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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고독
크리스틴 해나 지음, 원은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대관령 양떼목장을 간 적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업 여행겸 학교에서 준비해준 행사였다. 대관령을 간 것도 처음이었고, 양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뉴질랜드처럼 하얗게 몽실몽실한 털을 가진 양들이 내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11월 한겨울 양떼목장의 모습은 정 반대였다. 양들은 모두 추워서 양사로 모두 들어가 있었고,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대관령이라는 태백산맥의 드넚은 등줄기중 일 부분 뿐이었다. 하지만 티 없는 넓은 초원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골에 살았지만 산에 가로막히고, 주위에는 온통 밭이고 사람들이라 눈 앞에 보이는 불순물들이 많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눈을 통해 아무런 정보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모습에 나는 넉이 나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연환경은 누구도 잘 알 것이다. 인간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드넓은 대관령 등줄기를 채우고 있는 것은 초원이었다. 북방에서 내려온 차가운 기운으로부터 36.5도의 체온을 가진 인간을 숨겨줄 구조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땅을 팔 수도 없는, 강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끝없는 초원만 있는 곳. 그리고 그 자연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그마한 자신을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대관령이었다.
나의 작은 경험이 아마 레니와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레니가 알레스카에서 겪는 경험 하나하나를 내 과거에 대입하고, 내 과거를 변조하면서 읽어 나갔다. 레니의 아버지가 전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엄마 또한 아빠의 트라우마의 희생자라면 우리 집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를 매번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상력을 가장 많이 자극했던 부분은 어쩌면 어린 레나가 극한의 상황에 다다랄 수밖에 없었던 알레스카라는 환경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던 아빠와 그 아빠를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레나 엄마의 경우 알레스카는 시각적으로 그들에게 치료의 공간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공간은 레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레나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감옥 안에 갇혀 있었고, 장소적으로는 알레스카라는 차가운 하연 나라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갇힌 레나가 과연 무슨 상상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는 감히 생각할 수가 없다. 오직 레나가 그 공간에서 느낀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상상력이 닿지 않았고, 만들어 질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레나의 이야기를 따라가야만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