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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 - 시민력을 키우는 허승 판사의 법 이야기, 세상 이야기
허승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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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어떤 곳일까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최후의 보루는 법원입니다. 어떻게 해도 다툼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법정으로 달려가지요. 그래서 법정은 수많은 이들의 억울한 사연과 사활을 건 다툼이 한곳에 모이는 현장입니다. 이곳에서는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개인, 기업과 개인, 국가와 기업 등이 수많은 사건을 두고 치열한 법적 논쟁을 벌입니다. 법정에 선 양측의 주장을 들어 보면,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과 대립의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법과 제도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어떤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지 엿볼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쳐야 할 법과 제도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법정으로 초대하는 이유입니다” - 10pp
우리에게 법정은 여전히 추상적인 곳이다. 우리가 만나는 법정은 대개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법정이다. 검사가 명쾌한 논리와 증거물로 피의자를 몰아 붙여 재판을 받아내거나, 아니면 뜻밖의 피의장의 통수로 인해서 검사는 당황한다. 판사 또한 마찬가지다. 윤시윤이 ‘친애하는 판사님께’에서 연기한 판사는 판사의 답답스러움 그리고 시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깨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정 반다에 놓여있는 사람을 들고온 것 이었다.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 또한 마찬가지다. 시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려는 검사에 맞서거나, 억울한 사람을 어떻게든 변호하려는 사람을 보인다.
자! 그렇다면 미디어를 통해 본 우리는 법정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편견의 강화다. 판사의 답답스러움과 권위주의적인 우리의 편견을 검사의 권위적인 혹은 정의로운 것의 강화를, 변호사가 정의의 편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에 서 있거나 아니면 정말 정의로운 변호사를 떠 올린다. 법정이란 곳은 본디, 모든 편견을 없앤 0베이스의 상태에서 천천히 사건을 훑어보고, 완벽하게 논중된 것에 의해서 결론을 내리는 공간인데, 미디어를 통해 법정을 경험한 우리는, 오히려 법정에 대한 편견만 강해지고 있다. 물론, 없진 않을 것이다. 즉 우리가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편견이 완벽히 틀리진 않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사건을 중심으로 법정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음모와 전략들이 완전히 0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편으로 법정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이와 같은 일부의 사건들을 전부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아닌, 실제 그 공간 안에 있는 검사와 판사가 쓴 책을 토대로 만들어진 <미스 함무라비>라든가 <검사내전>을 보면,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정반대의 현실이 법정과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법정이란 곳을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법정의 본질은?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란 책의 표지에는 “시민력을 키우는 허승 판사의 법 이야기, 세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물론, 나는 시민력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게, 이를 통해서 법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니컬하게 보면 이 책은 엘리트 코스를 밞은 한 판사가 한 독서평설의 청탁에 의해 기고한 원고들을 이쁘게 묶어서 낸 ‘많고 많은 법원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낸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는 다른 의미가 분명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결문’이란 것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생(生)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판결문이 얼마나 답답한 글인지도 모를지 모른다. 문장 하나가 시작되면 끊어지지 않고 기본 A4용지 한 장을 가득 매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글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판사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해도 도저히 무엇을 중심으로 따라가야 하는지 갈피를 도저히 잡기 힘들다. 한 인간이 홍수에 무력하게 쓸려가듯, 글 읽는 것으로 쓸려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판결문을 다 읽고도 누가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물론 맨 마지막에 주문을 보고 알아차린다). 판결문이란 것은 그런 글이다. 대개 사시를 준비하는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딱히 볼 일이 없는, 그리고 법정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꾸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아니면 볼 일이 없는 글이다.
이 책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판결문을 풀어 쓴 것이다. 24개의 법정 다툼은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아마 이것들을 실제 판결문으로 읽으려 한다면 당신의 눈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허승판사는 중학교 2학년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것들을 풀어서 묶었다. 세상 판결문을 읽으면서 이렇게 나의 뇌와 눈이 편해본적은 처음이었다. 뿐만인가. 이 책은 다른 한가지. 즉, 하나의 판결을 중심으로 판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각’을 세우기 위해서 기자들이 의도적으로 왜곡을 하는 것과 달리, 이 책에 나온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를 바로 보여준다. ‘CCTV 진실규명을 위해 공개해도 될까’와 같은 경우에는 CCTV를 중심으로 어떠한 쟁점들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CCTV의 증거 능력부터 시작해서, 이것의 예방 효과와, 인권의 침해까지 등. 이 책에서는 판사들이 판결문을 적기 위해서 어떤 쟁점들에 관해서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증명돼야 하는지, 최종적인 결론은 어떻게 내려지는지 등. 24개의 사건이라는 적지 않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들과 관련해 어떤 쟁점들이 있고,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것들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해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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