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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나이프 - 왼팔과 사랑에 빠진 남자
하야시 고지 지음, 김현화 옮김 / 오렌지디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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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가! 참 특이하다. 일본의 소설은 말이다. 한국의 의학 드라마들은 대개 이러한 구조다. 결코 피해나갈 수 없는 서사.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구조가 있다. 얼마 전에 봤던 <슬의생> 같은 것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났던 의사파업을 보면, 사람들이 슬의생에 기대하는 게 얼마나 환상적인 것인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가! 파업은 정말 재미없었고, 슬의생이 사람들에게 보여준 왜곡 또한 상당한 것 이었다. 현실과 드라마의 괴리라는 깊은 골자기에 의해, 왠지 나도 모르게 배신을 당한 느김이 났다고 할까!
그런데 일본 의학 드라마는 살당히 달랐다. 드라마 <블랙페앙>을 봤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읽게 된 톱나이프의 저자가 각본을 쓴 <코드블루>란 드라마를 봤을 때 또한 그랬다. 뭔가 일본 드라마에는 적당한게 없다. 그냥 최악의 인물이 아니라 입체적인 최악의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삶에 불가역적이 선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 서사적으로 사람들이 다소 불편해할 수 있는 것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일본 드라마는 이러한 것들을 절대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한다.
이번에 읽은 톱타이프 또한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주인공 네 사람은, 솔직히 코드블루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코드블루 시즌1 같은 경우 또한 인턴으로 들어온 4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능한 의사, 무능한 의사, 아버지가 의사기에 의사가 된 사람,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의사간 된 사람 등. 본질적으로 코드블루의 서사는 다르지만, 서사가 만들어지는 구조는 코드블루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이 책은 각자의 서사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코드블루의 경우 상호간에 충돌 혹은 도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라면, 이 책의 이야기는 왠지 한 사람의 것만들 주로 다루고 있고, 이것들이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서 여유롭게 그리고 스무스하게 합쳐지는 구조다.
솔직히 나는 놀라지가 않을 수 없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그리고 의료 업계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 이 같은 글을 그리고 이 같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상당히 신기하다. 지식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해야 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코드블루에서 보여준 것이나, 이 책에서 보여준 의학을 중심으로 서사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의학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한국의 의학 드라마처럼 대충 심각한 척하며 의학 지식들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의학적 지식들을 활용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앞으로, 이 책의 저자가 만드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면 게속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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