개의 자치단체가 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1300개 자치단체의 치안을 주경찰이 관할하고 있다. 보안관 또한 소재한 카운티에 있는 시경찰을 관리 감독하지 않으며 이들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지원할 뿐이다. 카운티 내의 특정 도시에서 부정부패나 재정부족 등의 이유로 경찰서가 해산하면 다시 생기기 전까지는 그 지역을 맡아 치안을 유지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시정부가 예산부족 또는 별도로 경찰서를 운영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경찰서를 아예 설치하지 않고 보안관과 계약을 맺어 치안을 위탁하기도 한다. 단 서로 간 계약조건이 맞아야 하고 최종적으로 카운티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조건이 맞지 않거나 인가를 받지 못하면 해당 자치단체는 별 수 없이 주경찰에 치안을 맡길 수밖에 없다.
보안간과 달리 주경찰은 자치단체가 스스로 치안을 담당할 수 없을 때 별도의 비용 없이 이를 맡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속도로순찰이나 주 전체 대상으로 하는 광역범죄를 수사하는 것 외에 생활치안과 관련한 정문성은 없기 때문에, 지역치안을 제대로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도시는 주경찰에 맡기는 것을 임시방편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작은 도시들이 연합해 하나의 통합 경찰서가 만들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주의 관할지역 내 법집행을 하는 세 개의 축은 주경찰, 보안관, 시경찰이며 지역 사정에 따라 셋 중 한 곳이 발달하면 그곳에서 법집행을 주도한다. 세 기관 중 어디에 맡길지는 주별로 특생이 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시카고 같은 대도시는 시경찰이, 일리노이주 남부 농경지역인 카운티나 시의 규모가 크지 않아 주경찰이, 북부는 보안관이 주도한다. 몬태나주나 와이오밍주, 노스다코타주, 사우스다코나주처럼 영토는 넓고 인구는 적은 주들은 정부가 강하지 않아 서부개척시대처럼 카운티의 보안관에 법집행을 맡기는 전통이 강하다. 인구가 적다 보니 시카고 같은 대도시도 없거니와 한국의 농촌마을 정도에 불과한 빌리지들은 보안관이 알아서 치안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 68 ~ 70pp
[국가경찰이 없는 나라]
국가경찰이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통해 효율성과 신속성을 무기로 내세운다면 자치경찰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고민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면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대비한다. 국가경찰도 지역주민이 경찰활동을 수행하는 주민밀착형 치안활동인 커뮤니티폴리싱을 통해 시민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지역공동체에 녹아드는 정도는 지역주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세금으로 살림을 꾸리는 자치경찰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대장이 확실한 경찰이 국가경찰이라면, 대장이 없어도 서로 모이고 뭉쳐서 스스로 선도해가는 경찰이 자치경찰이다. 미국은 국가경찰 없이 자치경찰만으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어, 자치경찰에 어느 정도의 역할과 권한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나라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 73pp
[경찰관 한 명만 있는 경찰서]
미국경찰의 두드러진 특징은 작은 경찰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10인 이하 경찰서가 전체의 75%이고 5인 이하 혹은 1인 경찰서도 아주 많다. 한국이 참여정부시절 준비한 자치경찰제안에서 기초자지단체에 자치경찰을 설립하려 했는데, 반대 측의 주요 논거는 기조자치단체는 규모가 작고 이에 따라 자치경찰도 작아지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손해라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자치경찰보다 더 작은 인원으로 별도의 경찰서가 만드는 미국이 이해가 안 가지만, 이들은 인구가 조금이라도 모이면 빌리지나 타운을 만들고 싶어 하고 여기에 그들의 경찰서를 설치하고 싶어 한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타운’이라는 자치조직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에는 신세계였던 사회를 둘러보고 1835년 출간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면 미국 전역에 평균적으로 2000명이 거주하는 타운이라는 공동체가 수없이 많았는데, 이 타운 중심의 자치가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인구가 작더라도 미국인에게 타운은 삶의 뿌리가 되기에 단 한명이라도 제복 입은 경찰관이 있기를 원한다. 미국은 교외지역의 경우 워낙 땅이 넓고 인구가 적어 이런 미니 경찰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 74pp
[다양한 렵력시스템]
한국의 국가경찰은 중앙에서 통제하는 대규모 조직인 데다 집회·시위나 혼잡경비를 위한 기동부대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집회·시위문화가 달라 상설부대가 없을뿐더러 규모가 작은 경찰서가 많아 범죄정보공유 외에도 자치경찰이 당면한 문제점이 많다. 인구가 200만 명이 훌쩍 넘는 시카고 같은 대도시는 경찰서도 커서 자연재해나 인질극, 대형집회 등 각종 사건사고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대다수의 자치경찰은 대형 사건이나 재난에 혼자 힘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자치경찰들끼리 그룹인 협회를 만들어 자주 모이고 협정을 체결해 서로 돕고 지원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어 있다. 협jq을 위해 작은 규모의 경찰서들이 만든 협력시스템 중에는 일시적인 것도 있지만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상시체제로 꾸려놓고 상근직을 두고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 80pp
[경찰서 문을 닫을지 결정하는 투표]
경찰이 훌륭한 치안행정을 하면 주민들은 그만큼 애정을 표하고 지원하지만, 반대로 부패스캔들이나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애정은 분노로 변한다. 2020년 6월 26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시의회는 5월 25일 발생한 시경찰관 데릭 쇼빈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시경찰을 해산하는 투표를 실시해 가결시켰다. 제적의원 3분의 2 이상 가결하면 시장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한데, 만장일치 가결이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시의회가 경철서를, 그것도 경찰관이 1100명이나 되는 대규모 경찰서를 투표로 통해 해산시켜버린 것이다. 미니애폴리스가 미네소타주의 가장 큰 도시이고 유명하다 보니 이번 뉴스가 더욱 충격적인데 사실 자치경찰제가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경찰서 해산이, 물론 미니애폴리스 경찰처럼 큰 조직이 해산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 경찰서를 닫으면 경찰관들은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일부는 보안관으로 채용되기도 하고 일부는 달ㄴ 도시의 신규채용 경찰서를 알아봐야 한다. 문 닫은 경찰서의 순찰차는 다른 경찰서에 팔리거나 경찰장비를 제거한 후 일반인에게 경매되기도 한다.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나 마을의 경찰서가 문 닫는 것을 주민들은 매우 마음 아파한다. 자치 경찰서는 경찰관이 지역 지리와 주민 사정을 잘 알기도 하고 경찰서도 지역 안에 있어서 출동시간이 빠르지만, 보안관과 계약하면 비록 부보안관이 순찰은 하겠지만 전보다 훨씬 적은 이원과 순찰차가 배정되고 보안관사무실도 멀리 있다 보니 치안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115pp
[미국식 불심검문, 테리스톱]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지도자는 시민들로부터 존경받거나 두려움을 받아야 한다면 두려움을 받는 쪽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이 그 나라 시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인지 두려움의 대상인지 묻는다면 한국경찰은 존경은 몰라도 두려운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미국은 공권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확실히 공권력에 도전한다는 것은 혹독한 결과를 감수해야 할 무모한 짓이다. 경찰이라면 공권력이 강한 미국경찰이 부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존경과 두려움이 건강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미국경찰이 마약수색 위해 주택에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장면을 보면 이들의 무서운 공권력을 느낄 수 있다. “문 열어라”라는 경고 후에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쇠봉으로 문을 부수고 진입하고, 영장집행에 저항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심지어 놀라서 달려드는 개도 사살해버리고 수색을 한다는 이유로 가구나 소파도 처참히 부순다. …
미국경찰의 공권력이 강한 이유는 민간인 총기소유가 가능하고 강한 경찰노조가 존재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법적 보호장치가 확실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심검문에 해당하는 ‘테리스톱’은 경찰관이 합리적 의심이 들 때 보행자나 운행자를 정지시키고 건문검색을 할 수 있는 권한으로, 통과 20분 정도 억류가 가능하다. 또한 신분확인을 위해 신분증제시나 신분을 밝히라는 요구를 했을 때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지시명령위반으로 즉시 체포될 수 있고, 구류 2일 또는 사회봉사 100시간이 부과될 수 있다. - 146pp
[통제의 방법]
조사의 지휘체계가 일사분란하고 인사권과 감찰권도 상부에 집중된 국가경찰제에 비해 자치경찰제에서는 경찰관의 통제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자치경찰제의 원형을 보여주는 영국도 수도경찰의 경우 중앙에서 경시총감의 인사권을 통해 통제한다. 하지만 지역경찰에 가장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자치경찰을 통제한다. 미구의 자치경찰 통제방식은 인사권이나 감찰권 같은 고전적 방식을 직접통제가 아니라 간접통제한다.
간접통제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의한 통제, 연방정부에 의한 통제, 주정부에 의한 통제로 이루어진다. ‘법에 의한 통제’를 가장 큰 통치철학으로 삼고 법률소송에서 넘쳐나는 미국답게 경찰의 법집행방식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수립되는 많은 절차적 정의에 입각한 원칙들로 만들어진다. 한국경찰도 많이 도입해 적용하고 있는, 번인체포 시 묵비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의 고지의무인 ‘미란다 원칙’, 위업하게 수집한 증거의 사용배제원칙인 ‘독과실 원칙’ 등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수렵된 원칙이고, 이렇게 세워진 원칙이 현장에서의 공권력남용을 견제한다.
연방정부를 통한 간접통제의 경우, 경찰기능은 기본적으로 주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수정헌법에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자치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연방정부는 경찰에 의해 시민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판단되면 경찰이 아니라 경찰이 소속된 자치정부를 연방법원에 고소한다. 연방정부가 자치정부의 잘못된 법집행으로 시민의 헌법상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법원에 고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 재판을 통해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하면 자치정부에 벌금을 부과한다. 자치정부는 이 벌금을 피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협상하여 소속 자치경찰의 개혁안을 법원에 제출한다. 연방정부는 개혁안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고소를 취하하고, 법원은 자치정부가 개혁안대로 개혁 하는지 점검한다.
주정부를 통한 간접통제의 경우, 주정부는 주에 소속된 자치경찰에 대한 인사권이나 감찰권이 없기 때문에 관할 내의 모든 경찰관의 교육이나 훈련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준수여부를 통해 경찰관으로서의 자격심사와 서비스품질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통제한다. 기본적으로 경찰관이 되려면 주정부가 인증한 경찰학교에서 주정부가 정한 필수 코스를 통과해야 한다. 경찰학교를 졸업해야 주정부가 발급하는 경찰공무원증을 받을 수 있고, 카운티나 시의 경찰관으로 근무할 수 있다. 각 주정부에는 관할지역 내 모든 경찰 교육과 시험을 주간하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
연방대법원, 연방정부, 주정부가 하는 통제는 외부에 의한 것이다 보니 간접적인 반면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내부에 의한 통제가 있다. 각 경찰기관의 총책임자인 경찰서장이나 경찰국장은 소속 직원들에 대해 인사권가 감찰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나부 직원들을 통제한다. 하지만 경찰노조가 단체협상을 통해 경찰관을 보호하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놓아서, 지휘권자인 경찰서장이 잘못을 저지른 경찰관을 징계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한계가 있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통제로는 과학기술의 발달 및 깨어 있는 시민의 의식에 의한 통제가 있다. 아날로그시대에는 많이 묻히고 사라졌던 경찰관의 비리가 이제는 곳곳에 설치된 CCTV는 물론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시민에 의해 촘촘히 관찰된다. 또한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경찰관의 비위행위가 쉽게 전파되다 보니 앞에서 언급한 그 어떤 통제방식보다 효과적인 면이 있다. - 152pp
[빛과 그림자]
많은 희생과 오랜 기다림 끝에 경찰노조가 생겨나면서 경찰관의 봉급과 복지가 꾸준히 향상되었다.
… 경찰관에 대한 처우개선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경찰이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선거에서 무지할 수 없을 만큼 노조원 수가 증가하면서 후보자들은 앞 다투어 경찰 관련 정책 등을 내세우게 되었고, 당선 후에도 법집행 분야 정책결정 시 경찰노조를 파트너로 대하게 되었다. 한때는 경찰노조가 공공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끝까지 반대하던 정치인들이, 이제는 이들을 무시하기는커녕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경찰노조에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 하지만 경찰 노조로 인한 부작용도 자연스럽게 나타났는데, 점점 오르는 봉급과 증가하는 복지혜택 때문에 시정부의 재정에 부담이 가기 시작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단체협상의 재정에 부담이 가기 시작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단체협상에서 고용주인 시장은 당장 경찰의 표심을 얻고자 노조에 양보하게 된다. 양보해서 발생하는 재정적 부담은 자신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다른 부정적인 효과도 자신의 임기 대는 바로 나타나지 않으니 무책임한 양보가 계속된다.
… 무엇보다 지휘부의 전횡을 없애는 데 많은 역학을 했던 경찰노조의 응집력은 동료의 잘못을 감싸고도는 ‘침묵의 문화’로 바뀌게 되어 경찰관의 잘못이 명백해 보이는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노조가 무조건 편들고 나서면서 경찰에 대한 지역의 여론은 악화시켰다. 게다가 경찰의 징계절차가 단체협상의 내용에 포함되면서 ‘나쁜 경찰’을 보호하는 여러 장치가 마련되었고, 이들이 경찰노조를 믿고 행한ㄴ 방만한 법집행으로 사회적 약자가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 흑인을 대상으로 경찰의 무리한 총기사용이 이어져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를 성도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는데, 경찰노조는 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끝가지 당사자를 감싸고 돌았고, 심지어 해당 경찰관에 대한 징계나 사법처리에 대해 시정부와 재판부를 성토하기까지 해 경찰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 - 180pp
[리스크가 큰 파업]
(경찰노조의) 쟁위행위로는 업무감속, 업무강화, 업무중지가 있다. 업무감속은 말 그대로 신고출동 등 업무처리를 느리게 한다든지 교통티켓 발부를 줄여 시정부의 재정수입을 적게 하는 방법으로, … 업무강화는 티켓 발부를 몇 배 강화하는 것 으로 교통티켓 발부는 물론 경범죄단속도 강화해 시민이 경찰의 주장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업무중지는 경찰독감, 일명 블루플루라고 불리는 것으로 경찰관들이 독감에 걸렸다는 이유로 집단병가를 내서 업무를 마비시키는 방법이다.
블루플루는 2020년 7월 미국독립기념일에 미국 전역에서 많은 경찰관이 사용했는데,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계속되는 경찰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비판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현지 경찰관들의 반응을 파악하고자 쿡카운티의 보안관을 전화로 인터뷰했는데, 미니애폴리스경찰서의 경찰관 쇼빈이 조지 플로이드에 대해 비상식적으로 과도한 법집행을 하여 사망하게 한 데 대해 같은 경찰관으로서 책임을 느끼지만, 거의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경찰을 성토하고 빞나하는 데 열을 올리고 경찰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데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심지어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서를 해산하고 경찰이라는 이름조차 지워버리려 하는 데 대해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하는 모든 경찰관이 느꼈을 허탈감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기가 저하된 경찰관의 치안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피해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실제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뉴욕과 시카고의 범죄율이 급장했다고 한다. … - 191pp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단상]
미국에서 흑인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다수가 빈곤층이며 이로 인해 마약, 총기, 절도 등 많은 범죄를 일으킨다. 경찰관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흑인범죄자를 접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편견이 생긴다. 인종차별을 막으로고 흑인과 히스패닉 경찰관의 채용을 늘려도 이들 또한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마약에 취해 있고 총기까지 소지한 범인을 제압하다 보면 단순한 법집행이 아니라 건투를 치르는 느낌이다. 그래서 경찰관이 범인을 제압하는 매뉴얼도 한국과 달리 강하고 위압적일 수밖에 없다.
시민과 경찰 사이를 마약과 총기가 가로막고 있다 보니 친절한 경찰이 되겠노라 다짐한 신입 경찰관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투를 치르는 전사가 된다. 상대가 흑인이면 총이 있든 없든 일단 긴장하면서 접근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몸짓에도 과하게 위협을 느껴 압도적인 물리력을 행사한다. 오해와 실수 때문에 피해가 발생해도 경찰노조와 법집행의 현실을 인정한 판결이 이들을 지켜준다. 흑인에 대한 사회구조적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 마약과 총에 대한 공포로부터 경찰이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경찰의 사기를 꺾는 일방적 개혁은 치안불안과 범죄율의 증가 등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247pp
… (빈민가에 사는)흑인에게 백인경찰관은 인종차별주의자이고 흑인경찰관은 배신자이다. 한 백인경찰관은 신입 시절 신고현장에서 흑인을 만나면 백인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지가 아무리 노력해도 흑인에게 사사건건 트집이 잡히고 결국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리기는 마찬가지여서 지금은 포기하고 백인이든 흑인이든 똑같이 대한다고 한다. 한 흑인경찰관은 자신이 경찰관을 지원하자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흑인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떠났다고 한다. 인종차별적 법집행이 남긴 상처의 골은 이렇게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