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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19년 7월
평점 :
어쩌다가 이런 소설이 나왔을까. 솔직히 내가 이 소설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겁나 특이하다는 것!
소설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 나는 별로 소설을 그렇기 많이 읽지 않으니, 과거에 많이 읽었던 ‘라이트 노벨’로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대개 라이트노벨의 주인공들은 이세계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것들이 상당히 정형화 돼 있다. 가령, 동전을 줍는다든가,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이세계로 날아간다든가, 갑자기 평소처럼 살고 있는데, 이세계로 날아간다든가 등등등. 평범한 남성이 이세계로 날아가는 몇 가지의 경우, 그리고 이 세계에서의 갖게 되는 능력 등이 상당히 정형화 돼 있고, 이 안에서 부분적으로 차이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솔직히 SF소설이란 것을 볼 때도 간혹 그러한 것들을 많이 느꼈다. 배경은 솔직히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 많았고,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 또한 대개는 천편일률적인 것들이었다. 배경을 특별하게 깔아 놓았으니, 그 특이한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기에, 대개 소설의 이야기란 세계관을 따라 흘러갔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이 특이했던 이유는, 솔직히 그 배경적인 것들은 과거의 여느 소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의 이야기가 상당히 차별성 있었다는 것 이었다. 여성의 이야기, 소수자의 이야기 등, 기본적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는 이야기에 SF적 상상력을 덫잎인 것들이 김초엽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나인폭스 갬빗>이 주는 즐거움이란, 김초엽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 이었다. 물론, 다른 SF소설과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마치 <헝거 게임>과 비슷한 세계관을 취하고 있는 점이 있다. 어찌 보면 스페이스 오페라 + <헝거 게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7개였던 분파에서 하나가 다른 역법을 사용해 사라지고, 6분파만 일단은 남게 된 세계관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갈등의 주제가 되는 소재가 단순히 ‘정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갈등의 중심은 어떻게 보면 문화로서의 과학이다. 솔직히 ‘문화로서의 과학’을 주제로 한 책이 없었기에, 나 또한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상당히 어색하기도 하고, 또 단순히 해당 문제를 일반 소설로 쓴 게 아니라, SF소설로 썼다는 점에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로서의 과학이란, 예를들면 하나의 자연 현상을 두고 다른 문화를 가진 집단 간에 다른 해석체계 혹은 체계화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동아시아 출판사의 게시물을 통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으나) 똑같은 1년을 두고 우리나라처럼 태음태양력으로 읽거나, 서양처럼 그레고리력으로 읽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의 자연 현상에 대해서 문화가 다르기에 그 현상을 바라보는 해석이 온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진작 문화로서의 과학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을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 <나인폭스 갬빗>을 보며 처음 알게 됐다. 아니, 어쩌면 이는 없었던 가능성을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선례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놀랐다기 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것을 다뤘다는 것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화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세계관이 너무 스타워즈 급이다보니, 내용에 대한 장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러니까 직관적으로 볼 수 없는 과학의 한 형태가 등장하고, 이것을 서사화 했고, 또 이해관계가 얽힌 소설이다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왜 어려운 소설인지 이번 기회에 충분히 느꼈다고나 할까. 나 또한,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고, 나의 뇌 용량을 한참 뛰어넘는 복잡한 서사와, 복잡한 이해 그리고 처음 접하는 세계관으로 인해 과부화를 느껴야 했다. 하지만, 당신이 한번 온전히 새로운 류의 SF소설이 아니라, 소설 자체를 읽고 싶다면, 나는 이 책 <나인폭스 갬빗>을 꼭 권해보고 싶다. 부디 당신의 뇌에게 안녕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