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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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부제를 단 하라리의 책은 일관된 주제를 논증하기보다는 21개의 단상을 유려한 문체로 담고 있다. 21개의 단상은 기술, 정치, 민족주의, 미래, 종교, 자아 등 다양하다. 21개의 단상은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고,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Thaler는 최근 AER 논문에서 
성경을 빗대어 "In the beginning there were stories"로 시작하고 있다. 하라리도 첫번째 주제를 시작하며 "인간은 사실과 숫자, 방정식보다는 이야기 안에서 생각한다. 이야기는 단순할수록 좋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개인이 믿는 이야기는 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는 구성원을 조화롭게 만든다. 


그러면 우리 인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는가? 20세기 인류는 최종적으로 “자유주의”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하면서도 우주에 관해 이미 다 만들어진 어떤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자유주의의 해석에 따르면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우주가 내게 의미를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 이것은 나의 우주적인 소명이다... 다른 모든 우주의 이야기처럼, 자유주의 이야기 역시 서사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창조는 매 순간 일어나며 창조자는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Life of Pi에서 태평양을 건넌 이야기를 들려준 Pi는 작가에게 'So which story do you prefer?'라고 묻는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자유주의 이야기가 더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자유주의는 노동에 근거를 둔 철학이고 이야기였다.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인간의 창조능력을 앗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20세기 들어서 마차를 끌던 말이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듯이 노동자는 사회에 무관한 계급으로 간주되고 궁극적으로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자유주의” 이야기는 다가올 실업문제에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한다.

자유주의가 기초하는 인간의 “자유”란 개념도 허구일 뿐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새로운 철학적 논쟁이 이를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는 주장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느낌, 감정, 계산을 근거로 각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내렸던 판단을 자유라고 간주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생명공학은 우리보다 더 우리 취향에 맞는 음악을 잘 고르고 우리보다 더 도덕적인 알고리듬에 따라 운전을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글을 잘쓰고 그림을 잘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인간의 자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머지않아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도 끝이난다. 근대의 종말이다.

새로운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자유주의가 파산한다면 과거 자유주의와 경합했던 민족주의나 종교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최근 Brexit 또는 Trump 현상을 보면 자유주의가 후퇴하는 반면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 또는 종교가 부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하지만 기후변화, 프라이버시문제, 핵전쟁 위협 등 현재의 인류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는 전 지구 차원의 문제이다. 민족주의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종교는 근대이래 문제 해결책이 요구될 때 변명거리를 내세웠고 앞으로도 무능할 것이다. 종교는 종교간 갈등이라는 혹을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의 특성을 감안할 때 민족주의와 종교는 인류 파멸의 길로 안내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인가? 이에 대해 하라리는 그의 명확한 글쓰기에 대조적으로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고 있다. 대신 자신이 체험한 불교와 명상에 관해 들려준다. 그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명상을 말한다.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가 쓰고 있듯이 "80억 인류가 정기적인 명상을 시작한다고 해서 세계 평화와 전지구적 조화가 도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야기는 인류 문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제 문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라리는 선사가 되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류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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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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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코의 미소"가 우리 사회의 약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천사를 그린 것이라면 이번 "내게 무해한 사람"은 10-20대 여자들의 우정, 사랑, 상처를 그리고 있다. 여자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그리는 섬세한 심리 흐름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6개의 단편 가운데에서 특히 "지나가는 밤"이 애정이 간다. 자매간의 애증과 용서가 애잔하다. 시간이 지나 엄마 아빠가 죽은 후에 두 딸이 함께 누워 나눌 이야기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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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사 : 전근대편 쟁점 한국사
한명기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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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역사가인 저자들은 서문에 국정교과서 채택 논란을 보면서 역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공부 목적은 "인간과 사회의 발전적 흐름 속에서 다양한 영역들이 맺는 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며 "10명의 역사가가 있다면 10개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10개의 관점을 가진 이들이 주어진 사실과 역사적 맥락을 조합해 그려내는 10개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넘어 그 자체로 인간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들의 저술 의지가 책 내용의 충실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저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논쟁거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1장에 서술된 고대사 영역에 관한 글을 제외하면 일반인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면 논쟁의 배경과 내용을 차분히 설명해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저자들의 문장을 지루하고 지도나 사진 보조자료는 허술하다. 예를 들어 선덕여왕 초상은 의복이나 장신구에 관한 설명이 없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솔직히 다른 목적으로 썼던 글을 편집의도를 고려하여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묶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역사는 민족이 공유하는 이야기이다.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를 해석하며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현재의 국제정세를 논하며 조선말 정세나 명청교체기를 비교한다. 민족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야기이기에 역사는 복잡한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합의하는 프레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끊임없이 민족이 공유하고 해석할 이야기를 제공해야 한다. 과연 저자들의 작업이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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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종의 기원 -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드는 직진의 삶
박주민 지음, 이일규 엮음 / 유리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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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동으로 옮긴 새로운 부서의 공용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책이다. 얼마전 노조 창립기념일 부대행사로 박주민 의원 강연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참석자에게 나누어준 책이었던 듯하다. 누군가 읽고서 권하고 싶어 놓아둔 듯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쉽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우리 80년대 학번은 간혹 90년대 이후 세대를 가리켜 사회의식이 부족하며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하곤 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이후 민주화 시기를 들어서며 학생운동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없었고 사회의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맞은 첫 10년은 평화와 번영과는 멀었다. 1990년대는 세계화라는 국제조류 편승으로 시작해서 IMF사태라는 경제적 파탄으로 종결되었다. 헌신할 대의는 사라졌으나 남은 것은 초라한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이었다. 박주민 의원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들이게 '가장 바라는 한국의 미래상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44%의 지지를 받는 1위 답변이 충격적이게도 '싹 망해버렸으면 좋겠다'였다.
세월호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그리고 박근혜씨로 대표되는 산업화 가치관은 이 더이상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사회는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그녀를 파면함으로써 한 시대의 종언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과거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자식들은 부모의 모습을 정확히 닮는다. 
성공 지상주의 앞에 도덕관념이나 직업적 소명의식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지금도 법률가를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있는데 그게 좋은 직업이어서 그런 거지, 내가 법률가로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검사가 되면 검사장 되기만 바라보는 거고, 판사가 되면 부장판사 되기만 바라는 거죠. 올라가야 할 위쪽만 그저 바라보는 거예요.
변화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박주민 의원은 우리의 희망이다. 그는 자신의 세대를 기존 세대와와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의 학생운동은 80년대와 달랐습니다. 운동의 고양기도 아니었고 운동의 리더가 곧 대장이 되는 중앙집중적 방식은 아니었으니까요. 따라서 전대협 같은 전국적 학생조직을 배경으로 한 대중적 스타를 배출하지도 못했죠, 우리 세대는 여러 부문에서 조용하고 꾸준히 대중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여성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 등의 사회운동 분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40대에 들어선 이 그룹들이 86세대 그룹과는 또 다른 정치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가운데 하나이고요.
유시민 작가는 "정치는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위대한 사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면서 상대를 존중하고 하나씩 문제를 풀어갔어야 하는데 제 고집과 원칙만 너무 앞세웠죠.... 외로움에 잘 견디는 것, 끈기 있게 잘 버티는 것, 성실하게 자기 일 하는 것 등은 자신 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의 여러 덕목 가운데 '성실'이 으틈이라고 했다.성실한 정치인은 설령 한번 실수를 한다 해도 대중의 지지를 바로 만회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삶의 태도인지 대중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박주민 의원의 힘은 단순하다. 그래서 그를 신뢰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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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슬픔 - 최고의 석학 이중톈이 말하는 중국 전제주의 정치와 인간 탐구
이중텐 지음, 강경이 옮김 / 라의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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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역사학자 이중톈이 CCTV 교양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사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해할 있도록 용어, 왕조, 배경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한국인이 읽기에도 좋다. 특히 유래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대충 짐작으로만 유추했던 여러 용어를 알게되는 즐거움도 작지 않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작가에게 중국사는 연민의 대상이다. 중국은 광활한 지역과 인구를 아우른 세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중국제국은 최고의 문화를 창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쇠락하여 서구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다. 중국의 쇠락을 돌이켜보며 작가는 슬픔을 느낀다. 제국은 황제의 나라였기에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능한 황제는 뛰어난 학자를 용납할 없었고, 무능한 황제는 유능한 학자를 알아 안목이 없었다. 한나라 이후 중국역사는 황제에게는 권한 강화의 역사였고 동시에 학자들에게는 정신분열의 역사였다.


작가가 연민을 보인 여러 대상 가운데 특히 학자들이 공감된다. 작가는 단도직입적으로 학자의 운명에 대해서 황제의 애첩에 비유한다.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의 학자는 인문학만을 공부했기에 관료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반면 진의 시황제 이후 학자를의 수요자는 오직 황제뿐이었다. 결국 학자의 임무란황제의 고급 광대 노릇 되기 쉬웠다. 뜻은 천하를 경영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이전투구 정치판이었다. 그리고 관료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견디기 힘든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자에게 은둔과 세속이라는 딜레마가 운명이었다


그러자 작가가 학자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보다 깊다. 학자는 고루하고 완고한 성향을 가지게 마련이라 자신이 재능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우쭐대거나 고상한 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박함은 거친 욱기의 다른 표출 방식이다. 욱기가 용기로 변형되고 용기가 다시 오기로 발전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집념으로 굳어진다. 세상이 어려웠을 이치를 고수하며 필사의 투쟁을 이끌었던 이들이 바로 학자 서생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정신의 힘이 중화민족이 모진 세월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할 있었던 힘이었다고 찬양한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이 항상 옳지는 않지만 서생기질이 없으며 어떠한 일도 제대로 해낼 없었다.


작가의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닫는다. 마침 며칠전 강릉 선교장에서 예쁘게 해당화를 구경했다.


해당화의 아름다움이 한없이 지속될 거라고 믿지 말라. 봄이 가면 잎은 짙어져도 꽃은 시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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