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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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책이 띠지를 보는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 마치 오후라는 작가와 동아시아 출판사의 편집팀이란 자객집단이 던진 비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스스로는 반지성의 근처 혹은 미신의 유혹에 절대 안빠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역시나 내 착각이었다.

나는 혈액형 감별이나 별자리 같은 것은 애초부터 믿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시간을 들여 했던 MBTI검사에서 아인슈타인이나 셜록홈즈와 비슷한 INTP, INTJ가 나온것에 대해 은근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이 또한 유사과학과 비슷한 것이라니! 책의 띠지 따위에게서 스스로의 얄팍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무엇을?

 

큰 기대 없이 봤다. 가벼운 마음 그 자체다. 뭔가 깊은 통찰 혹은 지혜를 구할 수 있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인 <지대넓얕>처럼 유려하고 흥미로운 지식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고, 그 예감은 맞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 ‘불완전하다라는 현학적 단어를 사용한 문장 보다는 인간은 호구다!”라는 말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작가 오후는 이 책에서 인간들이 이제까지 믿어온 다양한 미신의 사례를 통해서, 과거든 그리고 현재든 일간들이 미신에 관해 얼마나 호구 모습을 보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뭔가 자신의 이해와 부딪히는 것이 있으면 인간들은 당당히 부딪히고 성실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쓰러트리기보다, 그 상황에 맞는 적당한 이해(이 책에서는 미신)를 끌어와서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양에서는 별자리가 그리고 동양에서는 주역과 같은 게, 그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여준다. 사회에서 혹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위한 나름의 사고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단순히 인간이 호구이기 때문이이라 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히 멍청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한 태평양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에서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서 먹을 것도 받은 원주민들은 어느 미국인을 아직까지 신처럼 모시고 있다고 한다. 문명적으로 한계에 부닥친 사람들로서는 어떻게든 해당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끌어다 쓴 것이 미신일 것이다. 몇 십년간 자신들에게 먹을거리를 준 미국인을 기다린 태평양 원주민들이나 2000년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이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대동소이한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미신을 믿는 문제를 단순히 사람이 갖고 있는 한계로 거칠게 단정짖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문명의 바깥에 살고있는 원시인들과 문명의 핵심부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을 같은 선상에서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 오후는 너무나도 논쟁적일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미신 작가 오후는 이 책에서 미신도 다루지만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인간이 믿고 싶어 믿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 관한 문제 대신에,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이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큐아논 문제 혹은 오프라윈프리 쇼의 반지성적 문제 등. ‘호구의 나라인 미국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의 한계로 인해 미신을 믿는 일도 있지만, 애초에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인간이 미신을 믿는 이유에 대해서 인간 자체의 불완전한 점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사고의 틀은 제한돼 있고,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의 문제 또한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오후가 지적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극복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기조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힐러리가 아동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둥과 같은 헛소리로 보일 간주될 수 있을만한 것들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또 이로 인해 사회문제가 벌어지는 것들을 오후는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 그리고 아쉬운 점!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첫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저자가 미신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에서 끝날 것이라 생각을 했다. 초반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내용은 단순히 유려하고 유희가 담긴 이야기집이 아니라, 날카롭게 우리 사회의 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사회과학 책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가짜뉴스, 인지편향과 같은 이야기들은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겨울 정도다. 이제는 특별한 것들이 아니면 그러한 책은 거의 보지 않는다. 내 안에 내제된 또하나의 반지성일수도 있겠으나, 이제는 그러한 류의 해석이 지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의 <믿습니까? 믿습니다!>는 광활한 인류 역사의 사례들을 이용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니, 같은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볍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저자의 주장인 회의적사고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룰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를 다룬 책이 있기도 하다. <계몽주의2.0>처럼. 내가 기자 시험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글을 첨삭해줄 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주장을 앞에서 했으면, 그 층위에 비례한 만큼의 대안이 뒤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주장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들을 많이 보여줌으로서 책 1권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그 대안 또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고를 주장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이를 위한 대안은 없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이 책 한권만으로 끝내는 것보다 <계몽주의2.0>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믿습니까? 믿습니다!>를 통해, 우리 사고의 불완전함에 대해 생각해보고, <계몽주의2.0>을 통해서 저자가 제시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아 물론, <계몽주의2.0>은 흥미로운 책이긴 하지만, 오후의 <믿습니까? 믿습니다!>만큼 유쾌하지도 발랄하지도 않다는 점이 있다.

 

주목할만한 문장들

 

완성도 높은 미신은 나름의 체계가 있고, 새로운 상황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과학적 진실, 혹은 틀린 예언이 사람들을 미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 같지만, 체계 속으로 들어가면 허점과 오류는 쉽게 극복된다. 오히려 그런 오류가 자신들의 체계를 더 확고하게 만든다. 체계가 부족하고, 일부에만 작동하는 미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쉽게 사라지지만, 체계가 완성된 미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신이나 종교뿐 아니라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따라 모든 사회 현상을 해석한다.

미신이 무서운 이유는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하기 때문이다. 미신과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들은 단지 미신이 쌓아 올린 체계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똑똑한 두뇌는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화의 속성의 제왕절개, 현대사회를 엮는 그 통찰을 보라. - 155pp

 

곰곰이 생각해보라. 사실 유대교가 뛰어난 종교라서 유대인이 기독교인들을 체치고 부를 쌓은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했지만, 보수적이고 꽉 막힌 것으로 따지자면 유대교가 기독교보다 더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꽉 막힌 유대인들이 상업에서 더 뛰어난 기지를 발휘했을까? 간단하다. 그들의 종교는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에나 금기나 율법 같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의 법만 따르면 된다. 하지만 유대인은 유대교의 법 위에 기독교의 법이 또 있었다. 이것이 이중 족쇄가 되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법이 충돌했기에 그들은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종교법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법이나 종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성공한 유대인들은 종교를 초탈했다. 유대인의 성공은 한 사회를 지배한 종교적 도그마가 얼마나 멍청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유대인을 특별하게 만든 건 하나의 종교에만 귀속된 멍청한 사회가 보인 혐오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령 성 소수자 차별이 없는 도시일수록 창의석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단순히 성 소수자가 창의성이 높다는 뜻이 아니다. 소수자에게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는 어떤 다양한 의견도 수렴 가능하기에 그것이 창의성을 높이고 도시 발전도 이끄는 것이다. - 22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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