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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평점 :
한겨레 책광고에 소개된 책표지의 황도에 끌렸다. 사실 맛이야 백도이지만 농염한 황도의 모습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리고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찬사는 황도만큼이나 책을 유혹하였다. 마침 주문한 책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더 이상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날 집에 도착했다. 책 제목인 문장의 온도처럼 따뜻한 봄날에 민족이 만나 평화를 노래한 날이었다.
책은 고전연구자 한정주가 이덕무의 책에서 글을 뽑아 번역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그래서 이덕무를 저자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정주를 저자로 간주해도 무난해 보인다. 폭넓은 고전 독서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한정주의 수필도 이덕무 못지 않다.
이덕무는 1741년에 태어나서 52년을 살다가 1793년에 죽었다. 정조가 1776-1800년에 재위에 있었으니 정조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실학자로서 근대의 맹아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아이작 뉴턴이 1643년에 태어났으니 서구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책속의 글들은 한정주의 소개처럼 조선 진경시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리를 돌아보며 주체성을 모색하는 진경시대 지식인의 모습은 연구를 업으로하는 모든이에게 본보기이다. 주변 사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한 것을 기록하며 책을 찾아 읽는 선비의 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황도의 매혹하는 향기를 느낀다.
모두 좋은 글이다. 책을 읽고나서 다시금 손으로 더듬다가 한 페이지를 골라본다. 경제학 공부를 1986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32년을 했고 회사에서 업으로 삼은지도 2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럼에도 정말로 궁금한 질문을 찾아 진실되게 답을 찾는 기간은 얼마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고문의 명목이 성행한 시기는 수나라와 당나라 이후부터일 것이다. 대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준걸은 각자의 뜻과 기운과 정신 그리고 언어와 재능과 공력이 붓끝에서 드러나 수작하고 호응해 끊이지 않아 문장 아닌 것이 없다. 비록 잘하고 못하고 하는 분별은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고금의 구분이 있겠는가. 과거의 학문이 나온 후부터 오로지 허황되고 공허한 문장만을 숭상하고 과거시험을 위한 공령문에 구속받아 벼슬아치의 눈에 들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그것을 비로소 시문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한 기타 서와 기와 논과 설 등의 문자에 약간의 전범과 법칙을 더한 것을 고문이라고 부르고 지극히 어려운 문장으로 생각했다. 이로써 두 가지 길로 갈라지게 되어 참된 문장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