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남 - 그는 왜 괴물이 되었는가
서린 지음 / 잇스토리 / 2025년 6월
평점 :
고무대야에 아내의 시신을 담아두고 웃고 있는 남자. 소설 〈광남〉은 이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지적장애를 지닌 채 ‘바보’라고 불리며 살아온 남자, 광남. 분명 광남의 범행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사건이 단순히 한 사람의 일탈이나 엽기적인 행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광남〉은 광남의 시점뿐 아니라, 그의 아들, 아내,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등 여러 인물의 시선을 교차해가며 이야기를 촘촘히 쌓아올린다. 일반적인 스릴러나 범죄 소설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져내리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애와 빈곤, 정략결혼과 가부장제, 지역 공동체의 침묵과 국가 권력의 억압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한 개인을 파국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쉽게 단죄할 수 없는 사람들과, 그들을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건보다는 인물에 집중한다. 죽음이 반복되어도 전혀 자극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사건보다 인물의 감정과 배경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광남의 살인 사건도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더 무섭고 잔인하다. 인물들의 내면과 사정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독자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선택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보면, 이해라는 단어가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그래서 더 괴롭고, 복잡하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는 혼란이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마주하게 됐을 때 드는 생각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특히 서산 개척단에 대한 부분은 처음엔 작가가 만들어낸 설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믿기 힘들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와 노역을 시키고, 결혼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적반하장으로 그들이 '비정상'이었다는 사회적 낙인을 찍어버린 현실. 이게 소설적인 장치가 아니라, 실제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등장인물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그 자리까지 몰아넣은 것은 가족과 사회, 시대의 압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결국 나는 사람들이 망가진 끝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걸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누구 하나 지목하지 못한 채 무너진 사람들만 바라보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도 많이 고민했다. 내가 이 책을 함부로 '이런 책이다'라고 설명해도 되나 싶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국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을 외면해 왔는가'를 묻고 있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읽고 난 후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단지 충격적인 묘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범죄를 만들어낸 배경이 현재와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광남〉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주위의 일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읽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꼭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에 정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불편함을 마주하는 것. 그게 이 책을 읽은 사람의 몫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