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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책세상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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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그리고 현실
“상상력이란 언덕 너머 미지의 뒤편까지 보는 힘이다, 그리고 호기심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올라가려는 인간의 타고난 충동이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두뇌를 그런 위험한 행동을 토해 보상받도록 형성되었다.” 47pp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문장을 꼽으라고 하면 이 문장을 꼽겠다. 사회과학 분야에는 68혁명 때 만들어진 “상상력이 권력을...”이란 전설적인 슬로건이 있다면, 기초과학의 슬로건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앞의 문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었던 점은, 단순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이 점 또한 흔치 않은 기회일 수도 있으나, 더 좋았던 점은 “좋은 선생이란 누구인가?” 혹은 “좋은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을 다닐 동안에 나 또한 ‘교수’라는 작자들을 만난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전기를 배우러 찾아온 나에게 ‘경영학’과 함께 공학을 공부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리를 하는 둥,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면 ‘시건방진 놈’이란 말을 하는 둥. 아무튼, 현실에서 기초과학을 지원하지 않는 여론과 관료들을 만나기 이전에,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끼는 대학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내가 만났던 교수들과는 많이 달랐다. 진정한 교수들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저자들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라는 이공계 분야의 지식이 만드어지는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와 같은 고민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책의 글에서 나오는 저자들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서의 고민은 그것 자체만으로 매력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다룬 고려사항들을 종합해보면, 정신적이고 지적인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할 수 있다. 내가 거론한 학문의 대상은 경험과학과 수학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음악과 미술을 비롯해 인간 정신을 제약 없이 표현하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각 학문 분야가 개인 영혼의 정화와 고취를 통해 만족을 가져다주다는 사실만으로 그 분야를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다. 우리는 암묵적이든 실제적이든 쓸모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과대학, 종합대학, 연구소를 정당화 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이 제도는 학교의 졸업생이 인류 지식에 유용한 공헌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다” 85pp
저자들은 자신들이 몸을 담고 있는 분야가 이공계라고 하여,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그곳에서 체화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서, 학문이란 것에 대한 자신들만의 철학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이것이 인간 자체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에 저자는 초점을 맞추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 때, 저자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지원을 해야 한다는... 어쩌면 정당한 요구라고도 할 수 있고, 이공계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역차별을 받는 것 아니가 하는 생각할 수도 있는 지점인데, 이 책의 저자는 학문에 대한 정의를 인간의 영혼과 연결시켰다. 이 책의 독자가 단순히 이공계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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