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숙의가 사라진 시대다. 오늘날은.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를 오늘날에도 불러들여서, 그들의 위대함을 흉내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권위를 이용할 뿐, 그들의 권위에 접근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좌파나 우파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그들의 권위를 통해서 오늘날 권력을 취하려는 모습만 있을 뿐,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또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학생 시절.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사회학과 학생들이 있었다. 공산주의가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을 정치를 통해서 일정 부분 해결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오직 마르크스가 이야기 한 과학적으로 사회를 관찰한 것에 의해서, 우리 사회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법 외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며, 함께 공부하자는 선전 활동을 펼쳤다.

내가 <마르르크스의 귀환>을 읽는 동안 본 것은, 마르크스의 삶 자체가 내가 과거에 만났던 사회학과 학생들과의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그들 내가 만났던 마르크스주의자 학생들 은 마르크스 시대 때 살았다면, 그 당시에 유행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다랐을 사람들이다. 심층적인 탐구 없이, 그저 유행하는 것들을 열렬히 추종할 뿐, 이데올로기의 핵심 그리고 이를 쓴 사람들에 대한 고민은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사상가이면서, 사상적 발명가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쓴 기사들을 읽어 본 일이 있다. 나는 당시에 마르크스가 사회를 어떻게 관찰하고, 또한 사회에 대하여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알았다. 물론, 그것은 마르크스가 사회 변화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를 설명해 줄 뿐이지, 마르크스의 삶 자체를 입체적으로 조명해주지는 못한다. <마르크스의 귀환>은 그런 마르크스의 삶을 문자로 생생하게 재연한 책이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단순히 사상적으로만 치열하게 산 마르크스가 아니라, 일생을 어떤 치열함 속에서 사는 지 알 수 있었다.

엘겔스가 주는 돈으로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자식을 떠나 보내면서까지 책 집필에 매진하는 마르크스의 모습에서, 그가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탐구하려는 필사적인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가 내가 대학 때 사회학과 친구들 이야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자. 좋은 대학을 나온 녀석들. 좋은 공부를 한 녀석들. 좋은 사람과 교류를 했을 녀석들. 나는 그 녀석들의 진보적인 외침에 언제나 사회에 가장 필요한 영혼같은 게 빠졌다는 생각을 늘 했다. 자본가에 의해 처절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그들은 실천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을 규합하고, 이를 운영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외친다. 물론 모두가 마르크스를 외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마르크스를 이용하여 권력을 획닥하는 것, 사람을 규합하는 것 이상은 없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통해 아래의 세상. 마르크스가 바꾸려고 했던 거시사회만이 아니라 미시사회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없었다.

마르크스는 트러블 메이커다. 남편으로서는 0점에 해당된다. 마르크스가 법률가가 됐으면 하고 바랬던,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