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수호하는 악마의 변호사 - 국선전담변호사, 조용한 감시자
손영현.박유영.이경민 지음 / 인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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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국선전담변호사. 사회적으로는 이들을 패소하는 변호사, 범죄자의 편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혹은 수사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안전망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헌법을 수호하는 악마의 변호사〉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악마의 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이야말로 헌법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질적으로 지켜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오명을 자처하면서도 국선전담변호사가 꼭 필요한 이유를 그들이 맡았던 사건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법정은 드라마에서처럼 거대한 사건만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약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미끄러져 떨어지는 곳이다. 그럴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바로 국선전담변호사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며,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사건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든다.



P. 78

이 사건의 피고인과 앞서 소개한 전세사기 사건의 피고인들을 변호하면서, '빌라왕'의 자살 뉴스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빌라왕은 건설업자였을까? 아니면 자기 명의를 판 수수료로 연명하던 명의대여자였을까? 때론 누군가의 죄가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죄를 밝혀내는 데 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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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국선전담변호사가 가해자를 변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를 덮어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국선전담변호인이 피고인을 변호하는 진짜 이유는,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정확히 책임을 지게 하고, 억울하게 처벌받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또한 사건을 전체적으로 검토해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제대로 처벌받도록 하고, 머리가 아닌 꼬리만 처벌되는 일을 막는다. 또 지적장애인이나 치매를 가진 노인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사례를 보면, 경찰 수사나 조사 과정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억울하게 죄를 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처럼 보이스피싱과 같은 디지털 범죄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로 지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선전담변호사는 정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사건의 균형을 바로잡는 최후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이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자기 죄에 알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형량 자체가 너무 낮다. 최근 폭발물 설치나 칼부림 예고 같은 위협적인 사건들이 늘어나며 사람들은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실제 처벌이 미약해서 제대로 예방되지 않으니 유사한 사건이 반복된다. 외국 사례와 비교하면 더 극명하다. 심지어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도, 술을 먹었다거나 판사에게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감형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범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형벌 자체가 좀 더 무겁고 공정하게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철학자인 괴테는 '인간을 벌할 수도 사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법정 안팎에서 싸우고 있다. 피고인이 누구이든, 사건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들의 역할은 동일하다. 법이 처벌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두의 삶을 보호하는 약속임을 증명해내는 것. 헌법이 글자로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악마의 변호사'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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