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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 데이즈 - 바다가 사랑한 서퍼 이야기
윌리엄 피네건 지음, 박현주 옮김, 김대원 용어감수 / 알마 / 2018년 7월
평점 :
“화투가 내가 되고, 내고 화투가 되는! 그런 몰아일최~~의 경지에 나는 도달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돌던 한 장면이었다. 좀 전에 내가 쓴 말은 옛날 <타짜>라는 영화에서 편경장이 한 말이었다. 화투의 신이 된 경지. 모든 화투에 자신의 눈과 귀가 달린 것처럼 편경장은 판을 지배했다. 상대방에게 무슨 패가 있는지. 무슨 패가 가야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패를 가져야 하는지. 그렇게 물아일체가 된 사람은 판과 하나가 됐고, 판을 지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화 타짜를 본 이후에 물아일체라는 사자성어를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휘저은 것은 파도와, 바다와 하나가 된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무언가 하나가 된 사람. 물체와. 살아있지 않은. 나 외 다른 무언가와 하나가 된 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해 무언가와 하나가 된 존재들에 대한 소비만 했을 뿐, 내가 그것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어떤 분야와 하나가 된다는 것.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특히 바다와 하나가 된다는 것. 이 또한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중에 하나다. 나는 바다가 싫다. 정말 싫다. 여름에 가는 바다는 더더욱 싫다. 바람에 실려온 염분기가 너무 싫었고, 바닷물에 들어있는 염분기도 너무 싫었다. 언제나 내 몸을, 내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그런 바다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 타자 였고, 그것도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타자에 불과했다.
서핑. 그리고 하나
이 책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전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책 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는 일단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핑이란 것은 정말 사람 키만한 파도가 몰아치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나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이다. 물살이 강한게 아니라 파고의 높이가 높은 것. 그런 곳에서만 서핑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신청 하면서도 꾀나 고민이 많았다. 내가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바다와 서핑을 통해서 다룬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른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주 기계적인 것이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어디에서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이 아무리 나와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어도, 같은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혹은 특정한 방법을 사용하면 공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장되어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 책의 줄거리에 공감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서핑이라는 것을 매개로 했지만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도전하는 인간의.
책을 다 읽어갈즈음에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는 책의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왜? 그는 모험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나는 계속해서 그 모험적인 삶을 유예하고만 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영역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모험은 철저하게 유예되어 있다. 무언가를 저축한다고 해서 나중에 빼낼 때 그것이 엄청나게 큰 것이 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가장 겹쳐 보였던 것은 바로 나였다.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을 계속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