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정부에서 감성정부로
박상언 지음 / 이음스토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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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서 세월호 4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300명의 넘는 아이들이 수장되는 동안,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그랬다. 정부가 조치를 해야 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잤고, 그의 참모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즈음, 박근혜에게 보고를 하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근혜는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참모들을 향해 대면보고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했다. 박근혜를 악마화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한 줌의 이성을 갖고 있지 않은 권력욕에 취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떠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지 박근혜는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그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다듬어 달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너무 힘든 것 이었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진상조사를 시켜달라는 세월호 가족들을 뒤로하고 박근혜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국회로 들어가는 길을. 세월호 가족들이 박근혜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외쳤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말이다. 이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이성적이지도 않았고 감성적이지도 않았다. 감성의 다른 의미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해석하면 그것은 탐욕적인 정부 그 이상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이성정부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성정부보다 한단계 더 나아갔다는 감성정부란 무엇인가?

 

Upgrade?

 

감성가 이성을 두루 인지하면서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감성적 지성이라고 한다. 국민의 문화적인 삶에 기반을 둔 행복 그리고 이 행복을 꿈꾸는 감성적인 욕구는 지성으로써만 진정으로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관료들은 감성적 지성의 행정을 펼쳐야 하며, 이러한 행정부가 감성정부다.” 저자가 생각하는 감성정부에 대한 정의다.

솔직히 낡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딱히 없다. 하지만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어쩌면 잘난척 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도 솔직히... 좀 꼰대가 쓴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팍팍드는 책이다.

어쨌든. 우리가 정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하나의 합법적 폭력을 가진 존재가 우리 모두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과 같이 가장 강력한 존재가, 모든 것을 제어할 때 우리 모두는 평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탄생한 것이 우리의 정부다. 정부 자체는 우리 이성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한편으로 감성적인 것을 업신 여기는 측면이 있다. 이성과 감성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이것에 서로에 대해 배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감성적인 것이 이성적을 더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대로 오느 순간 이성적인 것이 더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국가는 어쨌든 인간들이 만들오 이끌어 가는 조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다. 감성 정부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곳 이성을 모두 버리고 감성에 호소하라는 것이 아니다. 감성은 이성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완벽히 시민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그 겉을 감성으로 덮으라는 것 아닐까.

어쨌든. 감성정부라는 말을 배워서 재미있있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감성정부인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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