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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담, 벽 그리고 장벽
집에는 담이 있었다. 서울의 그것과 그렇게 다르진 않다. 까치발을 서면 그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그런 집에 살았다. 하지만 우리 집의 담은 도시 집의 담과는 달랐다. 도시 집의 담이 대개 네모반듯한 벽돌에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 졌다면, 우리집 담의 경우 흙과 울퉁불퉁한 돌들 그리고 그 위에는 자그마한 기와가 씌어져 있는 조선식(?) 담이었다. 어쩌면 싸리나무로 담을 만들었던 조선식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담은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살던 시골집을 멋있게 만들어주었다. 여름에는 넝쿨들이 담을 타고 올라와, 담의 흙에 뿌리를 박으며, 담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덩굴이 차가운 바람을 맞아 시들어지는 가을과 겨울의 담은 한 없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담은 단순히 눈요기만은 아니었다. 담은 명확한 우리 집과 그 바깥세상을 분리하는 존재였다. 우리 집에는 특이하게 집 앞에는 담이 있고, 뒤에는 논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침입 혹은 침해와 같은 것은 담이 있는 쪽에서나 가능하고, 담이 없는 뒤쪽에서는 ‘침입’이나 ‘침해’와 같은 배타성이 드러나 보이는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가다 논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급한 볼일을 보러 담이 있는 쪽으로 갑자기 들어오면 집안 사람들은 모두 적대적으로 대했는데, 그 반대쪽으로 들어오면 우리집 사람들이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로 응대했던 것 같다.
160cm밖에 되지 않았던 작음 담. 그것은 어쩌면 나와 우리집 사람들 그리고 담있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담이 우리 7식구의 인식을 지배했듯, 이 책에 나왔던 만리장성에서부터 시작해 DMZ까지의 벽들은 7명이 아닌 한 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함규진 작가 그리고 장벽
이번엔 장벽이다. 함규직 작가의 ‘그것’시리즈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함규진 작가 혹은 교수님은 세계사를 잘 아시는 분 같다. 과거에 나는 그가 쓴 조약을 통해 본 세계사도 읽었고, 개와 늑대의 정치학 또한 읽었다. 현재 21세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영향을 미친 과거의 조약에 대해서 설명해준 책이 바로 <조약으로 본 세계사>였다. 그리고 과연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 저들이 과연 역사 속에서 현재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때는 왜 그들이 나쁜 세력인지 혹은 좋은 세력인지 몰랐을 땅거미같은 시간의 정치적 정동에 대개 이야기 한 책이 개와 늑대의 정치학 이었다.
함규진 작가는 이와 같은 류. 조약이든 선거든 그리고 이번에는 장벽과 같이 어떤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서 세상을 설명하고 정치적 정동에 대한 설명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 주제가 장벽인 듯 싶다.
어떻게 보면 몇몇 사람들은 함 작가의 이와 같은 글들을 단순히 “Reshuffle”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좋은 평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 어쩌면 인터넷에 있는 내용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일고나성 없게 혹은 얕게 깔린 정보에 비교해 한규진 작가의 손으로 쓰여진 이 책들은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단순히 하나에 대한 피상적인 소개를 넘어서 우리 인류가 장벽을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나 정동을 만들고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함 작가는 과거에는 조약과 선거를 통해 그리고 이번에는 장벽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렇게.
“이 책은 모든 역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복되어 온 역사를 다룬다. 모든 장벽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억할 가치가 있는 장벽들을 이야기한다. 이 내용에서 무엇을 인식하고, 아마도 자신의 눈앞이나 손 끝에, 또는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장벽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지는 독자의 몫이다. 장벽을 새롭게 세울 것인가, 아니면 장벽을 무너뜨릴 것인가? 장벽 ‘이편’과 ‘저편’ 중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 - 007pp
어쩌면 이 부분은 저자의 실수가 아닌지 싶기도 한 부분이다. 어쩌면 프롤로그이니 당연할 수도 있긴 한데,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은 이 책에 압축적으로 들어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장은 내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이 책을 단순히 여러 벽들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모든 장벽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저자가 이 벽을 통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분리다. 그리고 그 벽에 의해서 어떻게 단순히 물리적 분리를 넘어 정치적 분리가 만들어지는지 이야기 한다. 물리적 분리는 사람들을 자극해 정치적 분리를 자극하고 또 정치적 분리는 물리적 분리를 강화시키는 것들을 자극한다. 그렇게 이들은 상호작용 하면서 점점 그 괴리를 혹은 각열을 넚혀 나간다.
이 책의 여러 챕터 중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분리가 가장 잘 쓰여진 부분은 바로 dmz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나에게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동안 웃지 못할 ‘자존심 전쟁’이 휴전선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진 것이다. 물론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펼쳐진 일은 아니었고, 그들의 의사도 아랑곳없었다.
…
이 땅에 언제까지 이런 희비극이 되풀이되어야 할까?” - 225pp
DMZ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진 정동을 쓴 한 부분이다. 과거 내가 봤던 또 다른 텍스트들과 결합하여 저자의 한반도 장벽에 대한 생각을 덧붙일 때, 나느 이런 생각을 할 수박에 없다. 철책이 없던 시절 국군 아저씨들은 북한군과 담배도 바꿔 피고, 술도 마시고 했다고 한다. 뿐만인가.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북한군과 JSA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장벽이 만들어 진 것에서 심리적 거리는 생겼고,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지속된 정동의 발현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리를 키울 뿐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온 다른 장벽들 또한 이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풍부한 텍스트들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장벽의 세계사
얇은 책이다. 그리고 쉽게 읽힌다. 하지만 가벼운 텍스트는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의 앞부분은 가볍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이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 였으니 말이다. 단순히 그 장벽들이 그 사람들에게 가졌던 정동을 우리는 재미있게 읽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장벽의 정동은 오늘날에게 그 쓰임새를 인정받고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효시인 국가에서는 멕시코와의 분리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쓰임새는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분단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한 정치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단순히 낭만론적 민족주의만으로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해소할 길이 없어 보인다. 장벽이 트리거가 돼, 생긴 심리적 거리감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정치적으로 계속해서 이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