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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덕질이라니 - 본격 늦바람 아이돌 입덕기
원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혼다 히토미는 일본 토치기현 출신으로 1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히토미는 집에 방도 많지 않아서 누나, 오빠와 함께 방을 써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뿐만인가. 이번 여름은 매우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히토미네는 돈이 없어서 에어컨도 없이 보냈다고 한다. 집안 사정과는 별게로 히토미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이 좋아서 학교에 있는 치어리더부에 들어가서 여러 아크로바틱한 기술을 배웠고, 그것들을 응용한 춤들을 잘 춘다. 히토미가 일본의 최고 아이돌 그룹인 AKB48에 들어가 수 있었던 것도 히토미가 학교에서 배운 여러 춤 기술들을 잘 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최정상의 걸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히토미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그녀의 활동 반경은 전혀 넓지 않다. 우리로 치면 시골에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히토미는 지역 행사에 초청되어서 간단한 홍보대사 역할을 하거나 춤을 추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일주일에 1번씩 15분간 <혼다 히토미 Heat is o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 나는 이런 히토미의 배경을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상. 나는 솔직히 현재 나오는 우리나라 여러 아이돌 그룹들의 멤버 이름도 잘 알지 못한다. 트와이스가 9명인지 10명인지, 레드벨벳 멤버 이름도 잘 모르고(다 이쁘게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을 알아도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블랙핑크 또한 제니와 리사 정도만 알뿐. 아이돌에 전혀 관심도 없던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일본 토치기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히토미를 알게 된 것은 <프로듀스48>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솔직히 히토미는 딱히 이쁜 것도, 눈에 뛰는 장기가 있는 염습생도 아니었다. 이쁘기 보다 빵빵한 볼 때문에 귀여웠고, 나카니시 치요리만큼 재밌지도 않았고, 장기가 많거나 진짜 실력이 있는 한국인 연습생들 사이에서 히토미의 존재는 어쩌면 너무나도 작은 것 이었다. 하지만 3일이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밤새 연습을 통해 <내꺼야>를 완벽히 마스터 했고, 그 이후의 곡들을 통해서 히토미는 한국연습생들과의 여러 실력차를 차츰차츰 극복해 나아갔다. 그런 그녀를 계속해서 응원하며 나 또한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의 저자가 <프로듀스101 시즌2>의 강다니엘에 미친 것처럼 히토미에게 빠져버렸다.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
미소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만들어진 오타쿠. 이 오타쿠에서 비롯된 ‘덕후’라는 말은 내가 애니메이션에 푹 빠졌던 2000년대 초나 후반에는 전혀 좋은 뜻이 아니었다. 오타쿠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뚱뚱하고 털도 많고 더러운 남성의 느낌이 강했다. 자기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남성이 현실에서 여자를 구하지 못해서 가상의 캐릭터들과 교감 아닌 교감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이질적이고 배제하고 싶은 느낌을 물신 풍기는 것이 덕후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른바 ‘덕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더럽고 더러운 욕망을 푸는 것과 등치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오늘날 ‘덕후’는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칙칙하고 더러운 느낌의 덕후가 아니다. ‘마니아’라고 제 해석을 하면 덕후에 대한 인상이 더 잘 설명되지 않을까.
덕후가 세상 바깥으로 나오니 덕후에 대한 이미지 또한 변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 보편적인 문화의 한 축이 되니 뭐 하나에 덕후가 되지 않으면, 요즘에는 재미없는 사람이 돼버리기 일수다. 오늘날의 덕후들은 개척되지 않을 분야. 학위가 없을 수도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가 일 수 있으며, 이미 개척된 분야에 대해서는 가득권 층에 대항하는 아마추어들이나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요즘 덕후는 옛날과 같으면 상류층이나 할 수 있었던 소비문화(물론 덕후가 소비하는 분야는 특수하긴 하지만)을 향유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가. 그리고 해당 분야에 대한 나름의 전문성과 철학을 갖고 있으며, 본이 아니게 문화 분야에서의 기득권 타파를 하는 사람들로 보일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밀덕’이라 부르는 밀리터리 덕후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평화가 유지도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들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혼다 히토미라는 친구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걸그룹 산업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다. 가을돼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AKB48프로듀사거 AKB48 멤버들과 히토미를 어떻게 성상품화 하는지, 일본과 한국처럼 각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걸그룹을 어떻게 성상품화하고 있으며 차이는 무엇인지. 전면적인 성 상품화 산업 속에서 생산자인 히토미와 같은 멤버들과 소비자들은 어떤 공생을 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어떤 필요한 것을 주고 있는지, 반대로 각자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성상품화의 산업구조를 비난하면서도 히토미가 잘 되기를 계속해서 응원하는 덕후가 됐다.
난 히토미가 잘 됐으면 좋겠다. 비록 난 딱히 행복하지 않지만 히토미가 데뷔한 IZOME 또한 잘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히토미에 대한 팬. 히토미 덕후로서의 응원이지, 딱히 성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히토미 같은 아이돌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 볼 것이다. 이것이 취업도 못한 서른을 바라보는 히토미 덕후가 이 책을 보며 느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